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0
오늘도 뉴스에는 패륜적인 소식이 가득하다. 어떤 사람이 세월호 피해자의 유족이 있는데 가서 죄없는 나라는 왜 욕하냐고 유족의 뺨을 쳤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서 성추행을 행한 교사가 5명이나 된다는 기사가 있질 않나,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했다는 소식이 연일 터져 나온다.이런 뉴스들을 듣다보니 나는 왜 우리 사회가 윤리적으로 타락하는가를 다시한번 말하고 싶어졌다. 나쁜 뉴스의 홍수속에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썩어빠졌거나 적어도 한국인들은 그렇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비윤리적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은 오히려 믿을 수 없이 윤리적이다.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느끼면 말이다. 특히 한국사람은 더욱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윤리나 정의나 도덕이란 모두 어떤 공동체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하거나 자꾸 잊어버린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믿으면 그건 너무 당연해서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거의 대부분 무의식안에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가족은 공동체다라는 원칙에 의거해서 만들어지는 생활방식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 밥먹을 때면 가족을 모두 부른다. 부모나 형제, 자식같은 가족의 일원이 없어졌는데 왜 찾냐는 질문을 부모에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행동의 원칙은 그냥 당연한 것이다. 거기에 왜라는 질문은 아예 던져지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가 왜 비윤리적인가를 답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거나 서로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렇든 저렇든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우리는 대개 서로의 무지와 무관심의 벽뒤쪽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거나 서로에게 무관심한가. 우선 무관심에 대해 말해 보자.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이유는 많이 있다. 우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보니 관심을 둘 수가 없다. 허허벌판에 두 집만 이웃해서 살아간다면 그 두 이웃은 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서로를 인식할 것이다. 그러니 무관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아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신혼부부가 허니문을 떠나는 본래 의미가 이것이다. 신혼부부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둘밖에 없는 곳에 여행을 가면 그들은 서로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진짜 부부라는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주된 주거 형태는 아파트다. 많은 한국인은 도시에서 살고, 아주 자주 이사를 한다. 그리고 돈버느라 공부하느라 복잡해진 현대인의 삶을 살아가느라 각자 바쁘다. 우리는 길가다가 담너머에서 우연히 이웃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사도 자주 가서 모두는 모두에게 뜨내기다. 오늘 반갑다고 인사를 해봐야 다음달이나 내년이면 떠나버리고 말 사람들에게 정성을 들이는 일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이므로 우리는 점점 더 주변사람에게 신경안쓰고 사는 일에 익숙해 진다. 그리고 나면 5년 10년을 같은 곳에서 살아도 주변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그렇다. 같은 집에 살아도 남편과 아이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아내만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간을 보내니 대화가 안된다. 마치 기계 부속품처럼 각자의 역할을 할뿐이다. 돈벌어주고 밥해주고 공부해 주면 나에게 뭐라 더 말하면 안되는 그런 관계가 된다.
한국인은 외롭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한국인이 외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다른 증상이다. 한국인은 비윤리적이 된다. 바로 외로우니까,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다. 아는 사람이 없을 때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바뀌는가는 해외 유학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요즘에는 해외에도 한국인이 많다. 하지만 해외여행자율화가 되기전만 해도 외국으로 가면 한국사람 만나기 어려웠다. 그런데 가면 우리는 윤리적 위기에 빠진다. 훨씬 작은 유혹에도 우리는 윤리적 규칙을 어긴다. 모두가 그 선을 넘지는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한국남자들이 필리핀가서 코피노라고 불리는 아이들을 만드는 일은 이렇게 해서 생긴다. 여자들도 사실 예외는 아니다. 훨씬 더 대담해 진다. 한국에서 온순하던 사람들이 동남아 관광가서 별 미친짓들을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한국 사람들이 결혼할 때 친족을 수백명씩 불러다가 친인척에게 새로이 가족의 일원이 된 사람을 소개하는 관습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 가족이 된 사람을 의미있는 얼굴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되면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윤리적인 제약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람은 남이 아니니까 이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 주관적 느낌이지만 한국사람들은 밥한번 먹고 악수한번 하고 나면 상대방에 대해서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는 일이 특히 더한 것같다.
이런 전통의 사회적 과정은 한국에서 거의 붕괴되었고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과정이 그걸 대체하고 있지도 못하다. 집성촌 같은데서 지역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한국인들은 이제 뜨내기가 되었다. 서로에게 낯선 타인이 되었다. 여전히 경조사에 바쁘지만 사는게 너무 바쁜데다가 혈연에 근거한 경조사는 애초에 이제 별로 의미가 없다. 그건 친인척이 모두 근교에 살고 경조사가 있는 집에 마당에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던 시절의 풍습이 지속되고 있는 것뿐이다. 경조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경조사에서만 만날것 같으면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
요즘의 한국에서는 지역공동체든 직장공동체든 그 안에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서로 만나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대학의 학과에서 서양식으로 티타임을 정해도 왠지 서양식으로는 분위기가 흐르지 않는다. 파티 분위기를 못내는 것이다. 일본에는 동네마다 있는게 마쯔리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에게 지역축제는 그저 외부손님에게 돈버는 일이 되는 일이 되고 마는 일이 많은 것같다. 하지만 스스로가 축제를 기뻐하는 느낌이 있어야 축제는 성공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남자가 문제다. 어떤 교육과 억압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국남자는 잡담따위 못하는 비파티용인간인 경우가 많다. 도무지 술먹는 것 말고는 즐기는 법을 모른다. 개인관심사가 공허하니까 잡담이 안된다. 한국사람은 정이 많고 착하다. 다만 아는 사람에게만 그렇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사람이라는게 점점 줄어들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 되고 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길가의 돌멩이가 죽던 살던 무관심하다. 우리는 얼마든지 잔인해 질수가 있다.
