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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우리시대의 혁명

진보를 욕망하는 인간론

by 격암(강국진) 2014. 5. 22.

머릿말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물론 세상의 크고 작은 문화권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시대적으로도 여러가지가 말해져 왔다우리가 의식하건 하지 못하건 적어도 대중적인 의미에서 인간관은 우리 사고의출발점이 된다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어떤 인간관이 우리를 조종하고 있으며  세상의 변화는 좌절하는가 그리고 어떤 인간관이 바람직한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관들


과학의 시대이며 서구적 관념이 세계를 지배하는 오늘날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두가지 직관들이 아닌가 한다그것들은 하나는 플라톤적 인간관이고 또하나는 진화론적 인간관이라고 부를  있는 것이다


플라톤적 인간관의 핵심은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있을 것이다이것은 모든 인간은 이상적 인간형인 이데아적 인간의 표현으로서 결국 표면적인 차이만 있을  모두 같다는 의미를 가진다오늘날 우리가 노예제도를 혁파하고 휴머니즘을 외치고 인간평등을 외치게 되는 이유의 근원에는 바로  플라톤적 인간관이라는 직관이 있다노예건 주인이건 흑인이건 백인이건 가난하건 부자이건 인간은 인간이라는 것이다우리가 우리는 혹은 저들은 인간이다라고 말할  거기에는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으로서의 같은 본질이 있고 실은 중요한 것은  공통의 본질이므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플라톤적 인간관은 바울에 의해기독교에 흡수되어 신앞에 평등한 형제자매로서의 인간관을 만들었다그렇게 해서 평등한 인간의 사회라는 이상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플라톤적 직관에서  기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그걸 플라톤적 직관이라고 부르건 부르지 않건 인간이란 개념속에서 보편적 인간성을 찾고 그에 기반하여 인간은 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플라톤적 직관이다


진화론적 인간관의 핵심은 지금의 인간은 진화과정의 결과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있을 것이다세상은 부정할  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생명은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라 진화하고 그중에 살아남은 것들이 지금의 생태계지금의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진화론적 인간관이다근대이후의 과학적 발전에 따라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힘을 발휘하게  진화론적인간관은 자유주의를 만들고시장주의를 만들었다


이러한 인간관들을 직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은 모두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를 사로잡지만 실은  독단론이기 때문이다다시말해 우리는 그것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뿐이다 나쁜 것은 두개의 직관은 사실 서로 상반된 것이기 때문에다른 종류의 행동규범을 만들어 내는데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어느 한쪽을 믿거나 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의 독단을 당연한 것으로 선언해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인간평등을 받아들이는 사람조차도  경계가 무한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렇다면  우리는 투표권에 있어서 나이제한을 두는가 1살짜리 아기나  수정된 수정란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한당하는가사실 10살먹은 아이보다 정신적으로 미숙해 보이는 70 노인이나 청장년은 세상에 많다예를 들어 범죄자들이 그렇다인간은 인간이다라는 주장은 과연 절대진리인가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국경따위를 가지고 있는가모든 인간을 하나의 사회에서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지 않는가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지만 플라톤시대에는 노예제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플라톤조차 인간평등을 말한 것은 아니다다만 그는 훗날 인간평등으로 귀결되게  어떤 관념을 출발시켰을 뿐이다 관점은 차차 세상이 변해가면서  많은 장벽을 허물었고 종국적으로는 과거와 비교할  없는 평등권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바로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구호나 그와 비슷한 구호아래 말이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인간평등에 대한 예외를 만든다문제는 그런 예외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의 기반이 독단이기 때문에 공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종종 부정할  없는 위선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것은 다른 종류의 직관  진화론적 직관을 믿는 시장주의자의 태도에서  나타난다우리는 얼마나 자주 경쟁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말을 듣는가가장 반시장적인 사람조차도 활발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시장에서의 진화론적 직관에 반대하면서 관념이나 사상에 있어서의 진화론적 직관에는 찬성하는 것이다스스로를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면에 고민이 거의 없어 보이는 사람은 많다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반대론 따위는 그런 고민이 없어보이는 만큼 무작위한 개인적 믿음을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게 된다그리고 그들은 주사파를 자처하다가 한순간 변절하여 극렬한 반공주의자가 되는 사람들의 예를 기억해야  것이다반성없는 독단에 근거한 정의는 종종 한순간에 전혀 다른 반대편으로 변절하곤 한다


