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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한국의 기회

by 격암(강국진) 2019. 1. 10.

2019.1.10

BTS의 미국과 유럽 공연 모습은 나에게 잔잔하지만 큰 놀라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을 것인데 그 공연에서 우리는 서구의 청소년들이 동양의 보이그룹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한국의 큰 성취이고 나아가 동아시아의 성취이며 이것이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과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역사의 전환을 상징한다. 비슷한 예에는 마이클 잭슨이 있다. 마이클 잭슨은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금기를 깼다. 마이클 잭슨 이전만 해도 미국에서 흑인가수는 최고가 될 수 없었으며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을 가리는 금기가 미국에 있었다고 한다. 그같은 편견은 누구도 팝의 역사에서 왕좌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마이클 잭슨이 나타남으로써 깨어졌다. 

 

마찬가지로 BTS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깼다. 지금까지의 세계는 서구의 백인 남성 중심의 문화에 주도되어왔다. 그나마 여성과 흑인에 대한 배려는 서구 내부의 사회운동의 결과 조금씩 있어왔지만 동양인의 경우는 예외가 별로 없었다. 동양인은 미국 문화에서 항상 바보 아니면 재미있는 친구쯤의 역할만 했다. 그러니까 서양 남자는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 맨이었다면 동양남자는 성룡 정도의 이미지였다. 약간 잘생긴 싸이 정도다. 재미있는 사람정도지 멋진 사람,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반면에 영화나 소설속에서 서양인은 타문화권에 가면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인디언 무리에 들어가서나 사무라이 문화에 가면 그곳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는 한다. 타잔이나 모글리같은 모습이랄까. 물론 거기에서 동물의 역할을 하는 것은 주로 흑인이나 동양인이다. 

 

물론 우리는 BTS를 단순히 일회성의 사건으로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기란 한번 깨어지고 나면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기 훨씬 쉽다. 마이클 잭슨의 예를 위에서 들었지만 일본에서 배용준의 겨울소나타가 인기를 얻은 것도 그 당시로서는 비슷한 예였다. 이 일은 일회성의 일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결국 그 이후로 한국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한국 가수들의 인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들은 바에 따르면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그 이전에는 일단 남북이 잘 구분 안되고 모두 조선인으로 여겨졌고 이들은 모두 폭력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소나타 이전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었고 그 이후 결코 다시 되돌아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나는 일단 한번 BTS가 금기를 깬 이상 앞으로 제2, 제3의 동양인 스타가 나타날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21세기에서 동양인에 대한 문화적 금기가 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과거에 한 국가의 힘은 주로 공장의 힘이나 군대의 힘에 많이 의존했으며 그런 힘이 가져온 부가 자연히 문화적 주도권도 가져오게 만드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미국도 영국도 문화가 먼저 퍼져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패권국가가 된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하지만 21세기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오늘날에는 문화의 힘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적 지역으로 성장한다면 그것은 제조업이나 군사력 이상으로 문화산업의 성장에 힘입은 바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군사력은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군대는 매우 돈이 많이 들며 군사력의 증강은 또다른 군사적 대치를 불러서 낭비를 하게 만든다. 그것은 미국같은 부자나라도 파산상태에 빠지게 만들정도로 비효율적인데 게다가 핵무기의 존재때문에 사실은 전면전이란 있을 수도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세계가 빠른 통신으로 이어진 결과 점점 더 추상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것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물론 제조업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지만 큰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은 물건을 만드는 공장 그 자체가 아니다. 아이폰과 갤럭시가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보다 문화적 신뢰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적 동질성과 소통으로 만들어진다. 

 

문화사업은 자동차를 팔거나 반도체를 파는 것보다 파급효과가 더 크다. 모짜르트 생가를 보러 관광가던 우리가 BTS 멤버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관광자원으로 쓸 시대가 온다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클까? 요즘은 한글간판이 점차로 더 인기를 얻는다고 한다. 전국의 간판에 영어투성이인 이 시대가 세계를 한글로 뒤덮는 시대로 바뀐다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클까? 문화산업은 단순히 음원수입이나 영화관 티켓 판매량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경제적 이득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동아시아의 성장이전에 앞에서 말한 서구의 백인 중심문화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대단한 나라다. 하지만 그 대단하다는 미국의 문화사업을 보면 나는 지극히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보자. 올해 부터 방송을 시작한 미국판 복면가왕 마스크드 싱어를 보면 한국의 포맷을 사갔지만 그 형태가 변형된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일단 거의 생방에 가까울 정도로 금방 만들어 금방 방송한다. 그래서 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쇼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미국판은 6개월 전부터 예고편이 나올 정도로 일찍 만들었다. 그런데도 완성된 프로그램을 보면 12명의 출연진중 한명씩만 가면을 벗고 모두 다해서 한 시즌에 10회밖에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그 12명의 가수가 모두 그렇게 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연예인 판정단의 수가 4명에 불과하다. 당연히 가왕에 도전한다는 것도 없으며 가면뒤의 사람이 누구일까를 평가하는 연예인들의 말들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8명의 출연자가 2주간 경쟁해서 가왕에 도전하는 한국판과는 상당히 다르다. 한마디로 이것은 한국의 복면가왕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아쉬움이 있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런 현실은 마스크드 싱어만 그런게 아니다. 나는 요즘의 헐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실망할 때가 많다. 20년전만 해도 미국 영화나 드라마는 한국이 따라갈 수 없는 치밀한 스토리를 가졌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좀 더 신경을 쓸 뿐 그저 폭력과 섹스로 물든 스토리 뿐이다. 들이는 돈을 생각하면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다. 배우도 늙은 배우가 끝도 없이 나온다. 어제는 아내와 버드 박스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봤는데 55세의 산드라 블록이 임산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미국은 60대 노인인 브루스 윌리스나 이제 71살인 아놀드 슈월츠제네거를 데려다가 액션영화를 찍기도 하던가? 사실 이제 그 대단하다는 그래픽도 한국과 크게 차이도 나지 않는다.

