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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우리가 집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

by 격암(강국진) 2017. 2. 12.

2017.2.12

 

오늘날 우리가 집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경제적인 이유와 비 경제적인 이유로 나뉜. 시장경제가 발달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집을 여러번 사고 팔며, 집을 임대주고 임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집은 매우 비싼 것이기 때문에 시장상품으로서의 집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우리의 경제적 상황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집의 경제적인 의미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문제가 주택을 담보로 빌린 은행빚의 규모라는 것만 봐도 이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신문은 부동산 경기동향이 실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집에 대한 생각은 반드시 경제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은 지나치게 경제적인 부분에만 사고가 집중되기 때문에 집에 대한 생각이 왜곡되고 결과적으로 크게 보면 경제적으로도 집에 대한 생각이 왜곡되는 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집은 본래 사람이 사는 장소다. 집에 대해 사고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고와 거의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종교적인 인물이라면 집이 그런 의미와 기능을 가지기를 바랄 것이다. 당신이 집이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와 그리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사실은 집에 대한 하나의 생각이며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생각이다. 다만 당신은 암묵적으로 어떤 가정을 하고 있는데 그 가정을 자각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 대한 생각중 널리 퍼져있지만 잘못된 것중의 하나는 집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특히 비경제적인 부분이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판결은 판사가 하고 변호는 변호사가 하듯이 집의 설계는 설계사무소에서 하고 시공은 시공업자가 한다는 식이다. 물론 그런 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집을 짓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일을 모든 사람들이 고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집은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이며 쉽사리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집은 우리를 담는 그릇이다. 집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은 당신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니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온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만약 집을 짓고 싶다고 해보자.  당신이 건축가에게 가서 좋은 집을 지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그 건축가는 오히려 당신에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뭐 하시는 분입니까하고 말이다. 만약 우리가 조선시대같이 예전에 산다면 인간의 삶이란 훨씬 덜 다양했을 것이고 기술적 한계도 분명하여 집이란 본래 이런 것이다라고 해서 살면 그만이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아주 다양하고 기술적인 발전도 있어서 우리가 뭔가를 원한다면 그것을 이룩할 수 있는 기술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오히려 예전에 없던 고민이 시작된다. 큰 돈을 들여서 옷을 사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집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은 자기 체형에 대해 무지하면서 옷을 고르고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의 허리를 사정없이 죄이는 옷이라면 설혹 그것이 10억짜리 원피스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문가가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활을 정해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양심이 있고 오만하지 않은 건축가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건축가들이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들은 오랜동안 건축주와 이야기하는 일이 많다. 사이즈가 맞질 않으면 다이아몬드로 만든 허리띠가 가죽 허리띠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건축주에게 맞는 집을 찾기 위해 긴 대화를 하고 같이 고민한다. 당신이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할 수록 그 일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설혹 우리가 집을 짓는 일을 할 생각이 없으며 시장에 나와 있는 집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사거나 임대할 생각이라고 해도 문제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조용한 산중에 사는 것과 복잡한 도시의 달동네에 사는 것이 우리의 삶에 아무 차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도 그렇다. 우리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그에 맞춰서 살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네모난 그릇이나 별모양 그릇에 담겨진 푸딩처럼 점차로 그릇의 모양으로 변하고 만다. 다시 말해서 사는 대로 생각하고 사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스라엘, 미국 그리고 일본등 여러 나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간혹 어디가 가장 살기 좋더냐는 질문을 받고는 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좋은 이웃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거기가 좋은 곳이라는 것이었다. 나쁜 이웃이 있으면 천국같은 동네라도 삶이 지옥처럼 변한다. 

 

그런데 집이 하는 기능이란 무엇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게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집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집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한 나만의 공간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별다른 노력없이도 언제나 가능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즉 집이란 원래 이런 것이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산다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대해 무슨 생각이 필요하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집에 대해서 말할 때 사람이란 결코 이웃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집이란 가족들이 서로를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도 한다. 집이란 가족들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집을 고르는 어른들은 종종 이런 면을 무시하면서 가족은 그저 남이 아니니까 분리가 필요없으며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거나 반대로 뿔뿔히 흩어져서 못만나게 되어 있는 구조속에서 살면서 왜 우리가족은 이렇게 대화가 없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에 대한 또다른 큰 착각중의 하나는 어찌보면 간단한 것이면서도 매우 철학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환경을 무시한다. 하지만 하나의 집이란 건물한채가 차지하는 공간의 안쪽에서 완성되고 정의될 수 없다. 만약 뭐든지 다 있는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에서 이상적인 집이란 그저 텐트하나면 족할지 모른다. 반면에 바깥에서 아무 것도 구할 수 없는 사막에 이상적인 집을 짓고 싶다면 우리는 그 안에 자급자족할 농장이며 발전소까지 갖춘 성을 지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극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집값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 집의 위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림같은 집이라고 할지라도 외진 시골에 있으면 터무니 없이 가격이 싼 경우가 있다. 반면에 서울에 있는 건물중에는 그 건물사진만 보면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낡은 것인데도 그 가격이 엄청나게 높은 경우가 많다. 

 

내가 집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집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내 집은 내 집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 모두가 집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할 때 내 집도 완성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 집을 아무렇게나 결정해 버리면 내가 혼자서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해도 내 집은 형편없이 완성될 것이고 점점 비싼 댓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과학적인 사고, 환원론적인 사고에 익숙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에 중독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이 언제나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환원론의 기본은 우리가 세상을 조각내어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합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진공속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질점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혹은 수소원자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생각할 때 일단은 그것 이외의 모든 것이 없는 세상속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환원론적으로 집을 볼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본질을 무시하게 된다. 집이란 무엇인가라고 누가 물으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진공속에서 홀로 떠있는 한 채의 건물을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좋은 집이란 우리의 욕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그 건물안에 가지고 있는 집을 뜻하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집이 더 좋은 집이다. 좋은 방은 어떤가. 그 안에 모든 것을 가진 방이 좋은 방이다. 그렇다면 좋은 방이 모여서 좋은 집이 되고 좋은 집이 모여서 좋은 마을이 될까? 그렇지 않다. 좋은 집과 좋은 마을은 방과 방 그리고 집과 집 사이의 관계에서 나온다. 우리가 집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작게는 집이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크게는 우리의 이런 습관적인 사고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를 깨닫기 위한 것이다.

 

집에 대한 고민은 결국 마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되고 나아가 사회로 이어지게 된다.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이 필요없다. 멋진 테라스를 만들었는데 미세먼지로 바깥에서 숨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면 그건 무용지물이다. 멋진 집은 시공을 초월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있는 그 장소가 어떤 장소인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작은 공유가 큰 이득으로 돌아올 수있으며 반대로 말하면 그저 내 집을 좋게하겠다는 작은 독점적 소유욕들이 많은 집들을 나쁜 집들로 만들 수도 있다. 

 

집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이 세상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집에 대한 생각은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집에 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가르쳐 주는 좋은 연습이 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집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설혹 지금 당장 집을 짓거나 이사를 갈 수 없다고 해도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우리를 바꿔주고 당장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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