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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가면

by 격암(강국진) 2017. 5. 1.

겸손하다라는 말처럼 그 뜻이 뻔한 말도 없는 것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현실적으로는 이 말처럼 오해되는 말도 없는 것같다. 왜냐면 현실적으로 저 사람은 참 겸손하다라는 말을 듣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오만하다고 말해질수 있으며 같은 의미에서는 남들이 보기엔 그다지 겸손하지 않은 것같은 사람이 겸손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 한가지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작해 보자.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겸손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가. 통상 우리는 남에게 좋은 말만 하고 훌룡하다고 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세상에 두 사람밖에 없다면 이렇게 겸손을 이해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 세상에는 세사람이상이 있기 때문에 그냥 좋다 좋다 나는 못났다하는 것으로는 겸손한 행동이라는 것에 파탄이 온다. 


예를 들어 어떤 겸손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우리 가족들에 비해 여러분들의 가족은 참 훌룡하십니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이것은 언뜻 들으면 그저 평범한 겸손의 말같지만 뒤집어 말하면 우리 가족을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가족이라고 해도 내가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이 정말 겸손의 본래 뜻일까? 우리는 같은 상황이 자기 학교나 자기 고향 자기 나라에 대해서도 벌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물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한국이나 자기 고향이나 자기 가족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사람이 과연 겸손한 사람일까? 그것도 오만이 아닐까?


이 세상에는 오만한 겸손이 있는가 하면 겸손한 오만도 있다. 오만한 겸손이란 매우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말해지는 권력자나 유명인들의 행동에서 종종 나온다. 그들은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변 지지자들에 의해서 과대평가 받는 일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오만하게 구는 것이야 물론 겸손한 것이 아니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겸손한 오만도 있는데 그것은 일종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즉 훌룡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겸손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여기 아주 얌전한 아가씨 인척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칭찬하고 있고 그녀는 언제나 우아하고 침착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이런 여성을 오만하다고 비판하는 일은 굉장히 힘들다. 실제로 그녀는 매우 겸손하게 말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그녀가 그녀 자신으로 행동하고 말하기 보다는 어떤 가짜 인격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요조숙녀가 아닌데 요조숙녀인척 행동하는 것은 과연 겸손한 것일까? 그것은 마치 가짜 경찰뺏지를 차고 경찰인척 행동하거나 가짜 학위를 가지고 박사행세를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아니라고? 그녀는 상대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일에 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면 가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싸우게 만드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거짓은 거짓을 유지하기 위해 더 큰 거짓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요조숙녀의 가면이 벗겨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당황해서 해서는 안될 짓까지 하게 된다. 


요조숙녀인척 하는 여자만 그런게 아니다. 세상에는 많은 가면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자신의 어떤 면들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다른 이유때문이라고 말하려다가 자꾸 거짓을 말하게 된다. 자신의 그런 면을 지나치게 파고드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큰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통상 권위주의에 젖어있다라고 표현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결국 어의없게도 겸손이라는 가면에서 시작된 면이 크다. 우리가 성인군자처럼 구는 것을 겸손이라고 파악할 때 결국 성인군자가 아닌 본인의 어떤 면이 썩어가고 권위주의로 그걸 숨기고 폭로가 되면 분노하여 싸움이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섹스에 대해 지나치게 숨기고 은폐하는 나라도 한 예다. 그런 나라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다들 애도 안낳고 살 것 같지만 뒤는 썩어간다. 포르노는 불법인 나라에 매춘은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모텔이며 여관은 넘쳐만 나게 된다. 이에대해서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결국 지나친 가면과 위선이 근원적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이제까지의 말을 정리해 보면 결국 솔직하지 못한 겸손이란 가식일 뿐이고 그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하면 어떨까? 그런 사람들이 현실에서 겸손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을까? 한국의 철학자나 한국의 정치가에 대해 어떤 사람이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당장 오만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는 오만한 겸손이 있는가 하면 겸손한 오만도 있는 것이다. 


일이 이쯤 되고보면 우리는 겸손이라는 개념에 정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겸손이고 뭐고 그저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솔직하게 행동하며 남이 나를 뭐라고 부르던 신경쓰지 말자고 하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이라는 단어야 말로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겸손에 대해 글까지 써가면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겸손이라는 단어의 핵심적인 부분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옳고 그른 것도 가치있고 없는 것의 판단도 한계가 있다. 한계의 인정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까지 말하는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여러모로 인간적 규모를 초월한 문명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인간의 경험과 판단이 인류 전체를 포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가는 21세기에는 출현하면 안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좁은 눈으로 본 시시비비를 기반으로 정의를 지나치게 세세히 실현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 일을 결정하게 하기 보다는 자기가 믿는대로 세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로 일어난 전쟁의 문제로 이미 이것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자연파괴를 일으키는 개발공사의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래를 모르니까 뭐가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판단도 명확하지 않다. 개발하여 지금 인기가 있는 뭔가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보존하여 남겨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큰 후회를 하게 될지 모른다. 강이고 산이고 파괴해도 나중에 그것을 복원할 수 있다고 쉽게 믿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겸손이란 단어를 포기할 수가 있겠는가.


겸손이 필요한 세상에 겸손의 가면만 넘쳐나고 그 가면밑에는 오만이 가득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척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않아서 저는 겸손한 사람입니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그런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서 권력의 자리로 가는 정치가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안타깝게도 희망을 권위에서 찾는 많은 청년들은 그런 겸손의 가면을 쓴 권위들을 숭상하면서 자신이 장님의 안내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보인다. 물론 그런 권위자들은 종종 나는 정말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실은 알고 계시면서 괜히 그러시네 하는 식의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길을 잃게 되도 누구 탓할 수도 없어진다. 하지만 말없이 사람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사람들,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말없이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자기 양심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하고 싶다. 어차피 경쟁사회고, 누구나 다 허풍을 좀 치는 거니까. 정말 괜찮을까? 그렇게 말한다면사이비교주들도 다 괜찮은거 아닌가? 


겸손이란 남에게 보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여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겸손했지만 그는 어떤 의미로는 매우 오만했다.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투표에 의해서 독약을 마시게 되었을 정도로 그의 오만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그가 그런 오만을 부리지 않고 다른 사상가들의 생각이 매우 훌룡하고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걸 가르켜 과연 겸손이라고 해야 했을까?  겸손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오류다. 그냥 남들하는대로 이런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구나 하고 판단하다가는 우리는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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