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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유언비어의 고향인가 진실의 문인가

by 격암(강국진) 2015. 6. 3.

메르스 문제가 심각해 지자 정부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퍼지는 사람들의 주장과 정보에 대해 유언비어라고 말하면서 엄벌에 처할 것을 선언한다. 이런 일은 근래 10년내에만 생각해도 한두번 있던 일이 아니다. 인터넷과 언론 혹은 인터넷과 정부의 싸움이 벌어진다. 그런데 인터넷은 과연 유언비어의 고향일까 아니면 진실로 통하는 문일까.


이 답은 객관적으로 엄밀히 말해지기도 어렵고 사안에 따라서도 개인들의 의견이 갈릴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집에 암같은 큰 병에 걸린 환자가 나오면 누구나 그 병에 대해 검색을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민간요법을 포함하는 무수히 많은 정보에 접하게 된다. 


당신이 의사라면 이런 인터넷 정보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적개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치료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진 인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시도하다가는 큰 일을 낼 수가 있다. 설사 인터넷에 올바른 지식도 올라와 있다고 하더라도 몇 개중의 하나가 틀린 정보라면 그 틀린 정보가 큰 비극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적 지식은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의사의 입장일 수 밖에 없다. 요즘 의사들이라면 허황된 이야기를 믿고 몸을 망치거나 치료를 하는 시기를 너무 늦춰서 병을 키운 어리석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시스템의 사용자의 입장에 서면 관점은 좀 바뀌게 된다. 요즘에는 전문가는 지나치리만큼 전문적인 것이 더 문제다. 그들은 아주 좁은 분야에 대해서만 아주 전문적이기 때문에 뒤집어 말하면 그 전문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보통사람들의 상상이상으로 모르거나 책임을 지는 문제에 끼어들기 싫어서 개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병원에 갔는데 어깨가 아파서 상담을 하다가 등이나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그건 내가 전혀 말해 줄 수 없다라고 하는 식이다. 다른 병원에 다른 의사에게 또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문제는 복합적이다. 즉 환자가 병을 하나만 가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병을 가지고 있고 특별히 병이 아니라고 해도 정신적인 혹은 나이에 따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소위 전문가는 지나치게 자기의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 당신이 네일아트 전문가라면 학생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손톱이 예쁘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암투병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투병의 끝 무렵에 가서는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셨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시니까 욕조에서 쓰러지셔서 뼈를 다치는 식이다. 통증이 계속되었다. 잠을 주무시지 못하니까 몸은 더 빨리 쇠약해졌다. 아버지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실은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 옳다. 왜냐면 병원을 바꾸면 그 병원에서는 다시 기본적인 검사 과정을 거치자고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동하기 힘든 환자를 간호해 본 사람은 두세번 검사를 하고 그 검사기간동안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쉽게 해볼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더구나 그렇게 검사를 했더니 나온 결과가 우리는 잘 모르겠으니 이런 저런 다른 분과로 가보라같은 말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병원과 병원, 이과와 저과를 다니면서 환자의 기력은 소진되고 시간은 한정없이 간다. 금전전, 정신적, 시간적 낭비가 너무 심하다. 아버지의 통증때문에 간 병원 중에는 척추통증전문 병원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병원 의사는 거동도 힘든 아버지에게 몇일에 한번씩 병원에 나와서 비싼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이 진단에 대해 후일 다른 병원의 의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의료시스템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환자를 가장 오래동안 봐온 가족이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가족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보를 오해할 수도 있고 진짜 유언비어에 속을 수도 있지만 환자가 생기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지시를 따른다라는 상식은 현실에서는 지나치게 순진한 말처럼 들린다. 어느 병원에 어떻게 갈 것인가는 환자와 그 가족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가 그러했듯이 가까운 사람들중에 의사가 있으면 조언을 듣기도 하지만 그걸로 개인의 결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 가까운 친구인 전문가는 개인의 사정에 대해 충분히 듣지 않고 상담을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신이 아니다. 정확한 질문, 정확한 정보가 상황에 맞는 전문가에게 들어갔을 때 올바른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같은 문제로 돌아온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이 정확한 질문, 정확한 정보를 적당한 전문가에게 어떻게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문제는 의료시스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사안들이 매우 복잡하며 전문가들은 종종 너무 전문적인 때문인지 현실에서 억눌러지고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며 바보같아 보이는 일이 많다. 그런 구멍이 없었다면 4대강 개발을 하는 논쟁에서 찬성측에선 목사가 토목과 교수와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안그래도 로봇분야에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뒤져있는 한국에서 푼돈의 연구비로 만든 로봇물고기가 수질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같은 것을 당대의 대통령이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Do It Yourself라는 뜻의 DIY라는 말이 있다. 전문가는 흔한 세상이지만 법률문제든 금융문제든 교육문제든 세상은 점점 DIY 세상으로 변해왔다. 이제 스스로가 정보를 취득하고 이해해서 그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으면 사용자의 입장에 선 시민들은 아주 큰 댓가를 치뤄야 한다. 그런 비용을 얼마든지 낼 수 있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많은 부자들은 별로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보통 서민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아주 큰 문제다. 그러니까 좀 위험할 수 있지만 인터넷의 정보에 의존하지 않으면 서민들은 살아가기가 어렵다. 인터넷의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오늘날 서민죽이기나 마찬가지다. 


