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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뒤에 남은 것들

by 격암(강국진) 2017. 5. 10.

지금은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좋은 아침이다. 이명박이 당선된 선거일이래 나는 쭉 세상이 어두워보였다. 설마했는데 이명박이 당선되었을 때 나는 반년정도는 정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명박을 겪고서도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것을 봤을 때는 한국이 원망스럽기 까지 했을 정도다. 이제 오랜만에 우리는 잘하는 것은 둘째치고 세상에 내놓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가지게 되었다. 정말 긴 기간이었다.


이런 기쁨의 말과 함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려고 했지만 어제의 개표방송이며 오늘의 뉴스들을 들으니까 방송패널들이 하는 말들이 자꾸 나에게 몇마디 더 적어보게 만든다. 누가 말했던가 선거가 끝나면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투쟁이 벌어진다고. 그 말은 사실인 것같다. 


우선 새로운 대통령은 국민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다. 이런 말은 문맥을 무시하고 들으면 사실 무색무취한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 맞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국민통합이란게 뭘까? 유시민도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지만 온 국민이 다 똑같이 생각하게 만드는 나라는 국민통합된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그건 무서운 세뇌가 있는 독재국가다. 그러니까 어느정도의 반대가 있는 것은 국민이 분열된 나라의 모습이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 것이다. 정상적인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은 우리가 독재에 중독되어져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래도 국가가 반으로 쪼개져 패거리로 싸우는 구도가 된다면,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는 법도 서로 싸우다가 실행이 안되는 일이 생기고, 반대편에 반대하기 위한 행동이 국가에 해를 끼치는 경지에 이른다면, 그것은 국가분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사실 오랜동안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당의 수는 여러개지만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이 대표하고 박정희가 대표하며 흔히 보수라고 불리던 세력이 여권을 형성하고 민주화 세력이 야권을 형성하여 싸우는 구도가 한국에서는 계속 이어져 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논평은 세상에 넘쳐났다. 이번 탄핵국면에서 박근혜가 노무현 정부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면 어떻게 그렇게 현 정국에 딱맞는 말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픔은 인간을 성숙시키듯 이명박 박근혜는 대한민국을 성숙시킨 점도 있는 것같다. 박근혜 탄핵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분열되지 않았다. 그걸 분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분열이 뭔가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들이 아직도 박근혜 정권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 세상을 박근혜 세력대 반박근혜 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국민의 80%는 탄핵에 찬성했고 이번에 대선에서도 친박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홍준표가 받은 표도 20%남짓이다. 이정도면 국가는 분열되지 않았으며 박정희 신화는 붕괴했다고 봐야 한다. 


다자구도에서 문재인이 41%의 득표를 했다고 해서 다수결이 아니니까 국가가 분열해 있다는 말은 옳지 않다. 그래도 분열한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반론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이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분열해 있다, 분열해 있다고 하지 말고 다시 한번 한국을 보라는 것이다. 언제 한국이 이것보다 통합되어져 있었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건국이래 가장 통합된 상태다. 더 통합을 해야 한다고? 그말은 옳을지 모른다. 그러면 얼마나 뭘 어떻게 하는게 더 통합하는 것일까? 통합하면 얼마나 더 통합할 수 있을까? 그건 대통령이 지지율 80%달성해서 쭉 끌고 가는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는 북한처럼 독재국가가 아니다. 그건 민주국가에서 가능하지 않다. 아무리 잘해도 사람들의 기대치는 점점 더 올라가기 때문에 분열은 필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국민통합이 과제라는 말은 과장되어져 있다. 지금은 국민통합을 과제로 남긴 상황이라기 보다는 국민통합이 이뤄낸 정권교체를 축하해야할 상황이다. 


방송을 듣다보니 한 패널이 이런 말도 한다. 돌려 돌려 말하지만 결국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적폐청산을 자제하잔다. 그런데 이 말도 패거리 논리로 나오는 것이다. 적폐청산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말이다. 지금대로 하면 경제가 망하니까 하는게 적폐청산이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데도 분풀이로 하는게 적폐청산이 아니지 않은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들어난 것은 이 나라에서 정책결정이 정말 엉터리로 행해지고 실행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입시도 못믿고 올림픽준비도 못믿고 외교적 합의도 못믿게 되었다. 특히 엉터리 인사가 세상에 너무 많았던 것같다. 모든 일들이 너무 어이가 없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걸 고치는 것이 적폐청산 아닌가? 경제를 위해 적폐청산 살살하자는 발상은 뭔가 현실인식이 크게 잘못되어져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적폐가 나라를 갉아먹고 있다. 경제를 위해서 적폐청산을 미루자는 말이 앞뒤가 안맞는다. 


또 다른 패널은 이런 말도 한다. 홍준표가 당을 재건한 것에 성공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나는 이런 발언에 대해서는 앞의 말들만큼은 강하게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조금만 길게보면 이런 말은 틀린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한국당은 당을 재건한 것이 아니라 보수를 불살라 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떻게하든 피할 수 없었던 일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박근혜 탄핵이래 이 나라의 보수세력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하나는 낡은 박정희 신화를 버리고 합리적인 보수세력이 되어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고 또하나는 그래도 죽어도 박정희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한다는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다. 유승민의 실패를 보면 알듯이 전자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이 사는 길이고 후자의 길은 훨씬 쉽지만 훨씬 더 확실히 죽는 길이다. 


