한국에 오면 나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이런 건 좀 신기하네 싶다는 것을 그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적어두기로 했다. 그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당연한 것으로 변해서 우리 눈에 띄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에는 참 커피숍이 많다는 것을 목격한다. 물론 한국에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며 내가 사는 전주 신시가지 지역은 워낙 커피숍이 많은 동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다. 싸고 좋은 곳도 있는가 하면 너무 비싸서 돈이 아깝다고 생각되는 곳도 있다.
이렇게 커피숍이 많다는 것과 더불어 나에게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정작 슈퍼나 마트에 가보면 커피섹션에 있는 것은 대개 믹스 커피라는 것이다. 냉동건조커피에 커피프림 그리고 설탕을 섞어놓은 믹스커피로 만든 커피를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첫째로 그것은 커피 본연의 맛에 너무 많은 것을 섞어놓은 것이고 둘째로 커피숍에서 파는 커피와는 물론 다르다. 가장 싼 아메리카노가 카페베네 같은 체인점에서 4천원이 넘는데 그런 곳에서 커피 믹스 커피를 내놓으면 사람들이 화낼 것이다.
한국에 이렇게 커피숍이 많고 커피값도 국민소득을 생각하면 비싸다라는 사실은 나로하여금 한국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커피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 가는 마트에는 믹스커피가 대부분이고 원두커피를 파는 곳은 아주 작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닐까. 집에서 기꺼이 맛있게 그리고 싸게 마실수 있는 커피를 커피숍에 가서 비싸게 먹기를 즐긴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일단 더 이상의 분석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고 이런 사실만 기록해 두기로 하자.
내가 느끼는 한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이란 몇가지가 더 있다. 그중의 하나는 바로 사장님이란 호칭이다. 근래에 우리집에는 수없이 많은 택배직원들과 건축인부들이 드나든다. 택배직원은 우리가 사들이고 있는 크고 작은 물건들 때문이고 건축인부들은 이 건물이 신축건물이라서 작은 하자들을 수정하려고 드나드는 것이다.
그분들이 나를 부를 때는 대개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그때마다 당황하여 손을 저으며 나는 사장님이 아닙니다라고 정색하여 말하는 것도 어색하다. 어차피 길게 대화를 할것도 아닌데 그걸 수정해서 뭐하겠는가. 또 날 존대하려고 그러는 것이니 기분 나쁠것 까지야 없다. 그러나 그런 짧은 대화가 끝이나고 그들이 집을 나가고 나면 뭔가가 찜찜하다. 존대받아 기쁘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 찜찜함의 정체를 알기 위해 아내와 대화를 하다보니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스스로에게 답을 듣게 되었다.
"이것봐. 만약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사람이 박사인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고 박사님 박사님 이라고 부른다고 상상해 보란 말이지. 그럼 정말 사람들이 기분 좋아할까? 아마 어떤 사람들은 퉁명스럽게 말할꺼야. '박사가 뭐가 대단하다고 자꾸 박사라고 부르는거야! 사람이 박사가 아니면 안되나!'라고 말이지."
그렇다. 내가 느낀 찜찜함은 사장이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는 식의 가정이 그런 대화속에 깔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장이란 결국 높은 지위에 있고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한다. 서로 서로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만약 내가 그저 평범한 평사원이라면 어서 빨리 사장님이 되세요라고 부르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
불교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반이라고 부르고 기독교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실제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희망사항 혹은 우리가 지향해야할 목표를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즉 도를 향해 나아가고 서로 형제자매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할 방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도반이나 형제대신에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공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선비라고 불러준다면 그도 다른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사람들이 서로 선비님 선비님 하고 부르는 날이 올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애용되는 것의 진정한 의미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그 이유가 여러가지 일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그렇게 널리 쓰이지 않는 곳에서 살다온 나에게 그런 현실은 새삼 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이밖에도 한국에서는 휴대폰 문자 수신 없이는 생활이 참 힘든것 같다던가 일본에서는 그냥 저냥 입던 옷들이 한국에서는 참 낡아보이게 되었다던가 하는 것을 나는 느낀다. 그것이 생활의 변화일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 일일이 길게 분석을 하고 의미를 생각해 보기전에 짧게 기록을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런 것이 당연해져서 뭐가 다르다는 거야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적응은 나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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