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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망의 시대

망의 시대 3. 낡은 오만과 새로운 민주화의 시대

by 격암(강국진) 2015. 5. 2.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빠져 있는 우물안을 온 세계로 착각하고 그걸 보편화한다. 이런 보편화 중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은 비교적 극복하기가 쉽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나 독서와 같은 간접적 방법을 통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이 특수한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보편화는 여러 차원에서 일어나는데 그 중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보편화도 있고 심지어 문명과 시대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은 알아보기 어렵고 우리는 이때문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만해 진다. 이러한 보편화는 대개 인간을 억압한다. 대부분의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죄지은 사람, 모자란 사람으로 만든다. 망의 시대는 이런 오만을 지우고 억압을 해방하는 시대다. 망의 시대는 이제까지의 어떤 시대보다도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패러다임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식시대의 독단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대답되어 진다. 그것은 적어도 이제까지 문화적 사회적 주도층은 전체 인간의 수에 비하면 아주 작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결국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모든 인간의 일로 보편화되었고 때문에 그것이 다른 시대에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인류역사속에서 글자를 알고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아주 작았다. 학식이 있던 지배층 혹은 학식을 쌓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지배층은 지배층의 문화를 만들고 그들이 사는 방식이 곧 인간이 사는 방식이라는 착각 즉 지배층이 마치 인간의 전부인것 같은 착각을 만든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 글을 남긴 사람들은 결국 노예를 부리던 지주였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만다. 마치 모든 인간은 노예를 소유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노예는 인간이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지배층은 자신들이 귀족이고 특권층이라서 그들처럼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인과관계를 뒤집는다. 그들은 그들이 귀족답기때문에 그 결과 귀족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노예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인간답게 살아라. 품격이 없지 않는가. 인간이 되지 못하고 짐승에 머무니까 그렇게 짐승처럼 사는 것이다. 노력을 안하니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이다. 나처럼 노력을 해라. 이것은 재벌3세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이 열심히 일한만큼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그들의 특수한 상황은 인간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 되고 대다수 인간의 보편적 비참함은 그 비참한 인간들의 특수한 행동때문에 생기는 결과가 된다. 이것이 오만한 특권층이 인간을 보는 방식이다. 

 

학문과 예술 그리고 교양분야에서도 오만함은 쉽게 발견된다. 우리는 이런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사람들을 종종 진정한 인간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순간 우리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들을 부족한 인간,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인간으로 격하시키게 된다. 돈키호테같은 소설을 원작 그대로 읽지 않은 사람은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던가 그들에게 있는 어떤 대단한 건축물과 비슷한 것이 없는 나라의 건축문화는 미개하다던가하는 식의 관점이 그렇다. 설사 그들이 뭔가를 충분히 자랑할 자격이 있다고 해도 이것은 공평하지 않다. 권투에서 비슷한 논리를 편다면 헤비급 세계챔피언보다 약한 인간들은 아직 제대로된 인간이 못된 것으로 격하되는 되는 것이고 육상에서 비슷한 논리를 편다면 100미터달리기 세계기록보유자보다 느린 인간들은 아직 제대로된 인간이 못된 것으로 격하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들은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일에서는 충분히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된다. 

 

