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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새로운 인간

우리는 미래에 어디에 있어야 할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22. 12. 8.

22.12.8

조선말엽이나 일제초기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서양의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 오던 그 시기라면 그 사람은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서당에 있거나 지방어디서 농사를 짓고 세상변하는 것을 몰라서는 안되고 서양에 유학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조선에 있더라도 중국어보다는 영어를 배우고 유학보다는 과학이나 기술을 배워야하고 서양인들의 문화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게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준비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끝자락에 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여전히 서양문명의 시대다. 서양문명은 지난 몇백년간 전세계를 정복했고 지금도 세계 문명의 표준이 되고 있다. 물론 경제 규모로 보면 2022년 현재 중국과 일본이 부상해 있고 특히 일본은 백년 이상 전부터 상당한 제국으로 힘을 발휘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고유한 문명때문이 아니었다. 과학도 자본주의도 정치도 모두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서양인들은 19세기 제국주의의 시대에는 거의 전세계를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노예 산업을 발달시켰다. 그들은 너무나 강력해서 영국같은 작은 섬나라가 중국이나 인도같은 거대한 나라를 굴복시킨 사례를 보면 영토의 크기나 인구를 생각할 때 기이해 보일 정도였다. 19세기에는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그저 서양배 하나가 뜨면 난리가 났다. 

 

사실 서구는 적어도 13세기 정도에는 동양에 비해 훨씬 뒤쳐져 있었다. 아라비아 숫자도 인도가 만들어 아랍을 거쳐 12세기에나 서구에 전파되었다. 12-13세기의 중국의 부는 서구를 훨씬 앞질러 당시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폴로는 허풍쟁이로 여겨졌었다. 징기스칸이 유럽까지 정벌하기도 했던 이 시절에 대해 우리는 서구인의 관점에 따라 단순히 몽고인들이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만 기억하지만 두 개의 문명이 충돌해서 한쪽이 그렇게 파괴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질따위 때문일 수가 없다. 유럽이 그렇게 쉽게 당한 것은 몽고인들이 전쟁 무기나 기술에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총을 든 영국인들이 다수의 식민지 군중과 맞서 싸워 이기듯 몽고병사들이 유럽병사보다 훨씬 더 강했기 때문일 수 밖에 없다. 기마술과 활은 물론 공성무기같은 것이 당대의 최고 하이테크 기술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먼 곳까지 정벌온 몽고에게 패배한 서구는 그들보다 적어도 어떤 면에서 훨씬 더 뒤져있었기에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서구 문명의 부상은 천천히 그러나 역사적 스케일로 보았을 때는 매우 빨리 이뤄졌다. 14세기에서 18세기를 거치며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이라던가 산업혁명따위가 일어나고 서구는 자본주의나 공화국 정치를 발명해 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세상은 그들의 중세나 동양의 봉건적 시선으로 보면 매우 기괴하지만 강력한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까지 돌아간다고 말해지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 인쇄술같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 가능해졌다. 대중교육을 위한 학교의 설립이 가능한 것은 이미 그 사회가 읽고 쓰기가 보편화되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상업사회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조선이 그러했듯 사람들이 단순노동만 하는 농경사회에서는 읽고 쓰기를 배울 시간도 돈도 대중에게는 없었다. 계몽의 기본은 결국 사람들에게 계몽의 메세지를 읽게 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더 정보가 풍요로운 사회가 더욱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고 정치도 그에 맞춰 변할 수 밖에 없었다. 흐르는 정보는 투명함을 말하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계몽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시간적 공간적으로 더 멀리까지 보면서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세계는 또한번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대한 데이터와 발달된 컴퓨터로 인해 현대인들은 이제 다시 한번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더 멀리 보면서 살게 되었다. 우르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생중계되는 전쟁이라고 불린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이 스타링크라는 최신의 인공위성 인터넷 서비스 기술과 유튜브 그리고 SNS였다. 

 

조선말엽의 사람들이 서구인들을 보면 기괴하게 여겼듯이 1980년의 한국 사람이 2022년의 한국 사람을 만난다면 그들은 다시 한번 우리들을 기괴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 유튜브는 세계 26억명의 사람들이 보는 서비스가 되었고 1억개 이상의 채널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인구당으로 보았을 때 세계 최고의 데이터 전송량,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최고의 모바일 전송속도, 세계 최고 숫자의 수익을 내는 유튜버를 가지고 있다. 전 인구의 95%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프로게이머 페이커의 1년 수입이 50억가량되고 노랑 머리의 서양인들도 페이커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황송해 하는 광경을 1980년의 한국인이 본다면 황당해 하지 않겠는가. 

