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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핵심적 정치세력, 그들의 이름

by 격암(강국진) 2015. 8. 24.

한국에는 현재의 여당을 지지하는 고정지지층이 있다. 이들의 사고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은 바뀔 수가 없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투표자의 30%는 되는 것같다. 그러니 나머지가 모두 반대편을 찍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투표는 거의 하나마나한 일이 된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대로의 한국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한다. 그들이 변하지 않는 한 민주적으로 한국이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한번 선거에 이긴다고 해도 결국은 그것은 뒤집어진다. 이 고정지지층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그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써보기로 한다. 


이 고정지지층이 기본적으로 믿는 게임의 법칙은 약육강식의 법칙이다. 즉 이 세상은 원래 더 강한 놈이 더 많은 것을 차지 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1등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은 경쟁사회를 지지한다. 경쟁때문에 피곤하다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세상은 원래 경쟁에서 이긴 놈이 더 많은 것을 독차지 하는 곳이며 그것은 절대 변할 수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경쟁에 진 것은 죄악이며 패배한 놈은 그것만으로도 죄를 범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더 강하다던가 경쟁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아들도 나에게 전자오락으로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은 나보다 강한 것일까? 나에게 총이나 미사일을 준다면 나는 세계 격투기 챔피언도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세계 격투기 챔피언보다 더 강한 것일까? 상어도 육지에서는 강아지보다 약할 수 있다. 누가 강한가 하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환경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강한 놈이 더 많은 것을 차지한다는 말을 긍정한다고 해도, 경쟁의 승자가 자원을 독차지 하는 것을 긍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게임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이 없다면 그 말들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을 생각하지 않고서 경쟁에 이긴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진다라는 문장을 반복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비극이다. 그들은 어떤 것들을 지나치게 당연한 것들로 생각하며 자신이 뭔가를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현 여당의 고정지지층의 모습을 보면 나는 그들이 폭력적이며 탈법적이고 심지어 국가정체성이라는 문제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을 본다. 그들은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사회적 지도층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면서 전쟁터로 뛰어가고 자식을 보낸 영국의 귀족층과는 다르다. 그들은 미국이나 일본 등의 사회에서 보수라고 말해지는 사람들과도 다르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병역의 의무따위는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국의 역사나 민족에 대해 과도한 자부심을 가지는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을 한국에서 진보세력처럼 보이게 만든다. 보통 그런 사람들을 외국에서는 극우라고 말하는데 말이다. 그들은 한국의 역사가 조선으로 부터 일제시대에도 독립운동의 활동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애써 한국이 일본 패망이후에 개국했다고 강조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간 이승만의 행동에 대해 그렇게 크게 분노하지 않는다. 미국이라면 반전명분같은 명분없는 병역기피자들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고위직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숭고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혈연관계정도일것이고 인간간의 의리 정도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것이 일제식민지하에서 세뇌된 조선인들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윤리정신의 근간이 바로 은혜와 보은이라고 말한다. 정신적으로 일본제국은 후진적이었다. 기술적으로는 노벨상을 배출하는 국가였지만 천황을 신격화하면서 온국민이 뭉치는 사교집단 같은 데가 있었다. 메이지유신이 이런 것밖에 안되는 이유는 일본사회의 윤리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적으로 유일신에 대한 신앙으로 뭉치는 것도 아니고 성리학적 질서로 뭉치는 것도 아니다. 가치가 형이상학적이 아니다. 단순히 인간간의 은혜의 고리로 뭉쳐지고 따라서 국민통합은 오직 모든 국민이 하나의 중심적 존재에 빚을 진 존재가 됨으로서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의 패망이후 일본에서 자라난 조선인들은 이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해방이후에도 그것을 대물림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하는 게임이란 그저 내 자식, 내 가문을 챙기는 것 그리고 내가 신세진 사람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정도의 금기말고는 거의 아무런 금기가 없는 동물적인 싸움이다. 나라가 그것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도 내가 부자가 되고 내 자식이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쟁과 싸움을 통해서 그들은 뭘 차지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은 아직도 고깃국에 흰쌀밥타령하는 북한의 구호와 닮아있다. 즉 매우 원초적이다. 내 자식 잘되게 하고 맛있는 것 배불리 먹고 주변 사람들을 굴복시켜서 잘난척 하고 싶어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초등학생의 태도 같은 이것이 그들의 본질적 욕구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기도 없는 것이다. 가치의 추구란 자기를 어떤 문맥에 놓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자신을 국가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은 국가적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가치있는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을 진리를 찾는 구도자나 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신앙인으로 파악하는 사람은 진리를 찾고 신을 느끼는 경험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에는 즉 게임의 법칙에는 금기가 생기게 된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국가를 팔아서 이익을 챙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앙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신을 팔고 배신해서 가치있는 행동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금기가 거의 없다는 것은 그들은 복잡한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지 않으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남는 것은 혈연과 직접 대면에 의한 사회적 은원관계정도 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직접 만나서 악수하고 밥먹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를 따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은 대기업이 주식회사임에도 동네구멍가게처럼 운영되는 유일한 나라다. 애플 회장의 아들이 다음 애플회장이 된다고 믿거나 토요타회장의 아들이 다음 회장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은 재벌3세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혈연없이 한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 최고부자의 대부분은 자수성가한게 아니라 상속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초적인 가치관이 그들이 실제로 권력을 가지고 돈을 벌어서 성공하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그들은 법을 무시하고 주변 사람에게 인격적 모독을 주며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것에서 그들의 성공을 느낀다. 돈과 권력을 써서 자식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할 수 있는 것에서 성공을 느낀다. 