경쟁이나 시장법칙따위가 드밀어 지는 곳에서 인간평등이란 개념은 무참히 깨어진다사람이 정말 푼돈때문에 몰살당하는 상황이 발발해도 그것은 자연의 법칙과 같은 피할수 없는 법칙의 결과이며 오히려 세계를 진보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할  있는 것이 바로  직관이며 누구보다 멜서스의 인구론에 의해서 일찌기  보여진적이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의 이념은 허구이며 인간세상에 진정으로 자유로운 시장  인위적인 개입이 없었던 시장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사람들은 인간평등인간존엄국가공동체의 이득등의 개념을 자기 맘대로 세워서는 자기가 보호하고 싶은 것은 보호하고 그렇지 않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냉정했다가장 냉혹한 시장주의자도 자기 집에 돌아가 가족을 돌볼때는 시장의법칙이니 적자생존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가장 재능없고 게으른 자기 자식이 다른  자식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해주고 싶어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게다가 자연선택을 적자생존으로 이해하여 살아남은 것이  좋은것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점은 옳은 것이 아니다전혀 근거가 없다암세포도 건강한 세포와 싸워 이긴다 결과 종국에는 개체 전체를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말이다자연선택을 강한자 혹은  뛰어난자가 살아남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회적 승자의 자화자찬에 불과하다그것은 뛰어난자를 살아남은자로 정의한다음에 살아남은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으로 동의어 반복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


플라톤적 인간관도 인간평등이라는 이상의 근원이라고 해서 그것이 비극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인간평등이라는 이념은  세상의 크고 작은 전통적 공동체를 파괴해온 이유중의 하나다가족윤리가 파괴되고 지역사회의 질서가 파괴되고 국가적 규모로 문화가 타락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물론 전통적 공동체가  나름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그런 공동체들이 무너진 것에는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공동체는 주거와 교육 그리고 기본적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틀이 되어왔는데 그런 것들이 무너짐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더욱 노예적 수준으로 전락한 면도 있는 것이다식민지의 역사가 그걸  보여준다 우리는 중세의 농노를 불쌍한 노예로 생각하고 조선시대의 머슴을 불쌍한 것으로 생각한다그런 생각에는 틀리지 않은 면도 있지만 만약 타임머쉰이 있어서 그들이 현대로 온다면 현대사회에서 회사에 매여 노동하는 사람들가난에 몰려 힘들게 살고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누가 누구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해  가능성도 있다현대인이 그렇게 된데에는 그들이 파편화 원자화된 것에 적어도 부분적 이유가 있다보편적 평균적 비교는 별로 의미가 없다개개의 경우에서  좋은 것이 어느 쪽인지는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오늘날 소규모 공동체 운동이나 협동조합공유경제들을 통해 공동체를 복원하려고 하는 시도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성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개의 인간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두개의 매우 호소력있는 직관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둘째로  두개의 서로 상반되는 직관을 자기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서로 섞어놓은 것을 가르켜 중용적 관점이나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부르는 것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근원적 진보를 이루고자 한다면  진전을 봐야 하는 것에는 과연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봐야  것인가라는 점이다바로 진보하기 위한 인간론이다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정리가 없다면 사람들은 또다시 위의 두개의 인간론을자기 마음속에 담아두고 '원래 그렇다'라는 식의 안일한 발상으로 토론아닌 토론을 벌이게 될뿐으로 결국 진보한 사회를 만들기위한 연합은 생기지 못하는 것이다독단론적인 수많은 벽들이 너무나 많은 파벌을 만들기 때문이다노동자의 권리여성의 권리동물의 권리외국인의 권리노인의 권리학생의 권리선생의 권리사업가의 권리공무원의 권리소비자의 권리등 수없는 권리에 대해 사람들은 절대의 벽을 세우고 뒤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이론적 수준에서 진보를 위한 가장 근원적 진전은 앞의 두개와는 다르면서도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수 있는 새로운 직관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보다 야심찬 것으로는  상위의 형이상학을 통해서 그런 인간론이 자연스레 도출되게 하는 것을 상상할수 있지만 결국 그것도 다시 호소력있는 직관 혹은 새로운 출발점을 세운다는 문제가 된다


