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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인재를 뽑고 있을까?

by 격암(강국진) 2015. 11. 13.

수학능력입시시험이 끝났다. 입시철이니 한국은 입시에 온통 주목하고 있지만 나는 우리가 정직하게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우리가 정말 인재를 뽑고 있을까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직히 말해 얼마나 인재란 것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하는 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행동을 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몇가지를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우선 결과론적인 인재평가를 생각해 보자. 어느 대학이 학생들을 어떤 특정한 선발기준으로 뽑았다고 하자.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크게 오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많이 배출했다. 그렇다면 이 대학의 입학선발기준은 진정한 인재를 뽑는 기준일까? 


그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 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대학에서 재벌3세면 무조건 입학시켜 준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재벌3세들이 취업을 못할까? 그 대학은 노골적으로 재벌3세를 뽑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 재산세가 얼마 이상이라던가 외국에서 아주 비싼 어떤 경험을 한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는 식으로 기준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해외 어학연수 경험이 대학입학에 필수라고 말하거나 등록금이 말도안되게 비싸다고 말하면 상당수 가난한 사람들이 대학입시에서 진작에 밀려나게 된다. 


나는 지난 세월동안 날로 복잡해져만 가는 입시 요강과 비싸져만 가는 등록금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자집 아이들만을 대학에 뽑기 위해 계속 다른 핑게를 만들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모르겠다. 설마 대학이 그렇게 저질적인 생각을 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온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해서 변한 시스템은 다시 결과론적으로 평가하면 성공한 변화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멈춰서서 다시 질문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말 인재를 뽑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거듭 제기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만약 우리가 인재를 뽑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합리화하고 변명하지만 우리가 인재를 버리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인재를 뽑는다고 믿지 못한다고 해보자.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사람은 종종 자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언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모른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모른다. 나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요즘은 박사학위를 위해서 유학갈 필요없다고 말하던 교수를 기억한다. 그 교수는 스스로도 자기가 한 말이 옳다고 믿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교수가 자기 아들에게 미국으로 유학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지 우리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실은 이익 계산이 달라지는 그때의 판단이 진짜 자기의 믿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변명으로 현재의 대학입시를 합리화하건 마음 깊은 속에서는 사실 우리는 인재를 뽑고 있지 않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건 행동으로 표면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대학의 몰락을 가져 올 것이다. 기업은 결국 한국대학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외국에서 외국 입시를 통해 자기 재능을 검증받는 것이 진짜라고 믿게 될 것이다. 실은 한국의 대학입시가 편파적 로또복권 같은거라고 마음속에서 생각한다면 말이다. 


10년이 지나면 많은 것이 바뀔 때가 있다. 10년전에는 그런 미래는 상상도 할 수 없는데 10년이 지나면 그냥 상식이 되는 때가 있다. 10년후 한국의 최고 대학졸업생의 가치가 외국의 2-3류대학의 가치보다 못하게 평가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없을까?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한국대학에 안가는 시대가 오면 그때가서 서울대나 연고대의 논문실적이 몇편이니 하는 소리로 한국 대학을 구할 수 있을까? 외국인 학생과 외국인 박사후연구원들로? 한국이 그렇게 부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한들 그게 옳은 길일까? 다시 10년이 지나고 나면 어떨까?


조선 말엽에 김구같은 분은 지금의 입시라고 할 과거시험에 뜻이 있었지만 그 부패와 타락상을 목격하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할 때 언제나 나타나는 것은 기득권층이 자기 자식들로 좋은 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풍경이었다. 조선이 망할 때뿐만 아니라 고려가 망할 때도 그랬지 않았던가? 우리가 인재를 뽑고 있지 않다면, 안그래도 작은 나라라서 그렇게 많지도 않을 인재를 버리고 있다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핵심적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떤 사람은 말할 지 모른다. 당신은 인재가 뭔지 아냐고, 당신은 인재를 뽑을 수 있냐고, 옛날 방식으로 학력고사 하나로 대학입시를 결정하는 간단한 시스템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아주 좋은 질문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우선 이렇게 답할것이다. 인재가 뭔지 잘 모르겠으면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차라리 좋다. 언제나 문제의 시작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자기가 다 안다고 나서면서 생긴다. 우리는 인재가 뭔지 잘 모른다. 전에도 잘 몰랐지만 요즘은 더더욱 잘 모른다. 지식의 세계가 너무 넓어진 것이 하나의 이유다. 오래전에는 대학생이면 이미 독립적 지식인이었다. 요즘은 아직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뭘 할지 알아야 인재인지 아닌지 알 거 아닌가. 


잘 모를때는 차라리 그 기준이 간단한 쪽이 복잡한 쪽보다 좋다. 지금 시대에 4서 3경으로 인재를 뽑느다는 것은 좋은 기준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룰이라면 차라리 그쪽이 인재가 통과하기 쉽다. 지금처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이 벌어지면 그 개인의 힘이 아니라 주변이 얼마나 도와주는가로 승패가 갈리기가 더 쉽다. 요즘 세상에 지능지수가 떨어지는 가난한 부모를 만나 아이가 혼자서 입시를 준비한다고 해보자. 그 아이는 과연 입시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왜 수능시험은 계속 쉽게만 내서 변별력을 떨어뜨리고 온갖 다른 기준을 더 도입할까?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면 인재가 거기를 더 통과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잘 모를 때는 더 강력하게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쪽이 좋을지 모른다. 우리가 정말 인재가 뭔지 모르겠다면 애초에 한국에서 대학서열이라는 것을 전부 폐지해 버리는 것이 옳다. 인재가 뭔지 모른다면서 뭐가 인서울이고 뭐가 명문대인가. 그냥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본적인 학력수준을 넘어서면 그냥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이나 집주변의 대학에 가서 수강하고 일정이상의 학점을 받으면 대학졸업학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명문고 없었졌듯이 명문대도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인재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면 진작에 이렇게 해야 할일이다. 모르면서 사람을 뽑아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좌절하게 될 것인가.  


인재를 고르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나는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들 교수와 정치인들이 조금 더 솔직해 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모르면서 아는 척해서는 안된다. 아는 척을 하다보면 자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말을 만든다. 그리고는 자기가 자기에게 설득되게 된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세상을 그렇게 돌아가게 만들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학생들은 마음고생이 심하다. 전보다 더 심하다. 초등학생때부터 괴롭힘을 당하니까. 그러나 그들의 학력은 결코 옛날보다 높지 않다. 어떤 것은 분명히 전보다도 밑이다. 훨씬 더 많은 사교육비를 들이고 훨씬 더 많은 공부시간을 공부했는데도 그렇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입시요강의 변화에 따라 춤을 춘다. 한문제 틀린 것때문에 대학이 바뀐다. 한문제틀리면 1등급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일이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가 다 안다고 하는데서 시작되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정말 인재를 뽑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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