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식 인테리어 쇼핑/음식과 가구,

커피 이야기2. 커피만들기와 인생

by 격암(강국진) 2016. 6. 6.

세상에 커피는 워낙 종류가 많다. 원두를 파는 곳에 가면 커피 산지에 따라 종류도 워낙 많다. 게다가 커피를 보관하고 로스팅하는 방식에따라 혹은 커피를 만드는 도구나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지니까 나는 커피의 맛이라는 것을 진짜로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의문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냥 특정한 원두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든 커피만 아는거 아닐까 싶은 것이다. 


커피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까 내가 커피에 대해서 뭘 좀 아는가 싶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커피의 초보중의 초보다. 젊었을 때부터 계속 마시기는 했는데 내 스타일이 세상에서 말하는 전문가가 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그 스타일이란게 한마디로 말하면 둔하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것이다. 나는 단순히 커피를 약간 즐길 뿐이고 오늘은 커피가 어떤 맛일까 궁금해 하는 것을 매일의 작은 기쁨으로 여길 뿐이다. 


아마 이런 저런 커피들을 죽 섭렵하면서 커피에 대한 지식을 따로 공부하고 외우는 식으로 배운다면 몇달이면 커피에 대해 아는 척하고 다니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니 일주일만 배워도 맛있는 커피 만드는 법 레시피 몇개 정도야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공부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보면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다만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완전히 반대의 관점도 존재한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뛰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산책을 즐기듯이 천천히 길 자체를 아끼고 즐기면서 전진하는 것이다. 남의 안내서만 보면서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길을 보는 것이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질릴 때까지 앉았다가 가고 말이다. 결국 즐기는 것이 핵심 아니겠는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면 종종 사람들은 그 사람이 커피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이 커피믹스만을 마신다고 하자. 그 사람이 몇개인가의 커피 믹스 회사 브랜드 중에서 맛있는 브랜드를 고르고 적당한 커피물의 양과 온도를 맞춰서 적당한 컵에 담아 적당한 때에 맛있게 커피를 마신다면 그 사람도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다. 아니 그저 아무 생각없이 식후 마다 달달한 커피 믹스 한잔을 마시는 사람도 분명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예가체프 커피니 루왁커피니 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반면에 어떤 사람이 수없이 많은 종류의 커피들을 수많은 방식으로 이리저리 바꿔서 마셔보느라고 정말 만족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때는 극히 드물고 언제나 실망만 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커피의 맛에 대해 아무리 줄줄이 늘어 놓을 수 있다고 해도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결국 커피를 즐긴다는 것이 핵심 아니겠는가. 


여기에는 커피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과 탐험을 하는 것의 균형이다. 커피믹스건 캡슐커피건 어떤 커피를 맛보았더니 그것이 맛있더라고 하면 그걸로 만족하고 그 커피를 계속 마시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이고 커피를 단순히 즐기는 것이다. 남들이 뭘 마시고 있건 기본적으로 내가 마시는 커피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반면에 탐험을 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커피들을 시도해서 그 새로움을 즐기는 동시에 지금 즐기고 있는 것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커피를 찾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그 둘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고 모두 단점이 있다. 지금 여기를 즐기는 것에 너무 집중해 버리면 우리는 수없이 존재하는 새로운 맛들을 시도해 보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은 아까운 일이다. 그러나 탐험에만 집중해 버리면 이런 저런 보석같은 맛을 찾아도 우리는 그것들을 즐길 수가 없다. 다시 새로운 맛을 찾아떠나기 위해 그걸 즐길 시간도 없고 때로는 기껏 찾아낸 맛있는 커피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또 하루에 커피를 이거저것 열잔 마실 때와 딱 한잔 마실 때 한 잔의 커피가 같은 맛을 줄 리가 없다.  탐험한다는 행위자체가 커피를 즐기는 것을 방해한다. 