우리는 오늘날 서구 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강대한 과학의 힘을 목격하고 있으므로 비서구권의 인간관은  설득력을 상당부분 상실했지만 앞에서 말한 인간에 대한 직관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그들과 다른 3 인간관을 거론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불교적 인간관에서는 윤회를 말하고 인간이 축생  벌레나 동물로 태어난다고 말해진다이러한 설명은 물론 과학과는 이질적인 것이지만 그러한 설명속에는 인간과 동물인간과 환경과의 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진화론적인 인간관도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앞의 두개의 인간관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교적 인간관은 인간의 평등이 아니라 만물의 평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는 각각 인간은 주로 무의식과 경제적 수단에 의해서 조정당하고 만들어 지는 존재라고 강조했다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의 문제경제적 수단의 문제를 해결할 때만이 만족스러운 삶을 가지게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이런 예는 인간관이 어떤 행동을 낳게 하는가를 보여주고 현대인들의 잘못된 행동의 근원은 우리의 인간관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보를 욕망하는 인간관을 찾아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인간관을 생각해   있을 것인가지금의 나로서는 한정된 삶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관점이 가장 매력이 있다이러한 것을 성장론적 인간관이라고 부르기로 하자이것은 인간의 본질은 세상과 삶을 즐기고 탐험하는데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체험하고 느끼는데서 행복을 느낀다어떤 것도 그것이 습관이 되고 반복이 되어 지루해지면 그것은 감옥이 되고 죽음을 주는 환경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일찌기 화이트헤드는 교육의 목적이란 책에서 인간은 교육의 3단계를 반복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소개의  : http://blog.daum.net/irepublic/7888300) . 그것은 로맨스의 단계세밀화의 단계 그리고 일반화의 단계인데  단계들은 우리가 어떤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그것에 익숙해지고 일반적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다시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해 지루해 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일단 그렇게 되고나면 우리는  지루해진 일상을 넘어서새로운 삶의 방향을찾아서 기존의 삶을 경계를 넘고 3가지의 단계를 반복해 가는 것이다


사랑이나 즐거움이라는 것은 전부가 아니면 대개 신비감이라는 것과 공존하기 마련이다신비감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모르기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인간은특히 식물인간같은 인간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가진 행복한 의식있는 인간은  단순히소비할 수있는 에너지만 있으면 살아갈  있는 것이 아니다어린아이에서 청년 중년 그리고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이런 신비감신선함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만   있는 것이다예를 들어 그것을 위해 인간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하고 그때문에 인간세상에서 여행은  산업으로 변한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 제약조건이나 사회적 관습의 경직화나 강압적 권력때문에 불가능해   인간정신은 괴로워하고 인간은 불행해진다인간은 항상 희망과 어느 정도의 새로움을 계속 느낄 때만이 행복한 삶을 유지할  있다바로 그것이 한정된 삶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앞서 말한 플라톤적 그리고 진화론적 인간관을 비판적으로 생각해   있다내게 있어서 플라톤적 인간관에 불만인 점은 인간을 완성된 존재로 본다는 점이다그것은 정적이다인간은 그냥  자체로 인간이다 우리는 변화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렇기에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에 누구나 필요한 자원분배문제뿐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모두가 아니면 대다수를 사육당하는 돼지처럼 만든다 우리는 그저 평등한 돼지인 것이다


진화론적 인간관은 언뜻 그렇지 않은 것같지만 사실은 그것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우리는 통상 환경은 대개 외적으로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환경이 그대로 일때  안에서 최적화된 존재는 궁극적으로 진화를 멈추고 고정된다진화론적 인간관은 그래서 인간을 동물의 맨위에 놓을  인간이 초인간으로 진화해 갈것이며 지금의 인간은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쓰이는 일은 별로 없다 주어진 환경에 대한 최선의 답은 이미 인간으로서 도출된 상태다물질적 축적과 진보가 발전과새로움의 착각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 진보라는 측면으로 시야는 어느새 제한되곤 한다


