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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미투운동의 현재

by 격암(강국진) 2018. 3. 11.

미투 운동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물론 이제까지 미투운동이 이룩한 것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 전망으로 보았을 때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를 바꿀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의 운동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어떤 상대와 싸울 것인가가 중요한데 그 부분에서 미투운동은 그 동력의 출구가 왜곡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전근대적 질서와 싸우기 보다는 다른 이슈들을 덮어버리는 데 쓰임으로써 심지어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진 에너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는 것같습니다. 물론 그것은 여성들의 뜻이 아니라 언론들이나 그 뒤에 있는 자본들의 뜻이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미투 운동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매우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일단 구분부터 합니다. 게다가 미투운동이 남자와 여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요. 결국 미투운동을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어떤 권리를 양보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어떤 권리를 쟁취하는 일로 보이게 만듭니다. 제로섬의 쟁탈전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반드시 나쁘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여성이 참정권도 없었고 교육도 받을 수 없었으며 재산권도 제대로 가질 수 없었던 전근대의 시절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주 적합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의 남성과 여성은 그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남성이라던가 여성이라는 집단의 존재를 또렷히 인식하면서 다시 말해 그들 모두가 같은 입장을 가진 것처럼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옳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중에는 지금의 현실상황에 분노한 나머지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란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몇세기전의 상태와 거의 다를바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아마도 제한된 몇몇 영역들에 경우에는 사실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목사가 남자인 교회에서 저질러지는 성범죄들을 생각해 봅시다. 성당이나 절도 그렇지만 교회는 그 문화가 여전히 상당히 전근대적입니다. 옛날같지는 않다고 해도 남자와 여자는 세상에서 확연히 다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성서자체가 2천년이나 전의 일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이런 전근대적 문화와 권위가 여전한 곳은 또 있습니다. 군대가 있고, 특정가문들이 대를 이어 세습하고 있는 여러 재단들이나 재벌회사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이재용의 삼성세습 뉴스를 읽다보면 마치 왕위세습같은 때에나 나올 것같은 단어들이 쓰이는 것을 이따금 느끼게 됩니다만 그런 거대 재벌회사가 아니라 사학재단들의 운영과 세습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전근대적 전통과 인식이 만연한 이런 곳들이야 말로 미투운동이 집중해야 할 곳들일 것입니다.  여러 권력자들에게 성상납의 도구로 사용된 고 장자연씨의 사연은 이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들은 여성의 인권이 가장 취약한 곳이며 광범위하게 한국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여성차별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미투운동이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장군이나 재벌총수나 목사나 재단 이사장의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나요? 장자연씨 사건같은 것을 파헤치기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언론을 통해서 보여지는 미투운동은 오히려 그런 부분들은 많이 피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사회의 소위 보수적인 부분은 피해가고 오히려 진보적이라고 불릴만한 부분들이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요. 


저는 앞에서 말한 몇몇 심각하게 전근대적인 문화를 가진 곳을 제외한다면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오늘날 한국의 상태가  전근대적이며 수백년전과 비슷하다는 식의 인식은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법률적으로는 이미 남성과 평등합니다. 교육을 못받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적어도 압도적 다수의 남성들은 그런 일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성들의 적이 아니며 다만 문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상황판단일 것입니다.


이것은 다소 미묘한 문제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질문 대신에 어떤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를 생각함으로써 이 문제를 더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종교집단, 군대, 가족세습을 하는 사학재단이며 재벌 회사를 제외하고 나면 우리가 미투운동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모든 인간을 좀 더 존중하는 문화를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속에서는 남여의 구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남자와 여자 모두가 문화적 피해자일 뿐이라는 것이 암시되어져 있습니다. 즉 여자만큼이나 남자도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남자들도 전근대적 질서가 주는 의무속에서 불편해 합니다. 이 질문은 또한 현재의 한국문화를 변화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남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이 가정에서 가지는 의무와 권리에 대한 관행은 가족문화에서 주로 파생됩니다. 즉 결혼과 양육 그리고 다른 세대간에 지키는 예절과 권리에 대한 전통 안에서 남성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여성의 권리와 의무가 지켜진다는 것입니다. 이렇다고 할 때 과연 이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 정말 남자들만의 고집과 억압때문만입니까? 남성과 여성으로 사람들을 나누면 그 입장이 같아집니까? 


