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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3 : 커피의 맛과 분위기

by 격암(강국진) 2016. 6. 7.

요즘엔 남녀 누구나 커피를 즐기지만 전에는 유독 여자들이 카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사람도 분위기 좋은 카페 이야기를 하면 눈빛이 달라지지만 안 그런 한국여자가 드물었던 것같다. 커피 한잔의 원가가 5백원이니 천원이니 하는 말이 있어도 사람들이 기꺼이 몇천원씩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카페가 커피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공간을 대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멋진 테이블에서 근사한 컵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확실히 기쁜 일이다. 호텔 커피숍도 해변의 커피숍도 스카이 라운지의 커피숍도 다 커피 한 잔 생각이 절로 나는 곳들이다. 술꾼들은 술 한잔이 생각 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데 분위기라고 해도 여러가지 분위기가 있다. 나는 여러가지 분위기를 가진 장소들을 두루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분위기 혹은 내가 편하게 느끼는 분위기는 말하자면 B급 정서랄까 그렇다. 그게 어떤 정서냐고 하면 식당으로 치면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정서같은 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B급 정서다.  




일본은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판의 이 B급정서는 확실히 매력이 있다. 


나는 일본에 10년을 살았는데 우리 동네의 커피숍들을 두루 돌아다녔다. 여러 집들이 나름의 특색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집은 세 집이 있었다. 그 세 개의 집은 서로 모두 다르고 두 집은 개인이 여는 카페지만 한 집은 체인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손님접대를 할 때 친절한거야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어느 커피숍을 가건 친절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집들은 마치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클럽에 쉬러간다는 느낌을 준다. 그게 어떤 느낌인가알고 싶으면 드라마 심야식당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너무 반짝반짝하지 않는 것이 매력이 되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외국인인 관계로 그다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들은 정중하게 이것저것 물어주기도 하고 다른 손님들과는 매우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손님을 항상 기억해 주었다. 어떤 때는 몇달만에 찾아갈 때도 있었는데도 여전히 기억하고 작은 표시라도 내준다. 그렇게 할 때 손님은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단순히 커피를 사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사교클럽에 참여하러 온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그들은 매우 친절하면서도 어떤 격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말한 세 집중의 하나는 쑥들어간 골목안에서 일반 가정집옆에 있으며 이름도 읽을 수도 없는 기호로 되어 있어서 내가 그냥 골목집이라고 부르는 집이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음료를 파는 이집의 주인은 오랜간 이화학연구소에서 비서로 근무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이 할머니는 은퇴하고 찻집을 낸 것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굉장히 분위기가 근사했다. 마치 오랬동안 요정같은 것을 운영했던 꼬장꼬장한 여주인같달까. 항상 미소를 띄우고 부족한 것이 없나를 살펴주는 친절함이 있으면서도 몸가짐이나 얼굴표정이 절도있어서 왠지 이 카페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겠구나싶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것이 그 카페를 책을 읽거나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데 최적의 장소로 만들고 있었다. 가구도 가게도 그렇게 고급스런 곳은 아니지만 사람이 고급스러워서 마치 고급 요정같은 델 간것같은 느낌을 준다. 커피잔은 꼭 커피 받침위에 놓아야 하고 놓을 때도 조금은 우아하게 그렇게 해야 할 것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이런 점은 나의 두번째 단골집이었던 키트리도 그랬지만 정도는 덜했다. 키트리는 노부부가 운영하면서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어 주는 곳이었는데 고풍스런 커피숍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축구팀을 응원하는 문구가 걸려있곤 했었다. 또 동네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곳은 이 동네 사람들의 상담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이상으로 동네사람과 대화해 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주된 일처럼 보였달까.  커피숍이지만 맛있는 카레와 토스트도 팔았다. 


그러나 이 커피숍도 한가지 이유로 인해서 나름의 무게 중심이 서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 때 정말 집중해서 장인의 정신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먼저 말한 골목집은 물론 커피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커피를 만드는 분위기 자체는 키트리의 할아버지가 훨씬 위였다. 나는 대개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논문이나 책을 읽다가 오곤 했다. 그러나 때로 바테이블 앞에 앉아서 바리스타가 커피나 티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컵하나를 데우고 잔위에 올리고 커피를 붓고 하는 모든 일에 굉장한 정성을 들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감사하게 커피를 마셔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커피에 대한 정성넘치는 집에서는 예의를 갖춰야 할 것같이 느껴진다. 그 집커피는 아주 좋았지만 커피의 맛의 일부는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다도회에서 정성스럽게 차를 따라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그런 느낌이었다. 