 

이 모든 차이는 물론 상당부분 돈에서 나온다. 미국의 문화산업은 규모가 엄청나다. 최근 미국에서 반지의 제왕을 티비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는데 예상되는 제작비가 1조라고 한다. 4편을 한꺼번에 제작하고 있는 영화 아바타의 예산도 1조 5천억 수준이다. 그들의 산업은 규모가 너무 커지면서 오히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되었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지나치게 획일화되었다. 음악도 시나리오도 영상컨텐츠의 주제도 그렇다. 한국의 복면가왕에는 BTS 멤버나 전설의 가수급의 가수가 나와서 가왕이 못되도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만다. 한국에는 그런 일이 흔하다. 하지만 미국의 티비 방송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 

 

생각해 보라. 만약 미국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 도깨비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극히 적은 비용만 들여서 컨텐츠를 만들어도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실제로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 도깨비의 인기는 왕좌의 게임 못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이병헌 나오는 드라마에 돈을 투자하는 것처럼 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미 유튜브에는 미국인들의 반응도 올라오고 있다. 미국인들도 다르지 않다. 미국인들 중에도 미국 드라마보다 한국 드라마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왜 돈을 벌고 싶은 미국의 문화산업계는 한국 컨텐츠를 열심히 안팔았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백인 중심의 문화 주도권과 아시아 사람에 대한 편견이다. 그것이 바로 같은 일을 해도 백인 미국 가수나 백인 배우가 하면 엄청난 돈이 되는데 한국인이 하면 그렇지 않은 주된 이유다. 그런데 BTS가 지금 그 장벽을 깼다고 하지 않은가. 이제 한국의 문화는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중대한 사건이 아닐 것인가. 

 

한국, 일본, 중국이 있는 극동아시아는 여러모로 미국의 패권을 잇는 다음번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것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이미 80년대에 일본은 재팬이즈넘버원이란 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중국의 경제가 떠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는 문화적 주도권을 가져오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일본이나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데 실패했던 그리고 실패하고 있는 한 이유가 되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문화는 세계적인 보편이 되기에 부족함이 있었고 그들의 판단력과 가치관이 설득력이 없었으며 그때문에 이제까지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깨지 못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을 보라. 중국은 엄청난 경제력을 자랑하지만 중국이 세계의 중심역할을 할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여전히 소수일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한가지 상징적 장벽이 바로 중국에서는 서구의 SNS와 유튜브를 못하는 것이다. BTS의 지금을 만든 것이 그것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점은 더욱 아프다. 그런데 왜 중국은 그럴까? 왜냐면 중국사회의 현실이 세계적 보편성을 말하기에는 너무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중국을 주목해도 중국은 오히려 숨기 바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노래와 영화와 드라마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에 인재는 많겠지만 사회 정치적 금기가 문화의 발전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BTS가 동양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넘었다. 이제 한국은 문화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가능성이 있고 그걸 기반으로 한반도의 평화까지 정착시킨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짧은 시간내에 정말 상상도 못하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그 문화적 중심의 역할을 통일 한국이 하는 것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소니를 삼성이 능가하는 것이나 BTS가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는 것도 그런 일이 있기 전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다만 우리는 빛나는 미래만 생각하면서 가슴만 부풀리기 보다는 적어도 두가지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로또에 당첨되도 본인이 그걸 감당하지 못하면 신세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에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세계가 한국으로 몰려오면 우리는 그 외국인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폐쇄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반대로 개방만 외치다가 자기를 잃어버리고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잃게 되면 아무 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국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 기회가 와서 한국이 번영을 누리게 된다면 그 상황에서 독점과 보수화로 편하게 살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뒤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도 미국과 다를게 없게 되고 모처럼 생기는 기회를 놓칠 것이다. 기회는 곧 위기다. 이 기회를 놓치면 한국의 미래는 다시 크게 어두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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