게다가 진화론적 인간관은 수동적이다 우리의 선택이라는 개념이  보이질 않는다우리는 그저 어떤 닫힌 계안에서 무작위적인 운동의 결과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같다그래서 사실 진화적 인간관도 현실적으로는 인간을 그저 먹는 돼지로 고정화 시키는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의 취향에 따른 선택과 성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맞는 세상으로 나아갈  있는  아닐까.  인간은 미래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선택하고 하나의 작은 세계에서   세계로 도약한다가장 어리석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가수가 되거나프로야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함으로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변할  있다.   입시생의 세계에서 그는 패배자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모색해서 자신을 찾을  있다


성장론적 인간관의 관점에서 현인간사회가 가지는 문제는 한마디로 재미없다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인간을 고정시키고 뭐하나 재미있고 흥미있는 것이 없게 만들고 따라서 불행하게 만든다아이들은 태어나자 마자엘리트코스로 가는 좁은 길위에 올려지는데 이때문에 삶은 아주 일찍 부터 예측가능한 길만을 달린다그것은우리를 불행한 노예나 의식없는 식물인간이 되게 만드는 길이다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노인이 된다우리는 한마디로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살아야  필요가 있다단순히 배부른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성장론적 인간관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세상은 서로의 발전을 돕고 세상따라서 인간사회를 흥미있고 신비감있는 곳으로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다그것은 객관적 조건의 개발도 의미하지만  이상으로 개개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체험의 한계를 높여서 삶의 새로운 영역을 넓혀간다는 의미도 있다예를 들어  세상이 그대로라도 당신이 기타연주를 하고 춤을 추고 소설을   있는 세상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세상은 다르게 체험되기 때문이다세상의 의미는 우리가 우리의 내부에 가진 기억과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 따라 다르게 체험된다


성장론적인 인간관은 모든 인간이 다르다는 것을  시작부터 인정한다모두가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러기 때문에  관점에서 사회의 중요한 측면은 그런 여러가지 성장단계에 있는 사람들여러가지로 다른 체험으로 다르게 성장한 인간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있는가 하는 점이  것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면 이런 성장론적 인간관은 참으로 깊게 망각되어져 있다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말하는 일이 많으며 교육도 취업이라는 주제에 관련되어서만 말해진다교육의 일차목표가 자아실현과 인간적 성장이라는 말은 얼마나 깊게 망각되어진 말인가지금 우리 사회의 목표는 당연히 부자되는 것이다부자=행복한 사람이라는 등식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은 있어도 그걸 꺼집어  분위기가 아니다그럼 너는 돈이 싫다는 말이냐  위선자라는 말이 날아올 것같다심지어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대부분이 어떻게 물질적 자원을 배분할 것인가만 생각하는 것같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부족한 것은 오직 물질이다라는 가정이 머리속깊이 새겨져 있다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을 돕는 것같은 정당을 지지하는가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답은 간단하다한마디로 말해 그들이 재미없기 때문이다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로가 누군가를 문화적으로 소외시킨다는 자각도 별로 없다이런 저런 마을만들기나 협동조합이나 소규모공동체 운동을 조직하지만 거기에도 뜻과 가치는 실종되고  많이 먹고 소비하는 미래를 위한 연합이 되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은 것같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즐겁게 살고 신선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 세상이  작게 말하면 한국 사회가  신나고 재미있는 곳이 되어 주었으면 싶다따분하고 대화도 안되는 사람들은 언론이나 권력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정서가 메말라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따위는 잃어버린 사람들은 구해야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의견일 뿐이다인간이란 뭘하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하지만 우리는 어떤 답을 선택해야 한다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가 우리대신에 선택할 것이다그리고 우리는 그에 맞춰 살게 될것이다그것이 우리의 인간관에 대한 고민이 잊혀져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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