이런 오만과 보편화중에서 이 글의 문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까지 말해온 시대적 변화에 따른 보편화다. 종교의 시대에는 신이 중요했다. 기독교를 믿었던 서구에서는 성경과 라틴어를 알아야 했고 인간의 고유한 특징에 대한 지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이나 감정 혹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지식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상업이나 금융에 대한 지식도 중요한 것일 수 없었고 이는 조선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까지나 진정한 학문은 성리학이었고 그 이외의 지식은 잡학이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쓰게 되면서 인간은 다르게 파악되기 시작한다. 이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중요한 주제가 된다. 인간의 몸은 탐구되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이것은 지식과 과학의 시대다. 이것은 시장이 번성하는 시대다. 이 시대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 훌룡한 사람이고 인재다.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없는 사람은 미개한 사람이고 쓸모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식 시대에서 망의 시대로 시대가 전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우리가 종교의 시대를 되돌아보면 그들의 인간관은 어리석어 보이고 오만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뒤쳐지고 아주 작은 지식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때의 사람들은 종교에 긴 시간을 쓰고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눈을 감은 채 그들의 세상이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었다. 여성이나 노예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스스로를 착취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보호하는 사람, 관대한 사람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다. 여성과 가난한 소작인들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식의 관점을 가졌다. 물론 그들도 그들의 세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우리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알고 있으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좋아지겠지. 우리가 진정한 종교인이 된다면 말이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정상적이야.' 한 마디로 그들은 종교시대의 패러다임속에서 그들의 삶을 정상으로 파악하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세계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보면 오만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아주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가 지금 가진 인간관은 역사적으로 최종적인 모습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인가? 여전히 세계에는 여러가지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안다. 예를 들어 이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남녀평등이 이야기되고 인종차별이 비판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고 법앞에 평등하다. 우리는 비록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알고 있으며 이 문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되어질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더 많은 지식들을 쌓아나감에 따라 말이다. 지금의 세계는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정상적인 세상이다. 이게 지식의 시대를 사는 사람의 흔한 태도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듣던 소리같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종교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과 다를까?

 

망의 시대는 훨씬 더 많은 보통 사람의 시대다. 사소한 도움이 있었다면 대단한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냥 사라지고 바보취급 받는 시대가 아니라 바로 그 대단한 것을 성취하는 시대다. 망의 시대에는 보통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뭐에 공감하는가가 중요하다. 소수의 천재나 영웅보다 공동체의 건강성과 반응속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땅이 없는 농부가 의미가 없듯 망과 동떨어진 개인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힘과 돈과 권력은 그 개인이 의도하여 얻게 되는 것이라기 보다 망의 뜻과 필요에 의해 그 개인에게 주어진다. 이미 평등 사상이 세상에 가득하지만 우리는 망의 시대가 되고 나면 우리 시대가 실은 억압으로 가득 차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정보소통의 매체다. 시스템이다. 만약 영어가 서툰 한국인이 미국에 가서 영어로만 소통해야 하는데 미국인이 ‘우리는 다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 너는 왜 자신의 주장을 잘 말 안하지?’라고 했다면 그 한국인은 억울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배우기 힘든 한문으로 소통하던 시대와 배우기 쉬운 한글로 소통하는 시대도 다르다. 한문의 시대에는 한문공부를 할 정도의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문맹으로 남아있어야 했다. 설사 같은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소통은 그 안에 있는 예절때문에 왜곡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논쟁을 한다고 하자. 적어도 부자간의 예절이 엄격한 한국에서는 논쟁이 끝난 후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도 네가 할말 다하지 그랬어라고 말한다면 아들은 억울할 것이다. 말의 구조와 예법이 논쟁의 결과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통령 선거 토론회가 티비로 중계되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글로 싸우건 주먹으로 싸우건 말로 싸우건 싸움의 장소와 방법에 상관없이 다 각자 공평한 기회를 가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찌보면 싸움은 이미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 것이다. 호랑이도 물속에서는 거북이한테 이길 수 없고 상어도 물밖으로 나오면 쥐에게도 이길 수 없다. 

 

마샬 맥루한의 책, 미디어의 이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디어는 인간의 신체를 확장한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 인간의 정신도 이때문에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단순히 문자를 소유하지 않는다. 문자라는 미디어는 인간의 일부분이 되며 따라서 어떤 의미로 문자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게 된다. 문자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우리 시대에 우리가 말하는 인간이란 이미 자연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문자와 결합된 인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자가 발명품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이성이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대부분이 문자의 힘에 의해서 쌓아 올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의 시대가 지식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도 미디어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선 인쇄술의 발전으로 문자 매체가 널리 퍼질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수학의 발전으로 다량의 관찰 데이터 속에서 간결하고 정확한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즉 수학이라는 언어, 수학이라는 미디어의 발전이 현대 과학을 만든 것이고 현대 문명을 만든 것이다.