친박을 숙청해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친박정희 정서로 홍준표의 24% 득표를 만들어 낸 자유한국당이 과연 친박당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지금은 그렇게 해서 12%받는 대신에 24%받아서 기쁠지 모르지만 어차피 대통령이 못되면 24%나 4%나 차이가 크지 않다. 24%를 받기 위해서 자유한국당을 도로 친박당으로 만들었는데 그 당을 내부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가능할까? 진정한 당의 재건을 위해서는 대선에서의 패배도 감수하고 정도를 걸었어야 하는거 아닐까?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 홍준표같은 후보를 냈고 친박은 당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홍준표도 워낙 친박이 불리하니까 얼굴마담으로 나온 것이지 대선끝나고 나면 당을 장악하기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소위 보수진영에 남은 것은 부질없는 내부 싸움 뿐이다. 그리고 그 싸움속에서 당세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일단 판이 그렇게 되면 지금의 보수진영은 영구히 양당구조에서 퇴출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은 옛날에 친박당이라는 제정신이 아닌 사교집단이 있었다라는 전설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니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홍준표와 유승민이 단일화하기 불가능했던 것처럼 박정희 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이제 그걸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과 안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구같은 박정희 종교의 본산에서는 총선도 계속 이길테니까 친박은 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홍준표의 대선으로 인해서 이땅의 보수세력은 거의 완전히 헤어날수 없는 함정에 빠졌다고 봐야 한다. 당을 재건했다는 것은 환상이다. 


사람들은 심상정의 대선에 대해서도 논평한다. 이번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6.2%다. 이걸 가지고 진보정당 역사의 새로운 한획이라는 둥, 10%를 달성하지 못했으니 실패라는 둥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평론 모두가 매우 근시안적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대통령이 되기는 불가능한 정당이었다면 대선이란 결국 정의당을 알리는 기회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정의당은 이번에 뭘 보여주었을까?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은 얻은 것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심상정의 지지율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어차피 당선권이 아닌 심상정이 몇퍼센트 더 얻는다는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이인제같은 사람이 대선에서 몇퍼센트 더 얻어서 우리나라 정치에서 의미있는 자리를 유지했는가? 


심상정과 정의당이 잃은 것은 바로 그들이 눈앞의 선거에 매몰되어 문재인을 비판하다가 김대중-노무현으로 내려오는 민주정부를 부인하는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리 쉽게 문재인이던 참여정부던 누구나 비판할 수 있으니 심상정이 참여정부나 문재인을 비판할 수 있다고 원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참여정부때 당시의 보수당과 손을 잡고 정부를 괴롭히던 진보세력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이것때문에 진보매체라는 한겨레도 쓰레기 언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심상정은 대선기간중 여기에 손을 댓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연정이 불가능한 집단이라는 불신은 이미 있는데 그것을 폭증시켰다. 


정의당에게 있어서 이번 대선은 순혈주의가 득세하는 결정적인 과정이 되었다. 국민의 당도 그렇지만 정의당도 사실은 어느 정도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뿌리가 포함되어져 있다. 그것은 노무현을 지지했지만 민주당과 함께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유시민이 대표적이다. 또 학생운동에 참여해서 정치로 진출한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도 옛날의 민주당에는 참여하기가 어려워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때도 개혁국민정당이라는 외부조직에서 노무현 지지를 한 사례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도 정의당에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정의당의 당원들 중에는 동의를 못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사실 이 친 노무현 계열의 피가 아니었으면 정의당은 의미있는 지지율을 받는 대중적 정당이 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통해서 그 연합은 깨어졌다. 그리고 민주당과 협조해 나가는 정의당의 모습을 볼 가능성은 훨씬 더 적어졌다. 그래서 정의당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결국 정의당이 재벌을 비판하면서 재벌을 개혁할만한 세력의 뒤를 쳐서 재벌의 칼노릇을 하는 이상한 진보당이 될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어차피 대통령을 배출할 정당이 아니었던 정의당의 대선이란 정의당이 어떤 합리성을 가진 당인가를 보여주었나에 따라서 평가해야 한다. 나는 정의당이 이번 대선을 통해 오히려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들이 의미있는 숫자의 의석을 가지고 책임있게 국정을 운영해갈 집단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순혈주의로 물들어가다보면 어느새 당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것이다. 이런 문제에 비하면 심상정이 지지율 5%를 더 얻었나 못얻었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노무현이 언제 30%쯤 얻었다가 조금 조금 더 해서 대통령이 되었나? 사람들의 주목은 받지만 표가 없을 때가 바로 대통령이 될만한 사람, 국가를 운영할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다. 문재인도 결국 참여정권의 위기때마다 등장했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정의당은 이번에 그 기회를 잃었다. 자신들의 정권욕심만 들어내 보였을 뿐이다. 그들은 6석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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