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잘 모르는 일에는 대증적 치료가 답이다.

by 격암(강국진) 2018. 1. 22.

얼마전에 라디오를 듣다 보니 한 진행자가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은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찬반토론에 주목한단다. 그 찬반 토론을 보면 그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모두가 믿는다는 듯이 요즘은 언론에서 연일 비트코인 문제가지고 찬반 의견을 내놓게 하느라고 바쁘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어떤 특정한 방식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가지는 폐해를 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대상에 대해 알고 싶으면 찬반토론을 치열하게 벌여야 하고,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규정하고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과학적 방법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라디오 진행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자꾸 말을 시키고 되도록 가열찬 찬반 토론을 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는 가운데 중요한 아이디어와 이해가 생겨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란 본래 내뱉게 되면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 살인자인것을 희미하게 믿어도 일단 내가 나는 그 사람이 살인자일 확률이 높다고 믿습니다라던가 그 사람은 살인자입니다라고 말하게 되면 나의 믿음은 더 굳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 더 그렇고 따라서 사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열된 토론을 벌이면 의견은 대개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한다. 실은 그 사태에 대한 솔직하고 정확한 소감은 나는 잘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토론을 하면서 점점 더 나는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주어진 사태에 대해서 어떤 극단적인 대처를 해야만 한다고, 우리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게 뭔지 아니까 말이다. 


비트코인은 우리가 그게 뭔지 알수  없는 것중의 하나다. 비트코인은 신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오늘날의 알수없는 현실에 기반한다. 만약 각 나라의 경제적 현실이 지금과 달랐다면 비트코인 열풍은 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두가지를 즉각 지적할 수 있는데 첫째로 부자나라들이 다 엄청난 빚더미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갚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빚이다. 그런 정부들이 돈을 발행하면서 내돈은 확고한 실체라고 주장하니 그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비트코인 정도는 아니지만 세계 통화가치가 크게 등락을 보이는 것은 이때문이다. 언제 어느 정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지 모른다. 


둘째로 이미 국가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진지가 한참인데도 각 나라들은 통화를 가지고 지나치게 큰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환전수수료가 엄청나다. 내 돈인데 국경을 넘나들수 있는 돈은 통제되고 그렇게 할 경우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직구라던가 해외여행이라던가 사업이라던가 유학이라던가 하는 이유로 국민들은 국가의 경계선을 아주 쉽게 넘나들고 있고 넘나들어야만 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 여기에 현실과 제약간의 충돌이 있다. 가장 튼튼한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 장벽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한국 경제건 미국경제건 스스로 원해서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장벽이다. 그런데 그걸 자꾸 넘어야 하는데 장벽으로 가로 막으니 그걸 뚫고 싶은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은 기술적으로 그런 장벽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을 보여주는 예다. 비트코인이 설사 없어져도 다른 더 기묘한 방식이 가까운 미래에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비트코인을 범죄시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범죄와 착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기성경제시스템일 수도 있다. 그것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욕한다. 물론 비트코인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기성 패러다임에 자신이 매몰되어있다는 생각이 없는 채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건 세상의 변화를 뒤집으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와 야동이 소통된다고 인터넷을 끊어버리자고 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와 삼성에게 나쁘니 수입품은 무조건 쓰지 말자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비트코인을 반드시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비트코인에 대한 대처가 더 합리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해 대처할 때 이론적이고 본질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 되지 말고 대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긴 계획을 세우거나 우리가 모르는 것에 사기라던가 구세주라던가 하는 딱지를 붙이지 말고 눈앞의 급한 문제에 대해서만 조금씩 대처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에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서울 사람 사는 모습에 대해서 싸우고 다투고 하다보면 서울 사람이 보기에는 다 틀려있으면서도 자기 생각들이 옳다고 나뉘어 싸우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시골사람들의 서울에 대한 생각이 틀려 있다는 사실보다 더 나쁜 것은 어떤 식이건 그 시골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이 옳다고 믿게되는 것이다. 즉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더 나쁘다. 그것은 앞으로 어떤 증거가 나타나도 그것에 대해 장님이 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싸움이 심해지면 서울 사람이 가서 서울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듣지를 않게 된다. 이미 자기가 뭘 알기 때문이다. 


