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30
최근에 한국주거의 사회사를 읽고 소감을 남겼습니다만 결국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럼 대안이 뭔데?"
불행히도 이건 누군가가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왜 그런가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그러니까 어제 제가 동네에 열린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소감을 써두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 믿습니다. 그 소감안에는 오늘날의 멋진 집에서 제가 어떤 문제를 느끼는가 하는 점이 포함되어 대안적 주거란 어떤 성질을 가져야 하는가가 자연히 들어납니다.
신축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들어서면 저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두가지 인상을 받습니다. 하나는 멋지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천편일률적이라는 겁니다. 제가 있는 전주에는 대단위 개발이 계속되어 지난 몇년간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아주 많이 전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파트들은 다 같은 설계안을 쓰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같은 내부 공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요즘은 4베이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다시 말해 아파트를 아주 길게 짓습니다. 그리고는 베란다 확장을 당연시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실내 공간이 최대화 됩니다. 또 팬트리 즉 창고의 설치가 흔합니다. 신축아파트들은 벽장은 물론 수납공간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장농은 물론 많은 수납용 가구가 필요없습니다. 안방에는 드레룸이 있고 욕실은 대개 두개이며 아일랜드 식탁이나 조리대 같은 것이 싱크대와 붙어 있으며 스마트 홈을 추구합니다. 이런게 요즘 아파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요즘 집에 비판적인 제가 그런 신축 아파트를 보면 싫어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인테리어로 채워진 아파트를 보면 마치 호텔같고 저도 그런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어집니다.
단지 그런 충동을 느끼는 정도에서 멈추고 저는 뭔가 위화감을 느끼거나 결국 그 멋진 집은 그렇게까지 멋지지는 않은, 마치 호텔처럼 단기간만 체험해 보고 싶은 공간에 멈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뿐입니다. 공짜라면 당연하게 가지고 싶지만 실은 엄청난 가격을 요구한다는 것을 다시 기억해 내고 나면 좋긴 좋은데 과연 그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제가 느끼는 위화감이란 뭘까요? 어제는 저도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멋지지 않은가? 여기 뭔가 더있어야 하며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가하고 말입니다.
제 마음을 살핀 결과 나타나는 답은 그 멋진 집은 멋지지만 비싸다는 것 이외에도 고정되어 있으며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그야말로 빠르게 소비해 버릴 집이었으며 따라서 저는 자연히 호텔을 연상하게 되었던 겁니다.
호텔은 단기적으로 숙박하는 곳이라 저는 호텔이 꾸며놓은 공간을 즐길 뿐이며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가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곳이 지겹다면 다른 호텔에 숙박하면 됩니다. 집이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집이란 살다가 지겨워지면 가구 배치를 바꿔도 보는 곳이고, 오랜동안 머물 곳이라 그 안이 모험할 것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곳이며 그렇지 않다면 옮기기 어려운 집은 감옥같은 것이 되기 쉽습니다.
가급적 구체적인 예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넓은 베란다가 있으며 그 베란다의 한쪽은 화분으로 만들긴 했지만 작은 텃밭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텃밭에 뭘 하는가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문제지요. 꽃을 심을 수도 있고, 상추나 오이를 심을 수도 있으며 피망을 키워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은 최적화를 열심히 한 탓에 조금도 내 식대로 살 수 있을 것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본다던가, 식탁을 좀 더 큰 것을 써본다던가 하면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가능성이 소진되어 버린 공간같달까요. 내 식대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제거된 집은 감옥이고 호텔입니다. 그런 집에 살면 오래지않아 지겨워지고 필연적으로 그다지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집이 됩니다. 멋진 호텔식사도 매일 똑같은 걸 먹으면 얼마지나지 않아 질릴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아파트 모델하우스 내부를 보면 뭔가 바꾸거나 할 여지가 없습니다.
집이라는게 방있고 거실있고 부엌이 있는 것이지 특별할 것이 뭐가 있는가? 그렇다면 아파트도 텃밭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아주 구체적으로 집 하나를 보여드리기는 힘들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글이 길어지고 재미없어지니 그 이유는 생략하겠습니다- 몇가지 떠오르는대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집의 내부공간이 쉽게 가변될 수 있는 집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벽의 위치가 원한다면 쉽게 움직이거나 없앨수 있다던가 하는 식도 가능하지만, 집의 내부중 한쪽을 아주 큰 빈공간으로 만들어 놓는 것에서도 가능합니다. 별거 없습니다. 그냥 스튜디오 집처럼 비워두는 겁니다. 그러면 원하는대로 가구를 배치하고 분할을 해서 쓰고 싶은대로 살겠죠.
물론 모델하우스집은 진짜 분양되는 집과는 다릅니다. 진짜 분양되는 집은 그보다 훨씬 더 비어있죠. 하지만 공간의 분할이 문제입니다. 분양아파트를 둘러 보면 집의 공간을 최대한 특정한 크기를 기준으로 등분해 놓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성과 보편성에 기반해서 자르면 침대가 들어가고 책상이 들어갈 공간 그리고 사람이 들어갈 공간기준으로 자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바로 고정된 구조, 모든 공간이 넓지만 반대로 모든 공간이 좀 아쉬운 집이 됩니다.
집은 큰 공간부터 아주 작은 공간까지 다양하게 있는 집이 재미있고 좋습니다. 이 방이나 저방이나 다 똑같지 않으니까요. 저는 틈새 공간에 설치한 길쭉한 서재나 다락방같은 공간을 좋아합니다. 어떤 분은 집을 지을 때 아무 가구도 없이 딱 책상하나 들어갈 만한 공간의 작은 방을 요구하는 분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 안에 들어가 혼자있고 싶어서 입니다.
