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우리시대의 혁명

한국인은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by 격암(강국진) 2015. 11. 4.

한국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의 끝에는 항상 같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는 것같다. 그것은 왜 한국인은 서로를 미워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르게 말해서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좋아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사회문제의 바탕에는 결국 이 문제가 있다. 의견이 어떻게 되건 일단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이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지는 않지만, 아니 심지어 좋아하지만 같은 집에서 살거나 이웃으로 살기에는 싫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당신은 아주 특이한 사람이다. 실은 사람들은 가족끼리도 미워한다. 부모나 자식을 좋아하지만 같은 집에서 살다보면 제발 어딘가에서 혼자 살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한국인이 서로를 미워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한국인들이 서로를 항상 미워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세대차이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도 있으면서도 서로를 지긋지긋해 하는 경우와도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뭔가의 이유로 그 사람을 자주 볼 이유가 없으면 우리는 그런 사람과 잘지낸다. 일이 바쁘다던가 사는 곳이 멀다던가 해서 이따금 만나면 반갑고 고맙고 정말 좋은 시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사람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슬슬 문제가 나타난다. 고부간의 갈등이 그렇고 부모 자식간의 갈등이 그러하며 심지어 부부간의 갈등도 그렇다. 친척중에 너무 좋은 친척이 있지만 사실 그 친척이 옆집에 산다면 그것은 악몽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많지 않던가? 친구랑 가끔 만나는 것은 좋은데 너무 가까워지면 감당하지 못할 행동이나 부탁을 할 거같아서 부담스러운 경우도 종종 있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로 어쩔수 없이 원하는 것보다 가까이 살게 된다. 그러면 미움이 쌓인다. 기분이 나쁘다. 무시당한 느낌이다. 온갖 문제가 생겨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너무 많은 정신적 에너지와 물질이 든다. 탈출하고 싶어진다. 


나는 한국의 대표적 주거인 아파트가 한국인이 서로를 미워한다는 증거이며 가족을 파괴하는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는 이웃에게 닫혀 있고 가족끼리는 너무 열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아파트 구조는 그렇다.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사람도 많은 우리 어머니는 가끔은 모든 사람을 다 떠나보내고 어디 산속의 암자 같은 곳에서 홀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가 계신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과 만나고 부탁을 듣고 평가를 당하고 오해 받고 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이웃과 전혀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주거다. 담장너머로 뭐가 보이고 그런 집이 아니라서 뭘 하는지 서로 알도리가 없다. 이런 주거가 인기가 높다면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한국인들이 서로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안 만나는게 편하고 좋으니까. 서로에게 벽을 쌓아 버리는 것이 아닐까?


반면에 가족끼리는 너무 가까워 지는 것이 한국의 아파트다. 아파트 안에서는 개인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가 없다. 사람들은 흔히 거실을 한옥의 마당과 비교하지만 거리도 다를 뿐더러 용도도 다르다. 한옥의 마당은 외부공간인데 거기서 거실에서 처럼 티브이 놓고 계속 시간을 쓸리가 없다.대개는 비어있다. 그러나 거실은 통상 그렇지 않다. 대개 가장 붐비는 생활공간이다. 그러니까 문만 열면 거실인 아파트구조에서는 학생이 자기방에서 공부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시달리는 것이 두려운 남자들은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이 싫다. 가족이 싫다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아무도 안만나고 쉬는 것인데 아파트 공간에 들어가면 비록 가족이지만 다른 사람과 계속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혼자 집에서 머무는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못한다. 아파트에 개인공간이 없다는 것을 이해못한다. 적어도 낮에는 혼자서 공간을 쓰니까 오히려 사람이 그립다. 바깥에서 들어온 남편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섭섭해 한다. 아이들도 어릴 때는 큰문제가 없지만 청소년이 되면 문제가 된다. 한국인들은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으로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떠돌게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이 있는 것같다. 그래서 가족끼리도 서로 되도록 안만나게 해놓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서로를 피하고 있다. 가족끼리도 말이다. 더 만나면 싸우고 미워하게 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거의 구조라는 물리적 구조만이 우리가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자본주의적 이해도 그렇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인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교육을 받는다. 다른 인간은 경쟁상대거나 자원을 배분할 때 내 몫을 빼앗아 먹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등수다. 왜냐면 등수로 대학에 들어가고 등수로 취업을 하기 때문이다. 1반의 성적이 2반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개인인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한국전체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나 개인의 행복이 먼저다. 그러니까 서로 아귀다툼을 하면서 싸우라고 배운다.


