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일어나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식으로 일어난다고 말할 수도 없다. 과학의 영역에서의 인과론을 사회적 정신적 영역에서 그대로 믿는 것은 인간지식과 이해의 한계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많은 일은 실질적으로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 모른다. 그냥 일어난다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나무가 바짝 말라있는 산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는데 불이 안났다고 해서 캠프파이어는 문제없다라고 말할수 없다. 사회적으로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논리와 싸움에 부딪힌다. 한쪽은 어떤 위험을 아주 크게 보고 그걸 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시행해서 당장 문제가 안 생겼어도 그걸 한 것은 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대형프로젝트는 여러번 하기 어렵고 한번 하면 그 결과가 수십년이나 지나도 평가가 어렵다. 원인이 있다고 항상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원인이 없어도 결과가 막 나올수도 있다. 사대강에 대한 반대도 한쪽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고 당장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고 해도 해서는 안되는 일로 생각되는데 한쪽에서는 온갖 문제가 생겨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소신에 변화가 없다.
우리는 질문한다. 위인가 아래인가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패를 갈라서 싸우고 극심한 분노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어느 쪽이 옳은가를 따지는 것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선택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 시민이 혹은 전체 집단이 옳고 그르다에 대한 논의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움직여야 하는가 혹은 각자의 개인과 작은 집단은 나름의 판단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전체주의가 옳은가 아니면 시민의 자율권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주의가 옳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지만 현실에서의 행동은 대개 그 반대다. 권력을 가진 사람중에서 시민의 자율권을 존중해 줄수 있는 사람은 아주 작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왜냐면 바로 위에서 말한 어떤 것이 옳은가라는 논쟁때문이다. 나는 이미 이러저러한 것이 옳다는 것을 아는데 -혹은 안다고 생각하는데- 결정권을 넘겨주는 일은 쉽지 않다. 객관적 진리론은 그 본질상 전체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4대강개발에 대해 매우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4대강개발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약간 유보하기로 하자. 그리고 나서 단순히 그게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논쟁의 행위 자체만 생각해 보자. 논쟁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4대강개발을 해야 하는가 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객관적 답이 존재할거라는 생각에 오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찬성을 하건 반대를 하건 그들이 던지는 질문자체는 한국이란 집단은 하나로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냥 시민들이 작게 작게 나눠진 지역에서 각자 판단해야 할 일로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다. 시민들이 해야할 필요를 느끼면 하고 아니면 말며, 그러다가 자발적으로 거대프로젝트가 구성되어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다. 즉 소위 아래에서 위로의 질서 형성이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러가지 의견은 그저 잡음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끝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나온다. 음모론을 퍼뜨리지 마라,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왜냐면 그들은 솔직히 말해서 어떤 사회적 질문에 대해 가치있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럴 능력이 있고 그런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가진 소수의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은 교육되고 변화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자율적 판단을 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자율적 판단을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중앙에서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을 자꾸해버리면 사람들의 판단능력이 점점 떨어진다. 행동의 결정이나 판단권에서 멀어질 때 학문이나 이성은 쓸데 없는 짓이 된다.
이번에 메르스 전염병이 번지는 일은 누가 정권을 잡던 마찬가지로 일어날 재앙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그걸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방역에 대한 것을 보면 우리는 두개의 힘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하나는 방역에 대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들이고 또하나는 중앙의 지시에 복종하는 시스템에 의한 방역이다.
중앙시스템이 과연 모든 개개인들의 행동과 잠재적 위험요소에 대해 판단하고 명령을 빨리 내려줄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병은 번져가는데 중앙까지 정보가 전달되고 그 의미가 해석되는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일반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면 큰일이 될 것이 진작에 없어졌을텐데 중앙에서 판단이 내릴때까지 복지부동하고 있겠다고 하면 일은 감당할수 없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경제를 나름대로 논하는 미네르바를 구속하는 정권, 일만 터지면 광우병사태도 천안함사건도 모두 유언비어에 속은 사람들의 오해라고 말하는 정권은 과연 어떤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이후 몇번이나 큰 전염병 문제가 있었다. 조류독감에 구제역 문제가 엄청난 일이 되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한국사회는 이명박 정권이래 훨씬 더 반이성적이 되었고 시민들은 우민화되었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각자 판단하고 각자 행동하는 힘이 크게 약화된 것이다.
다시 질문하기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대학입시나 교육 어떻게 해야하는지, 부동산 정책 어때야 하는지, 문화정책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답은 할 수 있지만 그게 객관적으로 시간에 무관하게 존재하는 정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결국 뭘 하건 그 일들을 해나가는 것은 현장에 있는 하나 하나의 사람들이고 하나 하나의 회사, 하나 하나의 가정, 하나 하나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 작은 단위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거대한 사회적인 일들은 저절로 잘되거나 해결하기 쉬운 문제가 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 답이 제시되어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시민의 우민화다. 머리란 건 쓸 필요없다. 어차피 도리니 법이니 하는 것은 권력이나 돈앞에서 무력하다라고 하는 메세지가 고착화되는 것이 가장 걱정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래 신문을 봐도 방송을 봐도 앞뒤 안맞는 소리만 계속되면서 국민들이 유언비어에 속고있다는 말만 계속된다. 언제나 되면 사람들이 이런 악순환을 지겨워하게 될런지는 누구도 모른다.
'주제별 글모음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유가 있는 죽음과 메르스의 댓가 (0) | 2015.06.11 |
---|---|
인터넷은 유언비어의 고향인가 진실의 문인가 (0) | 2015.06.03 |
창의 융합 과학 축제 한마당을 다녀와서 (0) | 2015.05.17 |
정치가가 아니다. (0) | 2015.05.11 |
다문화정책 논란은 본질이 없다. (0) | 2015.04.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