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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새로운 인간

인간의 멸종과 현대 한국

by 격암(강국진) 2022. 12. 1.

22.12.1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리고 아주 심각해서 인류역사상 이런 나라가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은 반세기 정도만에 둘만 나아 잘기르자라는 말로 상징되는 출산 제한 운동의 국가에서 인구 재생산이 그야말로 스톱되었다는 말이 나올정도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가 정말 문제일까? 왜 우리는 여기서 생각을 멈출까? 그것은 그냥 결과이고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할 때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 대응을 생각하는 것은 댐이 무너져서 물이 쏟아지는데 댐이나 홍수는 생각하지 않고 우리 집에 침수가 있는 것이 문제니 물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이 물을 어떻게 퍼내야 하는가를 따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발앞만 보는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짜 홍수가 닥치면 그 집은 한순간에 날아갈 것이다.

 

우리의 눈을 저출산에서 멈추게 하고 그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하는 목소리에는 이런 것이 있다. 다른 선진국도 다 저출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꼭 이런 말이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왜 한국이 다른 선진국과 같아야 할까? 한국이 정말 프랑스나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인가? 일단 한국은 제국을 만든 적이 없고 그런 선진국들의 전성기때만큼 강력하고 부유해진 적이 없다. 재벌가의 누군가가 과식으로 당뇨가 생겼다고 해서 평범한 월급쟁이가 당뇨가 생긴 것이 꼭 과식때문일까? 게다가 그 속력이 너무 다르다. 사실 모든 나라들은 서로 다 다르다. 하지만 대충 비슷하게 비교하려고 해도 지금의 세계에는 한국처럼 전세계 최빈국수준이었다가 이렇게 빨리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나라가 없다. 지금 인구구조가 문제인데 반세기도 안되어서 엄청난 저출산 국가가 된 한국이 정말 19세기에 이미 부유했던 나라들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게 맞는가? 서유럽과 미국, 일본은 모두 저성장 모드로 오랜간 선진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그럴 수 있을까? 빨리 올라온 만큼 빨리 사라지는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크게 뒤로 물러서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원천적인 질문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너무 근원적이라서 좀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그 답이 고작 인간의 DNA를 가진 생명체같은 것이라서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인간답다는 말을 할 때는 무수히 많은 문화적 생물적인 의미를 그 안에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성장하면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명이 인간이라고 많은 사람은 믿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저출산의 문제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그 인간은 지금 현대 한국 이라는 환경속에서 멸종하고 있다. 재생산이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현대 한국 사회가 문제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즉 인간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저러한 것을 인간이라고 여기고 살려고 하는데 그 인간이란 것이 현대 한국 사회안에서는 살아남질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인간이 뭔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지 모른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가지는 통념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무조건 이 방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 수십년간 한국 사회가 잘못되어 있으며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더 나빠질 수 없이 나빠졌다. 같은 방법만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미친 거라고 했던가. 

 

어쩌면 한국 사회가 지금의 모습을 가지는 것에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다. 이런 시대에는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개인적으로도 힘들지만 그에 필요한 시간과 돈이 너무 커서 부모가 제공하기가 어렵다. 백년전에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면 이미 지식인 취급을 받던 이 땅에서 이제는 대학졸업장따위는 어디가서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박사가 넘쳐난다. 이건 시작이다. 모든 분야는 사실상 옥상위에 옥상 단계를 설치하면서 점점 더 긴 경력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졸업장 정도가 아니라 박사나 의사 자격 이후에도 수습기간은 계속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밀려날 때 이 상태는 영구히 계속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유치원때부터 죽자사자 공부해서 30대 초반이 되어도 여전히 대부분은 수습이나 임시직원이나 인턴 같은 처지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한국인 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것이 인간이라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인간이란 바로 그 긴 교육과정을 거치며 탈락하지 않으면서도 연애도 하고 아이도 낳는 존재를 의미한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서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하며 문제의 그 아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보다도 더 정보가 넘치는 세상을 살아갈테니 과연 어느 정도나 지원해 줘야 할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같은데 지금도 돈은 둘째치고 각자의 분야에서 정말로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을 받으면 30대 중반이 넘는 일이 아주 흔하다. 요즘은 휴학을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고 남자는 군대도 가야 한다. 재수쯤 하고 휴학도 한두번 하고 군대까지 다녀와서 대학원에 가거나 취직을 해서 어느 분야에서 자기 몫을 하고 안정이 되었다는 느낌을 들정도면 정말 그렇다. 이런 아이를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 한국에서 멸종하지 않는 인간이다. 

