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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적은 여자다.

by 격암(강국진) 2018. 12. 28.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이런 말을 남자에게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여자들을 분열 시켜서 서로 싸우게 만들려는 남녀차별주의자의 계략처럼 들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에는 그런 말로 덮어 버릴 수 없는 현실과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지금 남자보다 억압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첫 걸음은 남자에게 여자를 열등하게 보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스스로가 우리는 독립적이고 동등한 존재라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인생과 선택이 주체적으로 이뤄진다고 믿는 것에 있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말하자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때로 필요한 태도이기는 하다. 하지만 언뜻 보는 것과 달리 그것은 악영향도 많아서 스스로를 수동적인 피억압자로 인식하고 인식되게 하는 나쁜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와 다르다. 


예를 들어 탈코르셋 운동같은 것을 보자.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성주도의 사회가 여자들에게 소위 여성적 외모를 강요했다고 말한다. 바보가 아니라면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강요했는가 하는 문제는 뒤로 해두고 한가지만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서 성적 매력이 권력이고 돈이 된다는 사실이 사상적 세뇌로 사라질 것같은가? 게다가 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것을 불법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같은가? 심지어 그게 바람직한 세상이기는 한가? 


이 문제를 매춘과 비교해 보자. 내가 말하는 것은 여성중에 10%만 계속 매춘을 하겠다고 나온다면 법으로 그것을 막지 않는 한 매춘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매춘은 인간 존중에 기초하여 불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그나마 어느 정도 있다. 포르노가 합법일 뿐만 아니라 매춘도 합법인 나라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는 여자가 10%만 된다면 코르셋 운동으로 뭘 이룰 수 있겠는가? 성적 매력을 풍기는 것을 윤리적으로 금지하고 나아가 법적으로 금지할 셈인가? 엄청난 노출을 하면서 춤추는 걸그룹 가수들이 인기를 누리는 시대에 탈코르셋? 솔직히 이야기하자. 그게 화장빨이건 노출이건 이성이 관심가져 주는 것이 왜 싫기만 하겠는가. 남자들은 여자들 마음에 들려고 별 미친짓을 다 한다. 여자는 다른가? 여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보이그룹 팬클럽만 봐도 간단히 안다. 남자의 관심을 사려고 남자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 것이 나쁜 일인가? 그걸 막아야 하며 막을 수 있나? 


통상 많은 여성들은 미국같은 나라보다 한국에서 여성 인권이 작다고 생각한다. 미국 여성은 그러면 탈코르셋하고 있나? 이 문제에 대해 복잡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러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취향을 절대선으로 말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통용되는 것은 다 좋고 괜찮은 것이고 그와 다른 한국의 문화는 여성 억압의 결과로 이해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미국에서는 청소년 섹스와 스킨쉽이 더 보편적으로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그럼 미국의 남성들이 미국 여성을 억압하고 세뇌해서 만들어 낸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미국 여성의 자유가 발현된 결과인가?  


이런 문제는 따지다 보면 끝이 없다. 물론 우리는 사회적인 억압을 받는다.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건 남탓할 일이 아니니 다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말 제대로 자기 몫을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일단 먼저 자기에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예를 들어 5살 짜리 꼬마가 친구에게 장난감을 빼앗겼다고 운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 꼬마의 호소를 들어줄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말해 그 꼬마가 정확히 자기몫을 받았는가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5살짜리 꼬마는 통상 남의 권리와 자기 권리를 제대로 구분하여 인정하고 인정받는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한번은 그 꼬마가 억울할지 모르지만 그 꼬마는 남에게 항상 공평했을까? 그러니까 어른들은 5살 꼬마들의 싸움의 진실은 그리 깊게 파지 않는다. 그 꼬마가 특이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말하는 데 이어서 여자를 꼬마에 비유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지독한 여성차별주의자라는 욕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욕을 하더라도 좀 참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말하는 것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말은 여성들의 권리찾기란 먼저 극단적인 여성들을 자제시키고 스스로 더 많은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가 독립운동을 할 때 그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도사람들에게 영국 시민의 의무를 다하자고 주장했다. 자기가 그렇게 했듯이 인도 사람도 전쟁에 참여해서 영국사람만큼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는 폭력에 반대했고 인도사람들이 영국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인도인의 저항운동을 단식으로 막았다. 간디는 기본적으로 총칼과 무력으로 혹은 논리나 증거로 인도 사람의 권리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간디는 우선적으로 인도사람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존중할 만한 사람들이며 이성과 자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했다. 즉 인도인은 자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인도인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영국인이 인도인을 도와주고 통치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선독립운동이 단순하게 일본인 중심의 사회에 반항하는 것에서 멈췄으면 조선인들은 그저 사회부적응자이며 열등한 종자라는 취급밖에 못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하게 조선의 정체성을 걸고 자기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통치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3.1 만세운동 같은 조직적 평화적 운동 단순한 불량배들이 어떻게 하겠는가. 


남자로서 나는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왜 스스로 나는 한국의 시민이니 군복무를 하거나 그와 동등한 것을 하겠다거나 남자들이 군복무를 하고 받는 어떤 이익이 있다면 그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왜 여자가 사회를 위해 더욱 더 많은 봉사를 하자고는 하지 않는가? 왜 남자는 누릴 수 없는 여성할당제를 거부하고 여성이라고 받는 생리휴가같은 여러가지 보살핌을 단호히 거부하지 않는가? 왜 여자대학은 없어져야 하고 데이트는 당연히 더치페이로 해야 하며 결혼에 있어서도 남자와 여자가 같은 조건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먼저 주장하지 않는가?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 남자가 억울해 보이는 상황이 생기면 남자들이 불평하기 전에 왜 먼저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 그 남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가? 왜 남자들 중에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여자들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았는데 여자들은 나서서 남자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걱정해 주지 않는가? 



그랬다면 그것은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것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여성들이야 말로 남자 이상의 훌룡한 시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여자보고 군대가라고 하고 생리휴가는 없애자는 남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닌가 한다. 박근혜는 여자지만 아주 실망스러운 대통령이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중의 하나는 대통령으로서 직무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핑계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주장하곤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때 박근혜가 미용시술을 받았다는 소문은 그렇다고해도 미용사를 불러서 머리를 만지고서야 숙소바깥으로 나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독일총리 메르켈은 그렇다쳐도 헌법재판소의 이정미 재판관이 탄핵재판때 헤어롤을 머리에 붙이고 바깥에 나온 사건은 오히려 남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나는 긴급상황인데도 미용사를 청와대 바깥에서 호출하는 대통령이 오히려 부끄럽다. 박근혜의 헤어스타일도 사회적 압력이 만들어 낸 코르셋인가? 박근혜는 그것말고도 계속해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게 페미니즘일까?


여자들 중에는 아직도 자신이 남자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여자가 남자와 정말로 동등하다고 믿는다는 것은 내 몫을 요구하는 것보다 특혜를 받는 것을 기분 나빠하는 것에서 나온다. 가라앉는 배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노약자에게 배를 먼저 타라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지 나도 그 구명정에 한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특혜를 좋아하고 나아가 특혜를 요구하는 여자들이 분명히 세상에는 꽤 있다. 그들은 종종 그것을 성적인 매력을 통해서 얻는다. 그런데 그런 특혜를 주장하고 받는 것은 나는 남자와는 동등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면이 있다. 정도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여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개선되지 않는 핵심적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말이 옳다고 믿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남자의 탓만 하고 있으면 이 부분은 해결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혹시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적어 둔다. 그럼 남자의 적은 남자일까? 말해 뭐하겠는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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