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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우리시대의 혁명

방문객과의 한 대화 : 한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by 격암(강국진) 2014. 8. 5.

몇일전에 내가 사는 곳으로 사람이 방문했다. 그는 역전 앞에서 나를 만나 시작도 끝도 없는 잡담을 몇시간하고 돌아갔다.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점에서는 같았다. 우리는 만나서 그저 잡담을 했다. 생각나는대로, 그냥 말이 이어지는대로 잡담을 것뿐이다. 내용을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몇자 적어두기로 한다


내가 말이지만 기억에 남는 말은 우선 역시 공동체 정신이었다. 어찌보면 따분한 주제지만 한국사람들이 서로를 보면서 우리는 운명공동체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이 겪는 모든 문제를 해법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결론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만큼 살게 것도 6월항쟁때 거리로 나오고 아이엠에프때 금모으기 운동을 하고 촛불집회를 한다고 거리를 덮었던 시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면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그런 잠재력이 있었기에 그게 핵심이 되어 어찌되었던 우리는 이만큼 살게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그런 행동은 단순히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할때만 가능한데 이제 현재의 한국을 유지하고 나아가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많은공동체 의식, 세련되게 만든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왜냐면 오히려 공동체 의식이 빠르게 말라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 국산품 애용운동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학생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검은머리 가짜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늘었다어느새 본격적 외국인 노동자의 수도 늘었고 우리는 다민족사회라는 말을 여러번 듣게 된다. 이런 것들을 단순히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도 문제는 있고 그게 뭐가 되건 이제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힘을 잃어가는 면이 있다고 나는 느낀다. 사회적 구심력이나 국가, 민족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종류의 개혁과 혁명을 꿈꿀 수는 있다. 부자 나라가 투자를 꿈꿀 있고 교육비가 공짜고 주거비가 얼마 안드는 나라를 꿈꿀 수도 있다. 노인들이 행복한 나라를 꿈꿀 수도 있고 문화강국을 꿈꿀 수도있다하지만 무슨 개혁을 꿈꾸던 모든 변화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결국 이쪽 강변에서 저쪽 강변까지 헤엄쳐가는 일이 되기 마련이다. 다시말해 중간에 물에 빠져죽는 사람이 나올 있다


개혁의 목표를 잡았는가 아닌가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공동체의식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개혁의 목표가 옳다던가 정의라던가하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상당부분 의미를 잃는다. 왜냐면 개혁도중에 누군가는 완전히 몰락하거나 정말로 죽으니까. 죽는데 우리나라가 천국이 되면 뭐한다는 것인가. 재개발 싹하면 천국같은 동네가 될지라도 현재 거주민은 거지가 되거나 죽어야 한다면 그들이 그걸 동의할 것인가. 동의해야 하는가? 우리가 그런 것을 강제할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은 너만 손해보게 하지 않을 거라는, 너만 죽게하지는 않을거라는 상호신뢰다. 공동체정신인 것이다. 모두가 잘되고자 하는 것이지 너는 죽고 나만 잘되자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국민다수가 믿을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야 한다. 사탕발림으로 넘어갈 없다그래야 변화는 시작되고 중간단계를 거치며 진행될 있다. 아니면 좌초되고 말것이다


나는 최근 삼성과 현대등의 회사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아주 급속히 나빠져 가는 것을 느낀다. 삼성과 현대같은 회사가 잘되야 모두가 잘된다, 삼성과 현대가 망하면 한국도 망한다같은 말은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지만 적어도 전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망해야 우리가 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그들 회사에 대한 기사의 댓글은 악플로 가득하다그러는 가운데 삼성은 스마트폰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현대차는 내수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는 과연 5년후를 기약할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들은 바깥에서 성공을거두겠다고 자신만만한 모양이지만 그들의 뿌리는 이미 약해져 있다.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회사는 오래가기 어렵다. 무엇보다 어떤 중국회사가 그들을 대체해도 아무도 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윤리적 혼란속에 빠져 있다. 돈은 많아져서 빈부격차는 늘어가는데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우리만의 가치기준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진자는 한없이 잘난체 하는 경우가 있고 못가진자는 한없이 절망하여 극단적인 일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어른을 보고 배워서 잔혹하게 서로를 괴롭히고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쓸쓸히 죽는다


