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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가장 큰 메세지.

by 격암(강국진) 2018. 12. 20.

우리는 모두 여러가지 동기와 이유로 산다. 그것들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도 있을 테고 사소하지만 강력한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먼지가 가라앉듯이 사소한 것들은 잊혀지고 무시될 것이고 뒤돌아보면 도대체 그게 다 뭐였나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뭘 쫒아서 뛰어온 것일까? 그건 그냥 즐겁게 살자일 수도 있고, 한국의 번영일 수도 있고, 소중한 건 결국 가족이었다는 것일 수도 있으며, 남들이 뭐라고 하던 결국 중요한 건 내 감정이니 내 감정대로 살자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람은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 지고 볼 일이다라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지구의 환경문제가 가장 큰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종교가 그것일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교육이 바로 서야 이 세상이 좀 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의료나 빈부격차 혹은 가난한 사람들의 기아문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람속에서 흩날리며 떨어지는 낙엽은 이리저리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 중력에 의해 꾸준히 아래로 떨어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본인이 그걸 알건 모르건 본인이 그 메세지를 위해 살건 그렇지 않건 어떤 방향으로 떨어져 간다고 느낄 때가 있다. 우리가 어느 날 뒤돌아 보니 결국 나는 친구가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거나 결국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떨어져 가는 그 방향이 보통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이니 가치관이니 삶의 철학이니 하고 부르는 것이다.  


나도 나를 여러번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나도 나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였나 하는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살았고 그런 걸 공부했고 이런 블로그에 엄청난 양의 글들을 써왔을까? 나는 정치에 대한 글도 꽤 썼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글도 꽤 썼다. 그러나 내가 던지는 메세지는 결국 이것이다. 


이 세상에 문제들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들이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나는 그 문제들을 인간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환경문제도 교육문제도 경제문제도 그렇다. 무슨 문제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그런 힘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선택들이 비합리적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이 분산되고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출신치고는 나는 세부사항과 숫자를 크게 개의치 않는 때가 많은데 왜냐면 나는 현실의 세부적인 면보다 인간의 의지를 더 높게 사는 쪽이라서 그렇다. 즉 어떤 법칙에 따라 이러저러하게 일이 흘러갈 거라고 말하기 보다는 우리의 의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가 그런 의지를 가질 수가 있는가라는 쪽에 더 관심을 준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하고자하면 일단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모든 크고 작은 문제들은 해결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우리는 그 세부사항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이렇다고 할 때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것은 뭔지, 우리는 어떻게 합리적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은 정말 합리적으로 변해 갈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나는 무엇보다 특정한 문제에 매몰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합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 뭐뭐는 당연하다같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어떤 특정한 패러다임이나 이데올로기에 빠져들고 나면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사고를 엄밀히 검토해도 우리는 아무런 실수나 오류를 발견할 수가 없게 된다. 이미 우리는 뭐뭐는 당연하다같은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같은 메세지에 몰두해 온 결과 한가지 것을 믿게 되었다.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유한하다라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초연금이나 한자녀 가정을 위한 예산이 30% 삭감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말로는 모른다. 첫째로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삶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자기 부모님이나 자식에게 용돈을 드리던 것을 30%깍아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는데 그 수없는 사람들의 사연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건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을 소음레벨같은 1차원적인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양자역학책을 더듬는 개미보다 나을 것이 없다. 


둘째로 세상은 더 이상 선형적인 모델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뭘 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 사실은 이해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굶는 사람에게 밥을 주면 안굶어 죽고, 취직자리가 없는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그들이 일자리를 가지게 된다는 당연해 보이는 말들도 이제는 더이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틀렸다는 것도 아니지만 맞지도 않다. 하나의 사건은 여러가지 피드백을 만들어 복잡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어떤 지역에 늑대같은 포식자를 풀어놓았더니 오히려 지역의 생태계가 눈부시게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늑대가 순록을 잡아먹고 풀의 싹을 먹는 순록이 줄자 생태계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록을 잡아먹는 늑대가 순록의 숫자를 늘려 준다는 이상한 상황도 현실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유한하다고 할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첫째로 우리가 유한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언제나 일이 우리의 의도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동을 결과론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쟁에 이길 것같으니까 맨앞에 서서 열심히 싸운 척 한 장수는 이긴 전쟁에 참여한 장수이고 전쟁에 패배하는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해 싸운 장수는 패한 전쟁에 참여한 장수이다. 그러니까 장수를 판단할 때 얼마나 자주 이겼는가를 가지고 판단하면 우리는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지지해 주는 것이 된다. 그러니가 모두가 역겨운 정치가 처럼 되는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성공하는 일에 자기 이름을 끼워넣어서는 좋은 이력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선한 의지와 겸손이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의지가 없다면 그 사람은 좋은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의지나 메세지를 알게 된다. 이 사람이 정말 어떤 메세지를 가지고 철학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아니면 그때 그때 말을 만들어 왔는지는 한 사람의 평생을 들여다 보면 어느 정도 들어난다. 


그러나 선한의지를 가지고 어떤 이데올로기에 빠져드는 사람만큼 위험한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세상을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한다. 미래는 어차피 이러저러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독재로 뭔가를 하기만 하면 세상은 좋아지게 되어 있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카지노를 지으면 지역경제는 살아나게 되어 있다던가, 선거법을 이렇게 바꾸면 한국정치는 발전하게 되어 있다던가, 부동산 소득세를 이렇게 만들기만 하면 한국경제는 살아난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의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가 유한하다는 것을 잘 기억하는 사고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전제하고 말한다면 나는 기술적 발달이 없이는 심지어 인간사회의 합리성도 더 향상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인터넷이나 인공지능따위가 발전하면 인간사회가 무조건 좋아진다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술발달이 없이는 우리는 부정확한 정보에 휘둘려서 합리성을 잃게 되는 현실을 극복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미래 사회의 중요한 기반으로 여겨야 한다. 멀지않은 장래에 우리가 문자없이는 합리성을 논할 수 없듯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없이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고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아무리 대단하고 필수적인 것이라도 결국은 도구다. 철없는 아이들에게 핵무기 스위치를 준다면 세상은 망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발전하는 도구에 걸맞는 인간이 등장하지 못할 때 인간은 완전히 망하지는 않더라도 지독한 일을 당할 것이다. 육지에서는 걸어야 하지만 물에서는 수영을 해야하고 날개가 있고 허공에 있다면 우리는 날아야 한다. 그것이 합리성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태도를 준비하지 못할 때 우리의 아픔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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