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이뤄야 하는 것

by 격암(강국진) 2018. 1. 31.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가 큰 파장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다른 여검사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간다고 하고 SNS에서는 이미 다른 여성분들이 자신이 당했던 성추행을 고백하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국에서 연달아 벌어지던 미투 폭로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고 촛불집회가 만든 권위주의 정권의 탄핵이 만들어 낸 결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이런 폭로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뻔했겠지요. 서지현 검사를 추행한 검사가 바로 우병우와 수천통의 전화를 한 그 사람이고, 우병우가 검찰에서 웃으며 팔짱끼고 있어서 유명해진 그 사진에서 우병우 앞에 서있던 그 검사이며 돈봉투 사건으로 면직당한 바로 그 검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성추행에 대한 논의가 자칫 성추행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는 일에 빠져들거나 단지 여성들의 억울함을 푸는 일에서 멈추는 일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나름 중요한 일이겠지만 자칫하면 그런 식의 행동은 엉뚱한 피해자와 비현실적이고 불편한 규칙만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외설과 예술을 구분하는 일 만큼이나 현실적으로는 추행과 자연스런 접촉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구분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의 경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적이나 사회전체적인 상식을 세우려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지요. 그러면 추행과 자연스런 접촉의 경계에는 분명 회색지대가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봐도 그 회색지대를 분명히 넘어서는 행동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행동에 객관적인 기준으로만 자꾸 철퇴를 가하다보면 남자와 여자가 같이 일을 할 수가 없어지거나 역차별이라는 말도 나오게 됩니다. 


문제는 성추행의 본질이 육체적 접촉이상으로 권력의 과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남성의사에게 신체검사를 받을 때 그것을 성추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여전히 여성들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것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지는 않다는 겁니다. 만약 내가 기분 나쁘니 하지 말라고 하면 언제든지 그만두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성추행이 성립하기가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나는 그런 접촉이 싫은데 그리고 상대방도 내가 싫어할 것을 뻔히 아는데도 나의 의지와 선택을 무시하고 타인이 나의 몸을 희롱한다는 사실이 육체적 상처보다 훨씬 큰 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추행은 언제나 그것을 폭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항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저 사람이 이런다라는 것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으니까 일어납니다. 그 이유가 피해자의 정신을 좀먹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폭력에 의한 추행과 강간이지만 훨씬 더 보편적인 것은 오히려 폭력이 아니라 권위에 의해 일어납니다. 


서검사의 경우도 만약 둘만 있는 곳에서 였다면 훨씬 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행이 일어나는 상황이 법무부 장관이 참석한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었기에 항의를 한다면 그 결과가 너무 엄청날 것이 두려워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요. 이런 일 때문에 학생에 대해서 선생님이 부하직원에 대해서 직장상사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둘 사이에 벌어지는 육체적 접촉은 평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라 직장상사는 부하직원에 대해 조심하라고 교육받는 것인데 한국처럼 층층히 권위주의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은 상사가 자기를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는 사회인데 한국은 본래 친구였거나 심지어 학교 선배였어도 직장에서 직급이 위면 꼬박꼬박 직위로 존대하게 하는 사회가 아닙니까? 


제가 말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남자의 욕망이라던가, 여성과 어느 정도의 접촉을 해도 되는지 모르는 남자의 무지라고 이해하면 그래서 어딘가에 선을 그어서 이 선을 넘지말라는 규칙을 엄격히 세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일이 엉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을 식당에 데리고 가서 같이 밥만 먹어도 남자가 그것을 사적으로 즐기고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추행입니다. 손가락하나 건드리지 않고 뭐하나 불쾌한 말을 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추행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만 사람들을 잡기 시작하면 문제가 해결도 되지 않고 온갖 비현실적인 장벽이 생기며 사실은 문제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경우도 생깁니다. 왜냐면 관점을 그렇게 만들면 마치 법망을 피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처럼 이거저거는 분명히 안되지만 저거는 되는 거니 나는 그건 하겠다는 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항의하면 멈춰야 한다는 규칙만 강조하면 강대한 권력앞에서 항의도 못했다는 이유로 그건 강간이나 추행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기 쉽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민주적인 관계, 평등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면 성추행 문제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대부분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의 피해자는 여성뿐만이 아닙니다. 사실은 약자들은 다 당하는 겁니다.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서 성추행을 당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여성인 약자이기 때문에 성추행으로 공격하기가 제일 쉬워서 그렇게 공격당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졌지만 비윤리적인 인간들은 상대가 누구던 약점을 공격합니다. 장애인이면 장애인이라서 못생기면 못생겨서 가난하면 가난해서 학벌이 떨어지면 학벌이 떨어져서 공격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회적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여성은 단지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또한 가해자입니다. 일전에 어느 장성의 부인이 갑질을 해서 당직병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전에는 땅콩회항으로 불렸던 대한항공의 조현아 이사사건이 있었죠. 이것들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만약 일상속에서 차별과 권위를 강화하는 쪽으로 여성들이 힘을 쓰고 있다면 그것도 결국 성추행을 양산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의 남성만을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과연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을 비교해서 여성은 모두 민주적이고 남성은 모두 권위주의적입니까? 그보다는 그냥 전체적인 한국의 문화가 문제가 아닙니까?


지금 서검사의 폭로가 나오는 것은 지금이 민주정권하라는 것이 큰 이유가 됩니다. 저는 이 폭로사건이 여성의 사건을 넘어서 한 인간의 사건으로 이해되기를 바랍니다. 왜냐면 이런 불유쾌한 사건이 진정으로 줄어드는 세상은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들이 보다 민주적으로 만나는 사회가 올 때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억압받고 추행당하는 사람의 적은 남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이고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나 최순실은 비록 여자지만 성추행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데에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게 큰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