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그림자

by 격암(강국진) 2017. 1. 18.

막내가 자기 중학교 체육수업을 이야기하면서 불평을 한 적이 있다. 결국 자기 학교에서 체육 수업이란 자유시간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관심있는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도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그냥 자율학습이나 한다. 방과후 활동에 배드민턴부나 탁구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상당히 듬성듬성 활동하는데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냄새가 좋지 않다. 


막내와 함께 탁구부에서 탁구를 치는 한 아이를 나는 차에 태워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인데 자기는 이미 공부는 글렀으니 탁구나 열심히 쳐보겠다고 한다.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나 잘못된 점이 있었다. 첫째로 그 학생은 2학년에 탁구를 처음 쳐보는 것이다. 자신이 공부에 재능이 없어서 탁구로 성공하겠다면 탁구에 재능이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둘째로 탁구로 장래에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설사 재능이 있다고 해도 도대체 얼마나 탁구를 잘 쳐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공부가 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겠지만 과연 탁구처럼 직업시장이 좁은 곳에서 기회를 잡는게 쉬울까 차라리 공부를 하는게 쉬울까. 공부를 아무리 못해도 이 답은 적어도 자명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앞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운동에 대한 대화가 완전히 입시나 취업위주로만 고정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직업적으로 운동할 학생이 아니면 한국에서는 운동이 권장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운동을 말린다. 운동선수가 될 사람이 아닌데 운동하고 있으면 시간이 남아도는구나 하는 핀잔을 듣게 되기 일쑤다. 나를 닮아 운동에 별 재능이 없는 우리 큰 딸이 하는 말이 한국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에 비해서 체력이 아주 형편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저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딸이 한국에 오니 50미터 달리기같이 기초체력을 측정하는 쪽에서는 반에서 1등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체육이 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둘째치고라도 이 것이 그 결과다. 이건 한심한 현실이다.


눈을 돌려 티비 방송을 보면 김연아에서 오승환, 강호동같이 스포츠 스타들이 방송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김연아가 세계 1위를 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지만 피겨스케이트를 신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사실 김연아 이전에는 피겨스케이트 구경도 거의 하지 않았지 않은가. 오승환이 미국에서 공을 잘던진다지만 한국에서는 야구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럴 시간도 장소도 없으니까. 그냥 프로야구를 볼 뿐이다. 강호동은 말할 것도없다. 한 때 인기가 좋았던 천하장사대회는 이제 그저 추억의 종목이 되어버려서 방송에서 조차 보기가 힘들다. 씨름 해 본적이 있는 학생은 요즘 얼마나 될까.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모든 스포츠를 다 즐기는 것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와 거리가 멀지만 선진국 사람들이 스포츠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우리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들은 하나의 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예를 들어 테니스를 친다고 하면 정말 제대로 치기 위해 레슨을 받고 상당 시간을 들인다. 


일본의 경우는  중고교의 부활동이 매우 진지하다. 그들은 사실 가용시간을 전부 체육에만 쓰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년내내 부활동을 하고 연습을 해서 도대회나 전국대회에 나가려고 애를 쓴다. 때문에 한국에서 내가 중학교때 테니스부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하면 그건 거의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본에서는 테니스부 출신이란 상당한 연습을 중학교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육은 이들이 사회에 나가고 나서도 평생 그 체육을 하나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 다른 건 못해도 어떤 하나의 종목만은 좀 진지한 정도까지 해봤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나는 체육에 소질도 흥미도 없어서 이런 경험을 해 본적이 없지만 대학교때 우연히 기타 코드를 몇개 배워서 기타를 치게 될 수 있게 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것이 평생에 걸쳐서 상당한 자산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운동과 악기 그리고 책에 대한 관심 같은 것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청장년은 물론 노년에도 활용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그런 자산이 없어서 돈걱정이 없어도 노년생활이 매우 힘든 노인들을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다. 성장기에 체육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복지활동일 수 있다. 


우리는 스포츠 스타들이 방송에서 빛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들이 강렬하게 빛나면 빛날 수록 뭔가 진짜 체육은 점점 더 어두운 그늘속에서 잊혀지는 느낌이다. 뭔가 '1등만 잘하면 됬지 나머지는 그걸 할 필요가 없다'던가, '체육은 어디까지나 유명해지고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같은 메세지가 더 강렬하게 뿌리 내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러가지가 뒤틀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있는 척, 아는 척, 멋있는 척하는 뭐뭐하는 척이 중요하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한국인이 뛰어난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도대체 모짜르트가 한국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이 아무도 고전음악을 듣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빌게이츠가 국적이 한국인이면 한국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인가? 세계 1등기업이 한국에 있으면 그게 한국인의 영광인가? 갑자기 어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설혹 100% 외국에서 공부하고 외국에서 쌓은 업적이라도 한국인의 영광이 되는 것인가? 그 사람이 어떤가는 보지 않고 하버드나 서울대 간판만으로 우리는 누구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모든 질문들 속에서 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저 어떤 간판이나 어떤 이름, 자격증 속에서 뭐뭐인척 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거듭발견한다. 그러나 내가 김연아 옆집에 산다는 사실과 내 피겨스케이팅 솜씨가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허세에는 뻔한 문제가 있다. 그런데 세상은 뻔한 것은 외면하고 황당한 선전만 계속된다. 노벨상 타령에 금메달 타령만 지속된다. 그런 눈 멈속에서 진짜 우리는 시들어 간다. 오히려 안 그러는 것보다 더 빨리 그렇게 되는데 간판역할을 할 사람에게 모든 자원을 퍼부어서 나머지가 더 굶주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벨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어쩌면 아인쉬타인의 진학을 막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우리는 한국학생들의 키가 아시아 1등이라고 좋아하지만 우리에게는 김연아가 있다고 자랑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의 체력은 매우 저질이라는 점은 애써 잊으려고 한다. 1등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정유라가 말사서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김연아를 꿈꾸기도 한다. 혹시 정말 정작 대단한 체육선수가 될 학생이 한국에서 운동한번 못해보고 자라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서 펠프스가 부모가 가난해서 수영장 구경도 못해보고 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할까? 우리 좀 잘 못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