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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우리 집에 대한 자신감

by 격암(강국진) 2019. 11. 25.

19.11.25

전남일, 손세관, 양세화, 홍형옥이 지은 한국 주거의 사회사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역사책이란 딱딱하여 재미가 없는 법인데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으며 조선의 패망과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부동산 점거 이야기를 듣다보면 해방이라는 것 이후에도 이 나라가 딱 일본인들이 식민지 사람들 수탈하듯이 운영되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아직 다 읽지 않았고 겨우 2장을 읽고 있는 참이지만 이 정도를 읽은 것만으로도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입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부분을 읽으면서 자꾸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결국 몇자 적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것이 명백히 우수하다는 증거가 있어도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만 여기며 남의 것의 명백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왜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자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1910년에 서울의 인구가 28만명이었는데 일본인의 수가 이미 3만 5천명이었고 조선 전체에는 17만명이 넘었습니다.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는 을사조약이 1905년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인구는 이후에도 계속 늘어서 1945년에는 80만명의 일본인이 조선에 있었다고 합니다. 왜 일본인들이 이렇게 밀려왔을까요? 조선은 시장질서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데 그 나라를 점령하고 자기들 식으로 운영하니 돈벌기가 누워 떡먹기여서 일 것입니다. 

 

한 예로 조선시대의 서울 즉 한성에서는 본래 토지의 개인소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공터에 테두리 둘러놓고 이건 내 땅이니 아무도 못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걸 이해못하던 나라였던 겁니다. 재산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땅이 아니라 집이었습니다. 조선은 토지 공개념의 국가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밀려든 일본인들은 집과 함께 토지의 배타적 소유를 주장했고 조선은 1909년에 법으로 그걸 인정하고 세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이런 토지소유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조선인들의 집들은 일본인들에게 다 넘어간 후였죠. 

 

말하자면 시장질서같은 거 모르는 전근대적인 나라가 지금 있다고 해봅시다. 그 나라에서 모든 것은 한국의 규칙대로라고 선언하고 시장질서 운운하면서 경제를 돌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순식간에 그 나라는 한국 사람들에게 넘어가겠죠. 인디언이 맨하탄을 푼돈에 팔았다는 이야기의 조선판인 셈입니다. 시골이 도시 사람들에 의해 같은 식으로 식민지화 되지 않았던 - 그게 사실이라면 - 한가지 이유는 정부가 도시인의 정부가 아니라 한국인들의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즉 정부가 복지나 교육이나 행정의 형태로 지방을 보호하니까 지방이 순식간에 거지가 안되는 것이죠. 그런데 식민지 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선인들을 보호할 이유가 없으니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생긴 일은 정성적으로는 딱 해방이후 한국에서의 도시개발과 비슷합니다. 돈많은 사람들이 개발할 지역의 땅을 사들이고 거기에 새 집을 지으면 집값이 폭등합니다. 그러면 본래 거주민들이 대개는 뿔뿔히 흩어집니다. 일부는 부자가 되겠지만 다수는 거주공동체를 잃어버립니다. 공동체를 잃은 그들은 빈민이 되었겠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웃간에 존재하는 인맥이 오히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높아진 집값때문에 빈부격차가 증가하니 높은 물가로 인해 그들은 더 가난해졌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일제시대에는 조선인들이 모두 외곽으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도심에는 일본인들과 서양인들이 일본식이나 서양식의 집들을 짓게 되죠.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해방이후 이 나라에서 같은 일은 계속 벌어졌던 것같습니다. 그들은 그걸 일제에게 배웠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통쾌한 일이 벌어집니다. 조선을 점령한 일본인들은 자기식대로 집을 지었습니다.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여겼을 테니 조선의 집도 미개하다고 여겼을 거고 그들은 자기들의 집이 선진적인 것이라고 자랑했겠죠. 그런데 1924년 12월 30일자 동아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납니다. 서울시내에만 3천호의 빈집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온돌방을 경험한 일본 사람들이 자기 집을 버리고 온돌집으로 이사를 가서 그랬습니다. 그들이 일본식이나 서양식으로 지은 집은 사용해 보니 온돌집보다 훨씬 못했던 겁니다. 

 

온돌을 가진 조선의 한옥은 조선의 기후에 적응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매우 뛰어난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건 자학적 식민사관이 아닌가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역시 조선의 집을 일본의 집이 따라가지 못했다라고 해야 할 것인데 위에서 말한 책에서조차 이것은 일본과 조선은 기후가 달라서 착오가 생겼다고 말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춥지않다는 말은 일본에서 10년을 살았던 저에게는 억지같은 소리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도 겨울에 눈내립니다. 북해도만 그런게 아닙니다. 부산보다 더 추운 곳이 천지입니다. 동계올림픽을 했던 나가노는 동경에서 별로 멀지 않은데도 눈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일본이 안춥다고요?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심지어 지금도 일본에 가서 살아본 한국인들은 일본집이 춥다고 야단입니다. 

 

뛰어난 온돌문화는 식민지 시대를 지나고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좌식생활을 청산한 경우에도 집안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며 바닥난방이 안되는 집은 집으로 쳐주지도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현실에 너무 익숙해서 이게 전세계에서 한국에서만 이렇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들어 외국에도 바닥난방이 퍼지는 추세일 뿐입니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은 누구나 온돌방에 잔다는 것을 이해못합니다. 일본에서 바닥난방이 되는 집은 지금도 고급주택으로 여겨집니다. 

