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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역사의 논리

by 격암(강국진) 2017. 12. 11.

최근에 영화 남한산성을 봤습니다. 영화는 감동적이었고 줄거리도 배우들의 연기도 훌룡했습니다만 유독 제 가슴에 깊이 남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부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청의 칸이나 장수는 용감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반면 우리 편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더 멋있게 나와야 한다는 유치한 관점입니다만 저는 그걸 조금 다른 형태로 질문하면 그게 그렇게 유치하기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런 질문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인가?


비판적인 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만 사실 비판과 칭송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지 뭐든지 대놓고 비판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친일파의 논리에 분노하는 것이죠. 그들은 한국사람이면서도 공평을 가장하고 외국인의 눈으로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위안부는 창녀고 조선은 망해도 싼 나라인데 일본에게 구원을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군부 쿠데타 세력들은 뭐라고 합니까? 광주 민주화운동도 87 민주화 운동도 다 종북이라고 하지요. 


이런걸 전제하고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 과거가 그냥 과거로 있는게 아니라 극복해야할 현실로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박정희가 부관참시되어져야 하는 책임은 주로 박근혜에게 있습니다. 그녀는 박정희를 올바른 역사의 주역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고 그녀의 현재권력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 수록 박정희는 더더욱 철저히 분석되고 비판받아야 하며 정말 일말의 동정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박정희를 극복하지 않고는 이 나라가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의 정통역사는 독립운동을 한 임시정부에서 이어지는 김대중 노무현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산업화세력의 신화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재벌 1대총수들이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같은 보수 대통령들이 잘해서 이나라가 지금같은 발전을 이뤘다고 전혀 믿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나라의 번성은 첫째로 운이 좋았고 둘째로 미국의 원조가 있었으며 세째로 이나라의 민중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도 이나라의 민중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선전되는대로  어떤 엘리트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보같은 결정을 해도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 민중이 있었기에 이나라는 번영해 온 것이죠. 


김대중 노무현이 위대한 지도자인 이유는 그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민주적인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민주적이란 것은 다수의 민중의 뜻을 살피고 그들이 화합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즉 지도자이지만 민중의 도구로써의 지도자입니다. 우리나라의 강점은 민중이므로 민중의 도구역할을 잘할 겸손한 지도자가 나오면 그걸로 한국은 경쟁력이 최대화 되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민중은 억압되어져야만 하고 지도자들이 뛰어나서 독재를 해야 이 나라가 흘러간다는 관점은 현실을 100% 반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장점은 엘리트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번 촛불정국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느 나라에서나 칭찬받습니다만 특히 우리나라는 민중의 수준이 장점이므로 민주적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때 가장 큰 힘이 나오는 나라입니다. 반면에 엘리트들의 수준은 외국에 비해 떨어지므로 대표들이 독재하는 쪽으로 가면 말도 안되는 엉터리국가가 됩니다. 


