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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새로운 인간

개인적 관점과 관계적 관점

by 격암(강국진)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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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0

우리는 개인적 관점이란 것에 익숙하다. 이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먼저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그 특징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개인의 존재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이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교통정체는 왜 생길까?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학교에서 아이들은 왜 어떤 학생을 왕따를 시킬까? 왜 사람들은 아파트를 단독주택보다 선호할까? 왜 남자는 여자를 차별할까?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때 종종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우리는 우선 우리의 마음속에 한 개인을 등장시키고 그 인간이 왜 단독주택이 아니라 아파트를 사고 싶어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남녀차별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하나의 남자를 먼저 사고의 무대에 등장시키고 이 남자가 여자를 이렇게 저렇게 차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 관점이 놓치기 쉬운 것은 바로 관계적 관점이다. 관계적이란 말은  여기서는 개인적이라는 말에 대비되는 뜻으로서 사용된 것으로 하나의 개인은 주변환경과 동떨어져서 홀로 정의되고 탐구 될 수 없으며 그 행동은 오히려 주로 그 환경과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눈이 둘이 있는 사람이 기형이 되듯이 우리는 어떤 정상적인 인간을 그 기준이 되는 사회없이 홀로 정의할 수는 없다. 물속의 호랑이는 무력하고 이 지구상에 단 한명밖에 인간이 남지 않았을 때의 그 인간의 행동과 사람들로 버글대는 사회속의 그 인간의 행동은 같을 수가 없다. 그 관계가 사회적일 때 우리는 관계적 관점을 사회적 관점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환경은 사회적 영역을 종종 넘어갈 것이다. 

우리는 대개 우리 생각 이상으로 개인의 관점에 중독되어져 있다. 그래서 개인의 관점을 택하지 않는 것을 심지어 죄악시하기 까지 한다. 현대의 사회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개인의 소유권을 당연시 해서 현대적 사회가 나타나기 이전인 고대사회를 생각할 때도 모든 것에 소유자의 이름이 붙어있었다고 상상한다. 즉 내 땅이고 내 염소고 내 빵이다. 그런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물물교환이다. 즉 니것내것을 엄밀히 따져서 자기 소유를 지킨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으로 문화인류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상상했던 화폐 이전의 세상이란 존재한 적이 없었는데 그 세상은 니것 내것을 잘 구분하지 않는 가족 공동체나 친한 이웃 사촌 공동체 같은 것이었다. 개인의 소유권에 집착한 경제학자들은 아들이 밥을 먹을 때마다 아빠가 뭔가와 물물교환을 하는 그런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독립된 개인의 개념은 현대에서 핵심적인 것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알라고 가르친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의 탓을 하는 것은 변명이며 개인이 기본적으로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아동학대를 받으면서 컸다거나 협박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고 해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개 스스로에 대해서 말할 때는 환경의 핑계를 대는 일이 있지만 타인에 대해서 말할 때는 타인들을 행동과 책임의 주체로 엄숙히 단언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 관점은 주어진 환경을 당연시 한다. 그리고 논의 되는 어떤 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주로 개인의 특징에서 찾는다. 개인적 관점에서 말할 때 '사회적 환경의 개선'이란 개개인의 변화와 구속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회는 개인의 단순 합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를 막고 싶으면 집을 사고 싶어하는 개인의 욕망을 어떻게 변화시키거나 억압할까를 생각하고 남녀차별을 없애고 싶으면 그런 차별을 행하는 남자들의 욕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억압할까를 생각할 것이다. 개인적 관점의 최종적 결론은 결국 개인 의식의 계몽적 개선이 된다. 

개인적 관점에서 개인은 행위와 책임의 주체다. 그러니까 어떤 부정적 사회현상이 있다면 우리는 이에대해 개인을 비난하게 된다. 쓰레기가 버려져서 더러운 거리를 본다면 우리는 쓰레기를 거리에 버리는 개인들을 비난할 것이고 그러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일 것이며 쓰레기를 버리는 개인들을 처벌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래도 잘 안되면 우리는 처벌의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냥 모든 범죄자에게 사형을 내리면 범죄없는 국가가 만들어 질까? 모든 아이들에게 강력한 벌을 주면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질까? 모든 자영업자를 처벌하고 모든 회사들을 처벌하면 좋은 세상이 오는 걸까? 모든 강간범을 사형시키기로 결정하면 우리는 강간없는 좋은 세상에 살게 될까? 

