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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며

by 격암(강국진) 2018. 12. 25.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므로 크리스마스에서 종교적 의미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사랑과 소통의 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매개체로 해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용서하여 하나 될 수 있는 날이며 우리 주변에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날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종교인이 아닌 나는 예수님의 기적이란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권을 교체한 촛불혁명의 기적이 있은 뒤에도 한국에는 불신과 불통이 가득하다. 얼마전에 나는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 몇십년이 지난 후 이산가족이 다 죽고 나면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어 할 거라고, 지금의 한국과 북한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 할거라고. 분단선으로 가족들을 만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세월이라는 것이 반세기 이상 계속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느낀다. 정치니 체제니 하는 것이 인간의 감정보다 더 고상하고 중요한가. 그 오랜 세월동안 어이없이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얼굴을 보게 해 주지 못한 정치적 무능이란 우리의 어리석음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한반도에 넘치는 불신과 불통에는 물론 남북문제 말고도 많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남자와 여자간의 불신과 불통도 아주 심한 것같다. 그래서 결혼 따위 하지 말라거나 한국 남자나 한국 여자는 비참하게 살거라고 말하는 서로에 대한 저주나 비하의 말도 많이 돌아 다닌다. 마치 인생의 교훈을 주겠다는 말들처럼 말이다. 이 말들은 어이없이 낮은 출산률이나 어이없이 높은 자살률에 대한 걱정에 대해서 답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뭐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린달까?


남북문제나 남녀문제뿐만 아니라 여기 저기에 선을 그어서 분란이 일어 날 때는 거기에는 종종 공통점이 생긴다. 첫째로 남자와 여자처럼 둘로 갈라지면 각 진영은 반대편 진영의 가장 못난 인간들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예를 들어 철없는 여자들을 지적하거나 폭력적인 남자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둘째로 싸움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양 진영의 사람들이 모두 다 같다고 하는 착각에 쉽게 빠진다. 즉 남자는 다 똑같고 여자는 다 똑같다. 한국 남자들을 비판하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다 똑같다는 식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썩어빠진 인간이 남자라는 그룹안에는 있지만 그런 인간은 여자라는 그룹안에는 없는 것처럼 인식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여성이 사회적 압박을 당할 때 가해자는 오직 남자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여자를 억압하고 가해하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썩어 빠진 한국 남자가 있다면 썩어 빠진 한국 여자도 있다. 적어도 21세기의 한국은 남녀의 양분으로 그 구조가 파악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그건 스마트폰처럼 복잡한 기계를 소달구지나 낡은 티비는 한번 때리면 말을 잘듣더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무식한 행위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불신과 싸움이 지속되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그런 싸움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싸움을 통해 정치 사회적으로 다른 이슈들을 덮어 버리거나 혹은 지도자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지난 정권의 무능을 숨기는 한가지 좋은 방법이 바로 이런 사회적 분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또 인터넷 게시판이나 유튜브 같은 곳에는 명쾌한 욕하기로 수십만번의 조회수를 올리는 포스팅들이 생겨난다. 이들은 싸움이 커져야 자신들의 힘도 커진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일베니 워마드니 하는 곳에서 지명도를 얻은 사람들이 과격한 말들을 열심히 하는 것같다. 싸움이 줄어들면 안되니까 말이다.


나는 때로 이런 분열과 싸움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세상 참 태평성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나 싸울 것이 없으면 그런 사소한 문제들을 가지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장악한 미디어들을 보면서 세상이 싸움판이라는 느낌이 들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물론 언론들은 언제나 문제다. 언제나 근엄한 태도로 엉터리같은 뉴스들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래도 유지되고 있고 그래도 진보해 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쓸모 있는 말들을 하면서 세상을 붙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에 지정환신부님같은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이국 땅에 와서 고생만 하시고 실망할 일들도 아주 많았는데도 묵묵히 살아오셨던 그런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가 있다. 쓸데없는 싸움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사람들은 그런 숨은 의인들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숨은 의인들은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숨은 의인들이다. 그들은 유명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숨은 의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하나의 가설로만 알 수 있다. 때로 숨은 의인들 중에 누군가가 유명해 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두가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하나는 세상에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어서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살기 좋다는 것이다. 


존경할만한 누군가를 보게 되면 우리는 말한다. "봐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있잖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야. 그건 예외일 뿐이야." 그러다가 흉악한 누군가를 보면, 예를 들어 분란과 싸움을 만들어 내는 누군가를 보면 그 반대편에서는 또 말하는 것이다. "봐 세상의 인간들은 저런 인간들 뿐이라니까!"하고 말이다. 이런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데이타가 얼마가 되건 우리는 여전히 희망과 믿음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 이 세상에는 희망이 있고 새해에는 더 좋은 세상이 열릴 거라는 희망 말이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의 기적이란 바로 그 희망과 믿음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없이는 너무 우울하다. 희망과 믿음을 주셔서 행복과 용기를 주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기적은 있다고 되뇌어야 한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지혜나 지성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분들, 지난 한해도 감사했습니다. 격려의 말씀과 방문들 덕분에 한해를 사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연말 연시 잘 보내시고 새해에도 복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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