물론 저라고 해서 한국인들에게 대한 광신도적 낭만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 하나의 한국인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 모두 양심적이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세상에 드문 열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것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한국인만큼 교육에 대해서 열정이 있고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민족도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인들도 일본인들도 한국인만큼은 아닙니다. 유태인 이상의 교육적 열정을 한국인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좋건 나쁘건 유학이라는 틀속에서 세상을 살려고 했던 조선시대의 우리 역사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유학은 물론 중국에서 온 것이지만 야만적 힘의 논리가 아니라 상당부분 이성의 힘으로 국가를 세우고 운영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조선은 이전에 없던 국가였습니다. 유학은 유교라고도 말하지만 그래도 기독교나 불교같은 종교보다 훨씬 과학에 가까운 학문이기 때문이죠. 그 차이가 우리의 피속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문화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고 세계에 유래가 없는 실록을 기록하는 그런 문화는 어찌보면 서구의 문화적 업적에 비할 때 그다지 이룬 것이 없는 것같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남긴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불행은 우리에게 진정한 천재와 그 천재가 뜻을 펼 운이 없었다는 것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르네상스도 없었고 종교개혁도 없었고 뉴튼도 없었습니다. 그럴만한 준비가 서구보다도 더 먼저 있었던 면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금속활자의 사용도 그렇지만 요즘보면 그저 깡통에 불과한 측우기의 사용도 괜히 역사책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종은 15세기의 인물이고 뉴튼은 17세기의 인물입니다. 서구 과학혁명의 본질은 관찰, 기록, 측정이었고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도 참 대단했던 셈입니다. 만약 우리나라도 인도숫자를 쓰고 수학을 발달시켰으며 상업이 발달했었다면 현대과학은 우리나라가 먼저 발전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일찌감치 공부해야 나라를 움직이는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시스템을 출발시켰습니다. 왕도 공부를 해야 하는 나라였습니다. 정도전의 구상은 입헌군주제나 거의 다름없었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수백년 앞서있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있었으니까요. 물론 그래도 우리는 많은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그저 한두가지가 부족해서 실패한 나라나 민족들이 많겠죠. 그래서 이런 것만으로 우리가 우월감은 느낄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래도 뭔가가 남았다는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징기스칸 같은 사람의 영화를 보고 우리도 저런 정복왕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부러워하는 것은 바다속에서 호랑이를 부러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으며 군사를 키워 세계를 정복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현대인이 타임머쉰을 타고 고대로 갔다고 해봅시다. 그 현대인은 현대적 감각으로 인권을 존중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폭력을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야만인 친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습니다. 심지어 여자들에게서도 버림받습니다. 그가 존중해 주려고 했던 다른 사람들도 그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이런 그의 실패를 우리가 목격한다고 해도 여기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이 폭력적인 남자의 야만성이야말로 멋진 것이라는 감정은 아닐 것입니다. 불운은 과거로 간 현대인이 너무 일찍 시대를 앞서서 살았다는 것뿐입니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옳은 것은 역시 현대인입니다. 그 야만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사극을 보면 저는 종종 우리가 제국주의자들이나 정복자들을 부러워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건 침략받은 것은 부끄러워하고 우리가 침략하고 정복하고 약탈한 것은 자랑스러워 하는 부끄런 감정입니다. 그건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진 생각이죠. 21세기라고 해서 군사력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만 오늘날 진짜 힘은 문화와 산업에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책벌레 학생이 깡패에게 맞는 것을 보고서 저런 책벌레 운동이나 좀 하지. 저 깡패 아주 멋지군 그래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에 뒤진 것입니다.


서구에서도 중세는 종종 암흑기라고 말해집니다. 그 이유는 서구의 현재가 그 암흑기라는 중세를 극복하고 나온 문화에 의해서 만들어 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부러 비판적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현대가 만들어 낸 윤리가 중세에 대해 끔찍한 곳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런 서구의 관점을 흡수한 우리는 조선을 볼 때 주로 근대 이전의 문화를 보게 되는 것같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조선 이전의 모든 역사는 현대성을 가지지 못한 극복되어야 할 과거가 됩니다. 


이 나라에서 부자인 사람들은 상당부분 친일세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조선의 역사를 비참한 것으로 말하기 좋아합니다. 조선인들이 한심했다고 하면 할 수록 일제강점은 필연적인 것이고 되고 그 일제에 부역한 역사는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서구적 관점을 흡수한 진보적 지식인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불합리성으로 차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우리는 반만년의 부끄런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된 것같습니다. 부모를 부끄러워하는 자식은 결국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은 자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다고 해서 과거를 무조건 미화하는 것도 물론 옳지 않지요. 비판도 미화도 하지 말라고 하면 모순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이런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가난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반발로 우리 부모가 사실은 부자였다고 하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핵심은 우리가 부자냐 가난하냐는 관점에서 벗어나 부모를 재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때는 그걸 성취했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 시대가 가능하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못난 모습만 가득찬 사극을 보는 것은 왠지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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