지금 언론에서는 자꾸 이사람 저사람 불러서 말을 시킨다. 그 상황에서는 잘 모른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의견은 무시되고 비트코인은 이것이 핵심이라고 분명하게 강조하는 사람일 수록 즉 나는 뭔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의 의견일 수록 주목받게 되어 있다. 게다가 같은 사람의 의견도 단순화된다. 애초에 토론이 벌어졌던 뒷 이야기를 들으면 유시민도 정대승도 비트코인에 대해서 강하게 어떤 의견을 피력하고 싶어했던게 아니다. 그들이 한 말들 중의 일부가 기사화되고 기사화된 말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찬반이 생긴다. 그리고 찬반싸움속에서 생각은 굳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찬반의 구도는 상당부분 언론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성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걱정은 되는데 사실은 잘 모른다라는 생각정도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답이 없는 가운데 언론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간다. 거래소 폐쇄발언까지 쉽게 나온다. 나는 현재의 비트코인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얼마든지 있다. 증권이나 부동산거래에도 있다. 하지만 어떤 무식한 관료가 증권에 투기적 성격이 있어보이니 증권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하겠는가? 그런 가능성을 시사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 자체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실제로 비트코인 거래도 그것때문에 더 출렁였다. 그 출렁임속에서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온다. 이런 것은 대증적 처방이 아니다. 이것은 본질주의적 딱지붙이기로 비트코인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고 규정하는 행위다. 사실은 잘 모르면서 말이다. 


게다가 비트코인으로 누군가가 큰 부자가 되는 것을 모두 사기나 나쁜 것으로 보는 시각, 나아가 그것을 범죄로 보는 시각도 문제다. 투기는 좋지 않은 것이지만 어떤 경제적 게임에도 크게 돈을 버는 행운아들이 나온다. 뭐가 투기인지 투자인지 뭐가 사기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명확히 갈라지지 않는다. 지금의 세상의 부자들은 모두 땅파서 번 노동임금으로 그 재산을 쌓았는가? 나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는데 저 사람들은 투기고 불로소득이라고? 그 말에는 진실도 있지만 상당부분의 거짓도 있다. 특히 본인이 폐지줍으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한국에서 좀 산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거짓이 더 많다. 비트코인 시스템이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알고 그것을 단순히 나쁜 것으로 보는가. 


비트코인 거래를 진정시킬 대증적 요법은 많이 있다. 실명제로 돈의 흐름을 명확히 하고 세금같은 것을 내게 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도 그런 방법들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비트코인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의 진짜 문제는 사학재단이고 부자 종교집단들이며 국방비리다. 비트코인 때려잡듯이 그런 문제를 언론이 때려잡았으면 한국은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일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떼돈 번 사람보다 기독교로 돈 번 목사, 교육 시스템을 장악하는 사학재단 가문들 그리고 매카시즘에 기생하여 돈을 버는 방산비리세력이 더 악질이니까 말이다. 그들은 정신을 훨씬 더 크게 오염시킨다. 이런 현실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언론은 자신들이 뭘 알고 있다는 거만함을 보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중립이라는 웃기는 위선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겸손해야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국민에게 뭘 가르쳐주겠다는 태도는 시대에 뒤져 있다. 당신들은 계몽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계몽주의자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뒤로 물러서서 보면 우리는 합리적인 판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잘 모르는 상황에서 토론을 지나치게 격화시키고 오히려 어떤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반드시 합리적 결론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우리는 그저 우리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피해의 정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대증적 요법이 적당할 것인가에 대해 담담한 분위기에서 여론을 모아야 한다. 딱지붙이기로 이것은 저것이다라고 말해버리고 흑백논리로 빠져드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크게 망치는 것이 언론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무식함에 대해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은 사회가 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