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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새로운 인간

당신이 가진 가장 놀라운 생각

by 격암(강국진) 2021. 7. 7.

21.7.7

누군가가 '당신이 가진 가장 놀라운 생각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해보자. 

 

나의 경우 지금으로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인간은 사이보그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사이보그 II가 되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그것이 충분히 구체적이 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당연한 생각이라 놀랍지 않아서 인지 그렇게 공감을 얻고 있지는 못한 것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짧게 정리하는 글을 써볼까 한다. 

 

먼저 인간이라는 말에 대해 써야겠다. 우리는 인간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인간의 DNA에 들어있는 정보로 태어나는 자연적 인간과 현대인이 인간이라고 부르고 인식하는 인간은 서로 다르다. 자연적 인간은 사실 침팬지보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달이며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고 핵폭탄으로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언어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문자로 기록하는 기술이다. 노엄 촘스키같은 사람들은 인간은 언어 본능을 타고났다고 말하며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인간의 언어가 새나 돌고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부호로 정보를 기록하는 기술을 썼기 때문이다. 인간이 손으로 도구를 만든다고 해서 인간이 우주선을 만드는 기술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인 것처럼 인간의 언어본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현대인의 정신을 구성하는 언어를 내재하고 있었다는 말은 과장이다. 

 

문자는 인간의 타고난 기억력을 능가하는 정보기록과 보존능력을 제공했다. 그리고 더 많은 정보를 다루게 되고, 다룰 수 있게 되자 우리는 점차로 더 추상적 언어를 만들고 더 큰 마을과 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정보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보의 저장과 분류방법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본다면 그것은 종교의 시대, 과학의 시대 그리고 인공지능의 시대로 말할 수 있다. 

 

물론 현대에도 종교가 있고 문자가 널리 쓰이게 된 이후에도 종교는 번성했다. 하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가진 정보가 불충분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관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문명에 대한 것이다. 종교적 지도자의 직관은 문자로 기록되어져 성스러운 성전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종교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지 않는다. 종교의 시대는 심지어 문자의 광범위한 사용 이전의 시대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시대가 언제부터인가는 지역마다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지만 과학의 시대의 정보적 정의는 이렇다. 문자를 통해서 관찰한 정보를 기록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문명의 시대다. 과학의 시대는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핵심이다. 종교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과학의 시대 초기에는 관찰과 데이터의 힘을 우습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학과 같은 더 좋은 문자의 사용과 더불어, 그리고 인쇄술과 더 엄밀한 관찰을 할 수 있는 기계의 발달과 더불어 축적된 데이터의 힘은 날로 증가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현대문명이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이제 인간이 사이보그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은 오직 언어로 구성된 세계를 인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있는 여러분은 아마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을 것이다. 비록 한국어로 된 글을 보고 있지만 여러분은 상상해 볼 수 있다. 여러분의 머리속에서 태어난 후에 배운 모든 언어적인 것을 다 지우고 세상을 보는 것을 상상해 보라. 상상했는가? 뭘 상상했건 여러분의 상상은 틀렸다. 그건 불가능하다. 사실은 여러분과 나는 즉 우리는 모두 언어적 개념으로 만들어 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인식의 결과이며 이 모든 것에는 나라는 존재자체도 있다. 즉 우리는 나를 인식하니까 내가 있는 줄 안다. 나를 인식하지 않고 살아있는 단계가 바로 꿈없이 잠든 우리 모습이다. 잠이 들어도 우리의 심장과 폐는 움직인다. 위장도 움직이고 머리카락도 자란다. 그 의식없이 움직이는 그것이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깨어나고 우리 자신을 인식한다. 인식한다고 하지만 그 인식은 당연하고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때 나올 수 있는 모든 정보, 나 이외의 세계에 대한 모든 정보가 이 나를 인식하는 작업에 참여한다. 만약 뭔가의 이유로 당신의 기억력이 1초정도밖에 저장될 수 없다고 할 때 잠에서 깨어나 겨우 1초정도 세계를 본 정보로 인식한 나라는 것이 과연 여러분이 인식한 나이고 여러분이 보는 세계일까?

 

결국 나도, 이 세계도 본래는 우리의 기억능력이 허락하는 정도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나와 세계가 문자로 기록하기를 시작한 이래 말도 안되게 팽창했다. 말도 안되게 팽창한 정보덕분이다. 부자니 귀족이니 범죄니 하는 개념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문자 이전과 비교하면 문자 이후의 세계의 발전도 빨랐지만 일단 과학의 시대에 들어서서 종교를 벗어나 의식적으로 정보를 축적하려고 하기 시작하자 정보의 축적은 더더욱 커졌다. 이 모든 발전과정을 우리는 내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만들어졌다. 우리는 자연적 인간이 전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이보그다. 지금도 우리는 자연적으로 태어난 아이에게 온갖 문명적 지식을 가르치고 그 아이를 우리가 아는 인간으로 만든다. 그 개조과정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르며 이런 개조된 사이보그를 인간으로 부르는 나머지 교육받지 못하고 타잔이나 정글북처럼 사는 인간을 보면 그런 사람을 오히려 인간이하라고 부른다. 

