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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온돌에 대한 한 유명 건축가의 씁쓸한 의견

by 격암(강국진) 2020. 1. 15.

2020.1.15

어제 있었던 일이다. 우연히 보게된 한 유튜브 방송에서 나는 한 유명건축가가 온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 이 사람은 유현준이며 나는 안도 다다오를 소개하는 이 비디오를 봤다.) 하지만 평소 우리의 온돌에 대해 높은 관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는 실망이었다. 그는 온돌에 대해서 극히 부정적인 태도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돌이 우리의 고유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곳에서는 온돌때문에 조선이 발전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 지금 널리 쓰이는 방식인 온수파이프식의 바닥난방에 대해 말할 때는 로이드 라이트 라는 건축가가 그때 라지에타는 있었으니 그걸 그냥 바닥에 깔았다는 식으로 말해서 마치 조선의 영향은 하나도 없이 생겨난 것처럼, 그것이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사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일본을 방문하면서 바닥난방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경복궁 자선당을 일본에 옮겨놓아서 만들어진 조선관이었다.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그렇다. 경제란 매우 복잡한 것인데 정말 온돌때문에 조선이 발전이 안됐을까? 이거 너무 단순한 일반화가 아닌가? 

 

나는 우리 것이 세계최고라고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건축가가 온돌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매우 사소하게 생각하는 느낌을 받고 나는 큰 실망을 느꼈다. 한국 건축이 좋아질 가능성이 없구나 하는 절망을 느꼈달까. 동양화와 서양화중의 어느 것이 좋은가하는 질문은 둘째치고 동양화를 보면서 서양화의 기법중심으로 조금씩 고치면 최종적으로는 뭐가 될까? 조잡한 서양화가 된다. 나는 그런 비평을 보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온돌은 좋건 나쁘건 한국 건축의 시작이자 끝이며 기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한국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집에 살고 생활문화는 집이 가지는 구조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옷도 음식도 생활예절도 그렇다. 그것은 현대에도 다르지 않다. 왜 조선에는 2층집이 거의 없었고, 왜 한옥은 한옥의 모양을 하고 있고, 왜 오늘날 한국이 아파트로 채워지게 되었는가에 이르기 까지 온돌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바닥난방이 세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한국처럼 그것이 보편화된 곳은 없다. 이런 온돌을 무시하면 결국 그 끝에가서는 한국적인 삶 전부를 다 무시하고 우리에게 맞지 않는 조잡한 서양건축의 복제판을 좋은 건물이라고 평가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온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 한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왜 한국은 아파트로 채워졌을까? 물론 이 이유 하나만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생각하는 겨울의 적정실내온도라는 것이 외국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틀림없다. 즉 적은 연료비로도 따뜻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아파트가 한국에 퍼지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실제로 단독주택 이야기 나오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오랜동안 겨울의 난방비가 말도 안되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기름보일러가 말도 안되게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온돌덕분에 굉장히 추운 겨울을 가졌지만 따뜻한 실내를 당연한 것으로 안다. 외국에 살아 본 사람들은 알지만 한국사람처럼 겨울에 실내에서 가볍게 입고 지내는 나라는 없다. 겨울에 집안이라지만 슬리퍼도 안 신은 맨발에 반팔티입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은 십중팔구 한국인이다. 에너지 낭비로는 세계 1등인 미국인들도 대개 못그런다. 외국인들에게는 겨울은 실내에서도 추운 계절이고 거의 외출복과 같은 옷을 실내에서 그냥 입고 있는게 당연하다. 사실 햇볕의 영향때문에 실외가 실내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위에서 말한 동영상에서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일본의 집이 겨울에 너무 추워서 화가 날 정도였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대에도 말이다. 

 

바닥난방은 그 따스함이 실내에서 뭔가를 태워서 난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닥전체가 은근히 따뜻하고 그 공기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올뿐만 아니라 에너지 효율이 전혀 다르다. 가스던 목재던 뭔가를 실내에서 태우는 난방은 산소를 소비해서 환기를 해야 하고 심지어 전기 난방도 집안의 온도를 높이려면 불쾌해서 한국에서 처럼 기분좋게 온도를 올릴 수가 없다. 이런 난방도 공기가 쉽게 탁해 진다. 그러니 데워진 열기의 대부분이 바깥으로 나가며 집안 온도가 균일하지도 않고 게다가 사람이 딛고 서있는 바닥이 집안에서 가장 춥다. 이래서 온돌의 따스함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요즘도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들은 바닥난방을 경험하고 놀랜다. 추운 날씨가 있는 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 1등은 대개 따뜻한 방바닥이다. 

