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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한국집의 두번째 근본

by 격암(강국진) 2020. 6. 21.

오늘은 광주에서 있었던 경향하우징 페어에 다녀왔습니다. 가구며 건축자제 그리고 주택건설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었던 재미있는 행사였고 동시에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더군요. 이 행사는 여러 시공사들이 시공예들을 보여주며 상담을 해주는 일도 하고 있었는데요. 덕분에 저는 많은 신축 주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오늘도 새삼 그 모든 집들이 집짓기에 있어서 뭔가 첫번째 걸음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필요이상으로 크고 필요이상으로 비싼 집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집의 두번째 근본이라는 글로 아주 구체적으로 어떤 집이 바람직해 보이는지를 다시 써볼까 합니다.  

 

저는 지난 번에 한국집의 근본은 온돌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링크는 여기). 그러나 한편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비록 어떤 한국분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고 어떤 분들은 그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만 압도적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바닥난방이란 그냥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의식적으로 한국집의 근본이 온돌이라고 깨닫고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다들 결론적으로는 온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한국집에는 바닥난방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유실되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한국집에 있어서 두번째 근본이라고 할만한 것은 한국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사람들은 그게 뭐지도 모르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거문화가 혼란속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즉 아주 중요한 것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뭘까요? 그건 바로 담장입니다. 한국 집의 두번째 요소는 담장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거의 다 파괴해 버렸고 그 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 이때문에 한국집은 거의 다 망가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기억해야 합니다.

 

서양집의 펜스는 한국집의 담장이 아니다.

 

서양집은 폐쇄적인 건물외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담양 소쇄원에 있는 집의 사진이 그걸 잘 보여줍니다. 

 

담양 소쇄원

한칸짜리 온돌방에 긴 처마를 가진 지붕을 덮고 나무 마루로 둘러싼 이 집은 한국집의 근본이 온돌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집은 하나가 빠져있습니다. 그게 바로 담장입니다. 숲속에 홀로 있는 집이니 담장이 필요없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집들이 연달아 모여있는 상황에서는 이 소쇄원의 집은 마치 서양식 주택을 외벽없이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집 안이 다 들여다 보입니다. 이래서는 완성된 집이랄 수 없지요. 그래서 한옥은 항상 담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입니다. 

 

방범역할로서는 이런 낮은 담은 의미가 없습니다. 담장이라지만 한옥의 담은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낮게 지어서 문보다도 낮은 기이한 모습입니다. 이런 담장이 가지는 역할은 오직 하나입니다. 집바깥을 다니는 사람에게서 집 안쪽을 가려주는 겁니다.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는 한 저절로 보이지는 않게 하는 겁니다. 

 

한국집의 두번째 근본이 담장이라는 말은 한국집을 짓고 싶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담장이라는 말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담장입니다. 이게 어떤 차이를 주는 가를 요즘 아주 인기있는 중정이라는 것과 연계해서 생각해 봅시다. 중정이란 서양식 건물에서 건물의 중간에 존재하는 작은 정원을 말합니다. 요즘 중정이 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건축비가 많이 들어서 그렇지 누구나 중정이 있는 건물을 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정이 있는 집

그런데 중정이 있는 집이 왜 비싸고 가지기 어려울까요? 너무나 간단한 답을 한국인은 잊어버렸습니다. 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정의 사전적 의미에 매달리지 말고 담장이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담장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는 정원을 가지게 됩니다. 그 담장 안의 공간은 건물의 바깥이면서도 내 집 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집에서 담장은 건물의 외벽입니다. 그러니 그 안의 정원은 모두 중정이죠. 

 

지금 세간에서 흔히 보이는 서양식 주택은 토지의 크기가 얼마이든 기본적으로 집 안의 공간만 쓰겠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건물 안과 바깥이 강하게 구분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은 하나의 성처럼 폐쇄적입니다. 반면에 위의 소쇄원 건물을 보십시요. 건물은 바깥으로 한없이 개방적입니다. 사람들은 방안보다 마루에 더 오랜간 나와있을 것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건물 바깥공간이 명백히 생활공간입니다. 다만 거기에 담장을 둘러 치면 그부분이 더 확실해지죠. 담장과 건물 사이의 공간 즉 보통 정원으로 부를만한 공간도 생활공간인 겁니다.

 

바깥으로 터진 한옥 그걸 둘러싼 담장

그러니까 한국집의 개념식으로 접근하면 그 비싸다는 중정은 사실 아주 싸야 정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집을 너무나 터무니 없이 비싸게 짓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단순한 집을 상상해 봅시다. 이 집을 지을 때 먼저 토지의 사방에 담부터 칩니다. 그러면 땅에 아무 것도 지은 것이 없는데도 이미 상당한 일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면 그 담의 안쪽은 내 사적인 공간이니까요. 그 안에 텐트를 치고 살아도 내 집은 집인 것이죠. 