진정한 종교적 구도자는 자신이 신의 의도를 이해했다거나 하는 경험을 하는 것을 성공의 징표로 삼을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애초에 그 가치관이 원초적인 사람들이 성공해서 그 성공의 결과를 써서 하고 싶은 것도 그렇다. 그들은 종종 성범죄를 일으킨다. 왜냐면 육체적 폭력이상으로 성적인 폭력, 언어폭력은 내가 너보다 더 고귀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은 더 비싼 핸드백을 들고 더 비싼 차를 타고 주변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자식을 부정입학시키고 병역면제시켜주며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마음껏 성희롱을 하고 싶어서 출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도 그들의 가치관이 그렇다. 


그들은 적어도 두가지 착각에 빠져 있다. 하나는 그들이 미국과 가까운 친미세력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그들의태도는 미국이나 유럽같은 부유한 서구국가와는 물론 심지어 현대의 일본과도 맞지 않는 후진 적인 것이다. 때문에 실제로 서구는 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준다. 그들이 좋아하는 박정희는 독재자로 평가될 뿐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반미주의자쯤으로 생각하여 미국인들이 노무현을 싫어할거라고 생각하지만 문화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것은 노무현이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미국인들이 좋아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직급이나 나이나 입사 깃수를 따져서 사람들을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의 권위주의와 차별은 서구는 물론 오히려 현대 일본의 그것도 능가하는데가 있다.


그들은 문화적으로 미국과 가깝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미국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가 없다. 한국을 미국사람들에게 존중받을 만한 나라로 생각하게 만드는 정치인은 오히려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그들이 그렇게 반미주의자나 빨갱이로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또하나의 착각은 세대간의 갈등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과 손녀 손자들을 사랑하는데 동시에 그들의 앞길을 막아버리고 있다. 재벌가문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사고방식은 결국 새로운 신세대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기적인 데가 있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넘어 사회를 이루는 존재이기에 즉 협동하고 전체 공동체를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원숭이 이상으로 사는 것이다. 그 공동체를 파괴하고 무시하면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인맥이든 재산이든 가진 것없는 젊은이들은 대표적 사회적 약자고 요즘말로 하면 을이다. 그들은 사회적 충격완화 장치가 망가질 때 생존의 위협에 가장 먼저 노출되기 때문이다. 굶어죽을 판이면 불리한 조건이라도 뭐든지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내 자식 손자만 외국으로 빼돌려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가를 보여주는 예일 뿐이다. 한때 한국사람들이 외국으로 너무나 많은 아이들을 보내서 호주건 미국이건 캐나다건 한국유학생들로 득실거리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그것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고생해서 번 돈을 써봐야 그 결과가 안좋을 때가 많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에만 보내면 내 자식이 하버드 갈걸로 생각하고 하버드만 나오면 행복하게 살 걸로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다. 물론 미국에서 하버드나와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걸 위해 어느정도의 댓가를 지불했냐에 따라 그것도 아주 바보짓이 될 수 있다. 


자. 이쯤 하고 생각해 보자. 그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지금 내 앞에는 여러 얼굴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답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 어떤 면에서 그렇지만  그들은 정신적 함정에 갇혀 있다. 그래서 이미 자신의 손에 넘쳐나는 것들을 쓰지 못하고 행복을 포기하고 있다. 스스로 불행의 길로 들어간다. 성공은 매우 힘들고 성공해도 별로 의미가 없으며 현대사회에서는 깨지기 쉬운 성공의 길이다. 


그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이다. 아픈 사람들이다. 아마도 그들을 부를 제일 적당한 이름은 트라우마 세력일 것이다. 그들이나 그들을 키워낸 사람들은 조선의 패망이라던가 한국전쟁같은 극단적 사회상황이 주는 아픔에 의해서 만들어 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없이 작아져서는 그저 먹고 싸는 원초적인 동물의 수준까지 내려가서 더 성장하기를 멈춘다. 세상에 손을 벌릴 때 생겨나는 고통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의 상처고 숙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각자의 나라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들은 무시하거나 박멸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정말 어렵지만 한명 한명 만나서 치료해줘야할 사람들이고 그 상처가 더 많은 사람에게 번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 통일이라던가 경제적 문화적 대국이 되는 것은 오직 그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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