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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유산 아파트가 흉물이라고?

by 격암(강국진) 2018. 3. 3.

최근에 서울시에서 반포, 잠실, 개포 등지의 4개 지역의 재건축을 허가해 주면서 일부 건물들을 유지할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재건축을 허가받고 나니 거기 사는 주민들의 생각이 바뀐 탓인지 흉물스런 몇십년된 아파트가 무슨 유산이냐는 기사들이 터져나온다. 오래된 아파트도 유산일까? 이 문제는 설득으로만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불평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가슴이 아프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어떤 것이 유산이 되는가 안되는가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국제적 규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지키고 싶어 할 때 모든 것은 유산이 될 수 있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자기가 다녔던 학교로 돌아간다고 해보자. 그 학교는 멋없는 콘크리트 건물에 불과하다. 건축물로서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다. 하지만 그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다녔던 학교는 분명히 문화유산이 된다. 어릴적에 살던 집이 아직 남아 있다면 거길 가보라. 벽지 한장, 못 하나에 다 추억이 있다.


문화유산이 된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기억을 이어나가고 싶어하며 애착이 있다는 것이다. 즉 평생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거기서 인생의 한 때를 보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인연을 소중히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콘크리트 벽의 균열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다. 내가 지금 그곳에 안 살아도 고향은 우리가 그곳에 소속감을 느끼고 가끔 다시 가볼 수 있는 곳,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는다. 


이런 말에 대해서 대책없는 낭만주의라고 비난할 사람이 한국에 많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렇지 않다면 재건축하면서 그 건물들의 일부를 살리자는 제안에 대해 이렇게 아무 설명도 이해도 없이 비판하는 기사들이 터져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행동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전혀 사람을 나아가 스스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지역을 재건축해서 그곳의 건물들을 모두 부셔버리면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이 모두 없어진다. 그렇다고 할 때 아주 많은 사람들은 그 지역에 대해서 애정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제와 거기 가보면 옛날 기억을 하게 해주는 것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지역에 살아왔고 그 지역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흩어진다. 지역 공동체는 와해되고 남는 것은 새 건물과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들 뿐이다. 완벽한 파괴로 만들어진 재건축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실향민으로 만든다. 땅은 같은 곳이지만 옛날의 고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고향은 마치 호수밑으로 가라앉은 것처럼 되어 버린다. 애정을 줄 곳이 없다. 


이웃이니 지역공동체니 귀찮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를 생각할 뿐 그 지역에 정착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가 가끔 기사로 나온다. 어떤 지역을 그 지역에 세를 사는 사람들이 활성화시켜 놓으면 집값이 폭등하고 비싸진 임대료때문에 그 지역을 활성화시킨 사람들이 그 지역을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그 지역이 다시 나빠지는 과정을 가르켜 젠트리피게이션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미국같은 곳에서 말하는 이 과정은 굉장히 느린데 한국은 그게 엄청나게 빠르다. 나는 아직 가로수길을 가본 적도 없다. 10여년전만 해도 가로수길같은 곳은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길이 활성화되었다가 이미 가라앉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길게 보면 이렇게 무리하게 집세를 올리는 집주인들은 바보같다. 그들은 마치 확 가격이 올랐을 때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떠날 뜨내기처럼 굴고 있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 지역에 애정이 없는 뜨내기들인지도 모른다. 가로수길도 그렇고 어떤 지역이 생기를 유지하는 이유는 결국은 사람때문이다. 건물이 사람을 불러오기는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그 지역을 중요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건물 자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아무 추억도 애착도 없는 사람들이 정말 그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까? 장기적으로 보면 서울의 기억들이 하나둘 지워져 나갈 때 서울은 종국적으로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아무도 서울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지역은 그 지역의 역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역사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 그런데 역사란게 대단한게 아니다. 100년된 나무, 200년된 비석, 4백년된 헛간이 다 역사다. 그런 역사가 쌓이면 그 역사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대단한 재산이 된다. 


나는 외국에 오랜 기간 살았고 그중에서 4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같이 역사가 짧은 곳에 살아보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게 된다. 산에 가면 절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산밑에는 토속음식이 있다는 한국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미국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땅은 넓지만 역사가 짧아서 허허벌판이다. 당연한 듯이 먹는 김치전 하나도 오랜 역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그런 선물들이 없는 삶은 외롭다. 긴 역사와 오래된 문화는 정말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건축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밀어버리자는 말이 쉽게도 나온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애정이 없는 것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0세기는 물론 조선, 고려의 역사도 그냥 다 지워버리고 잊어버리면 되는 일로 여기는 것같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때 4대강 공사를 했다. 이 땅위에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개발자체는 나쁜 것도 하지 말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과거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나는 4대강 공사에서 가장 잘못된 일은 그 속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엄청난 규모로 국토를 개조하는 사업은 매우 매우 천천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역사가 다 지워지고 나면 한국은 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4대강 공사는 한국을 망친 공사다. 한국에 애정이 있다면 절대 그렇게 공사를 할 수가 없다. 


외국에 나가서 동경이든 뉴욕이든 파리든 런던이든 어느 도시든 둘러보고 생각해 보자. 그런 곳에서 지금 재건축을 고려하는 곳처럼 넓은 지역을 싹 밀어버리고 과거의 기억을 하나도 안남기는 무식한 공사를 벌이는 일이 벌어질 것같은가? 절대 그럴리가 없다. 선진국들은 적어도 역사의 가치를 아니까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들이 안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 대해 애정을 가지는 것이다. 모짜르트나 아인쉬타인이 거닐었던 길을 지워버린다고 하면 우리는 그걸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걸었던 길을 지워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한다. 왜 우리는 그렇게 별게 아닌가? 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애정도 자부심도 없나. 


어제와 오늘 나는 낡은 아파트가 문화유산이냐고 묻는 뉴스와 기사를 연달아 두번이나 봤다. 나는 그런 질문 자체가 가슴이 아프다. 그 지역이 우리와 함께 오랜간 살아왔던 가족같은 곳이라면 나는 이런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같다. 어느날 가족의 일원이었던 사람에게 다른 가족들이 말한다. '꺼져. 너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냐.' 그렇게 애정이 없나?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가? 그렇다. 다 지워버리고 잊어버리면 된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그건 그냥 소모품이었으니까. 나중에 돈벌면 미국이나 캐나다 가서 살면 된다. 


하지만 이거 좀 가슴 아픈 일 아닐까? 우리 정말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렇게 계속 살면 끝이 안좋다. 다음번에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똑같이 가슴아픈 소리를 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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