 

조선 한옥이 얼마나 뛰어난 집인가는 현대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생각하다보면 우리의 주거 문화가 얼마나 엉터리로 뒤틀렸는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먼저 전원주택으로 이사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요즘은 좀 자제합니다만 전원주택을 짓기 시작했던 몇십년전에는 걸핏하면 땅은 3백평에 건평 100평의 서양식 대저택을 짓곤 했습니다. 땅이 넉넉하니 2층으로 안짓고 넓고 납작하게 단층으로 짓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의 최악의 문제는 이런 서양식 집에 바닥난방을 하면 난방비가 엄청나게 나온다는 겁니다. 바닥면적이 엄청나니까요. 한옥은 집이 커도 마루 부분을 떼고 온돌바닥부분을 보면 별로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닥난방을 하면서 서양식으로 집을 지으니 문제가 심각해 지는 겁니다. 그래서 시골에 대저택으로 전원주택을 지은 사람들 중에는 마당에 아주 작은 황토방을 만들어서는 겨울이면 집 난방을 끄고 그 황토방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황토찜질방인 셈이니 너도 나도 이거 참 좋다고 지었지요. 결국 조선의 작은 집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2층집을 지었던 사람들은 종종 겨울이면 2층난방을 끊어버렸습니다. 난방비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전원주택을 짓는 사람들은 무조건 최소한으로 지으라고 조언을 듣습니다. 마당이 있는 집은 아주 작은 집이라도 아파트처럼 답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열을 위해서라도 집은 육면체에 가깝게 지어야 합니다. 단층집으로 납작해서는 안됩니다. 요즘의 일본집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야 부피대비 표면적이 최소화되어 열이 빠져나가는 면적이 작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모르거나 생각 안해 본 한국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면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기 때문이죠.  그럼 아파트는 바닥 난방을 하는데도 왜 난방비가 천문학적이 아닌가? 왜냐면 아파트는 지붕과 벽이 옆집이니 단열이 잘되서 그렇죠. 이렇게 생각하면 한국인이 아파트에 살게 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온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바닥난방을 원하면서 난방비 걱정안 할 방법은 바로 집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온돌 문화를 가졌던 한국인이 충분히 겨울에 따듯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뿐이었습니다. 한옥을 보면 사실 한옥은 정육면체 모양의 타이니 하우스를 마루로 연결하고 지붕으로 통째로 씌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난방이 들어가는 바닥 부위가 작아서 난방비를 아낄 수 있는 것이죠. 어떻게 말하면 몇채의 황토방을 짓고 그 사이에 그늘을 치고 평상을 낸 집이 한옥인 겁니다. 

 

그런데 일제시대 이후 서양내지 일본식 집이 우리나라에 들어 오자 마루로 작은 집을 연결하는 구조가 사라지고 넓은 바닥을 가지는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온돌이 없으면 추우니까 그 바닥을 전부 온돌로 까는 겁니다. 풍요로운 21세기에도 난방비 걱정을 하는데 석탄이나 나무로 난방하던 시절에 과연 그 집을 난방하려면 얼마나 많은 땔감이 들어갈까요? 그 생각을 하자 혹시 한반도에 나무가 다 없어졌던 것에 이런 엉터리 집들이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방비가 비싸서 고생하는 전원주택의 출발은 일제시대부터였습니다. 

 

문제는 겨울뿐만 아니었을 겁니다. 에어콘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사방으로 트인 평상에 앉아있는 것과 창문 몇개 나있는 건물에 안에 있는 것이 어떻게 같겠습니까? 한옥은 대개 마당보다 높이가 높아서 마치 원두막에 앉아있는 것처럼 바람이 통합니다. 이런 지혜는 요즘의 한국의 집들도 잘 못살립니다. 이렇게 조선의 집이 우수한데도 친일파들은 서양식으로 집을 짓고 온돌대신에 벽난로를 설치하고는 손님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보니 영 아니었죠. 전기도 드물어 에어컨이 없으니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집안쪽에 생활하는 한옥은 따로 지었습니다. 이런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후손이 그걸 쓰면서 그저 조선은 일본과 기후가 다르다고만 쓰니 안타깝습니다. 

 

좋던 나쁘던 한국의 주거는 온돌 시스템을 끼고 말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한국 사람에게 바닥난방 안되는 집은 거의 집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죠. 옥탑층같은 곳에는 바닥난방이 안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곳은 한국 사람들은 그냥 창고로 씁니다. 

 

외세에 의해 크게 흔들린 우리의 주거 문화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바닥난방이 아니라도 아파트는 한옥의 흔적을 가집니다. 마치 중정을 가진 한옥처럼 방을 배치하죠. 아파트라고 모두 그런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아파트들은 재미있게도 한국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졌습니다. 외국인들의 아파트는 긴 복도에 방들이 늘어서서 마치 고시방같은 구조를 가졌습니다. 가족들간에도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은 창고로 쓰는 방도 바닥난방이 되곤 하는 우리들의 집이 기묘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바닥을 데워놓고 그 위에 침대를 허공으로 띄우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라텍스 매트리스같은 것을 깔면 침대이상으로 푹신한데 말입니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인 근원적 이유가 온돌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난방비가 저렴해 질 수록 아파트의 인기는 시들 것입니다. 단열때문이건, 싼 연료비때문이건, 구조때문이건 말입니다. 

 

우리의 주거는 외세에 의해 크게 흔들린 채 근본도 알 수 없는 잡탕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의 온돌집이 외국에는 없는 전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집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 온돌집을 전혀 근본원리가 다른 외국집의 시스템이 뒤흔들었는데 아직도 정리가 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이 부유해지니까 자신감이 늘어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국에서 재정립운동이 있을 법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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