 

지식의 시대가 다시 망의 시대로 변하는 것도 물론 이 미디어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일상어는 물론 설사 수학이라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언어였다. 하지만 망의 시대를 지배하는 미디어는 상당부분 기계에 의존한다.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기계가 수집하고 기계가 처리하며 기계가 보관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고 채우는 미디어가 이제는 빠른 통신기술과 인공지능같은 정보처리 기술에 의해 주도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 새로운 미디어는 다시 인간과 결합하여 새로운 인간을 만든다. 지식시대의 인간이 문자문명 이전의 원시인을 보면 그들이 마치 짐승처럼 살고 있었다고 느끼게 되듯이 새로운 시대의 인간은 지식시대의 인간을 보며 인간 이하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몇마디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리는 무한하다. 돌연변이라고 할만한 천재가 고독하게 찾아낸 인간의 진실도 물론 아주 소중한 인간의 진실이며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미래에도 인간은 일개 개인으로서 고독하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질문할 것이고 따라서 고독한 개인으로서 인간과 진리를 추구한 사람의 가치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철학자, 위대한 과학자와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배우기를 중단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모두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망의 시대는 아직은 캐내지 못한 새로운 보석광산이 열리는 시대다. 그것은 이전에는 무시당하고 소통에서 외면당했던 사람들이 연결되는 시대다. 아인쉬타인같은 천재라도 창칼로 싸움을 하는 일이 남자의 주된 일이었던 부족사회에 태어난다면 그는 열등한 자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는 사회가 아인쉬타인같은 천재에게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아인쉬타인은 소외되었다. 지식의 시대를 사는 사람은 그 일을 아깝게 여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지식의 시대에는 정말 버려진 천재들이 없을까? 망의 시대는 새로운 미디어가 이들을 망에 연결시키는 시대다. 그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그들이 활동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시대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20세기를 회고하면서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버려졌는지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지식시대의 억압도 종교시대의 억압과 마찬가지로 자기 시대에 강력하다고 여겨졌던 수단이 가지는 능력을 과신하는 오만에서 나온다. 종교시대에는 종교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훌룡한 종교인이 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듯이 지식의 시대에는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더 많은 지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상 지식과 과학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이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예측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아주 심하게 그렇다. 때문에 중앙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것 저것은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밀어부친다. 독재를 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민주적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그 토론을 장악하는 것은 기성 사회가 지지하는 지식인이다. 사람의 대표로서 신부나 목사만 모여서 혹은 성리학을 공부하는 선비만 모여서 토론을 할 때 그 토론의 결과는 공평한 것일까? 실제로 백명의 국회의원이나 백명의 대학교수가 모두 바보같아 보일 때, 쓸모가 없어보일 때는 참으로 많지만 결정은 그렇게 내려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죄를 범할 때, 그들이 가진 지식시대의 오만이 정도를 넘을 때 그들은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을 억압하게 된다. 정치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민중의 위대함을 정치가들이나 지식인들이 제대로 몰랐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 민중이란 개인으로서의 민중이 아니라 망속의 민중이지만 말이다.

 

종교의 시대에 평가받는 사람은 누구였던가. 종교적 엘리트다. 억압받는 것은 비종교적 사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과 지식의 시대가 열리면서 주류가 되었다. 우리의 시대가 억압하고 있는 인간은 지금 시대에서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사람들이다. 비합리적인 인간으로 평가되는 사람들이다. 이제 지식의 시대가 망의 시대로 교체된다면 지금과 가장 다른 역할을 하게 될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학벌이 없거나 지금의 학교에서 꼴찌하는 사람들이 해방되는 시대랄까.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된다. 어떤 시대건 아무 것도 안하고 게으른 사람이 평가받는 시대는 없다. 새로운 엘리트는 다만 기성 평가 시스템을 거부하고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독립적인 독서를 하는 것은 새로운 엘리트의 한가지 특징일지도 모른다. 빌게이츠는 대학을 뛰쳐나가서 기업을 세우고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어서 유명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방대한 독서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벌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스스로는 물리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적이 있다. 그가 공부를 안했던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는 그것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의 인문학과는 취업이 안된다는 이유로 폐과되는 위기에 처하는데 정작 인문학 책이나 강좌는 점점 더 인기를 끄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모순이 아니다. 시대가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진짜로 새로운 생각을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비슷한 것을 배워도 시스템안으로 들어가서 배우면 그 핵심이 사라질 수 있다. 그 시스템은 구시대의 정신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교육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종 잡스런 지식주입에 몰두한다. 위대한 작가가 되기위해서는 대학강의를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대학은 지식 시대에서 종교시대의 절과 교회가 했던 역할을 해왔다. 대학은 종교시설이 그런 길을 걸었듯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지만 세상의 중심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인문학이 인기를 얻는데 인문학과의 인기가 떨어지는 현실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증거다. 대학이라는 기성시스템이 현실로부터 너무 분열된 것이다. 

