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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권력과 공포

by 격암(강국진) 2017. 10. 2.

공포와 이익공유 그리고 비밀, 이것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3가지 방식들이다. 요즘 박근혜와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이 점을 새삼 많이 느끼게 되고 자명해 보이는 이것들에도 되새길만한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공포에 대해서 그렇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반대로 행동하고 마는 일들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기성권력에 대한 공포때문에 권력에 복종한다. 우리는 대개 공식적으로 누가 어떤 권리를 가지는가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와 다르게 행동한다. 그래서 국민은 평등하다라던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조항은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에 밀려나고 만다. 우리는 뭐가 옳은지 알고 있지만 나섰다가 괜히 피해를 입기 싫다. 권력자가 그 권력을 남용해서 힘없는 대부분의 우리 보통사람을 상처입히고자 하면 그 피해는 복구불가능하기 쉽기 때문이다. 설사 진실이 밝혀져도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학교에서 제적당한다던가 직업을 잃게 된다던가 감옥에 가게 된다던가 심지어 죽게 된다던가 하는 일들은 적어도 보통 시민들에게는 공포스러운 일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세상에는 부끄럼이 없는 용감한자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공포정치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옳은 말을 아주 용감하게 한다. 그러다가 공포정치를 하는 사람 앞에 가면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다. 누가 말하건, 언제 말하건 옳은 말은 옳은 말이라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진리라도 현실에서는 비루한 진리다. 무서운 사람앞에서는 아부하고 입다물고 질문도 못하면서 무섭지 않은 사람앞에 가면 갑자기 소신과 정의감에 불타서 사회정의를 위해서라면 인생이고 지위고 다 던져 버릴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야 말로 정말 비루하지 않은가?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과의 검사와의 대화에 나온 검사들이었다. 대통령에게 학벌을 따질 정도의 무례함을 남발하는 검사라면 정말 어떤 권력앞에서도 숙이지 않고 세속적인 이익에는 완전히 눈돌리고 사는 사람일 것같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시절의 검사들이 과연 그랬던가? 이명박과 박근혜에게도 그렇게 저항했던가?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을 조사하던 검사들을 억압하던 그 검찰이 정말 권력에게 용감하게 저항하던 그 검사들이 맞는가? 그러면서 나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진짜 용감한 사람들은 아무 유명세도 조직도 없이 거리로 나와서 독재권력에게 항의하는 시민들이다. 그들은 사실 인생에 약간의 상처만 나도 평생에 한이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질문할 줄 아는 기자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고 해도 질문을 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고 최순실 박근혜 정국속에서도 박근혜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기자가 없다시피 했다. 물론 모든 기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것은 질문할 수 있는 기자들이 직장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 박근혜정권이 끝난지 정말 얼마 안된 그 시점에서도 문재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다면서 불통 대통령 운운하던 기자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공포라고 하니 두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하나는 지지난 대선에서 나꼼수의 김어준이 쫄지마 씨팔하고 끝없이 외쳤던 일이다. 왜 그는 쫄지마라고 말했고 왜 그는 그걸 욕설로 표현했을까? 많은 시민들이 공포에 젖어있기 때문에 그는 그저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존칭어는 공포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독재권력에게 말해야 할 것은 씨팔이라는 욕이지 그러지 말아주세요라는 존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포를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독재권력과 싸우는 기본이다. 


그런데 공포에 젖어있는 독재권력의 부역자들은 아닌 것처럼 하면서도 공포를 재생산한다. 나는 최순실 박근혜 사태속에서 티비에 나오는 패널들이 걸핏하면 최순실과 박근혜가 사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온 국민이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점들을 보고 분노하고 비웃고 있는 과정에서 그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들안의 공포를 다시 꺼집어 낸다. 말은 그럴 듯하다. 저들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심은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저 근거없는 공포의 재생산이다. 부당한 권력에 부역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정권이 무너진 이유중의 하나는 최순실의 비루함이다. 만약 정말 최순실이 누가 봐도 학식과 카리스마에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김기춘처럼 학벌이 높고 언행 관리가 철저했다면 국민적 분노는 조금더 자제되었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벽은 무너지지 않고 독재권력은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순실을 보면 누구나 느낀다. 겨우 저런것 한테 우리가 공포를 느꼈다는 말이지 하고 말이다. 전두환과 박정희는 언제나 근엄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 이유는 공포를 재생산하기 위해서다.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개인의 힘은 어차피 매우 약하다. 그 개인이 대단하다고 해도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포때문이다. 최순실과 박근혜를 대단한 사람따위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치료해야할 무식하고 상식없는 정신병자들에 불과하다. 