이제는 적에 대해서 말해보자. 우리는 왜 세상에 많은 적을 가지는가. 이 질문을 던지고 보니 그 답이 너무 자명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 세상은 경쟁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주장에 중독되어 있다. 유치원때부터 죽을때까지 우리는 오직 경쟁만 한다. 1등을 해야만 한다면 같은 반에 있는 모두는 나의 적이다. 인생이 다양하고 불확실한 경로를 따라 전개된다는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인생은 오직 한줄기의 엘리트코스를 따라 흐른다라는 생각이 강하면 세상에 남는 것은 적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인생이 참 단순하다. 모두가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하고 은퇴할때까지 돈을 벌다가 부동산으로 로또를 맞으면 그걸로 자식 교육시키고 죽을때까지 먹고 산다는 것이 인생계획이다. 우리는 가치를 생각하는 것을 잊었다. 가치를 생각하면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출현하게 된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수도 있고 여행을 하고 싶을 수도 있고 집을 짓고 싶을 수도 있고 자동차경주를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수단과 목적이 뒤집어 진지는 오래 되었다. 남이 부러워 하는 것을 가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처럼 사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결국 모든 체험이 다 생략되어 누구의 연봉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으로 질문이 획일화되면 성공과 실패는 간단해 진다. 이제 8천만원짜리 자동차를 타는 이웃집 남자에 비해 3천만원짜리 자동차를 타는 남자는 인생경쟁에 패배했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삶을 다양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면 경쟁이라는 개념은 과열되기 어렵다. 궁극에 이르면 우리는 모두 다른 인생을 사는데 마라톤 선수하고 프로게이머하고 누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는 왜 적이 이렇게도 많은가 하는 것과 한국인은 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가 하는 질문 모두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은 사람을 끝없이 분류하고 차별한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나 말하지만 한국 사람처럼 직급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에서는 한학년 선배거나 회사입사 깃수가 한해 위면 하나님처럼 구는 사람이 참많다. 왜 그런가 질문하지도 않는다. 선배는 당연히 그런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의 상위직급자가 하는 행동을 한다. 군대는 특별한 조직이다. 군대는 상관이 나가서 죽으라고 명령하면 죽어야 하는 목적을 가진 집단이다. 그러므로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전체가 군대같다. 그래서 바보같은 상관이 수백 수천명의 전문가를 바보로 만드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다.
5학년은 4학년하고 수준이 안맞아서 놀지 못한다. 차장은 부장하고 수준이 안맞고 박사는 석사하고 다르며 교수는 강사나 연구원과 다르다. 의사의 부인은 레지던트의 부인과 다르다. 장군의 부인은 대령의 부인과 물론 다르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자식과 다르다. 그래서 나이가 너무 들어서 이젠 자식도 중년이 넘어가는 나이가 되었고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는 것이 분명할때도 그 관계가 친구처럼 되질 못한다. 그게 부모의 권위가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자기가 만든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칸칸이 나눠진 감옥안에서 모두가 썩어간다.
수없는 차별과 무지의 벽은 우리 사회에 음모론과 악의 이론이 과도하게 만들어지기 쉽게 한다. 악의 이론이란 바로 우리 삶의 어려움은 모두 저기 저 악당들때문이라고 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이 언제나 틀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통이 없으니까 어느 정도 오해가 있어도 금방 사실이 되고 만다. 일단 싸우고 욕하기 시작하면 악의 이론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누군가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도 당신이 먼저 그를 미워하면 그도 당신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누군가가 당신을 미워한다는 애초의 이론은 옳은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윤리의 시작은 공동체의 존재라는 말로 이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어떤 문제의 해결은 공동체에 의존한다. 한 개인은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찌되던 해결은 서로 돕고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데에 있지 악을 무찌르는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해결책이 된다고 해도 해결책의 첫부분이지 끝부분이 아니다. 악을 처단한다고 해도 그것은 남은 사람들이 더 강하게 협력하기 위한 것이지 모두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면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은 혹은 한국인은 원래 비윤리적이라서 비윤리적으로 사는게 아니다. 우리는 외롭고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무지의 벽 뒤에 서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나의 사회는 군대처럼, 기계처럼 조직되어야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 군대조직론은 어쩌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사회를 군대처럼 만들면 인간들 사이에 벽이 생기고 결국 모두가 비윤리적이 된다. 그러니까 잠시잠깐 최대출력으로 결과물이 나올뿐 조금만 지나면 사회전체가 썩어서 결과가 훨씬 더 엉망이 되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와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큰 차이는 소통에 대한 자세, 군사문화에 대한 자세에 있다. 그리고 물론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줄었던 부패는 이명박 박근혜 시대에 들어서 크게 증대했다. 이제는 몇조 몇십조가 유실되었다 같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이런 문제의 바닥에는 우리는 언제 윤리적이 되는가. 사회를 기계처럼 조직하는 것의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말이 하염없이 추상적으로만 들리기 때문이다. 서로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다. 우리는 서로를 인간적으로 만나야 한다. 직위나 학벌, 사회적 관계같은 것을 떠나서 인간으로 만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렇게 하는데 실패한다. 우리는 외로워지고 적으로 둘러싸인다. 그리고 비윤리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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