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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5. 11. 15.

15.11.15

조지 오웰의 1984를 다시 읽었다. 뉴욕타임즈가 뽑은 꼭 읽어야할 책 백선에도 들어있는 이 책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미래 소설중의 하나다. 

 

 

1903년에 벵갈에서 태어나고 이튼에서 교육받은 에릭 블레어는 1948년에 이 책을 썼다. 조지 오웰은 그의 필명이다. 그는 일찌기 1922년부터 6년간 버마에서 제국경찰로 일한 적이 있었으나 제국주의에 봉사하기 싫어서 그 일을 그만두고 팔리지 않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후 조지 오웰은 작가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1935년에 이를 때까지 개인교사나 접시닦이등의 직업을 가지며 생활 한다. 20세기의 전반부를 말하면서 두개의 세계대전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그 시대를 살았으며 이것은 그가 소설속에서 그리고 있는 끝나지 않는 전쟁, 그저 자원을 소모해서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전쟁을 연상시킨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기도 했었으며 이 소설을 쓴 2년뒤 런던에서 폐병으로 사망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절대적인 전체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사회의 중간 관리자다. 이 사회는 과거를 조작하고 언어를 조작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체제를 사랑하게 만든다. 그리고 하층민인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고 단언되기도 한다. 윈스턴은 이 사회내에서 내적인 불만을 가진 작은 지식인이다. 즉 그는 이 사회에 여러가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항하지만 그 저항은 일상의 작은 부분에 머문다. 그는 금지된 생각들을 하고 그것들을 옛날 노트에 기록하며 금지된 애정행각을 한다. 그러면서 현 사회보다는 자신이 더 도덕적으로 우수하다는 생각을 유지한다. 

 

그러나 윈스턴은 좌절한 지식인이다. 그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혁명의 동력이 되어야할 하층민은 끝없이 어리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보다 그와 같이 일하는 중간층의 사람들에게 더욱 절망해 있어서 그들은 결코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윈스턴은 금지된 애정행각속에서 탈출구를 찾지만 결국 사상경찰에게 붙들려서 고문당하고 세뇌당한다. 그가 드디어 완벽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고 당의 상징적 지도자인 대형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 윈스턴은 기다리던 죽음을 얻는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가진 정신적 일관성의 부족을 목격하고 괴로워 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화려한 말로 자기 자신을 묘사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 뿐이다. 즉 증거나 원칙따위야 아무래도 좋으니 우리는 권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속인다. 그리고 속이는 행위까지 정당화한다. 어느새 그 사회에 세뇌된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일관성의 부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것을 아직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소설속의 주인공인 윈스턴을 포함하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외롭다. 그들은 서로를 알 수 없게 흩어져 있다. 소설은 윈스턴이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완벽히 버리고 대형으로 상징되는 당에 정신적으로 굴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014년의 현재를 돌아보면 소설의 제목인 1984년도 이제는 벌써 30년전에 지나갔다. 적어도 많은 한국인들은 소설속에서 그리고 있는 세상보다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으며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하는 독재정권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여전히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소설 속의 윈스턴은 탈출할 수 없는 현실에 갇혀 있다. 만약 그가 자유로이 다른 곳에 가서 살 수 있고 그곳에 대형따위는 있지 않다면 그는 고통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독재정권이 없다는 오늘날 우리는 그럼 과연 자유로운가? 우리는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그리고 무지는 힘이라는 당의 세가지 슬로건은 이제 무의미한 헛소리가 되었는가?

 

나는 1984년을 문화적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고 그때 우리는 자유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맥에서는 21세기에도 윈스턴과 대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나는 자유롭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사는 일에는 항상 형식과 금기와 관례가 있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주류문화가 있고 그에 공감하지 않는 소수자의 문화가 있다. 그리고 주류문화는 소수자 문화를 종종 위협으로 판단하여 이를 억누르려고 한다. 

 

