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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값없는 청춘은 불쌍한 건가?

by 격암(강국진) 2018. 2. 11.

한 불쌍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의 고민은 결혼은 하고 싶고 애인도 있는데 집을 구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서울에서 집을 알아보니 대출을 1억을 받아도 어디 들어가 살 곳이 없더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한편으로 사실이다. 청년은 불쌍하고 서울의 집값수준에서 1억짜리 전세를 구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럼 뭐가 문제라고 해야할까? 많은 사람들은 1억을 쉽게 모을 수 없는 봉급수준이나 너무 높은 서울집값을 문제로 지목할 것같다. 왜냐면 내가 방금 한 이야기는 문제를 그렇게 인식하도록 짜여져 있다. 그 이야기속에서 그 청년이 이루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돈과 서울의 집값 혹은 서울의 전세값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이야기의 전개로는 그걸 듣는 사람이 그 청년이 좀 더 돈이 있었더라면 이라던가 조금만 더 전세값이 낮았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기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너무 빠지지 않고 세상을 넓게 보면 다른 이야기들도 가능하다. 물론 그렇게 달라진 이야기에서도 문제해결이 간단하지는 않다. 그러나 달라진 이야기로 세상을 볼 때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면 어디를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이야기에서는 서울에 집이 없으니 청년들이 결혼을 못한다는 문제인식을 가지게 되고 결국 서울에 집을 더 많이 지어야 청년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는 해답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해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신화가 아닐까?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고려한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이야기들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하는거 아닐까?


1.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는 우선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왜 꼭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가하는 이야기로 바뀔 수 있다.  미국청년들이 모두 맨하탄에 살려고 하면서 맨하탄 집값은 너무 비싸다고 고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청년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청년이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은 꼭 유지되어야 하는가?


2. 우리는 애초에 왜 청년은 전세값을 가져야 하는가를 질문할 수 있다. 전세란 한국만의 제도다. 외국에서는 집없는 사람들이 다 월세에 산다. 그래서 외국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세를 사는 입장에서는 두 남녀가 집을 합치는 것은 월세를 오히려 절약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집에서 한 재산을 물려받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학자금융자도 다 갚지 못한 청춘이 1억씩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외국에도 별로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까?


3. 전세와 월세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사람들이 월세가 없는 것도 아닌데도 전세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월세가 조건이 안좋아서다. 전세금을 가지고 있어도 그 돈을 은행에 넣어서 이자를 받으면 연이율 2%로 해도 1억이 한달이자가 10만원 조금 넘는 정도다. 하지만 1억짜리 전세를 월세로 들어가서 살려고 하면 대개 월세가 그것의 몇배나 된다. 이때문에 전세는 서민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월세나 반전세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부자라는 말인가? 부자인데 지금 같은 한국 사회에서 왜 월세에 사나. 집을 사거나 전세에 살지. 전세가 정말 서민의 친구일까? 그건 오히려 돈이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수단이 아닌가? 


4. 왜 미혼 청년은 원룸에 살아도 부끄러운 것이 아닌데 결혼한 남녀는 그럴 듯한 집에 살아야 할까? 한국에 존재하는 결혼에 대한 관습적 이미지가 현실과 너무 달라서 현실에 맞춰서 결혼하는 것은 수치스럽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1억은 집값으로는 물론 전세값으로도 서울에서 아주 작은 돈이다. 원룸의 전세값이 1억이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 돈으로 사람들이 통상 신혼부부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는 집을 서울에서 구하기는 아주 힘들 것이다. 그런데 왜 신혼부부는 아직 젊은데 갑자기 멋진 집에 살아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하나의 사회적 현실은 다른 많은 사회적인 현실들과 얽혀있다. 그런데 우리는 특히 기성언론들은 종종 특정한 사회적 현실들은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고정시켜 버린다. 그리고 나서 동정어린 답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세상 인식은 자꾸 자꾸 세상의 문제를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행위가 된다. 권력과 돈있는 분들은 건드릴 수 없으니 여러분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이 되는 것이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나는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한 논의도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논의에서 나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런 논의의 배후에는 한국의 사회문제를 한국 학생들이 교육받는 방식을 바꿔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고통받는 학생들을 위해서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말하지만 제도는 결과적으로 점점 복잡해져만 왔다. 나는 요즘 학생들이 아주 불쌍하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기성세대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걸 자꾸 힘없는 어린 세대에게 전가하니까 어린 세대들에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뛰어나라고 재촉하는 거 아닌가. 창의력이든 경쟁력이든 기성세대가 키워서 신세대는 편하게 살면 안되나? 


돈없는 청춘을 동정하면서도 그들에게 비싼 월세를 받고 비싼 교육비를 받고 생활비와 육아비가 많이 들게 하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다. 이런 현실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종북이니 빨갱이니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도 기성세대들이다. 생각해 보면 전세값 없는 청춘은 불쌍한게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그 청년이 전세값이 없으면 스스로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는 세상이다. 언론이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서 당연한 듯이 보여주는 보통 사람의 삶이란 대개 보통이 아니다. 부모로 부터 한 재산 물려받거나 좋은 성적으로 높은 연봉받거나 하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런데도 미디어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만 만들어서 결혼은 본래 이런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평균미만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 꼰대들의 환상은 무너뜨려야 한다.  그 환상은 결코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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