 

이 의견이 꼭 정답일 필요는 없지만 이게 이유라고 해보자. 세상은 점점 더 정보 폭증 상태를 겪으며 더 긴 교육과정을 요구하는 세상으로 변하가는데 그냥 아이를 많이 낳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까? 이게 홍수가 밀려오는데 집에서 바닥 걸레질 하고 있는 꼴이 아닐까? 그것도 안하려고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한 천만원쯤 주고, 대학 등록금같은 걸 면제해 주고 하는 정도로 정말 문제의 그 인간은 멸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가 지금의 모습을 가지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저출산이 싫다고 조선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인데 막연히 저출산 대책을 내는 것이 성공할까? 적어도 지난 30년간은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바꿔야 하는 것은 인간쪽이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의 윤리적 문화적 관행을 과감히 바꿔야 지속가능한 나라가 되는 거 아닐까? 세상은 바꿀 수 없으니 우리는 인간을 바꿔야 한다고 해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모두 내가 제안하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너무 방대하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결론이 아니더라도 그 과격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기위해 감히 상상을 해볼 수는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부모 자식 관계를 파괴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사회가 키우고 교육하는 것이다. 물론 그 새로운 인간도 유전자를 준 부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족윤리로 자식을 키우는 책임은 부모가 지고 대신 자식은 어느 정도 부모의 소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방식으로는 인간은 미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을 지 모른다. 즉 가족 개념을 거의 다 증발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 미래사회에서는 남녀들은 자유롭게 섹스하고 원하면 임신하며 출산하면 아이를 국가에 보낸다. 부모 자식의 개념은 남겠지만 현대의 공화국을 사는 시민들이 봉건 국가시절을 이상히 여기듯 그들은 지금의 작은 가족 개념이 의미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 

 

어떤가. 굉장히 과격하지 않은가. 윤리적 분노가 생기는 분들이 있다면 진정하라고 하고 싶다. 나는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반 인간적이라는 것도 안다. 이런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라면 나도 아주 많이 지적할 수 있다. 다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윤리적 비약은 필요할 거라는 것이다. 단순히 보조금 조금 내는 식으로 해서는 마치 오늘날의 환경보호가 기후이변을 막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의 몰락을 막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지구에 대홍수가 나서 모두가 물아래로 빠지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그럴 때 누군가가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아가미가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확실히 아가미가 있으면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동안 아가미가 없는 인간들은 모두 멸종될 수 있다. 철기 문명이 등장했을 때 철기문명은 비인간적이니 청동기나 석기문명을 유지하자고 주장해봐야 멸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과격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할만큼 상황은 악화되었다. 나는 내 아이건 남의 아이건 한국 사회에 있어서 아이의 역할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경제를 유지하게 만들고 사회적 공동체를 유지되게 만든다. 정상적인 사회, 유지 가능한 사회는 모두가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10대부터 노인까지 여러 사람들이 공존해서 삶의 스펙트럼이 한순간에 보여야 한다. 내가 이렇게 살면 저렇게 되다가 저렇게 되는구나하고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원이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종족의 유지는 둘째치고 우리의 삶도 무의미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모두가 30살정도에서 멈추고 영원히 사는 그런 사회보다 아이가 자라서 삶을 살고 노인이 되어서 죽는 사회가 더 완벽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필요하지만 어른들도 그 이상으로 아이가 필요하다. 그런데 더이상 옛날 방식이 통하지 않으니 별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란 것에 대한 편견을 부수고 그것을 재정의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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