 

1980년의 한국인과 현대의 한국인간의 차이가 더 극대화되는 곳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전세계를 촘촘하게 서로 연결된 센서들로 뒤덮는 일이다. 우주에는 인공위성이 떠있고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반도체를 가진 기계들이 깔리고 있다. 그리고 그 기계들은 서로 서로 무선으로 연결되어 인터넷망을 통해 하나가 된다. 전기차의 주행이 자율주행의 데이터로 쓰일 수 있다는 말은 지금 운전되는 전기차들은 실시간으로 자기 주변을 데이터화해서 본사로 계속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애플의 CEO가 전기차를 만들 수 있다는 힌트를 주면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는 LG 전자 주식같은 것이 폭등을 하고 러시아에 미사일 하나가 떨어지면 그 순간 뉴욕의 증시가 폭락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계속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그걸 내보내려고 한다. 원천적 정보나 가공된 정보를 내보내는 일을 하는 것은 그걸 통해서 직접적으로 돈을 벌거나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거나 더 큰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가운데 학원이나 대학이나 학회나 언론같은 기성 시스템의 경로를 우회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오락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정보와 자신의 직장과 미래가 그 안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시대에 뒤쳐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기본적으로 과거의 지식을 교육시켜 주는 학교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학교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도나 베트남, 중국에서 쏟아지는 대학졸업자들은 아웃소싱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국이나 미국의 대학졸업장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직업은 종말을 고할 것이며 미래는 비전을 가지고 자기 사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세기가 될 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책에 써있는 것을 배우고, 취직을 해서 남이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일은 점차로 경쟁력이 사라질 것이다. 자기가 판단하고 투자하고 근무하며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사실 현대의 한국인이 조선시대만 돌아봐도 같은 것을 느낀다. 당시에는 라디오도 없었고 제대로된 신문도 없었다. 상업활동도 제한되었고 물자가 빨리 흐르지도 않았다. 과거 시험은 기본적으로 수백년에서 수천년이 된 책들을 읽고 외우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이 서양 문명을 만났을 때 충격을 받은 것이다. 상대적이지만 보다 보통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 배움이 보편화되고 그 새로운 것을 배운 사람들이 주도하는 사회 앞에서 천자문에 소학이며 논어따위를 배우며 자라난 사람들은 과거의 교육기관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지식을 더 빨리 흡수하고 가르치는 기관과 그렇지 못하고 수백년은 된 지식을 다시 가르치는 기관은 같을 수가 없다. 

 

오늘날은 기계가 자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 배포하고 분석하는 시대다. 그 과정은 물론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또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것으로 변해간다. 조선 시대의 배운 사람과 오늘날의 배운 사람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렇다면 미래의 배운 사람은 어떨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경제를 운영하고 어떤 문화를 가질 것인가? 

 

일단 배운 사람이라는 과거형을 쓰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다. 그대신 모두가 죽을 때까지 계속 배우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배움을 멈추면 누구도 계속 배운 사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뭔가를 학교에 가서 몇년 배우고 나서 기본적으로는 그 배운 것을 평생 계속 쓰는 일은 미래에는 불가능하다.  노동자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면서 일을 하면 그 노동자의 능력은 감소할 것이다. 일하면서 경험을 통해 하나 둘 씩 배우는 것만으로는 시대를 쫒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의 노동자들은 논문을 쓰는 연구원이나 유튜버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연구를 얼마간 했는가는 논문을 쓰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부는 계속해야 하고 일은 계속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논문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유튜버도 자신이 몇시간 근무를 했는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로 평가받고 실적을 내는 것이다. 과거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배운 노동자가 더 필요하게 되자 초중고와 대학교육이 보편화되었다. 즉 국가는 교육에 투자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런 시대에는 국가가 기본소득을 제공해 주고 소통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된다. 좋은 문학 작품이 나오기를 바란다면 작가들에게 작품을 쓰는 기간을 버티게 만들어주는 기본소득을 주고, 작가가 자기 작품을 발표할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매일 8시간씩 출근해서 책상앞에서 시키는대로 글을 쓰면 월급을 주는 식으로는 양질의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 동영상을 공유하는 일은 20년전에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비싼 일이었다. 지금은 유튜브 같은 인프라가 공짜로 존재하다 못해 돈을 지불해 주겠다고 나서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연구원이나, 유튜버나 시장 분석가같은 일을 하는 이 미래인들은 뭘 연구하게 될까? 이들은 매우 발달된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계 시스템과 함께 거대한 시스템을 움직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은 마치 우리 뇌의 뇌세포처럼 거대한 집단 지성을 구성하여 초사회라는 시스템을 움직일 것이다. 사회 앞에 초를 붙이는 이유는 이 새로운 사회는 마치 하나의 지능적 생명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새로운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지금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일들을 덕분에 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온핵융합 기술이라던가 달 개발이라던가 지구 온난화와의 싸움이라던가 하는 일은 인류역사상 없는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단지 규모만이 아니라 그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속력도 요구한다. 그걸 해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사회로는 역부족이다. 교육 개혁이니 부동산 개혁이니 출산률 개선을 위한 투자니 하지만 어느 것하나 수십년이 지나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문화된 인간들로 구성된 조직은 모든 아이디어와 개혁을 좌초시키고 있다. 기성 정치는 무력하고 사람들은 종종 트럼프같은 무법자를 원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야 초사회가 있다. 

