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우리시대의 혁명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

by 격암(강국진) 2017. 4. 27.

나는 세상에는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불릴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문장은 이것이 어떤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미국대통령, 케네디나 클린턴은 다 바람둥이였다. 그런데 그러니까 그들은 인간쓰레기이고 절대 정치따위 해서는 안되는 나쁜 사람들이며 차라리 부시나 트럼프가 좋다.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감이 오는가? 몇가지를 지적해 두자. 첫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문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주 많다.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절대 사소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결론이 분명히 합리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바보나 이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착각이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되고 박근혜가 당선된다. 


둘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문장은 한국인에게는 외국인 미국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이 문장의 문제점을 느끼기가 쉽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사회의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당신과 직접 관련있거나 당신이 관심을 가진 어떤 것 그러니까 부동산 정책이나 대기업정책 혹은 FTA같은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경우 비슷한 문장의 문제점을 느끼기는 훨씬 더 어려워진다.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가지는 뿌리는 두가지 요소들이다. 하나는 자유나 진보의 핵심을 공동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판에 의해 최고의 답을 도출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자유주의자들 혹은 진보주의자들은 각자가 자유로이 주장하고 비판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사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파악하는 진보는 분열하기 쉽다. 지금도 심상정이 문재인을 비판하면서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이 문장은 마치 어떤 헌법이나 성경구절처럼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진리로 느껴진다. 


여기에 두번째 요소가 도입되면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커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현대사회는 매우 크고 복잡하며 따라서 어떤 개인의 삶도 다양한 측면을 가지게 되었고 정보는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 요소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다.


우리 다시한번 처음의 문장을 읽어보자.


미국대통령, 케네디나 클린턴은 다 바람둥이였다. 그런데 그러니까 그들은 인간쓰레기이고 절대 정치따위 해서는 안되는 나쁜 사람들이며 차라리 부시나 트럼프가 좋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뭐가 문제인지 좀 더 분명해지기 시작하는가? 위의 문장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우리가 케네디나 클린턴이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듣는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귀족들이 날마다 접대부를 끼고 술을 마셔도 그런 이야기는 언론에서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것이 상식인 사회에서는 저런 이야기는 일반 국민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설사 들어온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도 별로 없다. 


그런데 요즘은 그와 다르다. 또한 나는 바람피는 남자들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모든 사안은 끝없는 세부사항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정보가 빠르게 흐르고 어떤 사람이 온갖 일에 관여되는 상황에서 사실과 거짓을 뒤섞어서 뉴스를 만들어 내면 우리는 항상 어떤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실의 다른 면은 잊혀지기 쉬운 것이다. 즉 살인범은 관대하게 대우받고 교통신호를 어긴 사람은 길거리에서 돌에 맞아 죽는 것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중 낙관적인 사람들은 우리는 가열차게 검증을 해야 하고 모든 일은 다 검증가능하며 그것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즉 그것만으로 좋은 세상이 온다. 이것은 한편으로 관찰에 의해서 이론을 검증하는 과학적 태도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부부싸움하는 부부의 말을 좀 들어보기 바란다. 과연 그런 싸움에서 선악이 언제나 분명히 갈리던가? 인과는 계속 이어져서 과연 누가 먼저 가해자가 되었는가가 아리송해 지는 일이 흔하지 않던가? 과연 우리가 모든일을 다 제대로 검증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문제에 해결책이 될까? 현실적으로 세상에 기자가 많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모든 일에 대해 떠들고 검증하게 되는가?