주류문화는 소수자 문화를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박해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에서 당의 대표자인 오브라이언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박해받는 사람을 순교자로 만들어서 소수자 문화를 더욱 번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류문화가 끝없이 시도하는 것은 소수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으로 인식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예쁜 외모나 두툼한 봉급이나 명성을 포기할 때 그것이 다른 가치로의 전환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실패와 도주로 인식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류문화의 추종자들은 소수자 문화의 추종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광신도라던가 무슨 빠라던가 빨갱이같은 말을 붙여야 한다. 그들은 끝없이 그들을 귀찮게하면서도 동시에 무시하는 모순적 태도를 취한다. 그들을 조롱하고 모욕한다. 그들이 실패자라고 말한다. 그들은 실패한 사람들이어야만 하고 어딘가 뒤틀린 불행한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주류 문화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행복한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반면에 소수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주류문화를 볼 때 주로 권력에 대한 욕망만을 느낀다.  그 안에서 이론적 파탄과 일관성의 부족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 문화를 가진 사람은 주류문화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느 학원이 쪽집게 학원인가라는 잡담이나 출세나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벌어질 때 그것에 완벽히 몰입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수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주류문화의 사람들이 모순적인 행동을 한다고 느낀다. 그들이 인간이라면 그런 상태를 행복하게 느낄 리가 없다. 실제로 가끔은 그런 불행의 현장을 목격한다. 그것은 윈스턴이 당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는 증거를 손에 넣었던 순간과 비슷하다. 당신들은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들이야 말로 행복할 리가 없다. 당신들은 그저 정신을 조작당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에서 보자면 실제로 가장 극명한 실패의 순간에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수긍한다. 도박에 빠진 인간도 가장 큰 돈을 날린 저녁에는 자신의 삶이 계속 끔찍했으며 내가 애초에 왜 도박을 시작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우울이 극복되는 다음날이면 도박중독자들은 삶이란 곧 도박이며 그런 즐거움이 없으면 사는 건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그들은 도박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도박없는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도박하지 않는 인간은 쩨쩨하고 인생의 참 맛을 모르고 용기없는 인간들이다. 

 

주류문화의 파탄과 자기세뇌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우울하고 병들고 자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고통에 눈을 감는 것은 소설속의 표현으로 이중사고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것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탈출구는 없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도박중독자가 도박을 사랑하고 1984의 세계에서 대형이 사랑받듯이 우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의 대상은 출세나 돈이나 명성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고 집착하고 있는 자식일 수도 있다. 물론 권력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다. 체면일수도 있다. 허영일수도 있다. 엉터리 같은 배우자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에 많다. 인간이나 사회나 대중에 대한 어떤 가상의 관념을 만들어 내고 그것때문에 괴롭게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뭏튼 소수자 문화를 가진 사람은 주류문화의 압박속에서 윈스턴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세상 어디를 가나 그를 감시하고 그를 특별한 인간처럼 보는 눈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든 아니면 상상한 것이든 그런 사람들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압살하려고 하는 빅브라더의 존재를 생생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패러다임은 외부와의 긴장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고 여러가지 금기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서 예속된 것을 느끼지 못하게 즉 본인이 자유롭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내적인 일관성의 부족으로 생기는 파탄에 대해 눈이 멀게 한다. 그러므로 이런 문맥에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그리고 무지는 힘이라는 당의 삼대강령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진 표현으로 남아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대개 본인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여러가지 의무에 억눌리고 매여서 사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세금을 내고 아이들의 교육비를 벌기위해서 밤이고 낮이고 일하며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사람은 자유로운가? 윈스턴이 갖혀 있던 탈출할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그는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부자유한가? 자유롭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안이 있어도 그것은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중요한 문제다. 만약 여러가지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내가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면 현실이 아무리 힘든 것이라고 해도 나는 자유롭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본인은 지금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한 대안은 없으며 삶은 그저 이런 것이라고 체념해 버릴 때 그것은 자유로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란 문화적 경계에 서서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자유란 객관적 상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문제다. 새로운 것을 보려는 노력을 중지할 때, 우리가 작은 일상에 빠져들어 그것에 중독될때 문화적 패러다임은 우리의 눈을 멀게하고 우리를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 나는 그걸 코가 꿰인다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데 코가 꿰이고 나면 대형이 지배하는 사회의 소시민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대형이 지배하는 사회의 시민이 되어도 행복하기만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소설은 윈스턴 같은 사람이 되면 끔찍한 일을 겪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같다. 하지만 대개 시야가 좁아지면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대우를 해주던 말던, 봉급을 주던 말던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봉급도 못받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외로운 윈스턴이 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비극적인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를 지키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조지 오웰은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극빈을 벗어나게 되면 정신적 자각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간관리층 혹은 지식인계층조차 대형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류문화를 포용력이 있고 폭이 넓은 시야를 가진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일상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아야 한다. 때로 터무니 없는 꿈을 꿔야 한다. 예를 들어 화성에 여행을 가는 꿈을 꾸는 것이 우리를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아있게 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우리를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아있게 한다. 직접 뭔가를 만드는 것도 그럴 것이다. 돈이나 출세나 명성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순수히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것들이 우리를 대형에게서 구원한다.

 

소설은 윈스턴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난다. 실제로 삶은 어떤 선택을 하건 항상 도전이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윈스턴은 그래도 행복하다. 깊숙히 주저앉아버리고 일상에 빠져들어 대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결국 행복에서 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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