이야기를 좀 돌리면 저는 요즘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점점 현기차같아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첫째로 뭐가 옵션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차를 사면서 뭔가 점점 여분으로 사는게 많아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둘째로 아주 덩치가 큰데 왠지 큰 덩치에 비하면 내부공간이 작다는 느낌을 주죠.
그럼 현기차 같지 않은 차란 어떤 차인가? 먼저 제 취향이라는 점을 밝히며 이 차는 제가 일본에서 살던 당시에 사서 쓰다가 가져온 차라는 점을 밝힙니다. 그래도 설명을 위해 보여 드립니다. 제가 지금 타는 차는 혼다의 프리드라는 차입니다. 그 차는 이렇게 생긴 차입니다.
이 차의 특징은 첫째로 외관을 보면 아주 작아 보이는데 실내공간은 크다는 겁니다. 산타페같은 차를 보면 차가 아주 커보이죠. 이 차는 이 차에 7인이 탈 수 있다는 것이 처음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깥에서 보면 작아 보입니다. 바깥은 작아 보이는데 실내공간은 큰 차입니다. 그 이유중 하나는 실제로 실내공간을 최대화하기 위해 차가 박스형에 가까우며 차의 앞부분도 짧기 때문입니다. 프리드 계열은 다 이런 특징을 가집니다. 그래서 저는 10년전에도 프리드로 차박도 여러번 했습니다. 이 차의 이전모델은 뒷자석이 완전히 평평해 져서 이불깔면 그냥 캠핑카였거든요. 성인 두명은 아주 넉넉합니다. 저희는 아주 어린 아이둘을 데리고 넷이서 잔 적도 있습니다.
둘째로는 접이식 자전거가 아니라도 뒷 좌석을 접어 올리면 실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중간좌석의 가운데 틈에 앞바퀴를 넣으면 됩니다. 이 기능을 저는 아주 잘쓰고 있습니다. 여행갈 때 자전거를 싣고 가기도 했고, 아이들 학교 태워줄 때 자전거도 같이 태워가서는 자전거 채로 내려주고 오면 돌아올 때는 자전거를 타고 오기도 했었죠. 물론 다른 자동차도 지붕에 싣거나 자전거를 매달 장치를 설치하면 되지요. 하지만 그런 건 이 차와 다릅니다. 바구니까지 달린 성인용 자전거도 1대라면 뒷문으로 그냥 들어가니까요. 저는 접이식 자전거 한대를 더 싣고 아들과 둘이서 전국여행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 차를 거론한 이유는 이 두가지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쉽게 실을 수 있다라는 특징하나는 별거 아닌거 같지만 활용하기 에 따라서 차의 의미를 상당히 바꿀 수 있습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텃밭이 하나 있다. 작은 틈새 서재가 하나 있다. 옥상에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다는 것이 집 전체의 활용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상력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삶에는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두번째는 많이 가지면 많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건 댓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사실 공간이 필요하고 기능이 필요하면 더 큰 차를 사면 그만입니다. 무슨 트랜스포머처럼 이리저리 변신하는 내부공간도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소유를 한다는 것은 첫째로 비싼 돈을 치뤄야 하고 둘째로 관리와 유지로 고생해야 합니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값도 더 비싸지만 연비가 나빠지고 주차하기 힘들어 지는 거죠. 더 큰 집을 사는 거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좋은 집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함이 있고 좀 불편한 면이 있는 집입니다. 복잡하고 채워진 집은 비싸고 관리하기 어렵죠. 그리고 제가 손을 대고, 제가 상상력을 펼쳐서 제 삶을 펼쳐나갈 가능성이 제약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말하는 불편한 집입니다. 내 손으로 뭔가를 하는 부분이 있으면 불편한 집이 됩니다. 호텔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제가 하룻밤 머물곳인데 거기를 내 식대로 왜 꾸미겠습니까. 그냥 대접받는 것이고 남이 최적화시켜놓은 것이죠.
우리는 마치 호텔을 전전하는 것처럼 이런 저런 집을 떠돌아 다니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골치아프지 않고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사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이사를 자주 다닙니다. 하지만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것을 기정 사실화한다면 그런 집에 사는 비용에 이사비용도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사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들뿐만 아니라 금전적 피해도 상당한 일입니다. 결국 고정되고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는 집의 실질적 주거비용은 이때문에 상당히 증가하게 됩니다.
요즘은 집의 트랜드가 어떤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집은 점점 더 채워져 왔습니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집을 더 잘 팔기 위함이고,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실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어느 이상이 되면 이런 집은 아주 멋지면서도 동시에 최악이 될 수 있습니다. 거의 내 마음에 들지만 약간 부족하고 어차피 내 마음에 진짜로 들려면 리모델링을 싹해야 할 판인데 그러기에는 이미 채워져 있으니 안좋은 것이죠. 요즘 집밥이나 셀프인테리어같은 것이 미디어에 자주 나옵니다. 점점 도구도 좋아지고 싸지며 방법도 퍼집니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낡은 집이라도 내가 직접 고치는 쪽이 더 싸고 마음에 든다고 할 것입니다. 스스로 하면 작은 쪽창앞에 쟁반만한 탁자라도 가져다 놓고는 매우 흡족해 하게 됩니다. 저는 그게 일종의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이 본격화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그간 갇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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