공동체정신이나 신뢰의 문제는 어느날 잔치 한번 벌이고 굿한번 하고서 그래 우리 이제부터 서로 믿으며 잘해보자고 결의하는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사회가 국가가 정체성과 윤리에 있어서 혼란을 느끼는 것을 정돈하는 ,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결국 우리는 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이 강국이 것은 남북전쟁이라는 전쟁을 겪고서 가능해 것이다그것이 총칼들고 무력으로 하는 혁명이 아니라 문화적 혁명이라도 우리는 결국 싸우고 싸워서 앞으로는 이런게 상식이라고, 세상 이렇게 사는 정상이라고 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국사회에 희망이 생길 것이다


나는 혁명을 2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면 어떨까하고 말했다. 1 민주화운동은 말하자면 거대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것이었다. 옳은 법을 세우고 그걸 지키자는 식이다. 최소한의 인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국가가 원하면 아무나 끌고가서 간첩이지라고 말하고 죽여버릴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수틀리면 쿠데타해서 무력으로 정권잡는 그런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2 민주화운동은 반권위주의, 진정한 개인주의, 지역자치와 마을 공동체 재생에 대한 것이다. 1 민주화운동은 이데올로기적이었다. 어떤 진리를 누가 설파하면 그것은 모두에게 객관적 진리라는 식이다. 하지만 2 민주화 운동은 개개인이 자기 삶의 진리를 각자 찾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삶을 살아가는 능동성이 강조된다


우리의 방송은 아직도 재벌들이나 왕들만을 묘사하는 일이 많지만 국민의 절반이상은 자영업에 종사하는 것이 한국이다. 그런 현실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행동에서 찾는게 아니라 국가정책이라던가, 대기업같은 거대한 국가의 틀에 딸린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사실 상당히 무능하고 예고없이 변하는 불안정한 것인데 말이다. 군산이던 전주던 부산이던 경주던 각각은 자기의 역사, 자기의 이야기, 자기의 삶을 찾아야 한다. 수도권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된다그런데 지방자치시대가 열린지가 한참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진정으로 그런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프랜차이즈로 대변되는 거대자본의 힘앞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고 젊은 세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것인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프로야구선수가 되고 모두가 물리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필요도 없다. 우리 대다수는 그저 작은 마을의 행복한 주민, 작은 생활협동조합의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지역공동체, 마을 공동체 심지어 가족공동체조차 한국은 파괴만 해왔다. 그리고 아직도 방송은 열심히 재벌이나 왕들의 이야기만 틀어대고 있다. 다양성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혁명이 시작도 안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군산을 유명한 도시로 만든 8월의 크리스마스는 1998년에 나온 대히트영화로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바로 개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남녀가 그저 평범한 사진관주인과 교통단속원인 이런 이야기가 한국을 인간이 사는 곳으로 만들어 가는 미래다. 그리고 소위 우리가 한류라고 부르는 것의 뿌리다. 대장금도 겨울소나타도 그런 부분이 핵심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돈이 된다 싶자 그랬는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에서 역풍이 분것인지 다시 우리는 열심히 태황사신기류의 왕의 이야기, 영웅의 이야기에 몰두한다. 그리고 개인은 잊혀진다. 개인이 잊혀지니 개인의 행복, 윤리, 가치가 잊혀지고 그렇게 되니까 마을의 이야기도 잊혀진다. 한국은 한국을 바꾸려고 하는 개인주의적인 시각과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시각이 충돌하고 있다. 게임의 혼란이 극심하다. 초록물고기와 시의 감독 이창동이 노무현정권의 장관이었고 마을 만들기를 강조하는 박원순이 야권에 속하면서 서울시장을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화적 혼란이 계속되다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이미 어느정도 그렇게 되었다, 한국 영화 대작화, 스크린 점령논란, 수출을 생각하고 만드는 드라마들 같은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다시는 개혁의 동력이 될만한 시대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미 상당히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고 그리고 나서도 박근혜를 뽑았다