 

이미 담장이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든 이상 서양집에서 하듯이 우리는 큰 집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토지 안에 위에서 보여준 소쇄원의 한칸짜리 집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사실 그 집은 기와집이거나 한옥일 필요도 없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인기있다는 타이니 하우스 같은 집이어도 됩니다. 다만 한칸짜리 방에 마루를 달고 긴 처마를 가진 작은 집이면 됩니다. 분명 이 한칸짜리 집만을 보면 그 집은 작고 초라한 집입니다. 그러나 그 주변에 담장이 있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담장안의 공간은 전부 내꺼니까요. 우리는 거기에 나무와 꽃을 키우고 채소를 키울지 모릅니다. 거기에 창고하나를 가져다 놓고 잡동사니 집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쓸 수도 있지요. 생활공간이 너무 부족하다면 담장안에 또다른 집한칸을 지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하고 그 두집을 나무 데크로 연결하면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보는 대청마루를 가진 한옥집 한채가 됩니다. 한옥의 핵심은 초미니 한칸 집들을 서로 이어놓은 것입니다. 

 

이런 집의 전제조건은 바로 담이 공간을 잡아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이 바깥으로 개방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집의 담은 사실상 건물의 외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담을 없애면 한국집은 시작도 못하는 겁니다. 

 

서구식으로 지어진 전원주택의 한 예

 

이 집의 장점을 몇가지 나열해보겠습니다. 첫째 이 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그래서 사실 토지가 클 필요가 없습니다. 전원주택은 대개 백평이고 때로 이백평도 넘는 땅에 세워집니다. 하지만 건평이 그런건 아니죠. 건평은 훨씬 작고 나머지 땅은 정원이니 텃밭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채 집 바깥에 방치됩니다. 하지만 서양식집은 그 폐쇄적 구조상 집바깥의 공간을 잘 쓸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땅은 땅투기 용으로나 점거했을 뿐 사실 의미없이 점거된 것입니다. 저는 단독주택단지를 자주 산책합니다만 집 바깥의 공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기후에서 그런 공간은 너무 덥거나 추워서 결국 방치됩니다. 사람들이 이따금 낭만적인 척 하려고 참고 버틸 뿐입니다. 

 

일본주택가의 단독주택

 

반대로 일본처럼 단독주택을 다닥 다닥짓는 곳은 작은 집안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서 집은 그냥 건물입니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가면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에서 계속 지내야 하죠. 물론 중정같은 것을 꿈꾸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중정을 가지려면 아주 비싸지요.

 

그런데 담장이 있고 그 안에 작은 건물이 있는 집은 토지가 작아도 그 안쪽이 바깥으로 터진 공간입니다. 그리고 건물이 클 필요가 없습니다. 15평짜리 아파트와 앞에 마당을 가진 15평짜리 단독주택은 전혀 개방감이 다릅니다. 결국 담장이 있고 그 안에 타이니 하우스 같은 것을 가진 집이 가장 공간 활용이 좋고 동시에 개방감이 있습니다. 게다가 건물자체가 작으니 건축비도 훨씬 싸죠. 지붕도 기초공사도 해야할 부분이 작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30평짜리 땅에 담장을 치고 9평정도되는 작은 집을 지어도 그 집은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단독주택이 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예는 아니지만 저는 종종 이것이 바로 안도 다다오가 16평짜리 땅위에 지은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

 

 이 집은 16평이라는 작은 대지 위에 두 개의 초미니 2층집을 넣은 겁니다. 그리고 그 중간은 중정이 된 것이죠. 

 

담장과 작은 집의 조합은 건축비가 싸고 공간활용도가 높다는 장점이외에도 또 한가지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집이 잠재력을 가진 재미있는 집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작은 집은 담장안의 공간을 다 채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은 건축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냥 내버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필요에 따라 그 공간을 쓸 수 있는 겁니다. 빈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가지고 놀수 있는 장난감같은 겁니다. 

 

그런데 서구식으로 지은 건물의 안쪽 공간은 대개 어마어마하게 큰 집이 아니면 그런 공간이 없습니다. 각각의 공간은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써야 합니다. 사는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이리저리 바꿔쓸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저는 인기있는 티비 프로그램인 구해줘 홈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집구경을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대한 성같이 큰 집인데 그 집이 너무나 잘꾸며져 있는 겁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은 야 대단한 집이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좋겠다라는 말을 절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집은 너무 완벽하게 완성되어져 있어서 뭘 더 할게 없을 것같았습니다. 그래서는 사는 재미가 없을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잘 꾸며진 집을 주인이 파는 이유는 집을 가지고 하는 장난이 끝나서 그 집에서는 뭘 더 할게 없어서 파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저 내 땅에 담장을 쳤을 뿐인데 담장을 가지게 되면 마술이 일어납니다. 담장안의 공간이 전부 내 장난감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과 물건을 맘대로 늘어놓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게 이런 집의 장점입니다. 

 

이런 집이라고 했지만 이 집은 담장을 가진 집입니다. 그리고 사실 본래의 한국집입니다. 담장안의 마당은 우리의 상상력이 살아나는 공간이었고 한국의 집은 사는 사람의 의도대로 변하는 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한옥을 버립니다. 그리고 담장도 버렸습니다. 온돌을 가진 그 집들을 저는 여전히 한국의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조차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담장이 없는 한국집은 날개없는 새와 같아 보입니다. 

 

하우징 페어에서 구경한 수없이 많은 집들은 물론 멋진 집들입니다만 제게는 한국집으로서는 아쉽게 보이는 집들이었습니다. 이런 집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이렇게 완성된 한국집의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찾을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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