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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건축에 대한 입장의 문제

by 격암(강국진) 2017. 2. 28.

17.2.28

입장이 다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이 말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는 글을 최근 두 번이나 읽었다. 하나는 한 신문에 실린 연작 칼럼을 읽은 것이고 또 하나는 한 건축가의 책의 서문을 읽은 일이다. 두 저자에 대해 내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첫번째 칼럼을 쓴 사람은 건축가라기보다는 집장사같은 느낌이었다. 두번째 책을 쓴 사람은 30년 경력의 건축가이다. 

 

나는 두 사람의 글을 좋다 나쁘다의 차원에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내 글이 아무리 비판적으로 느껴져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다. 다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지식이나 의견의 유용성을 따지기 이전에 나는 지나치게 강력하게 그 글을 쓴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독주택들을 분양하는 회사의 사장인 첫번째 필자의 경우 사람들이 단독주택을 짓는데 뭐가 얼마나 드는지 잘모르면서 떼를 쓴다는 식의 논조가 느껴졌다. 예를 들어 평당 5백은 줘야 지을 수 있는 좋은 집을 상상하지만 돈은 그보다 훨씬 적게 들이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은 착각에 빠져 있다는 식의 지적이 이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집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 소비자를 만나는 사람의 문제를 쓴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글은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칼럼을 읽는 사람의 대부분은 집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아니라 집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일텐데 왜 그런 글을 길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나는 의구심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건축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 필자 스스로가 전문가가 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필자는 앞에서 말한 논조의 글을 통해서 문제는 주로 건축의 현실을 모르는 비전문가 소비자들이 떼를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던 것이다. 물론 억지를 부리는 소비자는 차고 넘칠 것이다. 그 문제도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팔이 안으로만 굽는 그런 이야기는 그리 길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번째 필자인 건축가가 책의 서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말하자면 편리하고 효율적인 집을 짓는 것을 외면해서는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나는 뭔가가 목을 넘어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가치의 문제때문이다. 편리와 효율이라는 것은 어떤 가치를 의미한다. 그런데 곰곰해 생각해 보면 가치란 애초에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다면 그 이유는 단지 우리가 그 가치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는 것은 축하받아야 할 기쁜 일일까? 원하는 배우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사람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결혼에 관심없는 사람에게 결혼 생활이란 매우 피곤하고 소비적인 일로 보일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결혼이란 편리하지 않으며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할 것인가. 

 

군대에 가는 것은 어떤가. 군대가는 것이 편리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내가 속한 나라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무이며 그 의무를 다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살겠다면 어떤 의미에서 병역기피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이런 예들을 떠올리면서 생각해보면 편리나 효율이라는 말은 생각만큼 당연하지 않고 별로 의미가 없는 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집이라는 것은 도대체 뭘까? 오래된 성당이나 남대문같은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아주 높은 가치가 있다고 말해진다. 그런데 그것들이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들일까?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집들이 뭔지를 점점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게 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그들은 그 말을 남발하면서도 자신이 말하는 편리와 효율이 뭔지는 그냥 넘어간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은 어떤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이 가지는 모습은 주로 우리가 어떤 가치를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농촌과 도시를 바꿨고 우리로 하여금 서구식으로 살게 하고 아파트를 짓게했다. 이제 누군가가 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더니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게 있더라. 편리하고 효율적이지 않으면 그 집은 결국 안된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것은 무슨 뜻일까?

 

확실히 지난 세월동안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부자층의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 그들이 성공해 온 방식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 그러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나라 건축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가치를 초월하자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 건축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일까? 

 

후자의 경우라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지금의 우리 눈에 편리하고 효율적이라는 것은 어떤 가치를 망각한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하게 되면 자연스레 기존의 관점에서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집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가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국가란 관점에서 세금내고 병역의무를 지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사는 것으로 보이겠는가. 

 

건축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오래가고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치며 여러 사람 공통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되도록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 점심에 뭘 먹을 것인가라던가 수십벌씩 옷이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어떤 옷을 입어볼까하는 문제하고는 다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가 가진 기본적 가정에 대해서 좀 더 철저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건축이 철학의 문제가 되기 쉬운 이유는 이때문이다.  

 

그런데 건축에 대한 고민들에서 별로 깊은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이 나온 답들이란 어떤 차원에서는 답이라기보다는 문제를 만드는 일이 되고 만다. 우리가 가진 아파트가 지금은 문제이지만 전에는 답이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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