 

이뿐이 아니다. 실내의 산소를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측면도 있다. 방이 클 필요가 없다. 방에서 산소를 소모하는 난방은 방이 크지 않으면 자살이다. 방에 문닫아 놓고 연탄피우고 장작태우는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구들방은 작아도 된다. 연료절약을 위해서는 오히려 작은 게 좋고 방을 잘게 나눌 수 있다. 즉 방을 두개로 나눠서 절반의 연료로 절반의 면적을 데운다는 방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로 벽난로를 두개 설치하고 작은 방에서 절반의 연료로 각각의 방을 데울 수는 없다.  한옥이 마당과 대청마루 그리고 작은 바닥을 가진 여러개의 온돌방들로 구성되게 된 것은 온돌 난방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족이 각자의 방에 있어서 사생활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이전에는 라디에터로 난방하던 독일인이 집크기를 두배로 늘렸는데도 바닥난방을 하자 난방비가 절반만 나왔다고 한다. 통상 전통한옥에서 구들이 깔려 있는 곳의 면적과 지금의 아파트나 단독주택의 바닥면적을 생각해 보면 절반도 안된다. 대청마루나 쪽마루 면적이 훨씬 더 크다. 그러니 바닥난방이라는 것이 따뜻하면서도 얼마나 연료를 아끼는 친환경적인 방식인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이 시작되자 조선적인 것은 후진적인 것이라면서 한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서구적인 것, 일본적인 것이 좋다며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이나 남따라 양옥을 지은 조선인들은 당장 문제를 겪는다. 너무 너무 추운 것이다. 그래서 일제시대에는 지어놓은 서양집을 버리고 온돌집으로 이사간 일본인들 때문에 빈집이 몇천채나 생기는 소동이 나서 동아일보에 신문기사가 나기도 했다. 

 

이 문제는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다. 서구식집에 익숙한 한국인이 동시에 만족할 정도의 실내온도를 비싼 연료비를 쓰지 않고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파트다. 집이 사방과 위아래로 다른 집에 의해 막혀있으며 그 집들도 각자 바닥난방을 하니 단열이 엄청나고 옆집도 지붕도 열을 보내준다. 

 

물론 아파트는 아파트의 문제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숲이 되어가는 한국의 현실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걱정한다면 온돌과 한국의 주거라던가, 한국의 주거문화가 왜 지금처럼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냐던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것없이는 변화의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한국의 주거문화는 완전혼란상태다. 서구에는 백년 이백년된 집도 많다. 집이 튼튼해서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다. 주거문화의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백년 이백년전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사람들이 생활문화의 연속성을 가지고산다. 그런데 한국은 온돌을 가져서 서양집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지어진 집에 살았는데 외세에 의해 생활문화가 확 바뀌어 버렸다. 이제 우리는 한옥에도 못살고 서양집에도 못산다. 따뜻한 온돌바닥위에 다리가 달린 침대를 놓아 하늘에 떠서 자는 우리 생활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그러니 문제가 생기고 자꾸 집의 유행이 바뀐다. 그러니까 몇십년된 집은 한국에서 쓸모없는 집으로 여겨진다. 옛 것은 후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돌을 무시하는 건축가들이 있다면 나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하건, 일본에 있는 집, 미국에 있는 집, 유럽에 있는 집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다 놓으면 대중화되지 않는다. 여름에도 문제지만 겨울에 너무 춥다. 그럴 때 한국 사람들은 너무 엄살이 심하다던가, 한국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처럼 두껍게 옷을 입고, 침대에 들어갈 때는 뜨거운 물이 들어간 물통같은 것을 쓰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것이 옳을까? 한마디로 이 집은 너무 좋은 집인데 한국인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는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제 아무리 다른 장점들을 말해도 온돌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바닥난방에 대한 고민없이 지은 집은 한국문화에서는 매력없는 집이며 그저 부자의 돈장난이다. 

 

그래도 요즘은 상황들이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작은 집의 장점을 말하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집을 짓고 마당과 대청마루를 기초공사없이 가지면 싸고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도 요즘에는 단열재나 좋은 창호가 개발되어서 연료비를 많이 안쓰고도 실내온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 그 극한에는 패시브 하우스라고 불리는 집이 있는데 이런 집은 창이 오중창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면 집짓는 비용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어떤 식으로건 한옥의 지혜를 흡수하지 못하는 집은 한국에서 실패라고 생각한다. 한옥 그대로 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도 한국에 오면 거의 쓰잘데 없다. 그들은 바닥난방에 거의 무지하다. 그 말은 그들은 한국인의 음식, 옷, 생활습관에 거의 무지하다는 뜻이다. 한국사람들이 한옥에 살지 않게 된지는 벌써 백년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한국문화속에서는 그 영향력이 강력하다. 바닥이 냉골인 방을 사람 사는 방이라고 여기는 한국 사람은 없다. 

 

한국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온돌을 중심으로 천년 이천년을 헤아리며 만들어 온 문화보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 이렇게 쉽게 바꾸자고 하는 것은 마치 한국에 와서 한국말 뭐가 좋냐고 그냥 영어쓰자고 하는 식의 건방이다. 그런 건방을 피하는데 있어서는 온돌에 대한 고민, 한옥에 대한 존중이 정말 필요하다. 

 

이 글은 본의 아니게 유현준씨에 대한 성토의 글처럼 되어 버렸다. 그다지 긴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끝에 돌아온 내게 한국 주거 문화의 혼돈이 너무 절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할 첨단에 서있는 것이 건축가들일텐데 내가 본 비디오는 내게는 실망이었다. 유현준씨는 아니지만 나는 다른 유명 건축가가 자신은 30년째 아파트에서 산다고 고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로서는 그것이 주거문화의 혼돈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였다. 아파트만 짓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모두가 말하며 특히 건축가들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들도 실용적인 집을 찾지못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싸고 행복한 자기가 살고 싶은 집말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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