나는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쯤에서 왜 내가 그것을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로 부르는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부분적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이 문제는 너무 뿌리가 깊어서 해결책이 뭔가를 들어야 문제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완화하고 극단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바로 기계적 사고에서 유기적이고 확률적인 사고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의 핵심은 기계적 사고가 현대적 사회환경에서 적합하지 않을 때 기계적 사고를 적용하는 것에 있다.  물론 기계적 사고가 뭔지 확률적 사고가 뭔지는 추상적이지만 그다지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게다가 일단 사고를 바꾸는 것을 실행에 옮겨보면 놀랍도록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기계적 사고란 이런 것이다. 당신이 자동차를 본다고하자. 이 자동차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단지 하나 브레이크가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당신은 이 자동차를 타서는 안된다. 당신이 수학문제를 푼다고 하자.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풀이는 길고 복잡하다. 그런데 수백줄이 넘는 그 계산에서 당신은 모두 맞았지만 단 한번 당신은 계산이 틀렸다. 그렇다면 당신의 답은 약간 틀렸을까? 그렇지 않다. 당신의 답은 턱도 없이 틀려서 계산을 전혀 하지 않고 아무 답이나 말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유기적이고 확률적인 사고란 이런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평가하는 대상의 여러 성질들이 다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정치가가 동성애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것은 그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취하는 태도에 그리고 나아가 교육문제에 대한 시각과 연관성을 가진다. 게다가 설사 그가 특정한 문제에 있어서 특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태도가 바뀔 확률은 다른 주제에 대해 그가 취하는 입장과 연관이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평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말을 어떻게 하건 그의 미래행동도 기계적이 아니고 확률적이다.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말한다고 해서 그리고 그 말이 옳다고 해서 경제적 민주화가 이뤄질 세상이 올거라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기계적인 사고는 비교적 단순한 문제 즉 인위적인 문제, 문제의 범위가 잘 정의된 학술적인 경우에서 효과적이다. 기계적 사고는 매우 우수하지만 실은 문제가 있다. 인간의 관념이나 이론이 그러하듯 그것은 현실에 대한 근사이며 종종 아주 조잡한 근사다. 그런 근사는 답이 없을 때도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착시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 빈곤층 중산층 부유층이 있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이런 근사를 도입하면 우리는 그런 분류와 개념에 따라 우리 사회에 대한 분석을 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해 빈곤층은 이렇고 중산층은 이렇고 하는 식으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우리 사회에는 천가지의 계층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의미있어 보이는 분석을 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패턴을 보는 능력은 그렇게 고차원에서는 약하기 때문이다. 어떤 설명을 만들어 내도 직관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속는 것처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현실에 더 가까운 것은 후자다. 애초에 우리 사회에는 그냥 개인이 있을 뿐이며 심지어 그 개인도 돌멩이처럼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기계적 사고에 중독되어 있다. 그 이유는 학교교육이 대부분 그래서다. 현대의 학문이라는 것은 세상일을 배타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기본이다. 즉 배중률이 말하듯이 A가 B라면 그것은 B아닌 것이 아니다. 학교의 규칙이나 법은 이상적인 상황에서 불법과 합법을 정확히 가른다. 우리는 복잡한 규칙을 정확히 따르면서 사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는다. 그 훈련은 기본적으로 위에서 말한 기계적 사고를 몸에 새겨넣는 것이다. 


그래서 언뜻보아 매우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도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피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그들이야 말로 그 문제가 더 심하다. 그들은 기계적 사고에 너무나 중독되어져 있는 나머지 논리적 사고란 곧 기계적 사고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란 바로 기계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따라서 설명을 들어도 문제를 이해하질 못한다. 내가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가 뭔지를 이해하려면 그 해결책을 먼저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래서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왜 망하겠는가.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때문이다. 공부많이 했지만 순진한 이상주의자들때문이다. 세상일은 모두 옳고 그른 것 둘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의 오해다. 많은 일은 사실 회색지대에 있다. 인간의 말이나 개념이라는 것이 본래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 지나치게 회색으로만 보여도 문제지만 세상일이 모두 흑백으로 분명하게만 갈려보인다면 그건 당신이 기계적 사고의 광신론자라는 증거다.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때문에 많은 진보적 인사들은 위선자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아예 대놓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언행을 하는 트럼프같은 사람이 솔직하다라고 말을 듣는다. 그런데 누가 더 앞에서 말한 자유주의적 사고에 입각해서 행동할까. 다시 말해 누가 더 많은 정보를 대중에게 주고 자신을 비판앞에 노출시킬까. 물론 진보적 인사들이다. 


그렇게 해서 교통신호 어긴 사람은 돌에 맞아 죽을 판이고 살인범은 떳떳히 돌아다니는 사회가 만들어 진다.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를 매우 나무란다.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검증하면 모두가 똥도 겨도 안뭍은 세상에 올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때를 위해 좋아 보이는 사람은 더더욱 강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두가 똥도 겨도 뭍지 않은 그런 때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은 순진하지 않은 사람들은 안다. 왜냐면 검증의 과정에서 개혁의 추진력이 될 세력들이 미리 탈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오직 무차별로 검증의 칼날만 휘두르면서 자기만 깨끗하다고 하는 사람들만 계속 남는다. 그들은 어이없게도 부패세력의 칼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게 기계적 민주주의의 문제다. 나는 이 문제의 해결책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리가 없다.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유와 진보의 핵심이 과연 비판인지 공동체인지 생각해 보는 일부터 말이다. 비판없는 공동체주의는 결국 패거리 주의로 자기 식구 챙기기고 부패인 것은 맞다. 하지만 애정과 믿음 없는 눈먼 정의는 결국 모두를 살해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정의와 평등 강조하다가 애정과 관심조차 없어지면 결국 진짜 정의는 버려지게 될 것이다. 세상은 논리로 좋아지는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관심과 애정으로 좋아지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