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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선분양제도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17. 7. 3.

2017.7.3

 

누구나 지적하는 한국의 경제문제 중의 하나는 가계부채가 급격히 상승해 왔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가계부채의 위험도를 크게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빚을 낼 수 밖에 없는 시대고 빚을 내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면 왜 가계부채는 증가하는데 기업의 부채는 증가하지 않을까? 여러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하는데도 왜 은행은 계속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줄까?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중요원인중 하나인 아파트 선분양제도는 언제까지 한국에서 당연한 것이 될 것인가?

 

물론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일 빵이 팔리건 팔리지 않건 빵장사는 일단 빵을 구워야 빵을 팔 수가 있는 것처럼 은행은 돈을 빌려줘야 영업이 된다. 문제는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는 당연히 지금은 돈이 없는데 그 돈을 나중에는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행위이며 투자라는 것은 언제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 위험도가 투자를 얼마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한선을 결정한다. 만약 위험없는 투자가 있다면 돈이 얼마가 있건 우리는 그것에 전부를 투자하게 될 것이다. 다른 투자는 위험도가 있기 때문에 설사 수익률이 좋아도 상한선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에 파산할 정도의 돈을 투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이유는 결국 은행들이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가 제일 위험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된다. 뒤집어 말하면 은행이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법인은 인간과는 달리 무한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 법인은 파산하면 더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또한 법인은 개인들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시 말해 돈이 있어도 은행에 빚을 안갚을 수도 있고 법인은 인간이 아니니까 겁도 먹지 않는다. 무엇보다 법인은 법을 연구해서 어디까지나 위험을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은행이 기업을 상대하면 투자에 대한 위험을 더 많이 떠안아야 한다. 

 

반면에 한국의 대중들은 빚은 갚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전문가만큼 정보가 없으므로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개인은 덥석 위험을 자기가 전부 떠안는다. 가계부채는 대개 집을 담보로 이뤄지는데 대출자가 돈을 안갚으면 은행은 부동산을 차압하면 된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은행에 더 유리하다. 미국에서는 부동산 담보로 빚을 빌리는 경우 대출자는 최악의 경우라도 그 담보물을 제공하면 빚이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부동산의 가격이 부채보다 더 떨어지면 은행도 손해를 본다. 따라서 은행은 대출행위에서 손실의 위험을 더 많이 감당해야 하 따라서 은행은 대출을 하는데 더 조심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가 않다. 담보는 담보고 빚은 빚이다. 차압하고도 남은 빚은 계속 갚아야 한다. 

 

빚은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가계부채를 쉽게 쉽게 늘리는 장치가 있다. 바로 아파트 선분양제도다. 선진국에서 이런 제도가  드문 것은 이것이 도박같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가격을 가진 집을 사는데 돈도 없는 구매자는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한다. 신용은 곧 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파트 선분양이란 그야 말로 무리한 신용을 창출해서 허공에서 엄청난 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런 화폐는 부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집은 무슨 돈으로 짓는가. 구매자도 돈이 없고 그 집을 지을 건설사도 돈이 없다. 그런데 은행과 건설사가 뭉쳐서 개인들에게 엄청난 빚을 아주 간편하게 낼 시스템을 만든다. 일년에 저금을 천만원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3억 4억을 빚을 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일을 위험하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이 시스템 때문이다. 

 

일단 건설사가 마치 자신이 책임질 것처럼 홍보를 한다. 사람들은 건설사와 작성하는 계약서속의 진실을 다 알기 어렵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빚을 내는 모습을 본다. 서민에게 아파트 선분양이란 한달 월급이 3백인 사람이 한판에 일이천만원이 오가는 도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딸 수도 있고 손해 안 볼 수도 있지만 한번만 실패하면 치명상을 입는 수준의 투자다. 그런데 그것을 건설사와 은행이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개인들에게 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5백만원만 가져오시면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식의 홍보물을 나는 지금도 가끔 본다. 친구를 데려오면 금반지를 준다는 곳도 있다. 

 