새로운 것을 찾아 탐험을 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는 다 알았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뭔가를 진짜로 다 안다는 것은 적어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는 참으로 쉽지 않다. 매일 매일 다른 커피를 만드는 것과 한 잔의 똑같은 커피를 정성스럽게 만들 때 그 맛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빨리 우리가 뭔가를 이제는 알았다고 생각해 버리는 일이 많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커피라면 그저 믹스커피였다. 우리 형님도 믹스커피를 드립커피나 아메리카노보다 더 좋아하신다. 그런데 가끔 만나서 믹스커피를 내가 타가지고 가면 잔소리가 터져나오기 일수다. 너무 물을 많이 부어서 맛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진한 맛을 싫어해서 형님이 타는 믹스커피는 너무 진하다고 생각하지만 취향의 차이 이전에 믹스커피를 맛있게 타는데 있어서 내가 무능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믹스커피를 타는 것에도 기술이 있고 도가 있으며 주장이 있다. 예를 들어 검색해보니 믹스커피를 만드는 물의 정량은 100ml 소주 두잔분량이라는 주장이 있다. 믹스 커피를 넣는 것도 끓는 물에 믹스커피를 넣는 것과 믹스커피를 먼저 붓고 물을 넣는 것이 맛이 다르다고 한다. 이걸 쓰면서 혹시 싶어서 찾아봤는데 라면에는 제조법이 봉지에 써있지만 우리 집의 믹스커피 봉지에는 커피 만드는 법 따위는 써있지 않았다. 믹스커피도 잘타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익숙해지고 배우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직업적으로 커피를 타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신이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위해 몇 잔의 커피를 타는 사람이라면 맛있는 믹스커피를 타는 것에도 시간이 걸린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에게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한다. 그걸 따라하면 믹스커피타는 것쯤이야 금방 맛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혼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한 남에게 배우기만 한 사람의 커피는 진짜로 맛있고 가치있기 어렵다. 왜냐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성공한 방법을 배워서 그대로 따라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끝에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에 도달한 게 아니라 그냥 이러저러한 재료를 이러저러하게 다루면 이러저러한 맛이 나온다고 배웠을 뿐이다. 그러므로 약간 재료가 달라지고 약간 도구가 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 그런 걸 알려면 반드시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 


커피만들기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만들면 커피가 이런 식으로 맛없어지는구나하고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성공한 레시피 하나를 배우는 것은 금방이지만 실패를 통해 뭐가 안되는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실패를 통해 감이니 손맛이니 하는 것이 만들어 진다. 왜 어머니는 대충대충 적당히 섞고 볶았는데도 내가 하면 안된다는 그 손맛 말이다.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해본 사람은 경험에 의해 그리고 타고난 감에 의해 손 맛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지만 타고난 재능도 없고 실패의 경험도 없는 사람은 그게 없다. 그리고 그게 없으면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데 한계가 커진다.  그러니 설사 카페직원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도 커피에 대한 애정없이 날마다 메뉴얼대로 커피를 만들고 있을 뿐이라면 그 커피가 꼭 맛있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초라한 나만의 커피를 만들 것이다. 그 커피는 대단한 커피는 아니지만 그래도 몇몇사람들이 성의없이 만드는 커피들보다는 내 맘에 든다. 약간 커피만드는 것을 바꿨더니 커피맛이 달라지더라던가 오늘은 별 이유없이 커피맛이 좋다던가하면 기분이 좋고 재미가 있다. 내가 커피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런 작은 기쁨이다. 언젠가는 나도 굉장한 커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경지에 서둘러 갈 필요도 없다. 탐험 자체가 기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커피 만들기는 말도 안되게 복잡하지만 그래도 인생에 비하면 간단하다. 그리고 세상의 일들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오히려 인생에 대해 더 잘 가르쳐 주는 때가 있다. 왜냐면 인생이란 복잡하고 길어서 그것을 꽤뚫어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보다 더 간단한 것에서는 문제가 무엇인지가 보다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고 일단 간단한 것에서 어떤 문제를 보게 되면 우리는 인생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게 한문이나 영어단어시험보듯이 주어진 시험범위를 달달 외우면 성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전거 타듯이 말로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고 자기가 몸으로 익혀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많은 걸 해보는 게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남들보기에 단조로운 삶이어도 스스로가 많이 즐기고 만족했던 것이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빨리 빨리 인생의 정답들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 하나 실패해 가면서 나만의 정답들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음식을 만드는데 있어서 손맛이 있듯이 인생에 있어서도 남과 차이를 만들어 내는 감이 있으며 그 감이 결국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거 아닐까? 거의 똑같은 커피지만 매일 매일 한 두잔의 커피를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이 기쁨이 되듯이 우리는 매일 매일 작은 차이를 만들고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어찌보면 답하기 쉬운 질문인 것같지만 인생이란 워낙에 복잡하고 이런 저런 운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라 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답은 둘째치고 애초에 이런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그냥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적어도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을 잊지는 않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특별한 답이 없어도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매일 매일의 생활과 선택에서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