그렇지 않다.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매우 쉬운 방법이니 이 방법이 한계가 크지 않았다면 이미 세상은 천국일 것이다. 징기스칸같은 정복왕이 세상을 정복하고 법을 어기면 모두 사형이라고 공포만 하면 천국이 왔을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관점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기면 문제의 개선이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점점 더 크게 윤리적인 분노를 느끼게 되고 점점 더 미움만 늘리고 처벌만 강화하라고 요구하게 되기 쉽다. 개인적 관점은 문제의 원인을 개인 안에서만 찾기 때문이다.  

관계적 관점은 대개 훨씬 복잡하고 따라서 종종 우리에게 간단한 행동의 지침도 주지 못한다. 관계적 관점에서 문제의 원인은 환경이고 문화니까 우리는 환경과 문화를 파악해야 하고 그것의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관계적 관점을 무시하고 심지어 비난하기도 한다. 개인적 관점이 주는 단순한 답이 있는데 관계적 관점에서 말하는 복잡한 답은 다 쓸데 없는 변명이고 괴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답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우리의 답은 단순할 수록 좋지만 지나치게 단순하지도 말아야 한다. 특히 현대에서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간의 상호소통이 빠르고 클 때 개인적 관점이 가지는 설득력은 낮아진다.

남녀차별의 문제를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주로 나쁜 남자를 떠올린다. 그 나쁜 남자는 여성을 차별하고 추행하기도 하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지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남자 하나 하나를 교육시켜야 한다. 그들은 여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원인은 남자 하나 하나의 머릿속에 있는 여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이야기의 전부일까?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적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이 남성중심적 사회란 군대 문화를 가진 권위적 사회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도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권위적 사회에서는 종종 법이나 윤리보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암묵적으로 말해서 가장 윤리적으로 나쁜 것은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거나 상관을 배신하는 것이다. 

윤리나 법에 어긋난 짓을 해가면서 상관에게 충성하는 부하와 법과 윤리를 따지며 상관에게 대드는 부하중 어느 쪽이 한국에서 출세하고 살아남는 쪽이라고 당신은 믿는가? 분명 경우에 따라 다르고 지금과 30년전이 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라. 일제 친일파가 그대로 부를 유지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이 있었고 재벌가문들을 비롯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법을 주물러온 이 나라에서, 100대 부자를 나열하면 대다수가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라 집안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인 이 나라에서 상사에게 충성하는 부하와 법과 윤리를 따지는 부하중 진정으로 생존하고 번영해 온 것은 어느 쪽인지. 요즘은 예전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부폭로자가 겪는 문제들을 보면 요즘이라고 그리 다르지도 않아 보인다. 그럼 이 나라에는 법도 없고 윤리도 없나?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방송에서 우리는 모두 준법시민이 되고 윤리적 인간이 되라고 교육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예를 들어 모두 탈세를 한다면, 나라가 유지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질과 공식적 태도의 분열속에서 이 나라에 흔히 있던 광경이 바로 내가 말한 권위주의적 문화다. 얼마전에 매춘에 대한 보도가 있었는데 그 보도에서 말하기를 직장에서 매춘을 거부하면 따돌림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 모양이다. 이것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우선 이 나라에 매춘업소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라. 한국은 포르노나 도색잡지도 합법이 아닌데 룸싸롱이니 노래방도우미니 하는 서양에는 없는 업소는 엄청 많다. 다시 말해 표면적으로는 한국은 수도승처럼 살고 매춘 업소의 수를 보면 엄청난 색골처럼 산다. 