이명박에 대해서도 같은 실수를 하는 일이 있다. 이명박은 물러난 권력인데도 아직도 막강한 권력을 유지한다. 그 이유는 물론 그가 여러 사람과 이익을 공유하기 때문이지만 그가 대중적 공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박근혜는 본래 어리숙한 인형이지만 이명박은 다르다라는 공포다. 그는 치밀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공포다. 과거에 이명박과 같이 일했던 정두언은 방송에 나올 때마다 그 메세지를 던진다. 이명박은 대단하다. 이명박은 대단하다. 이명박은 쉽게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부역자의 비루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마디 해주고 싶다. 쫄지마 씨팔!


다시 말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라도 사회적인 능력은 근본적으로 대중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남의 힘을 빌려서 대단한 힘을 쓰고 있는 것이지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무력하다. 그러니까 어떤 대단한 범죄자라도 사실 그를 힘있게 하는 것은 그 범죄자에 대한 공포다. 공포가 사라지고 나면 이익의 공유도 비밀의 유지도 어렵다. 목격자나 배신자를 단속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중의 가장 강력한 힘은 웃음이다. 거리로 뛰쳐나간 사람들이 울분을 토할 때보다 문화제를 하면서 권력자를 조롱하고 웃을 때 대중은 더 강력해 진다. 이제 거기에는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민주화 운동을 넘어선 것은 21세기의 촛불집회다. 대중이 웃을 때 우리는 대중을 올바른 길에 지킬 수 있다. 이명박이 대단한 사람이니 조심하자고 하는 것보다 이명박의 비루함을 말하고 비웃을 때 이명박은 더 위험해 진다. 엄청난 돈과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의료보험비에서 몇백만원의 돈을 쓰기를 주저하는 그 모습을 지적하는 것이 이명박을 더 위태롭게 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손가락질 하고 웃어대면 모두가 알게 된다. 임금님은 대단한 자가 아니었다. 그저 벌거벗은 미친 사람에 불과하다. 


박근혜도 이명박도 다 꼴사납고 추하다. 그들은 공포로 주변의 입을 다물게 하고 칭송으로 그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싶어하지만 공포를 벗어버리고 그들을 보면 꼴사납고 추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사실 능력이건 운이건 그들이 어느 단계에서 만족하고 개인적 행복을 추구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능력도 안되면서 거짓과 공포로 권력을 잡고 휘둘러서 얼마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입고 상처입었는가? 피해는 그렇다치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얼마나 대단한 것을 얻었는가? 


선의 영웅이 있다면 악의 영웅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에 영웅 따위가 아니다. 그들이 만약 잘못된 것이라도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있었다면 그들은 차라리 악의 영웅이라도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문장하나 말하지 못하는 박근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에게 보이는 것도 출세욕이나 물질욕같은 지극히 소시민적인 욕망밖에 없다. 구질구질한 모습뿐이다. 돈 돈 거리지만 그에게서는 돈을 넘어서는 가치가 없다. 즉 돈과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그래서 그 돈과 권력으로 뭘하겠다는 것인가? 그에게서 나오는 답은 더 많은 돈과 권력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쓰면 된다는 답정도다. 이런 비루한 모습이 악의 영웅이라도 될 사람의 모습인가? 설마 황제테니스치자고 나라를 거덜냈다는 말인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이런 말에 익숙하다. 그런데 현실이 이 말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말을 무의미한 형식적인 말로만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이 말이 옳다. 공포가 없다면 공포때문에 대중들이 악당들에게 권력을 주는 일이 없다면 어떤 악당도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두려움없는 시민들 앞에 홀로 선 악당은 초라한 쥐한마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쫄지마 씨팔이라는 말이 종종 필요하다. 우리 하나 하나는 작고 약하지만 우리는 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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