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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인테리어 쇼핑/음식과 가구,

베란다의 행복

by 격암(강국진) 2015. 6. 1.

우리는 익숙해지면 좋아도 좋은 줄 모르고 나빠도 나쁜 줄 모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사방이 벽으로 둘러 쌓여서 답답한 공기를 마시고 살 때에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그러다가 바깥에 나가보면 생각보다 공기가 다르다는 것에 놀라곤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캠핑이나 야외 바베큐가 한국에서도 인기다. 그것도 이렇게 야외의 공기가 실내와는 다르다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실외의 공기를 누리고 싶다면 더 간단한 방법도 있다. 베란다나 발코니가 딸린 집을 구하면 되는 것이다. 파리에서는 작더라도 야외로 열린 베란다가 있는 집이나 아파트가 큰 인기다. 그것도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서 지내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용되어 쓰이는 베란다와 발코니는 엄밀하게 말하면 서로 다르다고 한다. 발코니는 건물에서 돌출되어 튀어나온 공간이고 베란다는 아래층과 윗층의 면적차이로 인해서 생긴 옥상같은 공간이다. 즉 베란다의 바닥이 아랫층 집의 지붕인 것이다. 한국의 건축법상 발코니의 폭이 1.5미터를 넘으면 건축물의 바닥면적에 그 부분이 포함되기 시작하므로 아파트에서는 대개 그 폭이 1.5미터를 넘지않게 발코니를 설치한다고 한다. 


물론 베란다가 있다고 해도 무조건 그것이 즐길만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바깥 공기가 좋아야 하고 바깥이 너무 시끄럽지 않아야 한다. 아마 우리나라의 대도시 아파트에는 베란다가 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좋지 못할지도 모른다. 차가 많아서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공기도 나쁘고 고층빌딩이 전주나 파리와는 달리 주변 전망을 가로막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는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 지평선에 떨어지는 해가 만드는 노을을 보기도 힘들다. 한국의 아파트는 대개 발코니가 있지만 또 대개 샤시 공사를 해서 발코니를 실내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내가 말한 것을 뒤집어 말하면 베란다를 사랑하는 시민들은 베란다가 즐긴만한 공간이 되는 것에 더 신경을 쓸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돌려서 우리집 안쪽이 조용하고 공기가 깨끗하다면 바깥은 시끄럽던 공기가 나쁘던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라면 베란다의 효용성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많은 비싼 고층아파트는 베란다는 커녕 창문도 제한적으로 밖에 열수가 없는 구조다. 그런 집은 아마도 베란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비싸게 팔리기 어려울 것이다. 즉 한국인이 베란다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집이 비싸게 팔린다고도 할 수있다. 


설사 전망이 트이고 공기가 괜찮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에 살던 일본 와코시의 아파트에도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바로 한국에서는 샤시를 해서 실내로 끌어들이는, 폭이 1미터 조금 넘는 그런 발코니다. 일본 사람들은 거기에서 이불을 많이 건조시킨다. 나는 그 작은 발코니에 캠핑용 의자를 놓고 앉아보았다. 그렇지만 영 즐겁지가 않았다. 와코시의 공기는 나쁘지 않았고 고층 빌딩이 없기 때문에 전망도 나름대로 터져있는데도 그랬다.  베란다가 너무 좁아서 답답할 뿐만 아니라 의미있는 공간이 되도록 뭔가를 가져다 놓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 사는 집에 처음 이사왔을 때 베란다가 넓은 것을 보고 나는 베란다의 시간을 즐길 생각에 기뻤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겨울이었는데다가 베란다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베란다가 유용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우리집의 베란다에는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작은 꽃화분이 하나 생겼고 그 뒤를 이어 베란다 텃밭을 만들기 위한 대형화분 여섯개가 들어왔다. 우리의 부족한 솜씨 때문인지 작황에 대해서는 전혀 말할 것이 없지만 베란다에 나가면 둘러 볼 것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시장가면 천원에 잔뜩 살수 있는 상추라고 해도 내가 씨를 뿌려서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은 나름의 기쁨이 있다. 우리는 대파도 심어보고 부추며 쑥갓 오이 방울토마토 시금치 상추를 심었다. 심기는 심었지만 시금치는 자라질 않아서 거의 뽑아 버렸고 대파도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녀석들이 녀석들이 있고 그럭저럭 자라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따금씩 나와 아내는 베란다에 나간다. 잠에 취한 몸을 깨우려고 그럴 때도 있고 심어놓은 채소들이 얼마나 자랐나 둘러보려고 그럴 때도 있으며 단순히 저녁 하늘이 보고 싶어서 그럴 때도 있다.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베란다는 야외공간인데도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것이다. 세수를 안하고 머리가 엉망으로 엉클어져 있어도, 잠옷바람이라도 괜찮다. 베란다는 우리집의 일부면서 외부공간이다. 그러니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신선한 바깥 공기를 잠옷을 입고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만약 슬리퍼를 신고 잠옷바람에 거리를 걸어볼 수 있다면 그 자유가 참 좋게 느껴질 것이다. 자기집의 베란다에서는 그런 자유를 작게나마 누릴 수 있다. 


우리집 베란다에 두번째로 생긴 변화는 가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파라솔을 샀고 나무 벤치와 나무 탁자를 샀다.  그렇게 하고 나서 베란다에서 상을 차리고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셔보니 너무 근사하다. 



똑같은 식사를 해도 베란다에서 야외의 공기를 느끼면서 하면 가족들이 더 많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바깥 공기는 우리를 왠지 느긋하게 만든다. 차를 마셔도 맥주를 마셔도 더 편안한 기분이 된다. 베란다의 식탁은 그저 빨리 밥을 먹고 떠나고 싶은 장소가 아니라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장소가 된다. 일요일 저녁을 베란다에서 먹었을 뿐인데 마치 캠핑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베란다는 어느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으로 그 지위가 승격되었다.  아마 다시 추워지는 겨울까지는 그럴 것 같다. 


베란다의 행복을 모르는 사람이 한국에는 꽤 많아 보인다. 모처럼 베란다가 있어도 잘 쓰질 않는다. 설사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베란다를 잘 쓰는 것은 부자들이나 여유있는 사람들이 하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들은 엄청난 고액의 집이 아니라면 제주도에라도 가거나 시골에 전원주택이라도 짓고 살아야 그런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의지가 있다면 그래서 집을 지을 때 조금만 신경써서 짓는다면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익숙한 발코니보다 더 큰 발코니를 설치한 아파트도 있다. 발코니는 당연히 확장공사해서 내부로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야외공간을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의 문제다. 서양의 전통만도 아니다. 우리의 전통한옥에도 대청마루라는 멋진 공간이 있었다.


역설적인 표현같지만 바깥생활은 우리를 느긋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깨어있게 만든다. 반대로 실내생활은 상대적으로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면서 잠들게 한다. 사람은 본래 숲의 동물이다. 동굴안에서만 머물러 살던 동물이 아니다. 우리의 비싼 집들은 그 가격을 생각하면 그저 잠만 자고 서둘러 빠져나오면 그만인 공간보다는 더 좋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 우리가 베란다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에 있는 본능이 이것이 자연스런 환경이라고 말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그런 것을 잊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세뇌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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