예를 들어 며느리들은 여성들의 부분집합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며느리들이 정말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며느리들은 전근대적 질서속에서 오히려 이익을 취합니다. 어떤 며느리들은 학대를 받지만 말입니다. 재산을 상속받는다던가 부모님에게 육아나 음식들에 대해서 도움을 받는 것은 상당부분 전근대적 질서입니다. 전근대적 질서라고 해서 무조건 흑백으로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제사같은 전통에 대해서는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가문의 재산을 물려 받는 전통은 전근대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억지입니다. 나이 든 부모님이 재혼을 하려고 하면 집안에 재산문제로 소동이 납니다. 부모님의 재산은 '가문의 재산'으로 이미 자식의 재산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자식이 있다면 죽으면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자식에게 줘야 하니까요. 사람들은 법이 정한 상속세를 내는 것은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돈은 내돈이고 내 자식의 돈이니까요. 그러나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건 헛소리입니다.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고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인생입니다. 스케일만 다를 뿐 이재용의 삼성세습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전근대적 관행에 대해서는 무한히 관대하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다른 예도 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여성들이 결혼상대를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왜냐면 남자는 자신이 박사학위가 있어도 배우자가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고졸남성과 기꺼이 결혼하는 여성박사는 상대적으로 더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합이 정말 남자들만이 원해서 지켜지는 것입니까? 결혼과 연애에 있어서 이미 비대칭적이라면 뭐든지 남녀가 같아야 한다고 쉽게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까? 이런 현실에 대해서 정말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로 갈려서 한쪽만 피해를 보고 있으며 입장이 같습니까? 


한국 사회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거대한 전근대적인 부분의 경우를 제쳐두고 생각하면 남녀차별의 문제는 단순히 욕하고 밀치며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남성과 여성으로 사람을 또렷히 갈라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뭐든지 똑같이가 어떻게 모든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외국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도 사실은 약간의 참조만 될 뿐입니다. 왜냐면 외국은 한국과 많은 것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외국도 미투운동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을 비교한다면 다른 걸 떠나 문화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많이 다릅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미국같은 사회에 비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살도록 훨씬 더 강한 압박을 받습니다.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는가, 연봉은 얼마이고 무슨 대학을 졸업했으며, 결혼은 했는가,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 훨씬 더 민감합니다. 말 자체가 다르죠. 우리처럼 모든 가족관계에 따라서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다르게 대접하지도 않습니다. 남편의 의무도 아내의 의무도 한국과 다릅니다. 


사람들이 겪는 남녀간의 차이로 인한 불편은 이런 모든 문화적 현실에서 파생합니다. 그리고 그건 앞에서 말한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부분들과는 달리 싸움보다는 같이 고민해야 해결될 부분들입니다. 남자 여자를 따지기 전에 인간에 대한 존중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부분들입니다. 누가 단순히 나쁘다고 말할 부분이 아닙니다. 여자와 남자만 다른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 혹은 많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운동도 미디어를 영원히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문제라던가 적폐청산이라던가 교육개혁이라던가 부동산문제나 환경문제따위로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에 미투운동이 달성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성이 존중받을 만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보다 확고히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상당부분 용기있고 현명한 여성들의 행동을 통해서 이룩될 것입니다만 대오가 흐트러지고 무분별한 폭로전으로 나가는데다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은 피하면서 미투운동이 이뤄진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연쇄 살인범이나 상습적 방화범들은 외면하면서 교통신호를 어기는 사람들에게만 호통을 치는 경찰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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