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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인테리어 쇼핑/음식과 가구,

남자의 인테리어 여자의 인테리어

by 격암(강국진) 2015. 7. 18.

15.7.18

연초에 전주에서 주인세대의 집을 구하러 다닐 때의 일이다. 큰 건축회사가 짓는 집과는 달리 주인세대가 있는 원룸 건물은 개인 업자들이 짓는다. 그래서 터무니 없는 집도 가끔 있는 것같지만 여러가지 다양성이 있는 건물들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어느 집에 가보니 부엌에 냉장고 놓을 공간이 없고 어떤 집에 가보니 어떤 방은 너무 작다. 이것을 지적하자 우리에게 집을 보여주던 부동산 여자 직원이 바로 그것을 수긍하면서 남자들이 지어서 그래요라고 말한다. 남자들이라는게 종종 집에서 시간을 안 쓴다. 그러면서도 적당히 설계를 하고 집을 짓다보니 이따금 주부의 마음을 몰라주는 설계를 한다는 것이다. 부엌에서 일도 안해보고 아이도 안키워본 사람이 각각의 공간의 쓸모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설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로 나는 이해했다.

 

그런데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의 세계로 오면 상황이 역전되는 것같다. 이제는 대개 여자가 주도권을 잡는다. 그것은 그것대로 불행한 측면이 있다. 인테리어 문화가 하나의 시선만 포함하는 만큼 단순해 지기 때문이다. 만약 남자와 여자가 비슷하게 주도권을 잡는다면 보다 인테리어의 다양성이 더 커질 것이고 그 와중에서 남자와 여자는 모두 자신들의 모습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자만 주도권을 잡고 일을 하다보면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자기와 다른 것은 초라한 것으로만 보이고 껍질만 화려한 것에 호들갑을 떨게 될 수 있다. 지금의 인테리어 상식이 어떤 사람의 관점에서는 특이하다는 것이 망각된다. 

 

남자로써 여성이 했다는 인테리어를 몇번 구경하면서 반복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 인테리어는 기능을 중요시 하는 게 아니라 시각적으로 예쁜 것에 치중해 있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이란 곧 집을 예쁘게 꾸미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같다. 

 

그러나 인테리어는 단순히 예쁜 것에 대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기능을 무시하면 예쁜 것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애들이 있는 집에서 관리하기 힘든 인테리어는 비현실적이다. 수납이 안되면 집이 엉망이 된다. 집이 충분한 기능을 가지지 못하면 결국 사람이 그 집을 망친다. 그래서 예쁜 집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면 아이가 있는 부부라는 평범한 가정을 상상했을 때 별로 공감이 안가는 경우가 많다.

 

집의 기능이나 이미지도 남성과 여성이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이란 맛있는 식사가 있는 공간일 수 있다. 따뜻한 음식이 놓여지게 되는 공간 말이다. 꼭 그 음식을 여자가 준비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밥과 집이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집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다.

 

또 다른 것은 개인적인 공간이다. 즉 남자는 바깥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이 있어서 때로는 아내와 아이들로부터도 떨어져서 그 안에서 쉴 수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여성이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여성이 했다는 인테리어는 공간을 열어두는 일이 많다. 그걸 보면 오히려 남편이 숨어들 공간이 집에 있는 것이 불만인 것같다. 다시 말해 큰 방 한가운데 멋진 침대를 하나 덩그라니 놓는다던가 커다란 거실 한켠에 소파만 하나 놓는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집이 넓지 않은데 그 안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려면 공간을 잘 분할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는 어떤 공간에서 뭘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칵테일이나 커피를 만들어 그것을 즐길 것을 꿈꾼다면 그런 것을 위한 공간을 고민하게 된다. 즐거운 식사시간을 꿈꾼다면 정이 가는 식탁을 놓을 자리를 고민할 것이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려면 스탠드를 켜고 앉거나 바람을 쐬면서 앉을 공간을 생각하게 되고 영화감상을 머리에 두고 있다면 조용히 집중 할 수 있는 곳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채소나 꽃을 키우고 싶다면 그것을 위해 바람과 햇볕이 있는 장소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욕망이 있는 곳에 기능에 대한 답이 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이 리빙센스의 기사를 보자. ( http://media.daum.net/life/living/photo/newsview?newsId=20150716091541384 )  기사의 제목은 북유럽스타일 모던 그레이 홈이다. 3천만원을 들여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집은 예쁜 것만 있을 뿐 그걸 제외하면 기능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집의 거실은 뭘하기 위한 장소일까? 티비가 있으니 텔레비젼을 보기 위한 장소인가? 집안 공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 거실에는 기본적으로 소파하나와 티비정도밖에 없다. 큰 공간이 썰렁해서 인지 바닥에 카펫을 깔았는데 대개 바닥난방이 되는 한국에서 카펫은 청소만 하기 어려워지는 애물단지다. 가족이나 손님이 서로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자면 소파가 옆으로만 길다. 티브이와 소파사이의 거리도 어정쩡하게 멀다. 

 

 

이것은 안방과 아이방에서도 들어난다. 침대를 제외하고 나면 공간들은 그냥 열려있다. 이렇게 공간은 펑펑 소비된다. 그리고 나서 다른 쪽편을 보면 이번에는 공간부족에 시달린다. 식탁도 책상도 작다. 부엌에는 아직 거의 아무 것도 없는데 과연 살림하는 집답게 물건이 쌓여도 이 집이 예쁠 수 있을까? 이집에는 개인적인 공간도 작업할 공간도 없으며 취미를 위한 공간도 없다. 한마디로 집에 욕망이 없다. 즉 뭘하고 싶어하는 집이 아니다. 그저 예쁜 것을 보여주고 잠을 자기 위한 집이다. 그래서 이 집은 마치 거실이 넓은 호텔방같다.

