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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통령에게 뭘 기대해야 하는가.

by 격암(강국진) 2017. 4. 20.

우리는 대통령에게 기대해야 하는가.


대선 국면이니 사람들이 지지자별로 나뉘어 지고 분노하고 열광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국면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을 크게 바꿀 것이고 미래도 바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대통령에게, 나아가 정치에게 기대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너무 당연해 보여서 별로 중요해 보이기 까지 질문이 중요해 지는 이유는 물론 질문의 답이 통상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리 단순하지가 않아서 그렇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질문에 잘못 대답하고 있다. 정치는 원래 썩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것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정치를 무슨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램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는 이렇다. 내가 뽑고 싶은 대통령이라는 제목을 다음에 밑에다가 자기의 소원을 적는다. 그리고 그렇게 해줄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게 대통령과 램프의 요정을 착각하는 것이 아니면 뭔가. 마찬가지 이유로 그냥 대통령이 아니라 위대한 대통령을 뽑으면 분이 우리 소원을 들어줄꺼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같은 잘못이 만들어 내는 최악의 결과는 그들이 램프의 요정을 뽑으려고 하기 때문에 후보자들이 램프의 요정인 척해야 하고 많이 램프의 요정인 하는 허풍쟁이들이 선거에서 잘나고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엉터리 방식으로 표를 던지게 된다. 그런데 집지어줄 인부를 뽑겠다고 시작해 놓고는 얼굴 잘생긴 순서로 사람을 뽑는게 말이 될까? 백층짜리 건물지으면서 1억으로 이 건물지어줄 사람있나요라고 질문하면 어떨까? 결국 우리의 지나친 기대가 문제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대통령에 대해서 잘못된 기대를 하게 되면 대통령을 뽑는게 아니라 거짓말장이를 뽑기 쉽다. 나는 백층짜리 1억에 지을 수 있다고 나서는 사람이 다른 후보들에게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치 어떻게 하면 것인가에 대한 답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설사 나는 그걸 몰라도 누군가 아주 똑똑한 분은 그것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부분에 있어서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수많은 석학들이 모여서 경제를 연구해도 학문적인 성과가 있을 뿐이지 학문으로 실제로 나라를 부강하게 있다고 객관적으로 증명된 방법은 없다는 말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수십명이 모여도 안된다. 그게 되면 세계 정부세워서 노벨상 수상자들로 귀족정치하면 지상낙원 올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정치에 대한 답의 객관적 존재를 혼동한다. 그리고 혼동의 결과 우리는 어떤 뛰어난 사람을 뽑으면 사람은 한국 정치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으며 답대로 나라를 운영하면 나라가 될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대통령을 램프의 요정으로 착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봐야 비슷한 오류다. 


정치나 대통령은 그런게 아니다. 여기서 실종된 , 잊혀진 것은 주인의식이다.   우리는 정치에다가 소원을 비는게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우리의 힘으로 이뤄지게 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국민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기업이 잘되게 하고 싶거나 환경을 보호하고 어떤 복지 혜택이 증가하기를 원하는가? 모든 좋은 일에는 댓가가 있다. 그리고 댓가는 우리 국민이 스스로 지불하고 그걸 얻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을 우리가 댓가를 치루고 얻을 것이다. 내가 오늘 점심에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지 초밥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가 정답을 알고 있을 것같은가?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뽑으면 사람이 우리에게 공짜 점심을 것같은가? 그런 없다. 대통령을 누굴 뽑건 우리는 댓가를 내고 댓가에 대해 결과를 얻을 것이다. 


대통령이 멍청해서는 안되겠지만 누군가가 제일 똑똑하다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게 아니다.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면 당연히 사람은 뛰어나야 하지만 개인의 능력은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다. 대통령은 동네 반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대한민국은 그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다. 따라서 대통령은 무수히 많은 사안에 대해서 사실 방면의 전문가보다 아는 적을 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두루 살피고 두루 느끼는 능력이 중요하다.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고치고 두루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지적인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감수성의 문제가 크다. 대통령이 기업가들의 고충에 대해 아무런 공감대가 없다거나 혹은 블루컬러 노동자 혹은 자영업자 혹은 학생들에 대해서 아무런 공감대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비극이 생긴다. 비극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바로 최악의 선택이었던 박근혜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는 태도를 지키는 중요하다. 누구나 대통령은 국민을 통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통합이란게 누구에게나 괜찮다고 하는게 통합이 아니다. 통합이란 합의된 원칙을 지켜나가는 합리성을 말한다. 모두가 자동차 타고 다니자면 교통신호를 누구나 지켜야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벌주고 막아 한다. 그렇지 않고 친한 사람들에게 특권을 주면 도로는 지옥이 것이다. 


박근혜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 바로 최악의 선택인 이유는 이제껏 내가 것안에 있다. 박근혜의 지지자들은 상당 수가 왕과 대통령을 구분하지 못하고 뭔가를 대통령이 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래서 박근혜가 거짓말과 허풍을 치면 그걸 믿고 박근혜를 뽑는 것이다. 마치 박근혜가 자기 호주머니 돈으로 국민에게 해줄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으니까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커지는데 효과는 별로 없다.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에 그렇게 충격을 받는가. 어린 자식을 집단적으로 잃어버린 부모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서적 환자같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으며 특히 기관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있는 것같아서 그렇다. 불안한 것이다.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 물에 빠져 죽는다는데 한가하게 정유라 말이나 챙기고 자기 머리한다고 미용사 부르고 기다리고 있는 대통령의 행동같은 것을 보고 우리는 충격을 받는 것이다. 


박근혜는 소통의 능력이 없어서 세상을 두루보지 못하고 무엇보다 투명한 공식적 절차를 붕괴시킨다. 특혜가 넘쳐난다. 그래서 교통신호없는 나라가 가지는 교통지옥같은 것을 만든다. 정유라 특혜나 블랙리스트 사건, 언론통제, 관제대모, 검찰에 대한 개입따위를 통해서 우리는 그런 지옥이 어떤 건지 이미 경험했다. 언론도 검찰도 전문가집단도 믿을 없는 나라는 불안하기만 하다. 


불행하게도 모든 설명은 잊혀지기가 너무 쉽다. 그게 우리가 선거판에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공짜 점심을 찾고 많은 허풍을 치도록 후보들을 밀어부치며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정서적 치료가 필요할 것같은 사람이 나라를 제대로 운영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공식적 절차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과 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행정부를 동네 노인정 집행부쯤으로 생각하면서 그러면 어때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에만 대선은 단순히 누구의 승리에 대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국민이 같이 생각해 보는 생산적인 시간이 것이다. 스스로도 안믿는 허풍과 억지로 나라가 가득 채워지는 대선은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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