우리는 종교의 시대를 벗어나면서 그 시대의 최대의 미덕도 버려버렸다. 종교적인 시대에는 인간의 삶의 목적은 진리를 찾는 것이라는 관점이 보편적이었다. 즉 인간은 구도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시대에 탐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관점이 중심에 있기 떄문에 거대한 종교 건축물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세상에서 친구가 진리를 찾으면 내가 진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즉 모두가 함께 지혜를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현대인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산다. 그게 삶의 목적이다. 삶의 목표가 정신적이라기 보다는 물질적이고 결국 경쟁에서 이기는 것, 뭔가를 소유하는 것에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그 본질도 변화된다. 당신이 내적인 성장이 진짜로 인생에서 가치 있다고 믿을 때와 당신이 고급 자동차나 비싼 아파트가 인생에서 진짜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을 때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주로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행해지거나 행복해 한다. 결국 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이 만나기 싫다. 자신이 불행해진다. 이것이 한국인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흔한 방식이 아니라고 할수 있을까? 직위든 가진 것이든 외모든 인기나 유명세든 우리는 쉽사리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지 않던가? 한국인은 정말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만나면 무조건 싸운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해도 사람들의 화합은 언제나 같지 않다. 중요한 것에는 느끼고 보는 시야의 넓이도 있다. 어떤 두사람은 매일 붙어살아도 큰 문제가 없는데 어떤 두사람은 하루에 한번 얼굴보는 것도 너무 부담스럽다. 그러니까 같은 공간에 공존하고 자주 만나는 것을 감당하는 것에는 그 사람들간의 궁합과 사고의 넓이가 필요하다. 삶의 규칙이 비슷하고 서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같이 살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게 안된다. 나는 축구를 하는데 농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꾸 만나면 그 사람이 공을 들고 던질 때마다 나는 반칙으로 여기게 되고 내가 공을 찰때마다 그 사람은 그걸 반칙으로 생각할 것이다. 


농구나 축구의 경우는 서로의 규칙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삶의 규칙들은 대개 '원래 그런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바꾸기 쉽지 않고 바꾸라는 요구가 불쾌하게 느껴지기 쉽다. 내 경험으로는 원래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공존이 힘들어 진다. 엄격히 말해 이 세상에 원래라는 것은 없다. 어쩔수없이 쓰는 말일 뿐이다. 


많은 집에서는 세대차이로 인해 고민이 있다. 나이든 어른들은 이러저러한 것은 원래 그런 거라면서 자신의 삶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보면 그런 모습이 종종 부질없는 고집으로 보인다. 인생의 낭비로 보인다. 예를 들어 콩나물 먹는 값을 아껴서 절이나 교회에 엄청나게 기부하는 것을 보는 무신론자 딸은 그게 좋게 보일 수가 없다. 자유를 외치면서 의무는 전혀 다하려고 하지 않는 젊은 세대를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어렵다. 


서로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거공간이나 마을의 구조같은 물리적 구조도 중요하고 자본주의에 물든 교육도 문제지만 서로 자주 만나고 살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 그 문화가 가져야 할 능력에는 물론 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 점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외국에서는 한국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알고 있다. 만나면 피곤하다는 것이다. 결혼은 왜 안했냐, 옷은 왜 이러냐, 어느 대학 나왔는가. 어디가 고향인가부터 줄줄이 물어서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얽어매는 작업에 골몰하는 것이 한국식의 사교활동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 표준의 삶이라는 모델이 하나 있어서 그것과 다르면 왜 다르냐고 추궁을 당하는 식이다. 이런 문제가 외국에서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에서도 오랜만에 명절에 친인척이 만나면 결혼이나 취업에 대해 묻지 말라고 신문기사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한국문화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이 너무 단순하고 절대적인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즉 몇가지 조건들에만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너무 절대적이다. 예를 들어 두 자매가 만났는데 한 사람이 10억짜리 집에 살고 한사람은 2억짜리 전세에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두 자매의 삶중에 어느 쪽이 성공인지가 판정난 것으로 생각하는 식이다. 세상일이란 기본적으로 주관적인 만족감에 달린 것인데다가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의 합으로 이뤄져 있다. 내 눈에 이해가 안되고 나와 사는 방식이 달라도 저 사람은 저게 좋은가 보다 혹은 저 사람은 살다보니 그냥 저렇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만일 것이다. 살다보면 이유없이 잘살게 되기도 한다. 많은 것들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쉬운 답이 있다. 성적이 좋은 학생과 성적이 나쁜 학생의 차이는 반드시 성실함이 아니다. 공부도 운동이나 외모처럼 어느 정도 타고 나는 것이다. 누가 돈을 잘 벌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닐뿐더러 좋은 사람이란 보장은 더더욱 없다.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면서 돈도 잘벌고 출세도 잘하기는 사실 참 힘들다. 오히려 사회적 보상은 악행의 댓가로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해외유학에 실패하는 경우는 참 많다. 왜냐면 공부나 행복이나 성취란 단순히 학교가 좋다 나쁘다의 문제만은 아니기 떄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쉬운 답이 있다. 때로는 쉬운 정도가 아니라 기괴한 답인데도 자신의 답에 대해 확신을 하고 확신을 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고한다. 자기가 진흙탕을 걷고 있으니 장화가 필요했다라는 것을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장화가 없으면 세상 살기 힘들다고 가르치려고 한다. 세상은 무조건 원래 진흙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단순함은 때로 무섭다. 단순한 생각을 가진 군중만큼 무서운 것도 세상에는 없다. 그런데 한국에는 참 단순한 사람이 많다. 아주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서로 서로 가르치면서 서로를 더 단순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한국은 참고서 말고는 책도 많이 팔리지 않는  나라다. 취업용이 아나면 배움은 필요없다는 식인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들중에 글을 쓰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젠가 글자를 아는가 모르는가에 대한 문맹률이 아니라 글을 읽고 거기에서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실질 문맹률을 측정했더니 한국이 엄청나게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서로를 좋아하는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충분히 좋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이야기들은 세상에 넘친다. 뉴스와 신문을 보면 날마다 한숨이 나온다. 내가 이글에서 거론한 것들이 모든 이유가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주거환경에서, 자본주의적 경쟁에 대하여 그리고 철학적 단순함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서로 좋아하면서 살기 위해서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