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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과 한국

by 격암(강국진) 2015. 7. 3.

나는 심야식당이란 일본드라마를 좋아한다. 언젠가 현대일본의 서민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드라마라고 글을 쓴 적도 있다. (http://blog.daum.net/irepublic/7888701)  그런데 이번에 그 심야식당이 한국판 드라마로 방송되는 모양이며 그에 대해 우려의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실은 나도 그렇다. 원작을 망치는 거야 안보면 그만이지만 서투른 흉내가 한국이 자기 얼굴에 침뱉는 꼴이 되고 말까 두려워서 그렇다. 





심야식당의 정서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심야식당의 정서가 부동산 거품이 꺼진 시대에 공동체 성향이 강한 일본적 정서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즉 호황은 사라지고 이런 저런 상처를 가지고 깨어진 꿈을 부둥켜 앉고 살아가는 작은 소시민만이 양산되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두 컴컴한 심야에 저렴하기 짝이 없는 음식들에 얽힌 추억과 우연히 모여든 식당안의 사람들을 벗삼아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심야식당의 정서인 것이다. 


계란말이라던가 오차즈께, 버터라이스나 문어 비엔나 볶음 같은 것은 말하자면 없이 살었던 시대의 호화판 음식이었다. 한때 일본이 초호황을 누릴때에는 부끄러운 음식으로 생각되었을법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 끝나지 않을 것같은 긴 불황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음식이며 지금보다도 더 없었을 때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김치 반찬만 가지고 철제도시락을 싸가던 시절에 계란 후라이 하나 들어있으면 기쁘고 고맙던 시절의 정서인 것이다.


이렇게 심야식당에는 적어도 두개의 요소가 깊게 배여 있다. 하나는 일본인들이고 또하나는 일본의 서민 음식문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일본인은 성공만 하느라 자신만만한 그런 일본인이 아니고 깨어지고 패배했으며 종종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사는 일본인이다. 그들은 종종 매춘 사업이나 물장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즉 호스트바의 호스트나 스트립쇼를 하는 여자, 게이바의 마담 같은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고작해야 야쿠자고 성공한 애인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며 늙어가지만 시집을 못가는 인기없는 노처녀들 같은 사람들이다. 젊었을때의 작은 영광을 되씹고 되씹으면서 늙어가는 샐러리맨들이거나 망가진 가정에서 커서 노망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노총각 사범같은 사람들이다. 다는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 한번쯤은 자살같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봤을 법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온다. 


한국판 심야식당을 만든다는 말이 나올때 내머리를 스친 첫번째 생각은 과연 한국 사회가 심야식당의 정서를 가지고 한국 사회를 진지하게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도 물론 상처입은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 인생을 미디어에서 직시하는 때는 거의 없다. 한국의 미디어에서 나오는 밑바닥 인생은 거의 항상 동정을 받을 사람들이거나 게으름이나 범죄행위로 인해서 손가락질을 당할 사람들이다. 즉 수동적 인간이거나 배척되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밑바닥 인생을 직시한다는 것은 그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정이나 경멸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서 공감과 긍정을 하면서 바라보는 것이다. 대등한 존재로 친구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인생이지만 이런 점은 좋구만 하고 부러워 할 수 있는 면을 인정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그리고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라고 해서 야쿠자나 스트립쇼걸을 좋은 직업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심야식당에서 나오는 정서대로 산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심야식당의 정서가 방송에서 표현되었을 때 거기서 심한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는 된다.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보다 개인주의가 잘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내인생은 내인생이고 남의 인생은 남의 인생이라는 태도가 더 잘 정착되어 있다. 한국은 여전히 1등만을 바라보는 사회다.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정서란 이런 것이다. 나라면 너같이 안살았을지 모른다. 나는 다만 너보다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너의 삶은 너의 삶이고 나의 삶은 나의 삶이다. 우리는 자기 자리에서 각자 나름대로 아둥바둥 살고 있다. 서로 남의 인생 책임져줄 수는 없지만 우연히 만났으니 잠깐의 만남이라도 이왕이면 좋은 말 건네주고 이야기도 들어주자는 것이다.


한국판 심야식당이 일본판을 그대로 흉내내면 그것은 십중팔구 한국의 서민들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되기 쉽다. 왜냐면 한국의 서민의 사연은 다르니까. 한국의 서민들도 가슴터질 사연은 산처럼 쌓여있지만 그 사연이 일본의 사연과 같지 않으니까. 세부사항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냥 일본판을 그대로 만들면 한국의 서민의 현실에 대한 왜곡이 일어나고 그 왜곡은 한국 서민을 오히려 분노하게 만들 것이다. 


대중도 미디어도 한국서민의 민낯을 직시할 준비가 안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마치 사회비판드라마처럼 되기 쉽다. 그리고 인기도 없기 쉽다. 상당수 국민들은 여전히 재벌집에서 태어난 선남선녀들이 배부른 고민하는 예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한국에서 인기있었던 미생정도가 한국이 지금 소화할 수 있는 정도다. 그리고 현실에 더 맞다. 본격적으로 망가진 인생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현실을 긍정의 눈으로 그릴 역량은 쉽지 않고 그게 인기를 얻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 미디어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대중도 그렇다. 한국에서 소시민의 삶을 긍정하는 일은 드물다. 서민들도 모여서 출세나 로또를 이야기한다. 일본판 심야식당의 정서는 그런게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심야식당을 좋아할까. 나는 한국인이 외로워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은 한국인이 엄청나게 외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도 더 외롭다. 그리고 심야식당같은데 들려서 술한잔 기울이면서 외로움을 풀수 있을만한 형편도 안될만큼 더 비참하다. 


새로운 드라마가 한국인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드라마이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욕심이다. 나는 다만 안그래도 외롭고 힘든 한국 서민들을 화나게 하는 드라마가 안나오기를 바라는 정도의 희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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