2 민주화 운동에서 젊은 세대는 이제 마을로 지방으로 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성세대가 경제팽창기에 만든 안에서 목매고 죽자사자 노력하면 안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노년을 맞이하게 될거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빚내고 아파트사서 거기에 코가 꿰어서는 안된다그런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도 할수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다는 것도 기본적으로 공동체가 약해졌기때문이다. 공동체가 강하다면 예를 들어 젊은세대는 공짜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젊은 세대는 공동체의 미래니까 공동체가 젊은이들에게 투자를 안할리가 없다. 집도 주고 먹을 것도 줘야 한다. 그러나 점점 그렇게 하지 않는다. 결국 공동체의식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들이 나서서 그런 만들 밖에 없다. 주거공동체를 만들고, 나아가 작은 마을을 건설하는 것을 꿈꿔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행복하게 유지가능한 마을을 실제로 만들어 냄으로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명문대를 졸업하지 않고 최고 수준의 스펙을 가지지 않아도 미래에 대한 불안없이 무엇보다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아갈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2 민주화운동이다. 그걸 위해 공유경제를 실천하고 지역화폐같은 것을 쓰는 것을 생각해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한국인터넷을 세계의 최첨단으로 만들었던 것은 기술이전에 사용자인 열정적인 한국인들이었다. 한국인들의 열정이면 해낼 있을 것이다. 지방의 많은 곳들은 사실 노인만 남아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므로 그런 양쪽의 이해가 합해질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이 살려면, 개인이 탄생하려면 우리는 개인으로 행동하고, 개인으로 세상을 보고, 개인으로 소유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으로 세상을 보려면 우리는 읽어야 하고, 자신을 알려면 우리는 써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책을 안읽기도 하지만 한국은 읽을거리도 혼란되어져 있다


한국은 조선시대와 문화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해방이후 기독교세력이 한국에 크게 자리잡은데다가 한글문화와 한문문화로 갈려지고, 망한 나라 조선에 대한 비하등으로 우리는 결국 문화적으로 혼란 스럽다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지만 책들의 언어들은 충분히 소화되어 나오고 있는 같지 않다. 그건 마치 옛날어투로 번역되어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한글판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성경에 대해 뭔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문맹자는 별로 없지만 말을 제대로 못한다. 무엇보다 개념적으로 혼돈이 많다. 결국 책이란 현실에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영화의 예를 들었듯이 우리가 문화적 성과물을 축적하고 그것을 공부할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마을, 새로운 개인으로 탄생할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교경전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의 뜻을 되새기는 그리고 나아가 거기에서 선비의 이미지를 발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에는 사무라이가 있고 미국에는 카우보이가 있듯이 한국에도 인격적 모범이 있어야 하고 우리의 전통적 그것은 바로 선비였던 것이다


선비란 누구인가. 적어도 나에게 있어 선비란 관직을 얻은자나 명문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유교경전을 읽는 사람이란 뜻도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비란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종종 수신을 다한 다음에 가정을 다스리고 나아가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식으로 이해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공동체, 사회공동체는 그것들을 이루는 개인들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필요가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거나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가, 아니면 어떤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가 이런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의 답이 자연스레 공동체의 가치관과 목표를 결정하게 된다. 사냥을 하고싶은 사람의 집단은 자연히 사냥을 하는 법을 연구하게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바람직한 국가나 사회공동체안에서  개인들이 가져야 자기 정체성은 바로 배움이고 수신이다. 우리는 배우고 자기를 좀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렇게 될때 진정으로 행복해 질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모여서 공동체를 만든다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선비의 공동체다. 선비란 구도하는 인간인 것이다독립적 인간으로 스스로 서고 스스로 행복하지만 세상과 내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가족을 사랑하고 정치에 대해 발언 하는 것이다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다. 수신하고 나서 평천하하는게 아니라 국가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바로 수신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수신의 길은 물론 끝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여서 돈좀 벌어보자고 시작한다면 공동체는 부자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이익을 먼저 탐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공동체의식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을 밖에 없기 떄문이다


공부하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하는 말이 바로 논어의 첫마디다. 공부하는가에 대해 착각하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것인가, 21세기 한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하는 질문의 답은 이미 논어의 첫마디에서 분명하다. 공부하고 살면 행복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협력해서 살면 우리는 재미있게 그렇게   있다.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면 고민해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풀어야 숙제다


공부하고 그것을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첫마디 다음말은 바로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 라는말이다. 유붕이 자원방래하여 불역열호아했던 날에 잡담한 것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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