 

호텔방은 당연히 주목적이 잠을 자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식사는 바깥에서 한다. 호텔방은 육아의 공간이 아니며 방 정리는 룸서비스를 해주는 직원이 하기 때문에 물건이 어질러지기 쉬운 구조거나 깨질 물건이 있어도 큰 상관이 없다. 호텔방은 도서관이 아니고 공부방도 아니라서 대개 탁자는 컴퓨터 하나 올리면 꽉차는 정도다. 호텔방은 생활공간이라기 보다는 예쁘게 꾸민 임시숙소다. 그러니까 호텔방을 보고 아 멋져 우리집도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활인이 아니고 집의 기능에 대해 고민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신문잡지에서 소개할 정도의 집인데도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인테리어를 통해 개인공간을 확보한 것도 아니고 취미활동을 할 수있게 된 것도 아니며 공부나 작업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예쁜 가구를 넓은 공간에 놓아둔 것뿐이다. 그래서 집이 넓은데도 기능이 오히려 부족해 보인다.

 

어쩌면 일하는 남편은 어차피 나야 와서 잠이나 잘 곳이니 당신 맘대로 하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의 입장에서도 남편이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들어 남편의 귀가를 빠르게 할 생각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집에 오면 귀찮기만 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뭘 위해 그 많은 돈을 쓴 것일까?

 

인테리어에서 기능의 문제를 분명하게 보기 위한 방법은 어떤 집을 볼 때 그 집이 그 형태는 그대로 인채 온통 무채색의 집으로 변했다면 어떨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예쁜 꽃장식도 멋진 커튼도 벽지도 색깔을 잃는다. 미적인 쓸모는 거의 없어진다. 그렇게 되고 나서도 그 집은 여전히 좋은 집인가 아니면 참 아무 매력이 없는 집인가를 보면 기능의 문제가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집의 경우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은 테이블이 많다는 것이다. 그 앞에 앉아서 책과 컴퓨터와 커피잔을 올려 놓을수 있는 공간이 몇군데나 있을까. 내가 세어보니 우리 집에는 그런 곳이 11군데나 있다. 의자가 11개가 있다는 게 아니다. 정식 책상처럼 쓸 수 있는 장소가 그렇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들이 대개는 작은 커피테이블이 아니다. 우리 집의 식탁도 아이들 방의 책상도 베란다의 테이블이며 피씨 테이블이며 나는 최대한 큰 것을  쓰려고 노력했다. 왜냐면 큰 테이블 앞에 앉을 때 나는 여유와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 여기저기에 앉을 수 있는 곳을 마련했다. 내가 싫증이 나면 번갈아 가면서 여기 저기를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이런 기능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예쁜 테이블이 좋지만 우선은 그런 장소가 그런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기능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각자의 취향도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예쁜 장식이 가득할 뿐 조그마한 커피테이블과 작은 식탁 하나 밖에는 없는 집은 왠지 기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놀이 공원에 갔는데 놀이기구가 2-3개밖에 없는 것같은 느낌이랄까. 

 

많은 집에 대한 기사들은 비슷한 이유로 해서 실망이었다. 집에 대해 공부했다는 기자가 쓴 기사에 소개하는 집이 대개는 그저 예쁘려고 하는 노력만 보인다. 그저 식민지 시민이 본토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유행을 따라가려는 듯한 의지만 보일 뿐이다. 북유럽스타일이라고 소개되는 몇개의 집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아마 서로 베낀 모양이다. 

 

3천만원을 들여서 자신이 직접 리모델링 공사를 지휘했다는 사람이 쓴 인테리어 원 북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업자에게 공사 견적을 냈더니 33평 아파트의 북유럽풍 리모델링에 7천에서 1억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33평 아파트를 1억들여서 리모델링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러니까 셀프 인테리어를 하려고 하게 된다. 결국 많은 주부가 직접 리모델링을 기획하고 종종 기능보다는 예쁘게 만들기에 빠져드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집을 기자도 좋다고 사진찍어서 선전도 한다. 사실 설사 비싼 돈을 들여 업자를 고용한다고 해도 집은 집주인이 원하는대로 고쳐지는 것이다. 집주인이 내가 뭘 원하는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집주인이 예쁜 것에만 신경쓰면 그렇게만 고쳐지는 것이다. 반면에 집을 고칠때 남자는 잘 끼어들지 않는게 보통이다. 

 

리모델링이 그저 예쁘게 하는 것이라면 리모델링은 부자나 하는 사치다. 몇천만원짜리 드레스를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기능에 좀 더 눈을 돌린다면 리모델링이나 가구의 교환은 사치가 아니라 생활의 질을 올리기 위한 투자가 된다. 게다가 내가 보기엔 가격도 훨씬 싸지는 것같다. 본래 예쁜 것에 몰두하는 쪽이 예산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는 여자만의 문제는 아니다이제는 남자도 집을 바꾸는데 신경을 써야할 때가 것이 아닐까. 이황을 포함하는 조선의 많은 선비들은 자기 집을 직접 설계했다. 집이 어때야 하는가하는 것은 남자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인테리어 문화의 폭이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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