골목집도 키트리도 둘다 내가 좋아했고 한 때는 정말 자주 가던 집들이었지만 내가 일본 생활을 마칠 무렵에 가장 자주 가던 커피숍은 한때 일본최대의 체인이었다는 도토루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싸기 때문이다. 이 집의 작은 커피는 190엔 큰 커피도 290엔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생활수준을 생각하면 이 커피값은 비싸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물론 도토루를 내가 자주 간 이유는 단순히 커피값이 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싸기는 맥도널드가 100엔으로 더 쌌다. 도토루의 분위기 특히 내가 가던 그 가게의 분위기가 나는 좋았기 때문이다. 도토루라고 해도 모든 도토루가게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도토루 가게는 기본적으로 같은 색감을 이용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심야식당의 가게처럼 허름하고 낡은 것은 없지만 그 색조는 왠지 낡고 오래된 마루를 생각하게 만든다.알고 보면 깨끗하고 새 것인데도 왠지 몇십년 된 탁자에 앉는 느낌을 준다. 


우리 집주변에 도토루는 몇개나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도토루 가게는 주유소의 한켠에 붙어있던 가게였다. 처음에는 주유소에 붙어 있는 커피숍이라니 분위기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질 않았는데 한 번가보니 별다른게 없는데도 자꾸 가게되고 결국은 매일 매일 들리다시피하는 가게가 되고 말았다. 


일단은 커피 값도 싸고 커피의 맛도 내 입맛에 맞았다. 그 맛이란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데 말하자면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쓰지 않은데도 짙은 커피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커피였다. 그 커피에 익숙해졌을 때 물을 많이 타서 잘못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특히 불평을 많이 하게 된다.  왠지 물과 커피가 따로 노는 느낌이 아주 싫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정을 붙이게 되니까 처음에 나를 펄쩍 뛰게 만들었던 주유소 한켠의 카페라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격식이 있고 주변에 신경쓰고 하는 일없이 더 논문이나 책에 집중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턱시도를 입고 긴장을 풀기는 어렵다. 그런데 주유소 한켠의 카페에서 무슨 고상한 분위기를 찾겠는가. 가게는 깨끗하고 종업원들도 여느 어떤 가게보다 친절했지만 그 가게는 주유소옆에 붙어있어서 오히려 어떤 B급 정서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게는 때로 밤중에 나가서 커피 한 잔하고픈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면이 있었다.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면 커피 냄새가 풍겨나오고 15개쯤 되는 자리에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그곳에서 시간을 쓰다오면 왠지 친구와 떠들다 온 것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가게에 나 혼자 자주 갔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와 아들을 데리고 가서 공부를 하다가 오곤 했는데 아마 가게 종업원들은 좀 황당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눈치를 주지는 않았다. 나도 가게가 붐비면 적당히 빠져주었다


한국에 온 이래로 몇 개인가의 커피숍을 가봤지만 나는 일본의 단골커피숍들만큼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떤 커피숍들은 너무 비싸고 화려한 분위기고 어떤 커피숍은 너무 크다. 여러 커피숍이 근사했지만 세월이 느껴지고 사람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직 한 곳 동영커피라는 곳에만 나는 약간 정을 붙이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어느 가게에서나 손님일 뿐이었다. 그리고 많은 커피숍은 커피를 대충만들고 있었다. 나는 스타벅스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4-5천원을 내면서까지 갈만큼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커피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몇명의 바리스타를 보기도 했지만 그 분들은 아직 골목집이나 키트리의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가지는 분위기가 없었다. 뭔가 가게의 공기가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좋은 카페는 맛있는 커피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사실 카페만 그런게 아니라 좋은 가게는 다 그렇다.  


그래서 일까. 한국에 와서 나는 집을 어느 정도 카페처럼 만들었다. 집같은 카페가 없다면 집을 카페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같다. 나는 식탁도 식탁의자도 이런 것을 샀다. 실은 요즘엔 티브이 앞의 소파나 베란다의 탁자에 앉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때로 이 탁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왠지 도토루의 넓은 탁자 생각이 난다.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는 향기처럼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의 향기라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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