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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저글러스 그리고 갑질

by 격암(강국진) 2018. 1. 9.

아침에 뉴스를 들으니 장자연씨 사건 수사를 재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장자연씨 사건의 핵심은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장자연씨를 매춘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것이어떤 댓가가 오고간 매춘이건) 모욕하고 자살하게까지 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법적인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분명히 구체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제하고 말하면 장자연 사건같은 것의 사회적 본질은 우리의 일상속에 깊숙이 존재하는 갑질 문화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것을 특히 최근의 드라마 저글러스를 보면서 새삼 또 느꼈다. 비서와 사장의 연애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저글러스는 교양다큐도 아니고 철학강의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있다고 할 때 거기에 설혹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너그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독 그 부분이 지나쳐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해칠 정도인데다가 장자연사건같은 것이 화제가 되는 상황이 되고보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비서는 일단 예쁘고 몸가짐이 단정한 여성들이다. 게다가 남자들인 직장상사들이 밤이고 낮이고 불러도 나와야 하고 심지어 술접대하는 곳에 불러도 나가야 한다. 상사를 위해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드라마 내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실로 나온다. 우리 직장상사는 나를 성추행하지 않지만 성접대를 요구하는 세상의 요구에 맞추다보니 이런 저런 험한 일들도 감내하는 것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분명 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는 순간 장자연 사건같은 것을 두고 가해자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어진다. 현실은 확실히 매춘이냐 아니냐사이에서 무수한 회색지대가 있다. 장자연씨처럼 잠자리까지 요구당하고 같이 여행까지 가야하는 수준이 되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지만 세상 좀 살아본 사람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흑백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소속사 사장이 그저 인사를 하라는데 인사를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무명 연예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사 자리에 나갔는데 술을 마시고 있으니 술을 한잔 따라보라는데 절대 못하겠다고 할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한단계 한단계 부담스럼고 거부하기 어려운 일들이 심해진다. 남자와 같이 노래를 부르라던가 같이 춤을 추라고 하는 단계를 넘고 만나도 꼭 야밤에 만나거나 술자리나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단계를 넘어서 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만취하는 단계를 넘으면 결국 매춘이냐 아니냐의 선은 한없이 무의미해 지는거 아닌가?


그런데 왜 많은 여자들은 확실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여기에 당하는가. 어딘가에 선을 그으면 처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실질적 매춘을 거부했는데도 마치 그저 인사한번 하는 것을 거부한 거만한 행동을 한 것처럼 말이다. 왜 이런 억지가 가능한가? 바로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때문이다. 모두가 참고 그렇게 하고 사는데 너만 왜 튀냐고 비판받기 때문이다.


매춘이나 성추행의 본질은 권력이다. 사실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일이 많은 여성들이 더 당하고 산다고 할수는 있겠지만 보다 정확한 표현은 그냥 권력자가 비권력자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이라서 당하는게 아니라 힘이 없어서 당하는 것이고 힘없는 남자들도 우리 사회에서는 매춘이나 마찬가지인 더러운 꼴을 당하고 산다. 오죽하면 한국 남성의 40대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는 통계도 존재하겠는가. 군부대에서 장군의 부인에게 모욕을 당한 사병이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여성이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을 주로 남녀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로 권력의 문제로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당하는 을, 병, 정끼리 서로 욕하고 분열하게 되고 결국은 갑질하는 인간들만 더 잘살게 된다.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함께 말이다. 


이렇게 보면 법적인 처벌을 추진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갑질을 되도록 추방하는 것에 있다. 알면서 모르는 척을 그만하는 것에 있다. 우리는 온갖 갑질의 상징같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많겠지만 가장 유명한 예는 바로 최순실과 박근혜다. 이들은 겉으로 들어난 것만 보면 일종의 병자다. 왜냐면 자신들이 온갖 갑질을 했으면서도 자신들이 뭘 했냐고 반문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세상에는 남들의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거세된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무신경하게 갑질을 하고 정상적인 우리들은 그것을 보고 느끼면서도 종종 그것을 무시한다. 귀찮고 나아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깡패가 누군가의 돈을 빼앗고 있는데 끼어들기 위험하다고 외면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가 장자연이다. 아마 장자연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남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자기도 바라는게 있어서 그렇게 한거잖아. 내가 뭘 강요했다는거야', '난 그저 접대를 해주기에 받았을 뿐이야. 그 여자가 그런 심정으로 하는 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세상에 그정도도 못참으면서 어떻게 성공하겠다는거야.' '내 자식같아서 그랬지.', '그 여자는 원래 헤펐어. 남탓만 하기는', '우울증때문이지. 세상이 무슨 문제.'


이런 소리들이 한국 사회에 가득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불편하다. 때로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는게 아닐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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