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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4 : 캡슐커피의 추억

by 격암(강국진) 2016. 6. 9.

추억이라고 하니까 지금은 캡슐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같지만 지금도 나는 캡슐커피를 자주 마신다. 다만 요즘은 그냥 마시는 일은 별로 없고 카페라테나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먹을 때 주로 쓴다. 그래도 캡슐커피는 나에게 있어 아주 고마운 커피였다. 나에게 집에서도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둔해서 일까 나는 집에서는 믹스커피를 먹는 일이 많았다. 그게 아니면 냉동건조커피를 블랙으로 타서 먹었다. 한번인가는 커피 메이커를 사 본적도 있는 것같은데 그때는 그냥 번잡하고 별 맛도 없고 해서 포기하고 말았던 것같다. 그런데 일본에서 살기 시작하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의 일이었다. 일하던 연구실의 교수에게 자기 별장에 놀러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초대를 받아서 가보니 그 집에 바로 문제의 캡슐커피 기계가 있었다. 


요즘에는 캡슐커피가 아주 보편화되어서 별게 아니다. 게다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캡슐커피 기계가 있으니 사방에서 기계가 자주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그런 기계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사실 캡슐커피는 1970년대부터 있으면서 레스토랑이나 호텔등에 판매되었지만 1988년에 가정용 캡슐커피가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고 한다.  


예쁘게 생긴 기계에 깔끔한 캡슐을 하나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맛있는 커피가 한 잔 나온다. 나는 확 끌리고 말았다. 나는 그래 이제 나도 집에서 좀 더 고급커피를 먹어보는거야 하고 다짐했다. 아내도 왠지 그 기계를 보더니 매우 탐을 내는 눈치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우리 부부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매지믹스(magimix)에서 만든  네스프레소 머쉰을 중고로 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생각이었지만 오래 오래 한국에 가서도 쓰겠다고 110볼트를 쓰는 일본에서 굳이 220볼트 기계를 찾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 현재 이 기계는 110볼트 변압기의 윗칸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른 기계때문에 변압기가 있는 집에 살게 될 줄은 모른 것이다. 



이윽고 기계가 도착하고 나는 서둘러 캡슐을 기계에 넣고 멋지게 커피를 뽑았다. 뭐 그래봐야 물붓고 스위치 누른 것밖에 없기는 하다. 머그잔에 찰랑거리게 커피를 뽑고 나니 커피 위에 먹음직스런 크리마가 가득하다. 오 이런 감동이! 내 입맛이 바뀐 것인지 요즘은 뭐 그냥 그렇지만 그래도 그때는 왠지 최고로 맛있는 커피로 느껴졌다. 우리 부부는 아침 저녁으로 캡슐커피 뽑아 먹는데 열중했다. 한국에 계신 커피좋아하는 장모님에게 선물로 네스프레소 머신과 내가 써보지도 못한 카푸치노 거품기를 보내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장모님도 캡슐커피에 빠졌다고 들었다. 


그렇게 뽑아 먹다보니 캡슐커피를 뽑는 것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물의 양이다. 요즘 기계들은 원터치로 에스프레소를 뽑고 자동으로 물이 멈추게도 되어 있지만 이녀석은 옛날 기계라서인지 내가 언제 멈출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서 인지 커피도 큰 잔을 선호하는 나는 처음 한동안은 캡슐 하나넣고 큰 머그잔이 찰 때까지 커피를 뽑았다. 


사실 네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 머쉰인데 나는 에스프레소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쓰다. 그리고 양이 적으니까 목과 입을 채우는 느낌이 없다. 입술을 적시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캡슐 하나의 커피에 물을 더해서 머그잔 하나 가득 커피를 만든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내가 기계를 안 멈춘 채 머그잔이 찰때까지 커피를 뽑았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커피를 우려낸다고 했던 짓이지만 사실 이렇게 하면 커피맛이 점점 더 안 좋아 진다. 계속 커피를 뽑을 때 내 커피잔에 어떤 커피가 더해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맛을 보면 된다. 네스프레소로 100ml정도 커피를 뽑은 다음에 잔을 바꾸고 커피를 좀 더 많이 뽑아 보라. 그리고 나서 뽑혀진 커피 맛을 보면 욕나오는 맛이 난다. 


