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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가 무너지는 것이 제일 아프다

by 격암(강국진) 2018. 1. 24.

영화 변호사에서 노무현역의 송강호는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친다. 그렇다. 국가란 국민이다. 그런데 그 말을 뭘로 증명하는가. 바로 헌법으로 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국가란 곧 법이라는 말도 국가란 국민이라는 말만큼이나 옳은 말이다. 국민간의 약속이 법으로 실체화되어야 사람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국가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국가란 곧 법인 것이다. 


어제는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때 법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한 짓에 대해 조금 들었다. 아내가 오랜만에 피디수첩을 했다면서 그 내용을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벌금을 내게 했다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으므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것은 꼭 힘있는 사람의 경우에만 그렇다라는 말들이 생각난다. 그 이상 생각나지 않는 것은 갑자기 화가 나서 대화를 멈추고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법이란 약자의 편이어야 한다. 중립이 아니다. 애초에 강자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사회라면 법이 필요없다. 그런 사회라면 거대 법인이나 거대 파벌의 힘들에 대해 개인이 저항할 방법이 없다. 강자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가 사회적 강자들이 어떻게 자기몫을 챙기지 못할까를 걱정해 줄 필요가 없다. 나같은 평범한 시민이 청와대 비서실장을 해고하거나 삼성회장을 재계에서 은퇴시키거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반대의 일은 너무나도 쉽게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1987년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 왜냐면 그 개인과 그 개인의 가족의 눈으로 그 사건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자의 눈은 그렇지 않기 쉽다. 그들의 눈은 "내가 백명 천명 고문했는데도 아무도 안죽었다. 그런데 그놈은 죽었네. 나도 참 재수가 없지. 그렇지만 나라일하다가 보면 이런 저런일도 있는거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세월호 사건같은 거대 사건을 보고서도 그건 그저 교통사고일뿐이라고 말하는 정치가들도 있지 않았는가. 그들은 정확히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 거기서 더 나아가 국익과 애국심을 말한다. 즉 희생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국익과 애국심을 위해서 그것쯤은 참아줄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얼마전에 방송이 전한 고문경찰관 이근안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정확히 이랬다. 자기에게 고문당한 사람들 중에 무고했던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자기는 국가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전두환이 자기의 통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정확히 이럴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동의하냐 안하냐를 떠나서 나는 그런 말하는 사람치고 자기가 먼저 희생하면서 국익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UAE와 자동참전 조약을 맺었던 이명박 내각은 군면제로 유명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내각에 있는 사람중에 군면제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내각이었다. 그들의 자식들도 군면제가 수두룩하다. 그런 내각에 있는 사람들이 전쟁이야기, 파병이야기 쉽게 한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논리를 수긍하자면 최소한 전두환은 애국심에서라도 역사의 죄인역할을 해야 했다. 그 시대의 상황논리로 그들의 통치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그들이 말하는대로 어쩔수 없이 애국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했다면 이제 그들이 죽을 때가 되었을 때 두소리하지 말고 죽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킬때는 국익과 애국을 말하면서 자신들이 죄값을 치를 때가 오니까 나는 억울하며 나는 이대로는 죽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역겹다. 그런 입으로 어디서 타인의 희생을 애국심이라는 이름아래 강요하고 한나라의 지도자 운운하는가. 이근안도 자신이 먼저 고문당해 보고 애국심 운운해야지 그런 과거를 가지고 선교사같은 거하면서 종교활동하는 것이 죄를 갚는 거라고 생각하다니 마치 영화 밀양의 한장면을 다시 보는 것같은 기분이다.


이런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에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무엇보다 갖춰야 하는 것은 바로 공감능력이다. 큰 권력을 가져서 평범한 보통시민들이 개미처럼 보이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밟아죽이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이나 박근혜같은 정치가가 나와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리고 옛 새누리당 출신의 정치가들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득실득실하다. 그들은 정치같은 거 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런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에 거대한 국가가 개인을 압살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강력한 무기를 개인에게 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개인은 서류위에서는 몇천만명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무기가 바로 법이다. 법을 대충 지킨다는 이야기는 바로 서류위의 숫자 뒤에 있는 개개인의 피눈물을 뭉개버린다는 이야기다.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경찰에서 조사받고 벌금형이라도 유죄판결같은 것을 받는 일이 어떻게 가벼운 일이겠는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누군가의 인생을 5년 10년씩 허비하게 만들면 그것을 어떻게 누가 보상해 줄 수 있는가. 


그런데 그 법이 무너졌다. 그 법이 오히려 강자에게 아부하고 강자에게 복종하는 무기가 되었다. 권력이 없는 사람을 괴롭힐 때는 한껏 무서운 기운을 풍기지만 권력자에게는 어찌나 꼼꼼히 절차를 지키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법이 무너진다는 것은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고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의미다.


요즘 방송에서는 패널들을 불러다가 사회적 이슈들에게 대해서 사회자와 함께 이야기하고는 한다. 나는 그런 방송을 보다가 종종 채널을 돌려버리고는 하는데 그 내용을 떠나서 그 패널들에게는 응당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응당 있어야 하는 그 것은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다.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다. 분노다. 감정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한나라당을 찍겠다는 지지자들을 둬서 그런지 하는 행동마다 나라를 실제로 팔아먹은 것같은 그들의 행동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수치가 어떠니 사례가 어떠니 하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유시민이 항소이유서에서 언급해서 널리 알려진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무너진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 앞에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 그들의 통치에 부역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나는 늘 이 문구가 떠오른다. 법이 무너졌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법이 존재해야 하는 원래의 이유가 망각되었던 이야기를 들었을 나는 이 문구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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