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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망의 시대

망의 시대 5. 망과 가치의 생산

by 격암(강국진) 2015. 6. 10.

망과 가치의 생산

 

오늘날은 망의 시대라던가 망은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르게도 표현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망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라는 말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이제까지 망에 대해 말할 때 지속적으로 그래왔듯이 종교와 과학의 시대에 있어서의 가치의 생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망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종교의 시대를 보자. 이 시대에 가치란 창조되지 않는다. 신은 이 세상을 미래를 보는 예지력을 포함한 무한한 능력으로 창조했고 따라서 이 세상은 모두 신의 것이며 신이 정해준 만큼의 가치를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고 가질 것이다. 가치는 기본적으로 생산되고 늘지 않는다. 사냥이나 농사를 통해 만들어 지는 생산물도 신으로부터의 선물일 뿐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세상에 익숙하기 때문에 장사를 통해서 이익을 올리는 행위에 익숙하다. 상거래가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이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서도 직업의 존귀함을 따질 때 그 순서는 사농공상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즉 그 순서는 선비 농부 기술자 상인으로 가장 천한 일이 상업이었던 것이다. 상거래를 가치를 생산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였다. 다시말해 물건의 가치가 거래를 통해서 바뀔 수 있다는 일은 그런 거대한 변화 이전에는 매우 기묘한 일이었다는 이야기다.

 

산너머에 있는 쌀한가마니나 소한마리는 산의 이쪽에서도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을 한번 고려해 보자. 이러한 생각을 철저히 믿는다면 상업은 존재할 수가 없으며 상거래로 이익을 보는 중간상인은 사기꾼이 된다. 너는 왜 만원을 주고 산 수박을 나에게는 만오천원에 파는가라고 손님들이 생각한다면 수박을 소매로 파는 장사는 망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메이카에서 5센트에 파는 커피는 뉴욕에 가면 5달러가 된다.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사기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좀 더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 상업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것을 전제할 때 자연스럽게 보이게 되는 것일까. 상업이란 주로 물자의 재분배에 관련된 것이다. 물론 상업의 발달로 없던 물건을 생산되는 일도 크게 증대했지만 이쪽에 있는 물건을 저쪽에 옮김으로써 가치가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 상업의 본질이다. 어떤 물건은 이쪽에 있는 것 보다 저쪽에 있는 것이 더 가치가 있고 그래서 물자는 그렇게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이는 과정은 가치의 극대화과정이다. 즉 가치는 물자들의 위치를 변경시킴으로써 만들어 진다.

 

이러한 과정은 뉴튼 방정식을 따라 물질이 움직이는 것 혹은 진화적 과정을 따라 생명이 변해가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사물이 자연법칙을 따라변해 가듯이 시장에서 물건들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 교환비율을 가지고 교환되어진다. 시장의 법칙 혹은 경제학의 법칙은 공평함을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법칙은 누구도 어길수 없다고 믿어진다. 일단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 시장의 바퀴가 계속 구르면서 가치를 생산하여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대부분 상업의 가치를 뼈져리게 느낀다. 상업이 발전하지 못했더라면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설사 생산을 할 자원과 기술이 있더라도 그것을 소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업없이는 현대의 풍요로움도 없었을 것이다. 상업적 행위가 가치를 생산한다는 생각이 생산의 증대를 가져왔고 세계를 바꿔온 것이다. 그야말로 산도 바다도 하늘도 바꿨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은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이지만 그것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세계에서 움직이는 물질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이 객관성과 조정의 대상이 물질이라는 점이 바로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와의 차이이며 망의 잠재력의 근원이다.

 

상업이 아무런 가치를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현대문명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망이 아무런 가치를 생산해내지 못한다면 망은 그다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란 어떤 것일까.

 

망은 가치를 만들어 낸다. 바로 신뢰나 믿음이라는 가치다. 신뢰나 믿음이란 그저 말이나 주관적인 느낌일뿐 돈이나 물질같은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것을 생각해 보자.

 

1.     고객이 삼성을 신뢰하는가 애플을 신뢰하는가 하는 것이 정말 돈의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는가?

2.     주식시장에서 투자가들이 애플은 가치가 있는 기업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돈의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는가?

3.     전염병 때문에 국민들이 무서워서 바깥을 나오지 않는다고 할 때 지금 우리나라는 돌아다녀도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경제적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는가?

 

현대 사회에서 신뢰란 이미 돈 그자체다. 그리고 돈이란 가치의 척도중 하나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어떤 새로운 화폐를 믿어서 그 화폐를 교환수단으로 쓰기로 한다면 즉 그런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세상은 순식간에 확 뒤집어 질 것이다. 오늘날의 돈은 황금과의 교환증같은 것이 아닌 순전히 신용에 근거한 추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뢰란 허공에서 아무 것도 없이 만들어 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정확한 증거와 사실, 실적에도 의존해서 우리의 신뢰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증거에만 의존하는 신뢰라는 것은 사실 세상에 없다. 실적에 따른 신뢰라는 것도 그렇다. 그런 건 신뢰라고 하지 않는다. 

