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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고전 읽기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읽고

by 격암(강국진) 2015. 7. 4.

15.7.4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읽고

 

어느 책이든 우리가 그것에 대해 던지는 첫번째 질문은 우리는 왜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달과 6펜스는 모옴의 소설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왠만한 사람은 어린 시절에 읽어봤을법하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때 나는 깊은 혼란을 느꼈다. 나는 나의 흥분이 한 천재에 대한 동경심에 대한 것인지 혹은 무의미한 도덕적 파괴에 대한 것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사실 어느 것도 그다지 내놓고 찬양할 만한 것은 되지 못하였으므로 책은 그저 나를 스처 지나갔을 뿐이다. 많은 책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좀 다르게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달과 6펜스는 영국작가 서머셋 모옴이 1919년에 발표한 소설로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의 삶을 소재로 해서 쓰여진 작품이다. 소설은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화가의 삶을 시작하고 파리생활과 타히티 생활을 거친 끝에 죽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소설전체에는 상식적 삶에 대한 의문과 위화감이 가득하다. 우리는 대부분 상식적으로 자라서 상식적으로 살고 있다. 상식적인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상식적인 권리를 찾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 상식적인 삶을 부정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는 보이질 않는다.

 

소설속에서 관찰자이자 이야기를 하는 존재로 나오는 나는 주인공 스트릭랜드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동시에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는 스트릭랜드의 무책임함에 역겨움을 느낀다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그에게 보내는 흥미를 중단하지 않으며 스트릭랜드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 대한 은근한 반감을 느낀다. 그들의 삶은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지나치게 깊이가 없어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무책임하게 가정을 빠져나간 스트릭랜드를 비난하고 버려진 그의 아내를 동정하지만 완벽한 아내역할을 하는 그녀의 행동에서 한편으로 경멸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헌신적인 아내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순수하고 무조건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주변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주는 것을 그만둔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과 동시에 그렇게 상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역겨워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나 가정이나 정의같은 것은 연극배우가 말하는 대사처럼 가식적인 것에 불과하며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타인들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존재이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그런데 자신도 세상에 대한 부정은 했을 망정 아직 진리나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미에 도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는 어떤 목표가 있다기 보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고 있었을 뿐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을 나의 방식대로 살뿐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그 자신의 고통이나 죽음에도 그다지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스트릭랜드와 비교되는 인물중 가장 상식적인 인간으로서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스트릭랜드에게 계속해서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의 재능을 찬미하고 심지어는 가정까지 빼앗기고 마는 스트로브다. 아주 상식적인 그림만 그리는 그는 자신의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의 아내는 적어도 어느 정도 부채의식때문에 성실한 아내로 산다. 그녀가 최악의 상황에 있을때 스트로브는 그녀를 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일단 그녀가 스트릭랜드에게 동화되자 급변한다. 그녀는 마치 남편에게 착취당하고 있던 것처럼 자신의 남편에게 매몰차게 대하며 스트로브는 이런 꼴을 당하고 나서도 스트릭랜드와 아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마도 스트릭랜도도 모든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것을 스트로브의 아내와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뭐라 어디를 꼭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직관적으로 그 모든 정상적이고 친절한 것들이 그를 착취하고 괴롭혀 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의 대비에 있어서 누가 옳은가라던가 누가 정의인가라는 방식으로 질문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각자가 옳다. 문제의 시작은 스트릭랜드가 모든 사람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먼저 봤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여기 어떤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유치원생처럼 말하고 유치원생처럼 입고 유치원생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그중의 어느 누가 우리는 더이상 유치원생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그에게 주변 사람들의 놀이나 행동은 유치한 것이 될 것이다. 유치한 게임에서 누가 이기는가,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는가 하는 것은 모두 무의미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20세기의 시작은 바로 현대의 시작이었다. 사진기가 등장하고 전통적 의미에서의 화가는 그 존재의미를 잃기 시작한다. 따라서 회화는 변하고 아름다움이 뭔가는 다시 정의되려고 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고 라디오가 보편화되는 시대에 귀족과 대중의 차이가 한없이 줄어드는 시대에 상식적인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는 다시 질문되어져야만 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19세기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 변화의 속력이 빨라진 오늘날에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비슷한 것을 우리는 느낀다. 그것은 바로 상투적이고 상식적이고 고정된 것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일단 어떤 것이 형식적이 되고 말았다고 느끼면 괴로워하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스트로브처럼 과거의 것에 붙어서 떨어지지 못한다. 그때문에 생겨나는 모든 모욕과 좌절을 감내한다. 그러나 때로는 스티릭랜드처럼 우리는 모든 상투적인 것에 침을 뱉는다.

 

소설은 스트릭랜드의 삶이 매우 기괴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끝이 난다. 다만 서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계몽적이다. 즉 어떤 새로운 진리,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려는 열망을 보여준다.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와 공존하지 못한다. 더 큰 진리는 더 작은 진리위에 군림하고 천재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치자면 더더 큰 것을 본 사람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멸당해야 할 것이다. 경멸당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때로 스트릭랜드처럼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하나의 사업을 위해, 하나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저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실망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스트릭랜드처럼 외로운 섬에서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두려워 한다. 더 두려운 것은 그런 댓가를 치뤘는데도 개인적으로건 사회적으로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둘러싼 정상적인 것들의 족쇄를 끊어내기 위해서 싸우고 때로는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더 천천히 그의 코를 꿰고 있는 줄을 풀고 남과 같아지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서 스트로브 같은 사람들과 공존하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스트릭랜드 같은 사람도 스트로브같은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죽고 만다.

 

모옴은 스트릭랜드가 결국 먼 야생의 섬에 가서야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 부분은 설득력이 약하다. 알 수 없으니까. 타히티 섬의 야생녀는 순수하고 무조건적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보다 바람직한 것은 세상에 숨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다르면서도 섞여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태평양한가운데의 야생섬이나 지구바깥의 별이 아니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때때로 정상적인 것들과 부딪히고 존경할만한 것이 되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옳을 것이다. 이따금씩 화가 폭팔하고 주변과 불화가 생기는 것은 이런 의미로 아주 정상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하지 못할 때 아무 용기도 내지 못하고 아무 비약도 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스트로브의 그것으로 추락한다. 서머셋 모옴은 이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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