그 투자에서 안전하게 돈을 버는 것은 은행과 건설사다. 만약 집을 소유하는 것이 돈을 빌려주고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안전하게 많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면 은행과 건설사는 집을 자기가 소유하려고 할 것이다. 즉 굳이 하지 말라고 해도 일반 투자자없이 은행이 건설사에 돈을 빌려주고 건설사가 건물을 다 지은 후 판매하는 방식인 후분양제도를 택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것은 결국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어느 쪽을 더 안전하게 생각하는 가를 보여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줄까지 서가면서 빚내기에 골몰한다. 마치 은행과 건설사가 자선사업이라도 하고 있는 것같이 군다. 이것은 이미 그 위험도의 분산이 공평하지 않은 사기에 가까운 도박인데 말이다. 부동산 투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 불패론을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투기의 불길로 세상을 다 불태우려는 욕망에 눈이 먼 사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선분양제도란 건설사가 은행과 손을 잡고 개인들을 위험한 투자를 하게 하고 자신들은 이익을 보는 장치다. 이것은 집이 부족하고 아파트 건설을 촉진하고 싶은 시대에는 보다 정당화하기 쉬웠겠지만 지금도 그럴까? 이런 위험을 개인이 감지하고 조심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그 위험을 경고하고 그런 거래가 공평한 쪽이 되도록 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는 시민들의 주권을 위임받는 시민들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정부가 이 선분양제도에 시비를 걸면 한국의 부동산 경기는 엄청나게 냉각될 것이다. 그것이 모두를 눈멀게 하고 있다.  그것을 말려야 하는 정부도 사회적 충격파가 두려워서 소극적이다. 거품이 사람들을 점점 살기 힘들게 하는데도 거품이 꺼져서 한국경제가 열기가 식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집은 건설사가 짓는데 그 건설사가 위험을 떠안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의 주거가 부실한 것이 되기 쉬운 이유가 된다. 건설사는 집을 이미 팔아놓은 상태에서 건축을 한다. 이렇게 되면 집을 더 성실하게 지으면 지을 수록 수익률이 나빠진다. 그 반대를 생각해 보라. 집을 내 돈으로 짓는데 만약 집이 잘못지어져서 나중에 안 팔리면 망할 판이다.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건설사는 기꺼이 돈과 시간을 더 투자해서 더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즉 가상적인 합격선보다 안전을 위해서 충분히 더 좋게 만든다. 그런데 이미 팔린 집의 경우에는 그것을 지어주는데 시간끌고 돈을 더 투자하면 내 수익이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니까 가상적인 합격선에 한없이 가까이 짓거나 오히려 그 밑으로 짓는다. 하자에 대한 보수요구를 무시할 수 있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선분양제도가 엉터리 건물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이유는 그런 제도는 우리의 건축에 심각한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다. 건물이 없는 상태에서 모델하우스를 가지고 아파트를 판다는 것은 그 아파트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되도록 최대한 똑같은 아파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우리는 층이 다르고 동서남북 방향이 다른 아파트를 가지게 되지만 그래도 건설사는 최대한 똑같은 아파트의 복제품이 쌓여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어떤 문제를 만드는 가를 분명히 알고 싶다면 그걸 약간 더 과장해보라. 누군가가 아예 한 도시를 통째로 분양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도시에는 똑같은 아파트만 가득 찰 것이다. 그런 제약이 그 도시의 가치를 크게 훼손하지 않겠는가?  화가가 그림을 선분양한다고 해보자. 그 화가는 그림의 백분의 일을 보여주면서 돈을 받는다. 그리고는 캔버스를 그 백분의 일부분을 백번 반복해서 그려넣어서 그림을 완성한다. 이런 그림이 예술이 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건설사는 집의 가치로 돈을 버는게 아니라 주로 홍보와 인맥으로 돈을 벌어왔다. 물론 그렇게 쉽게 벌어지는 돈들을 건설사가 모두 가지지는 않는다. 그 돈은 사방으로 흘러 간다. 문제는 그 돈은 애초에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쓰였어야 하는 돈이라는 것이다. 케익을 샀는데 포장지가격으로 케익가격이 거의 다 나간다면 설사 제과점주인이 큰 돈 못벌고 있다고 해도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

 

건축이 본질을 벗어나게 되는 세상이란 능력있고 성실하게 집을 지어줄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생태계다. 우리는 그런 제도를 오래 오래 유지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겠는가. 요즘은 건축가들이 언론을 타고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집다운 집이 지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대형건설사는 돈을 더 쉽게 벌 방법이 있으니 작은 공사에는 관심이 없고 그래서 작은 건설에는 신용도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엉터리 공사를 하는 일이 많다. 단열이 엉망이건 마감이 엉망이건 업자는 돈을 더 벌려고만 하고 어차피 같은 건축주를 두번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하니 소위 집장사가 짓는 집이 제대로가 될 수가 없다. 성실하게 짓는 업자는 제일 먼저 망할 것이다. 수익이 나질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빌라는 저소득층이 사는 곳이라는 이상한 생각이 상식이 되었다. 저층빌라와 고층아파트중 상식적으로 고급주택이어야 하는 것은 저층빌라인데 한국 사람들은 고층아파트가 고급이고 저층빌라는 저소득주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정상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될 수는 없다. 아파트의 시대는 끝났다. 고속성장의 시대도 끝났고 사람들이 투기를 넘어서 주거의 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도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서울로만 집중되는 추세도 뒤집어 져서 지방자치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물론 지방도 작은 서울이 되고자 아파트 개발에 열을 올리는 곳이 많지만 공간도 충분하고 서울만큼 돈과 인력이 넘치지도 않는데 산업폐기물을 쌓아올리면서 마을과 고향을 파괴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은 금방 상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환경에 투자하고 환경친화적인 마을을 건설해야 한다. 아파트 숲은 애초에 연비가 나쁜 자동차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선분양제도와 이별해야 한다. 두렵고 아프지만 이제는 그래야 하고 집을 짓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것이다. 아파트처럼 단순화된 집이 주류인 나라는 마치 온 나라 사람들이 대량생산된 똑같은 티셔츠를 입는 나라와 같다. 이런 나라에 일자리가 많이 생길까? 자동차 세상이 되고 나면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 대해서 비웃으면서 말똥냄새가 지독했다고 웃을 것이다. 아파트에 대해 그렇게 말하게 되는 세상도 멀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 이미 텔레비전 안에서는 아파트가 실종된지 오래인데 그것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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