그러니까 사실 커피는 조금만 뽑은 다음에 거기에 따로 뜨거운 물을 더하는 것이 훨씬 훌룡하다. 쓸데없는 구정물같은 것을 커피잔에 더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물을 더하면 커피맛이 훨씬 깔끔하다. 이건 취향의 문제겠지만 나는 너무 진한 에스프레소보다는 거기에 물을 약간 넣은 쪽이 커피의 향과 맛이 살아난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렇게 마시는데 문제는 물을 얼마나 더 넣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취향의 문제지만 나는 1 대 1 이상으로 뜨거운 물을 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물탄 느낌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뜨거운 물을 정말 살짝만 더한다. 그러면  왠지 향이 더 잘난다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아메리카노를 처음 주문했을 때 나는 재수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었다. 나는 원샷이니 투샷이니 하는 말도 이해를 못했다. 게다가 아메리카노를 처음 주문한 곳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커피숍이었다. 내가 이해한 것은 진짜 맛없는 커피가 만들어 지는 광경이었는데 그들은 엄청난 양의 물에다가 약간의 커피를 타는 것이었다. 그 커피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진짜 맛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스 커피를 만들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아이스 커피의 고수들이 여기저기 있을 테니 이런게 좋은 아이스커피라고는 차마 내가 말할 수 없다. 다만 내 경험으로는 아이스커피는 시원한 느낌으로 마시기 때문에 물을 많이 섞어서 만드는 쪽이 벌컥벌컥 마시기 좋았다. 


맛이란 것은 뭔가에 의해 가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얼음이나 설탕이나 신맛이 그렇다. 모히토 같은 칵테일을 마구 마시다가 쉽게 취하는 이유는 달고 시며 차가운 모히토는 알콜의 느낌을 지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스커피는 사실 원래 재료가 되는 커피의 맛에 덜 의존한다. 우유에 시럽까지 넣어서 만들거라면 정말 그렇다. 그쯤 되면 그냥 취향의 문제지 믹스커피로 만드는 거나 캡슐커피로 만드는 거나 드립커피로 만드는 거나 어디가 더 맛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맛의 차이는 있다. 그리고 돈의 차이도 있다. 카누나 믹스커피보다 캡슐커피가 훨씬 비싸다. 그리고 더 간편하다.  


일본에서는 캡슐커피가 환경오염을 만든다고 해서 에코팟이라는 것을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알루미늄 케이스에 커피가 들어 있는 네스프레소 캡슐과는 달리 후에 부패되는 재질로 이뤄진 포장에 커피가 들어 있다. 내가 나중에 구입한 커피 메이커가 에코팟에서 커피를 뽑는 기능이 있어서 에코팟 커피도 한때 마시곤 했었는데 왠지 그만두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일은 아닌 것같다. 캡슐커피가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에서는 아예 캡슐커피가 금지되어 있다는 말도 들었다. 게다가 가격도 네스프레소 캡슐의 절반밖에 안한다. 하지만 어차피 한국에서는 구하지도 못할 것이다. 또다른 대안으로는 스텐레스 캡슐을 사서 내가 직접 캡슐을 채워서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캡슐이 5만원이상 해서 아직 써 본적은 없다.  


일단 집에서는 믹스커피라는 틀에서 벗어나자 캡슐커피로는 금방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커피의 맛도 맛이지만 뭐랄까 여러가지 방법으로 마셔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또 한동안은 즉석 드립커피들을 회사를 달리해서 먹게 되었다. 일본은 이 즉석 드립커피제품들이 아주 많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을 방문할 때면 이 즉석커피들을 선물로 사들고 오곤 했었다. 


커피의 역사를 보면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것이 1651년이라고 하는데  20세기 들어서 커피 만드는 방법이 빠르게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캡슐커피같은 것이 나오는가 하면 그것이 또 개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한 50년쯤 지나고 나면 또 무슨 이상한 방법으로 우려낸 커피가 개발될지도 모르겠다. 커피는 그래봐야 커피지만 또 그 커피가 그 커피가 아닌 것이 재미다. 그리고 그것이 커피를 마시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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