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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과 실용주의

by 격암(강국진) 2017. 5. 6.

양명학과 실용주의에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부족한 면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주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점들일까? 나는 위당 정인보의 양명학연론과 루이스 레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을 읽었던 기억을 통해 그것을 정리해 보고 싶다. 


위당 정인보는 일제시대였던 1933년에 양명학 연론으로 출판하게 된 글들을 발표했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조선은 양명학을 하지 않고 주자학을 해서 망했다. 


양명학이든 주자학이든 유학이 별로 인기없는 요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당이 말하는 것에는 역사에 대한 통찰은 물론이고 21세기 한국에 대해서도 통하는 것이 있다. 애국자라고 자칭하는 한국인들이 군대기피자들로 가득한 정파를 지지하면서 성조기를 휘두르는 문제가 뭔지 그리고 그 정파가 걸핏하면 전쟁불사론까지 외치는 것의 문제가 뭔지에 이 문제는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실용주의와 양명학을 같이 생각해 볼 때 보다 분명해 진다. 


루이스 레넌드가 쓴 메타피지컬 클럽은 미국의 실용주의 사상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를 몇몇 사람들의 생애를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데 실용주의가 뭘까? 실용주의라는 말은 종종 잘못 이해된다. 잘못 이해되어진 실용주의는 배금주의와 구분되지 않는다. 좋은 게 곧 돈이고 따라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은 곧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지 실용주의가 아니다.


실용주의를 잘못이해하는 이유는 실용주의의 전제에 해당하는 것을 무시하고 실용주의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실용적이라는 말은 칸트의 프래그마틱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그 단어가 쓰인 문맥은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참과 거짓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용주의의 전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얼마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는 자각이다. 


이러한 자신의 무지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으면 실용주의라는 말은 거의 의미를 잃고 거꾸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실용주의의 아버지 중의 하나였던 홈즈는 대법관이었는데 그 자신의 정치적 신념은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그의 판결은 미국의 진보주의를 돕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이 믿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엉터리 실용주의로는 진보적 가치는 모두 돈이 안되는 비실용적 생각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돈밖에 모르고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무시하는 사람이 독단적인 개발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의 행동을 실용주의적이라고 말하고 보존론자들을 비실용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것이다. 실용주의의 시작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 즉 회의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가지 주장에 대해 겸허하고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무지라는 말은 주자학과 양명학을 나누는 핵심이기도 하다. 대학에는 격물치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주자학은 앎에 이르기 위해 객관적 세계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양명학은 격물을 마음을 바르게 한다로 말한다. 양명학은 인간은 양지를 가지고 있어서 이미 앎은 우리 안에 갖춰져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다만 그 마음 속의 혼란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용주의의 본질은 단순한 회의론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것에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주체성이 있다. 실용주의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챈스라이트와 실용주의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를 구분했던 것은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무지 속에 있으며 결코 어떤 것에도 확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떤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믿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점에 있었다. 즉 자신의 무지를 알지만 자신을 믿고 실수와 실패를 각오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결코 어떤 절대적 진리를 배운 후에 그 진리에 따라 행동해 나가는 것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해서 삶은 포기되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를 상징하던 예송논쟁같은 것은 주자학에서 나왔다. 주자학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했기 때문에 점점 더 거대한 지식과 예절의 체계로 변하여 인간을 억압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안의 인간은 점점 더 약해졌다. 양명학은 자기 안의 양지를 살피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불쌍한 아이를 보면 우리안의 마음이 그 아이를 도울 것을 명하게 된다. 그런데 주자학은 옳고 그름은 나를 넘어서 세상에서 결정되어 있으니 불쌍한 아이를 보면 도우라는 법이나 윤리적 규칙을 지키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런 형식에 계속 빠지면 우리는 불쌍한 아이를 보았을 때 그 아이를 측은하게 느끼는 마음이 오히려 사라질 것이다. 의무적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면서 불우이웃에 대한 감정은 없어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주자학은 지켜야 할 법칙을 자꾸 만들고 양명학은 자기를 키운다. 


위당은 조선시대의 최명길을 바로 양명학자의 좋은 예로 말한다. 최명길은 주자학을 배워서 말만하고 행동이 없는 선비들과는 달리 나라를 위해서 행동하고 청과 화친을 주장하면서도 명에 대해서 의리를 지키려고 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주자학자들은 이기기가 불가능해서 나라가 무의미하게 망할 것같은 상황에서도 뒤에 숨어서 청과의 전쟁을 주장하고 일단 청나라에 굴복한 상황이 되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용기도 내지 못했다. 


실용주의는 무지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강력한 자기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즉 주체적 인간이 되지 못하면 실용주의적 삶을 살 수 없다. 결정도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하는 것이다. 위당은 실용주의에 대해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당이 양명학을 들어서 말하는 주자학의 문제란 실용주의를 만들어 미국이 세계적 패권국가로 성공하게 되는데 기초가 되었던 미국의 철학자들이 느꼈던 미국의 문제와 같았을 것이다.


미국은 19세기에 정신적으로 유럽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교수들이 미국유학후에 자리를 얻는 것처럼 미국인들도 유럽에 유학하고 유럽의 관념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수동적이고 비주체적 태도로는 미국은 결코 강대국이 될 수가 없었다. 양명학이 일본에서 혁명을 위한 철학으로 받아들여졌듯이 실용주의도 유럽의 철학에 대한 반항과 혁명의 철학이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념에 대한 저항이었고 따라서 미국은 미국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조선의 길을 걷지 못하고 남의 나라나 오래전 성인이 쓴 글귀에만 매달렸다. 양명학처럼 진정한 충신과 활동가를 키워내는 학문을 하는게 아니라 말싸움과 사실 확인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을 양산했다. 그것은 조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대한민국도 그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지식과 개념들이 적힌 글들은 수입하기 쉽다. 따라서 스스로의 주체적 윤리의식이 없는 가운데 지식과 개념만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여 옳고 그른 것이 뭔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바로 주자학을 다시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유교망국론을 외치지만 따지고 보면 남의 나라 철학자의 개념을 외우는 것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사람들도 주자학자나 다름이 없는 셈이다.


한국은 지금도 여러 강대국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마땅히 우리의 한쪽이 되어야 할 북한과도 갈라져서 불쌍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또다른 위당이 또다른 양명학 연론같은 것을 쓰면서 이래서 한국이 망했다고 자탄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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