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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에세이들/철학이 있는 집

철학이 있는 집 2 : 집같은 인생, 인생같은 집

by 격암(강국진) 2016. 7. 9.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게 멋지고 좋은 삶인가. 우리는 그때 그때의 욕망을 따르면 되는가? 아니면 그저 주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흉내내면서 살 뿐인가? 그도 아니면 전통에 따라서 살 뿐인가? 어떤 위대한 인물의 삶을 흉내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추상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집에 대한 고민들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집을 생각하다가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생각하다가 집을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있다. 일단 그때 그때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다. 생각나는 대로, 원하는 대로의 공간을 마구 만들어서 집을 만든다면 집은 전체적 조화를 잃을 뿐 아니라 관리가 힘들어 질 것이고 무엇보다 금새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을 초과할 것이다. 


우리는 집이 너무 커서 관리를 못하는 사람들이나 좋은 집을 사고도 그 가격을 치루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가 있을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일만 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익숙하다. 우리는 또한 어떤 형식에 맞춰서 인생을 바라보고 이런 저런 자리에 앉아봐야하겠다거나 하는 이유로 인생 자체를 즐길 시간은 전혀 없는 사람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리저리 간섭하며 복잡하게 사느라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벽루


우리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집을 만들어 내느라 쓸데 없는 고생을 하게 되는 일도 있다. 말하자면 남에게 과시하고 싶은 과시욕때문에 원하지도 않는 집을 구하거나 비싼 가구를 들여놓는 식으로 집에서 크게 필요도 없는 부분에 크게 돈을 쓰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부끄러움과 비교때문에 과시하는 일로 인생을 너무 많이 낭비해 버리게 되지는 않는가? 



일본의 집


집이란 구체적인 물건이다. 그래서 집을 떠올리고 인생을 떠올리는 것에는 장점이 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추상적으로 들을 때는 이것도 옳은 것같고 저것도 옳은 것같지만 뭔가 종잡을 수가 없어지기 쉽다. 반면에 우리는 집을 그림이나 탁자를 보듯이 그냥 볼 수 있다. 흉칙한 집을 보며 왜 이 집이 흉칙한가를 생각하고 맘에 드는 집을 보면서 왜 이 집이 맘에 드는가를 생각하는 일은 우리의 삶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농소마을의 집


나는 어렸을 때 우울하거나 할 때는 늦은 저녁에 버스정거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했다. 어두운 밤에는 버스 안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거장에서 잘 보인다. 회사원, 학생, 아주머니, 할아버지, 부자, 가난뱅이. 친구와 웃고 떠드는 사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모두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뭔가 많은 것을 배운 것같았다. 


요즘은 집들을 보면서 그런 걸 종종 느낀다. 하나의 집은 우리의 삶에 뭐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작은 방이 때로는 책 한권을 읽는 것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준다. 



집들을 보고 있는 것은 마치 한무리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과 같다.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 멋진 집들을 만나면 반갑다. 때로 흉칙한 것을 만나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보람되고도 즐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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