인터넷에는 유언비어가 흘러다니는가. 불행히도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서로 소통하면서 정보를 짜맞추는 사람들은 그저 서로가 서로의 망상을 키워주는 집단을 이룰 뿐인가.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와는 의견이 다르겠지만 일베사이트나 타진요같은 집단의 행동은 나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한때 사람들은 황우석을 가지고 둘로 갈라져서 서로를 망상에 빠진 것으로 비난한 적도 있다. 


인터넷에 정보가 많다지만 그 정보는 정리되고 가공되어져야 쓸모 있는 것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우리는 소규모 정보소통의 네트웍이 필요하다. 즉 정보를 더 많이 소통하는 집단이다. 예를 들어 암투병 말기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정보를 한 곳에 모으고 정리하는 일을 하는 것은 그런 예 중의 하나다. 


나는 위에서 의사의 입장과 병원 사용자의 입장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여러개의 집단은 입장차를 가진다. 그 입장차는 정보를 모으고 서로에게 서로의 믿음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대개는 더 확고한 것이 된다. 그것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 편견을 가진 집단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는 오직 편견이 없는 집단에만 관여하겠다고 한다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편견을 직시할 수 없는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망상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들은 입장차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완전히 없어서 남의 이야기를 전부 망상이나 유언비어로 말하고 그것을 억누르고 처벌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자신도 어떤 편향성을 가진 네트웍을 통해서 가공된 정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단하나의 객관화된 세상이라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위험한 극단주의자가 아니면 소수의 기득권자들이다. 물론 둘 다 일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 세상에는 그렇다.


왜냐면 우리 개인의 능력의 한계는 뻔한데 세상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뭔가를 알기 위해서는 어떤 집단, 어떤 망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다. 그 집단, 그 망은 대단한 보편성을 가지고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것은 모두에게 진실인 세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모두의 생각과 견해와 세상을 보는 눈은 더더욱 보편적인 어떤 견해나 철학에 의해 통합되어 하나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문제들이 있다. 일단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해할 만한 경험과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주 소수다. 어쩌면 그런 철학은 없고, 있어도 그걸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한계를 가진 존재고 많은 사람들은 그 한계가 특히 더 작다. 능력이 있어도 경험과 기회가 없어서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또 사람들의 시각을 통합하는 철학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양자역학을 안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양자역학적 개념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뉴튼역학의 방정식을 풀어가면서 야구를 하지도 않는다. 통합적 철학은 가치있는 것이지만 능력에 미치지 않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되도 일상의 작은 순간 순간속에서 그런 추상적 사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의 행동은 다시 작은 네트웍, 작은 집단이 주는 편견의 함정속으로 빠져든다. 당신이 설사 당신이 지금 보는 어떤 것은 환상이라는 것을 이해했다고 해도 일상속에서, 특히 다른 사람과 섞여 살려면 당신은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잊어야 한다. 차이는 단지 원하면 다시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고 나서 인터넷이 과연 유언비어를 만드는 곳인가 진실의 문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질문이 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질문을 던진 덕분에 생각을 하게 되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의나 진실은 공동체나 집단이나 네트웍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집단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집단들과 공존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은 세상과 지속적으로 싸움만 벌이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만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 집단이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질 때 세상에는 비극이 생긴다. 


전문가도 자신이 소통하는 세상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문가야 말로 객관성의 함정에 가장 잘 빠지는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지만 제빵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은 많다. 그들은 물리를 공부하는데 바뻐서 어떤 방면으로는 경험의 폭이 더 작을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단 하나의 객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전문가도 세상과의 소통이 필요하며 필연적으로 편향된 집단에 속하게 되고 속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집단은 한계를 가진 편향된 집단이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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