 

인간은 사이보그다. 이 말은 나를 들여다보는 자기 반성적 사고의 결과에서 찾아낸 놀라운 결론이다. 우리는 세상을 그냥 볼 수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우리 머리속에 집어넣어진 문명적 관념들이라는 필터 즉 언어를 통해 해석되어 인식된다. 이 모두에는 우리 자신의 자아나 의식도 포함된다. 자연적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속에 집어넣어진 정보의 유령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있다. 과학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이다. 종교, 과학 그리고 인공지능의 시대로 문명사를 나누는 기준은 정보축적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AI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공장이 저절로 물건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기계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저장하는 방식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음성이나 문자 심지어 동영상도 아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본격화하면 저장되고 처리되는 정보의 양은 인간이 관찰하고 기록하고 그걸 정리해서 책이나 신문으로 발간하는 그런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학의 시대에 정보 저장 창고는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그런데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해봐야 요즘은 거기에 있는 책을 모두 디지털로 저장하면 개인용 하드에 넣고도 남는다. 요즘 구글은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정보를 다 저장하는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우리는 지금보다 백배빠른 인터넷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빠른 인터넷이 나오면 뭘할까?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앞에 두고 있다. 상온핵융합기술만 해도 그렇다. 혹시 인공지능기술이 발달하여 그걸 현실화하면 인류는 실질적으로 무한대의 에너지를 쓰게 될 것이다. 이건 그냥 한 예다. 하지만 인류의 엄청난 난제였던 단백질 접기 문제가 최근 인공지능에 의해 풀렸다. 상온핵융합의 미래가 인공지능 때문에 더 빨리 온다고 해서 그것이 굉장히 놀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놀라움의 시작에 불과하다. 현대 인간의 상상력이라고 해봐야 어벤져스같은 마블 코믹스 만화가 한계가 아니겠는가? 여러분은 천년전 사람들이 천년후인 지금을 상상했을 때 그 상상이 현실 근처에라도 도달했을거라고 생각하는가? 

 

진정한 놀라움이 있는 곳 그리고 진짜로 중요한 부분이 있는 곳은 이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있다. 우리는 사실 인간에 집어넣어진 유령이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만약 인류문명이 축적하는 데이터의 양이 다시 한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우리의 자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를 그린 SF를 보면 우리는 흔히 현대인이 미래 문명 속에 떨어진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그건 틀린 그림이다. 우리의 정신, 우리의 자아가 바뀌는 것이 빠져있고 따라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있다고 할 수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제 사이보그 II가 되려고 한다는 말은 아주 놀라운 말이 되는 것이다. 천년전이나 이천년전은 지금과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하지만 백년 후의 인간은 우리와 이천년전의 인간과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일수도 있다. 원시인들은 현대인들이 비트코인을 사느라 바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미래인들이 X라고 불리는 것을 위해 지구를 파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이 미래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우리는 그 X가 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백년후는 그렇다고 치고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글을 마치기로 하자. 변화의 속력이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도 문화 지체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이 말은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과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 그리고 2000년에 태어난 사람이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산다는 뜻이다. 그래서 백년 후의 미래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문화적 문제가 발생한다. 자식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는 것이 마치 15세기의 조선인이 20세기의 한국인에게 조언을 하는 것처럼 되면 농사야 말로 천하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는 식이 될 수 있다. 

 

서점에 가보면 직업의 종말, 대학의 종말같은 책이 나와 있다. 직업도 대학도 사라지는 시대가 정말 온다면 셀러리맨으로 평생을 살았던 부모는 자식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의 노인들은 형제가 8-9명인 것이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예 결혼을 안하고, 그래서 출산률은 1.0도 안된다. 부분적이지만 중요한 한가지 이유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재정적으로건 에너지적으로건 요즘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내는 한국의 풍습이 지금의 20대가 중년이 될 쯤에도 과연 살아남을까?  

 

반공, 가문, 학벌, 부동산 투기, 종교, 재벌, 언론, 한반도 분단, 한중일의 역사갈등등 수많은 낡은 관념들과 제도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 질서로 사람들을 억누른다. 그리고 그 억압은 세대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부지런히 바뀐 세상을 쫒아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낡은 유령들과 싸우고 있다. 아니 그들 스스로가 새로운 정보로 확장되지 못한 낡은 유령인지도 모른다. 마치 봉건왕국은 이미 사라졌는데 충성할 왕을 찾아헤매는 충성스런 백성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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