그렇다면 이것은 역시 한국 남자가 위선자고 비윤리적이라는 증거인가?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소위 남성중심적 문화의 핵심이란 결국 서로에게 죄를 짓게 하고 서로를 사슬로 엮는 것이다. 그래야 표면적으로는 엄격히 법을 집행하고 내부적으로는 부패해도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방법이 결국 뇌물이고 성이고 폭력이다. 즉 술접대나 성접대고 갑질이며 뇌물인 것이다. 갑은 을을 마구 괴롭힌다. 그뿐만 아니라 을보고 병을 괴롭히라고 압력을 넣는다. 그래야 갑이 을을 착취하고 을이 병을 착취하는 것이 합리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정보를 통제하는 위선의 구조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능력없고 재수없는 남자는 이 죄와 뇌물과 갑질의 문화속에 얽매인다. 이 남자들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처벌하면 좋은 세상이 올까? 이건 학살을 지시한 전두환같은 장군이 따로 있는데 사병들을 욕하는데 매몰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그들은 물론 그들의 책임을 져야겠지만 정말 다른 사람들은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군대처럼 일렬로 전진하는 속에 배치되어서 혼자서 그 문화에 저항하고 싸울자신?

한국에서 여성이 출세하는데 유리천장이 생기는 구조는 주로 이 군대문화때문이다. 우선 매춘으로 가보자.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호스트 빠도 있다. 당신은 남자 상관이 여자 직원을 호스트빠에 데리고 가서 거기 남자 매춘부와 억지로 잠자리를 하라고 강요하고 그리고 나면 우리는 뜨거운 관계로 얽히게 된다고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혹은 여권주의자들이 원하는 세상은 그런 세상인가? 

남자 상관이 남녀 가리지 않고 남자직원을 데리고 다니듯이 여자직원을 데리고 다니면 어떤 일이 벌어지기 쉬울까? 바로 성추행이나 강간이다. 남자 상관이 만약 게이라면 아마 남자도 강간당하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 부대에서는 남자에 의한 성추행도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동성애 문제에 한국군대가 민감한 것은 이런 주제와 관련이 있다. 법과 상식을 초월하는 권리를 가지는 상하관계가 있는 곳에 게이인 남자를 집어넣으면 그 게이가 성폭행을 당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게이가 성폭행을 하지 않을까? 나는 동성애자를 비난하는게 아니다. 한국 문화속에서는 그런 공포가 있는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병장이 동성애자인 숙소에서 군대생활을 하고 싶은 남자는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권위적 조직은 여자를 포함해서 현재의 질서를 유지할 방법을 잘 찾지 못한다.  몇몇 예외라고 해봐야 좋은 집안 배경으로 처음부터 공주님처럼 맨 위에서 군림하는 남자이상으로 권위적인 여자들 뿐이다. 대통령의 딸이었던 박근혜나 판사출신 나경원같은 사람들 말이다. 물론 재벌 가문의 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여성차별과 성추행의 원인이다. 조직이 위기를 느끼고 여자들을 밀어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전제로 해서 우리가 삼성이나 현대 자동차 같은 재벌 기업의 임원진에서 남녀 비율이 1대 1이 안되는 것을 생각한다고 해보자. 이걸 여자를 차별하려는 한 개인 남성의 잘못된 인식때문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다. 만약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되었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남성이 혹은 사회가 여성에 대해 가지는 인식을 개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회가 투명해지고 민주화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나라가 군사 구데타로 박정희 전두환 시절처럼 엄격한 군대문화로 돌아간다면 여자들은 다시 설 곳이 없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주로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관점의 차이를 논하기 위해 남녀차별의 문제를 논했지만 최근 민주적인 정부인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자칭 여성주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박근혜는 여자지만 박근혜 정부는 군사문화적 정부였고 결국 여성을 억압하는 정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남녀 차별을 극복하는 것은 여자만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실은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권위적 억압에서 풀려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스스로를 여권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민주정부를 욕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사회적 약자인 대부분의 남성들을 싸잡아서 억압의 주체로 욕을 하면 그런 세상이 올까? 이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재벌만을 돕는 정당을 지지하는 계급 배반적 행동과 같다. 우리는 왜 이런 이상한 행동들을 하는가? 그이유는 한가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중의 하나는 개인적 관점에 우리가 지나치게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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