 

현대인은 이론과 인과적 관계에 지나치게 중독되어 있다. 우리는 이성과 지식을 인간의 가장 특별한 재능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망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이성과 지식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표현가능하다는 전제가 붙어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망의 시대의 지능은 상당부분 집단적이며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정확히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지금의 이성적 태도로 보면 신앙과도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라. 방대한 데이터로 교육받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분명히 바둑을 두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가능하지 않다. 그 기계를 아무리 뒤져도 인간은 거기에서 바둑두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 학습하는 기계는 분명한 이유를 알고서 논리적으로 답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 아니다. 

 

망의 시대는 개인의 이성이 이해불가능한 이성이 펼쳐지는 시대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허공을 향해 뛰는 듯한 위험을 느낄지라도 허공에 발을 내딛어야 한다.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내 할일을 하면 망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해줄 거라는 믿음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이 잘 돌아갈거라는 믿음이다. 물론 이런 망이 진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대로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화적 개혁이 필요하고 공감의 능력을 개발하는 일이 필요하다. 

 

요즘은 많은 기업의 총수가 마치 아이돌 가수나 정치인같아졌다. 그 이유는 주로 기업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기업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며 신뢰의 핵심으로서 기업의 총수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스티브 잡스고 일론 머스크다. 우리는 비전이 필요하고 그 이상으로 신뢰가 필요하다. 기업과 소비자가 점점 더 빠르게 소통하고 투자자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등으로 서로를 구분하기 어렵게 융합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자주 그것을 생태계라고 부른다. 생태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다. 더 싸게 물건을 만들거나 더 윤리적으로 기업활동을 하거나 미래를 앞당겨서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도구가 된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더욱 더 그럴 수 있다. 단순한 아이디어로 테슬라 수준의 거대한 기업이 순식간에 설립되고 그것이 수많은 사람의 참여에 의해 저절로 굴러가는 시대가 예견된다. 클라우드 펀딩같은 것으로 회사를 만드는 것을 보면 이런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쯤이면 이건 내가 말해온 망이 된 것이다. 

 

망은 아직 소수문화다. 우리는 아직은 지식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그 시대의 관습에 지배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앞에서 말한 클라우드 펀딩을 포함한 여러가지 움직임이 생겨난다. 대표적인 것이 가상화폐의 출현이다. 화폐는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이나 공유경제 운동도 다른 예이다. 나는 한국의 촛불혁명도 망의 시대를 알리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망의 힘이 주류가 되려고 하면 결국 망은 정치적인 힘도 발휘하게 될 것이고 세계의 정치군사적 구도도 뒤집으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권위도 만들어 내려고 할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교황을 억누르고 세속적 왕이 권력을 창출하는 것을 도왔던 것처럼 말이다. 망이 공감하는 문화와 지식시대의 문화가 충돌할 때 문제는 피할 수 없이 악화된다. 

 

이제까지의 인간의 성취는 위대했고 앞으로도 기술적 과학적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다만 발전되는 결과 겸손해 지는 것이다인간의 지식의 한계에 대한 자각은 급격히 증가하고 대중화될 것이다그러면 계속 해서 알수 없다와 예측할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객관적 과학의 기본적 가정인 냉정하고 떨어진 관찰자의 입장은 한계를 보인다법칙의 마술사들인 전문가들은 힘을 잃어갈 것이다결국 미래를 결정하거나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합의를 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어떤 합의가 만들어 것인가어떤 실행방법이 있는가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어떤 망을 만들어 내는가에 달려 있다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인간은 겸손하고 문맥과 환경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인간이다그리고 새로운 시대는 물론 이미 한참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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