 

물리적 사건처럼 확고한 확실성을 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신뢰의 창조를 말할 때 거의 의미가 없다. 내가 돌을 던졌을 때 이 돌이 중력법칙에 따라서 움직이지 갑자기 빛의 속도로 날아가지는 않을거라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믿는다거나 투자를 한다는 것은 절대 이런 수준의 확실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믿음에 부응하여 상대방이 행동한다. 그런 선택이 바로 신용의 창출이다. 믿을 이유가 정확히 없는데도 믿는다. 그래서 모두가 부자가 된다. 가족이 그렇고 협동조합에서 지역 공동체 그리고 좀 더 큰 사회공동체가 모두 그렇다.

 

게다가 실적에 의한 믿음도 오늘날에는 상상 이상으로 추상적이다. 누군가가 이 땅값이나 주식값이 오른다고 믿었다고 하자. 그런데 다음주에 보니까 실제로 올랐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 옳았다는 실질적인 증거일까? 이따금 보면 재벌3세가 주식을 투자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이 그 재벌3세는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있겠거니 해서 주식을 산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래서 실제로 그 재벌3세의 투자는 성공한다. 혹시 이런거 아닐까? 현대의 문제는 그 해결이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과정이 해결책이냐고 믿을 것인가하는 마음의 문제가 돌멩이나 물같은 물질 이상으로 생생한 실체의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도 과거에 상업의 가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실수를 범하는 사람은 많다. 상업의 가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물자를 생산하는 사람만이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물자의 위치를 옮겨서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수상쩍은 사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보지 못하고 그것을 수상쩍은 사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업적 생각만 하는 사람은 물자가 오고가지 않는 가운데 소셜네트워크같은 것을 통해 잡담만 오고가는 행위가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잡담만 하고 있으며 대단한 인물들만 떠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그런 것이 엄청난 돈을 생산해 낸다는 것을 보게 되면 이것은 미친짓으로, 사기로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어째서 메신저 프로그램 같은 것이 그렇게 엄청난 가격이 될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객관적이지 않는 것이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신뢰따위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상업을 부정하던 사람들이 물자가 그 위치를 바꾼다고 해서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이해못하는 사람들은 정보독점이 오히려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통을 막는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는 불신과 음모론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들이 굶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 수레의 사용을 금지해서 물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업이 억눌러지면 생산도 억눌러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게 될 것이라는 것을 현대의 우리는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간의 불신이 가난을 즉각 만들어 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메르스같은 전염병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혹은 광우병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주는 소고기가 수입된다는 이야기에 시민들이 겁을 낼때 이 병때문에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보다 적다던가 감기보다 적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신뢰가 어느정도의 가치를 지니는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메르스가 몇백명정도의 사상자를 내고 종결된다고 해서 그것이 이미 알려진 질병보다 대단치 않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에 대한 정부에 대한 믿음이다. 신뢰가 떨어지면 당장 외국인들은 관광을 오지 않을 것이고 시민들도 바깥출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불륜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배우자에게 의심을 줄만한 언행을 하는 것은 관계의 파괴를 가져올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관계와 신뢰가 망가지고 나면 결국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가 가졌던 부와 가치의 상당부분이 그거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망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시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본적 믿음은 무엇인가를 언급하고 이 글을 마치도록 하자. 앞에서 말했듯이 상업이 만들어 내는 가치란 과학적 세계관과 아주 비슷한 것이다. 객관적 세계속에서 물자의 위치들이 바뀌어가면서 가치들이 창출된다. 그것은 마치 산사태속에서 산의 모양이 바뀌어가고 흙들이 가진 위치에너지가 열이나 운동에너지로 변화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을 믿을 때 상업행위의 가치를 쉽게 볼 수가 있다. 가치는 객관적 세계에서 물질 혹은 자원의 이동에 의해서 창조되어진다. 그것이 시장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자명한 것으로 보게 만들어 주는 세계관 혹은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무었일까? 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는 물질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이다. 인간들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고 변형되며 망속에서 어떤 마음이 어떤 위치로 이동되는가 하는 것이 가치를 창출한다. 자메이카의 5센트 커피가 뉴욕의 5달러 커피가 되듯이 같은 인간도 망속에서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될 때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된다. 바로 이같이 인간의 마음이 연결되는 과정이 가치의 창출과정인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달이 그렇게 말해졌듯이 언젠가 인간해방의 과정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인간이 그 가치를 발견받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직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의식과 마음의 학문이 더욱 발전될수록 더욱 자명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 세계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것은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꿈을 꾸면서 거기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어떤 거리를 걷는다면 꿈을 깰 때 알게 된다. 실은 그 대화는 나와 나의 대화였으며 심지어 그 거리조차도 내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는 점이다. 머리속의 나도 나였고 나와 대화하던 그 사람도 나였다. 내가 밟고 다디던 블록도 나의 창조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것은 눈을 뜨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내 바깥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세계는 우리의 뇌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꿈과 현실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마음이 바뀌면 세계도 바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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