 

이것은 확실하게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 문명에서 다시 도약하는 일이다. 지금의 서구 문명은 기본적으로 인쇄술과 인간의 문자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런 기술에 적응된 것이다. 사회는 법을 만들고, 언론이 정보를 소통시키고, 대학에서 지식을 축적하고 다시 가르쳐서 유지되고 운영된다. 하지만 초사회는 훨씬 더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사회다. 그 사회가 제대로 출현하면 우리는 다시 소수의 초사회 인간들이 거대한 구식 사회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기존의 상식으로는 그게 거의 이해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초사회를 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유연한 생활방식으로 살아야 하며 끝없이 변하는데 익숙해야 한다. 계속 새로운 것을 접하고 그에 맞춰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이 이 초사회로 가는 길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믿는다. 한국은 IT강국이라는 점이외에도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 더 진취적으로 변해온 사회다. 과거에서 미래를 단순히 선형적으로 이어서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불과 반세기전만 해도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까지 올라온 것은 달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변화다.

 

그리고 그걸 만든 것은 어떤 특정인의 지도력이나 유전같은 특정 자원의 힘이 아니라 한국 대중과 한국 문화였다. 나는 한국을 의병의 나라라고 부르기 좋아하는데 그런 의병들이 한국을 번번히 변화시켜왔다. 지금 한국이 더욱 발전해서 세계 패권국가가 된다고 말하면 거의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며 나는 그런 오해가 많이들 예언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해방이후의 한국을 보고 이정도 시간만에 이만큼 발전할 것이라고 믿을 사람도 없었고 지금의 한류인기같은 것이 있을거라고는 15년전쯤에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촛불혁명은 그 의병의 나라의 모습을 잘 보여주며 나는 이것이 초사회로 가는 한가지 증상이라고 본다. 낡은 관습으로 사회를 지배하려는 기성 시스템에 저항하여 사람들이 직접 정보를 모으고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문제가 뭔지, 우리가 뭘해야 하며, 뭘 준비해야 하는지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해결된다. 이것은 집단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 그것이 한국을 바꿨다. 그 중심없는 운동이 역사를 뒤집었고 코로나 시기에는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선진국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한국의 의병들은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진정으로 지속적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터넷을 발명한 것은 미국이지만 인터넷 문화가 가장 먼저 꽃핀 것은 한국이다. 애플이 mp3플레이어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되었지만 mp3플레이어를 가장 먼저 만든 건 한국이었다. 유튜브와 SNS, OTT는 미국의 것이지만 그걸 이용해서 한류열풍을 가져온 것은 한국이다. 기술은 분명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지속적으로 초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대중을 가진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해 왔다. 그 결과 인구당 유튜버의 수가 전세계 최고로 많은 국가가 된 것이다. 만약 이 문화적 특징내지 문화 DNA가 제대로 꽃피워 새로운 시대의 인간으로 한국인이 태어난다면 한국의 영토가 작다던가 한국의 인구가 작다던가 하는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사회는 그에 도달하지 못한 사회들을 인간사회에 대비된 원숭이 사회처럼 보이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에 어디에 있어야 할까? 나는 그곳이 한국이라고 믿는다. 한국에서 사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박찬욱같은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곳이 한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캐나다나 일본에 가면 갑자기 삶이 느슨하고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사람들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미래로 뛰어가기 바쁘다. 하나의 유행이 다른 유행으로 대체되고 하나의 식당이 사라지고 다른 식당이 생겨나는 속력이 말할 수 없이 빠르다. 

 

물론 한국은 아직 그 초사회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거대한 군중이 마치 하나의 마음을 가진 것처럼 움직여서 믿을 수 없는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행동력을 보이는 사회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분열되어져 있다. 기성언론은 이게 어느 나라 언론인지도 모르겠고 자존심이 있는지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고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들은 세상을 1980년대 이전처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공약도 없고 있어도 기억도 못할 것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 초사회에 가깝다. 우리는 빠르게 미래로 달려가는 진취적 한국의 옆에 있어야 한다. 한국의 드라마가 서구권에서 인기를 끈다던가 한국의 웹튠플랫폼이 세계에 영향력을 끈다던가 하는 일은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언어가 영어가 아니고 인종도 서구인이 아닌데 세계적으로 문화를 수출하고 웹튠이지만 플랫폼을 운영하는 중심이 되는 일은 서구 이외에는 유래가 없다. 그 대단한 일본의 전성기때에도 백인 컴플랙스는 여전했었다. 한국은 SNS나 메신저같은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앞설 수 있는 나라였지만 20년전만 해도 한국의 이름을 걸고 세계의 소통창구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도 구글이나 애플이나 페이스북이 한국 회사인 세상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런 방향으로 작은 걸음이나마 내딛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한국은 그 문화적 영향력으로는 이미 초사회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세계 최고 보이그룹은 BTS고 최고 여성그룹은 블랙핑크다. 이런 시대는 이미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건 쉽지 않다. 한국이 더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미래는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마어마한 미래사회에 가장 가깝게 있는 나라다. 그건 지금의 인류를 원숭이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의 초고도 문명이다. 맞다. 어쩌면 많은 기술들이 외국에서 먼저 개발될 것이고 그 외국들은 한국을 좌절시키는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술의 잠재력을 깨닫고 그 힘을 본격적으로 개방시키는 것에 가장 가까울 사람들은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신인류에 가장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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